‘어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 (2023/2/1)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눅7:1-10)
①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2절)
속뜻으로는 ‘종’은 겉 사람을, ‘병’은 여러 가지 영적 질병,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그 속뜻으로는 교회 밖 어느 이방인의 겉 사람이 아주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걸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질병은 여러 가지 영적 문제들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맹인이나 귀머거리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을, 절름발이나 중풍병자는 진리를 알면서도 의지가 약해 살아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②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3절)
주님의 신성(The Divine)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으며, 그래서 주님의 호칭들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신성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여호와’, 진리에 대한 호칭은 ‘하나님’이시며,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예수’, 진리에 대한 호칭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백부장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는 것은 교회 밖 이방인인 백부장이 교회가 가르치는 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교회, ‘장로’는 선한 삶을 통해 체득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로 몇을 주님께 보내어 도움을 청하는 것은 행동하는 진리, 진리 실천이라는 선한 삶을 통해 주님과 소통하는 것, 곧 백부장 편에서는 참 진리를 가지고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고, 주님 편에서는 원하는 진리를 그에게 충분히 주시는 것입니다.
③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4, 5절)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는 장로들의 말은 사실은 유대 장로들의 말이 아니라 진리로 소통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그렇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이 사람의 병 치유됨이 합당하다 판단하시는 것이지요.
‘민족’, 곧 나라는 선을, ‘회당’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는 것은 백부장이 주님의 선을 선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의 내면에 이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은 그가 병 고침 받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합당하다 여기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수반하는 진리를 받을 수도, 따라서 병의 치유도 어렵습니다.
④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 7, 8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주님으로부터 백부장에게로 진리가 흘러 들어가는데 그 안에 선이 들어있음을 의미합니다.
‘벗’은 이웃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웃 사랑을 통해 우리 각 사람에게 오십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인간의 지성을 주님의 진리보다 위에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또는 주님의 진리 위에 무슨 사사로운 세상 지식이나 자기 생각을 섞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우선시나 왜곡이 있게 되면 주님의 일이 힘 들어지며, 그래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원고를 참고하시고요, 오늘부터 당분간 매일 설교 공유 시간이 좀 늦어지겠습니다. 매일예배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늦춰지게 되었고, 또 설교 내용을 앞뒤 한 장으로 요약하는 시간이 좀 소요되어 그렇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전후로 맞춰보겠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 역시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 즉 한 시간씩 늦어지겠습니다
설교 : https://youtu.be/8YHDlqK8g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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