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

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로, 먼저 이 교회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이 묘사됩니다.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해설

AC.474는 AC.469에서 시작된 창5:1의 해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왜 창5의 계보가 곧바로 셋과 그 후대의 교회들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태고교회 자체의 상태를 설명하는지를 밝혀 줍니다. 창5가 다루려는 것은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입니다. 여기서 ‘번성’은 단순히 자녀가 태어나 인구가 늘어나는 생물학적 번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회로부터 그 성격을 이어받은 후대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계속되는 교회적 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후대의 교회들을 설명하려면 먼저 그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창5:1은 태고교회가 먼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것을 묘사합니다. AC.472와 AC.473에서 살펴본 ‘창조하다-영적 인간-하나님의 형상’과 ‘만들다-천적 인간-하나님의 모양’이라는 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창5의 여러 교회가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이후의 번성은 바로 이 상태로부터 이어진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등장할 셋, 에노스, 게난 등의 교회들은 아무 관계 없이 차례로 등장하는 독립된 교회들이 아니라, 먼저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파생되고 계승되는 교회들입니다. 물론 후대로 내려가면서 처음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장 개요에서 보았듯이 그 상태는 점차 변화하고 쇠퇴하여 마침내 노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승의 출발점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입니다.

 

이것은 ‘계보의 책’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문자적으로 계보에는 부모와 자녀의 출생이 기록되지만, 속뜻으로는 교회가 교회를 낳고 그 교회의 고유한 상태가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이 기록됩니다. 그러므로 창5의 ‘낳았다’는 표현을 앞으로 만날 때에도 단순히 개인의 출생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 상태로부터 다음 교회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AC.474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창4와 창5의 관계에도 하나의 중요한 기준을 더해 줍니다. 적어도 창5의 계열에 대해서는 스베덴보리가 그 출발점을 분명히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가 된 태고교회’에 두고 있으며, 그 이후의 교회들이 ‘이 상태로부터’ 번성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창5는 태고교회 자체의 천적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후대 교회들의 계승과 변화를 추적하는 하나의 분명한 교회적 계열입니다. 이것이 창4의 계열과 정확히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하지만, 창5 자체의 출발점과 진행 방향은 이제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AC.469-474에서 창5:1은 앞으로 펼쳐질 교회사의 기준점을 세웁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여 영적 인간으로 만드시고, 다시 사랑으로부터 살아가는 천적 인간으로 완전하게 하셨으며, 그렇게 이루어진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로부터 이후의 여러 교회가 이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창5의 계보를 움직이는 가장 깊은 시작은 인간의 혈통이 아니라, 사람을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이끄시는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AC.474 해설)

 

 

 

AC.469-474 심화 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69-474 심화1, ‘태고교회는 왜 집안과 일가와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는가?’ AC.470-471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 시대의 사람들이 ‘집안’(house), ‘일가’(family), ‘민족’(nation)으로 구별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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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5, 창5:2, ‘신앙과 사랑의 결혼을 이룬 교회’(AC.475-480)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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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3, 창5:1, ‘하나님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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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영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보여 준 바 있습니다. ‘형상’(image)은 ‘모양’(likeness)을 위한 준비 단계이며, ‘모양’은 실제적인 닮음(real replica)입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에 주님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해설

AC.473은 우리가 흔히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거듭남의 서로 다른 상태로 구별합니다. ‘형상’은 영적 인간을, ‘모양’은 천적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를 ‘형상은 모양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무관한 두 종류의 인간을 나란히 놓은 구별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앞선 상태와 더 완성된 상태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형상’이 영적 인간을 뜻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주님의 질서를 반영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직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지만, 아직 자신의 의지와 주님의 뜻 사이에서 싸움과 선택을 경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상’은 ‘모양’을 향한 준비입니다.

