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5)’ (2023/6/2)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오늘은 마지막 다섯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이들 정말 적은(very few), 무슨 말을 하다 만 것 같은 약간의 진술들이지만, 이 정도로도 유혹이라는 게 어떤 건지(what temptations are), 그리고 가만 보면, 이게 사랑하고도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건, 주님이 받으신 시험, 유혹의 본질, 본성이 무엇인지(the nature of the Lord’s temptations)하는 것인데요, 그것은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것으로서(the most terrible of all), 주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the greatness of the love)이기 때문이며, 그만큼 주님이 받으신 유혹의 성격 또한 정말 두려운 것(the fearful character of the temptation)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는 사랑이었으며, 그래서 가장 열정적이었고, 그 결과, 가장 높은 수준의 선에 대한 애정과 진리에 대한 애정(the affection of good and affection of truth)의 총합이었는데, 이에 대항하여, 지옥 전체가 가장 악의적인 농간과 독을 품고(with the most malignant wiles and venom)달려들었지만, 그러나 주님 홀로 저들 모두를 정복하셨습니다. 이런 승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악의적 정령들과 영들(the malignant genii and spirits)은 감히 아무 짓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생명이란 고작해야 파괴할 수 있냐 없냐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들을 맞설 수 있는 사람, 저항할 수 있는 사람(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임을 지각하는 순간, 그들은 그 사람에게서 즉시 달아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들이 천국의 첫 번째 입구 근처에 가까이 갈 때마다 거기서 즉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던지는 그런 모습과 똑같습니다. From these few statements, and they are very few, it may be seen what temptations are, and that they are, in general, such as the loves are, and from this we may see what was the nature of the Lord’s temptations, that they were the most terrible of all, for such as is the greatness of the love, such is the fearful character of the temptation. The Lord’s love was the salvation of the whole human race, and was most ardent; consequently it was the whole sum of the affection of good and affection of truth in the highest degree. Against these, with the most malignant wiles and venom, all the hells waged the combat; but still the Lord conquered them all by his own power. Victories are attended with the result that the malignant genii and spirits afterwards dare not do anything; for their life consists in their being able to destroy, and when they perceive that 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 then at the first onset they flee away, as they are wont to do when they draw near to the first entrance to heaven, for they are at once seized with horror and terror, and hurl themselves backward. (AC.1820.5)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주님의 사랑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는 사랑’
첫날 말씀드린 내용이 생각나는데요, 곧 악령들은 사람이 무슨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절대 무슨 공격도, 심지어 관심 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이 말은 역으로 말하면, 사랑이 클수록 지옥의 공격이 크다는 말이며,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큰 사랑을 하신 주님은 그 결과, 누구보다도 혹독한 지옥의 공격 가운데 늘 계셨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런 차원이 다른 공격을 늘 이기시기 위해서는 또한 아버지이신 여호와와의, 차원이 다른 교제 가운데 늘 머무르셔야만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요, 주님에 관한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 역시 이 세상 삶 가운데 늘 이기기 위해서는, 늘 승리하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심으로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본 되어주신 주님, 그리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2. ‘어떤 사람이 자기들을 맞설 수 있는 사람, 저항할 수 있는 사람(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임을 지각하는 순간, 그들은 그 사람에게서 즉시 달아나는데’
야고보의 권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가 생각납니다. 모든 유혹 앞에서, 시험 앞에서 눈을 부릅뜹시다. 명예, 권세, 평판, 부, 건강, 외모, 유불리 등 삶의 전방위에서 우리를 흔드는 지옥의 공격 앞에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여 지옥에 대적, 저항, 맞섭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여 꼭 쥐고 있는 것들을 역시 주님을 사랑하여 하나하나 내려놓읍시다. 지옥이 우리를 건드릴 소지가 충분한 것들, 즉 공격할 빌미, 꺼리들을 제공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저런 것들을 부인, 부정, 무슨 비뚤어진 금욕을 지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저런 것들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어도 우리는 그것을 단지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무슨 쓰임새(use) 정도로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쓰임새들의 형상, 체어리티(charity)의 모양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좋은 것을 주님으로부터 아낌없이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3. ‘그들이 천국의 첫 번째 입구 근처에 가까이 갈 때마다 거기서 즉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던지는 그런 모습’
실제로 지옥의 영들 중 천국을 원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허락, 천국 초입까지 접근하지만, 그러나 천국의 경계를 넘어 천국 빛에 노출되는 순간, 그들은 무슨 연탄불 위 오징어 오그라들듯 그렇게 사지가 뒤틀리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만 도로 지옥으로 점프, 지옥의 빛과 그 기운을 쐬고 나서야 한숨 돌리며, 그렇게 평안해 한다고 하는데요, 이들이 천국 빛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은 자기 안의 질서가 모든 면에서 천국과 정반대, 완전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의 영(spirit), 곧 사람의 속(internal man, 속 사람)은 자연계에서는 겉인 몸(body)에 가려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후(死後), 그러니까 이 모든 외적인 것이 제거된 후 남는 것인 영으로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사후 세계에서는 이 모든 실체, 정체인 속이 드러납니다. 세상에서는 점잖은 명망가요, 명성 관리를 잘하여 사람들에게 점수를 많이 땄어도 그것이 속으로는 오직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런 사람은 사후엔 그 정체가 드러나 바로 저런 비참한 상태로 전락합니다.
문제는, 지옥의 속이는 기술인 이 ‘유혹’이 얼마나 교묘한지, 살아생전 본인은 지금 자기가 속고 있는 줄은 전혀 꿈에도 모른 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감지, 감별하기 위한 유일한 질문은 바로 ‘나는 지금 주님을 사랑하는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의 상황 속에서도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최종 도달점은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지난 한 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제 역량이 이리도 모자라 결국은 이렇게나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국의 일을, 영계의 일을 정말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주님 빛 구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이런 글이어도 늘 수신하여 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 글들을 내치지 않으시는 모든 분께 보답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1)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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