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9 심화
1. 왜 주님은 욕정과 거짓, 악한 영들의 작용을 즉시 제거하지 않으시는가?
AC.59에서 처음 읽는 사람을 가장 놀라게 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신다면 그 안의 욕정과 거짓을 빨리 없애 주시면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것들이 한순간에 제거되지 않으며 악한 영들까지 오랫동안 그 사람과 함께 있도록 허락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실까요?
먼저 AC.59 자체가 제시하는 이유를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욕정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 전체가 욕정들과 거기에서 나온 거짓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순간에 제거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획득해 온 생명이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자체가 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욕정과 거짓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좋은 것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거듭나기 전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오면서 자기 것으로 획득한 생명의 상태입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가운데 악한 욕정이 지배해 왔다면 욕정과 거기에서 나온 거짓은 몸에 묻은 먼지처럼 간단히 털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실제 삶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한순간에 제거하여 사람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거듭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악을 그대로 인정하거나 정당화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AC.59의 방향은 분명히 ‘개혁’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악한 영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있도록 ‘허락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은 ‘허락하신다’와 ‘뜻하신다’입니다. 악한 영들의 악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악을 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악한 영들은 자기 성질에 따라 사람의 욕정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작용이 마지막 결과를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AC.59은 그렇게 자극된 욕정들이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느슨해지고, 마침내 ‘주님에 의해’ 선을 향해 기울어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어는 결국 ‘주님’입니다. 악한 영들이 욕정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개혁하시고 선을 향해 이끄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그렇다면 왜 욕정을 자극하게 하시는가, 자극된 욕정이 왜 느슨해지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그러나 AC.59은 그 세부적인 과정을 여기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빈칸을 너무 빨리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욕정이 드러나야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이 나타나지 않으면 선을 자기 것으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AC.59이 이 자리에서 직접 설명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인간의 자유와 시험에 관한 다른 AC들을 충분히 살펴본 뒤 더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직접 말하는 데까지 가면 충분합니다. 악과 거짓은 사람의 획득된 생명에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한순간에 제거되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이 욕정을 자극하도록 허용되고, 그 욕정들은 여러 방식으로 느슨해지며, 마침내 주님께서 그것들을 선을 향해 기울이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도 피해야 합니다. ‘악이 즉시 없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악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AC.59의 주제 자체가 ‘전투’입니다. 악이 즉시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악을 용납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거듭남이 실제 전투를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서 이전의 욕정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곧 ‘나는 전혀 거듭나지 않았구나’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AC.59의 설명대로라면 거듭남의 과정 자체에 옛 생명과의 전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이 욕정도 주님께서 아직 남겨 두신 것이니 괜찮다’며 합리화해서도 안 됩니다. 욕정은 여전히 선과 진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즉시 제거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것을 선하다고 인정하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또 이 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너무 쉽게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도 악을 당장 없애지 않으시니 다른 사람의 잘못도 그냥 두어야 한다’는 목회 원칙이나 교육 원칙이 AC.59에서 곧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신적 섭리의 방식과 인간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AC.59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무엇보다 주님께서 한 인간을 얼마나 깊이 아시면서 거듭나게 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에게 얽혀 있는 악과 거짓을 단순히 잘라 내는 대상으로만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선을 향해 이끄십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악한 의도조차 주님의 다스림 밖으로 벗어나 마지막 결과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선과 진리를 미워하지만, 그들의 미움이 주님의 목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AC.59에서 ‘악한 영들이 허락된다’는 놀라운 말을 읽을 때 악한 영들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중심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작용 가운데서도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옛 생명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마침내 선을 향해 이끄시는 주님이 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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