 

반면 ‘모양’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실제적인 닮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유를 곧바로 밝힙니다. 천적 인간은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적 인간이 주님과 동일한 존재가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의 사랑과 의지와 삶의 질서가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그 삶에서 주님의 사랑과 선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AC.472의 ‘창조하다’와 ‘만들다’의 구별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그 영적 인간이 더욱 온전하게 ‘만들어져’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이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조 → 형상 → 영적 인간’과 ‘만들다 → 모양 → 천적 인간’이라는 두 흐름은 서로 다른 설명이 아니라 동일한 거듭남의 질서를 서로 다른 말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적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말을 인간의 자유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참된 자유는 주님과 반대되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따라 선을 기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억지로 주님께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자신의 사랑이 점점 하나의 방향을 향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그의 기쁨과 자유가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모양’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결국 AC.473은 거듭남의 목적이 단지 ‘올바른 것을 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 안에 당신의 ‘형상’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형상이 사랑과 삶 속에서 더욱 실제적인 ‘모양’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신앙과 진리가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고, 마침내 사람이 주님의 다스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양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AC.473 해설)

 

 

 

AC.474, 창5:1,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나아간 태고교회’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4그러므로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출생 또는 번성(birth or propagation)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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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2, 창5:1, ‘창조함과 만드심,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day in which God created man)이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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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day in which God created man)이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모양대로 그를 만드셨다’(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가 그가 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하고 보여 준 것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본래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는 것, 곧 거듭나는 것과 관련되고, ‘만들다’(make)라는 말은 사람이 완전하게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는 ‘창조하다’(create), ‘짓다’(form), ‘만들다’(make)가 정확하게 구별되어 사용됩니다. 이것은 앞서 2장에서 보여 준 바와 같습니다. 거기서는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에 관하여 ‘하나님이 그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창조하다’는 영적 인간과 관련되고, ‘만들다’, 곧 완전하게 하다는 천적 인간과 관련됩니다. (AC.16, 88)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해설

AC.472는 창5:1에 사용된 ‘창조하다’와 ‘만들다’를 같은 뜻의 반복으로 보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창조하다’, ‘짓다’, ‘만들다’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속뜻으로는 사람의 거듭남에서 서로 다른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창조하다’는 사람이 새롭게 창조되어 영적 인간이 되는 것과 관련되고, ‘만들다’는 그렇게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더욱 완전하게 되어 천적 인간이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거듭남의 진행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완성된 천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새롭게 창조’되어야 합니다. 자연적인 삶과 자기 자신의 것, 곧 proprium에 매여 있던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진리와 신앙을 받아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는 것이 ‘창조’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역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사랑과 결합하고, 사람이 진리를 단지 알고 믿는 상태를 넘어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지각하고 행하는 상태에 이를 때 그는 점차 천적 인간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AC.472는 창2의 ‘하나님이 그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을 다시 불러옵니다. AC.16과 AC.88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식’은 주님께서 더 이상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거듭남의 싸움이 지나고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움직이는 천적 상태에 이른 것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천적 상태에서는 사랑이 중심이 되어 선으로부터 진리를 보고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조’에서 시작된 거듭남이 ‘만드심’, 곧 완전하게 하심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완전하게 된다’는 표현도 주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흠이 전혀 없는 절대적인 완전성에 도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런 완전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하게 하심은 거듭남의 질서가 더 온전히 이루어져, 신앙과 진리가 사랑과 선에 결합되고 사람이 점점 더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별은 태고교회가 왜 ‘천적 교회’라고 불리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창5:1은 먼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한 뒤 ‘하나님의 모양대로 그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AC는 이 순서를 ‘영적 인간이 됨’에서 ‘천적 인간이 됨’으로 읽습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도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거나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당신의 모양을 닮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결국 AC.472는 말씀의 단어 하나까지도 거듭남의 질서를 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창조하다’는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을, ‘만들다’는 그 생명이 사랑과 결합하여 더욱 온전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단지 진리를 알고 신앙을 갖게 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진리가 사랑이 되고, 그 사랑으로부터 삶이 흘러나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태고교회는 바로 이 질서가 가장 충만하게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AC.472 해설)

 

 

 

AC.473, 창5:1, ‘하나님의 형상에서 하나님의 모양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3‘하나님의 모양’(likeness of God)이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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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1, 창5:1,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별되어 살았던 이유’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1그들이 이처럼 따로 떨어져 살면서 오직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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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1

그들이 이처럼 따로 떨어져 살면서 오직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별되어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집과 가족이 그들의 부모에게 의존하여 사랑과 참된 예배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각 집은 다른 모든 집과 구별되는 고유한 성향(genius)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자녀들뿐 아니라 먼 후손들까지도 부모로부터 어떤 특정한 성향을 물려받으며, 그 특징이 매우 뚜렷하여 얼굴과 그 밖의 여러 고유한 특징들을 통해서도 서로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뒤섞이는 일이 없이 정확한 구별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거주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주님의 나라를 살아 있게 표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동체들이 있으며, 각 공동체는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다른 모든 공동체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홀로 거함’(living alone)과 ‘장막에 거함’(dwelling in tents)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주님께서는 유대교회가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별되도록 하셨고, 각 사람이 자기 가족 안에서 혼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The reason why they dwelt thus alone by themselves, distinguished only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was that by this means the church might be preserved entire, that all the houses and families might be dependent on their parent, and thereby remain in love and in true worship. It is to be remarked also that each house was of a peculiar genius, distinct from every other; for it is well known that children, and even remote descendants, derive from their parents a particular genius, and such marked characteristics tha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e, and by many other peculiarities.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ight not be a confounding, but an exact distinction, it pleased the Lord that they should dwell in this manner. Thus the church was a living representative of the kingdom of the Lord; for in the Lord’s kingdom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each one distinct from every 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This, as observed above, is what is meant by “living alone,” and by “dwelling in tents.” For the same reason also it pleased the Lord that the Jewish church should b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that everyone should contract marriage within his own family; but concerning thi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해설

AC.471은 앞 번호에서 설명한 ‘집-가족-민족’이라는 구조가 단순한 고대 사회의 생활 방식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그들이 서로 구별되어 살았던 목적은 ‘교회가 온전하게 보존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각 집과 가족이 자기 부모에게 의존함으로써 그 부모로부터 이어진 사랑과 참된 예배의 고유한 성격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별’이 곧 ‘분열’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각자의 사랑과 신앙 안에서 주님께 속할 수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각 집에 고유한 ‘성향’(genius)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genius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천재성’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후손에게 이어지는 고유한 성향과 기질, 내적 특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집과 가족들이 무분별하게 뒤섞이지 않고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혈통 보존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고유한 성향과 함께 사랑과 예배의 특정한 형태도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가 중요한 가장 깊은 이유는 지상의 교회가 ‘주님의 나라를 살아 있게 표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모든 천사가 똑같아지는 곳이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동체가 있으며, 각 공동체는 사랑과 신앙의 차이에 따라 서로 구별됩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공동체가 주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천국을 이룹니다. 따라서 태고 시대의 집과 가족과 민족이 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던 모습은 천국의 이러한 질서를 지상에서 살아 있게 나타내는 표상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홀로 거함’과 ‘장막에 거함’의 의미도 분명해집니다. ‘홀로’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어 고립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각 공동체에 주신 고유한 사랑과 신앙의 질서를 다른 것과 혼동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장막’ 역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랑의 거룩한 것과 예배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서로 구별된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각 공동체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랑과 예배의 고유한 형태를 보존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AC.471은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4와 창5의 관계에도 상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태고 시대의 교회가 처음부터 하나의 획일적인 집단으로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집과 가족과 민족’이라는 여러 공동체로 구별되어 있었고, 각 공동체가 서로 다른 고유한 성향과 사랑과 신앙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한 공동체에서 교리적 변화나 분리가 일어났다고 해서 태고교회 전체가 동시에 똑같은 상태로 변했다고 전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교회적 계열이 서로 구별된 채 존재하고 변화할 수 있었던 구조적 배경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창4와 창5의 두 계열이 정확히 어떻게 병행했는지를 확정하기보다는, 이후 AC의 설명을 계속 축적해 보아야 합니다.

 

결국 AC.471에서 주님이 보존하시는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질서 있는 다양성’입니다. 천국의 수많은 공동체가 서로 다른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가지면서도 주님 안에서 하나의 천국을 이루듯, 지상의 교회 역시 서로 다른 집과 가족과 민족의 고유성이 주님 안에서 바르게 보존될 때 하나의 살아 있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공동체 질서는 바로 그 천국의 질서를 지상에서 표상하고 있었습니다. (AC.471 해설)

 

 

 

AC.472, 창5:1, ‘창조함과 만드심,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2‘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day in which God created man)이 그가 영적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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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0, 창5:1, ‘이름들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들을 뜻한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5:1) AC.470‘계보의 책’(book of the births)이 태고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을 열거한 것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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