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74.심화

 

2. ‘37:26-27

 

26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37:26, 27) Hast thou not heard how I have done it long ago, and from the days of old have I formed it; now have I brought it to pass, and it shall be to lay waste bulwarks, fenced cities, in heaps; and their inhabitants, short of hand, were dismayed and put to shame; they were made the grass of the field, and the green [olus] of the herb, the grass of the housetops, and a field parched before [coram] the standing corn (Isa. 37:26–27).

 

 

스베덴보리가 AC.274에서 사37:26-27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이 영적으로 자연적 생명만을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는 ‘들의 풀’, ‘푸른 나물’, ‘지붕의 풀’, ‘자라지 못한 곡초’라는 여러 식물 비유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잃은 사람과 교회의 상태를 단계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식물 종류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이 점차 쇠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먼저 ‘들의 풀’과 ‘푸른 나물’은 쉽게 자라고 쉽게 시드는 식물입니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깊은 생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감각과 기억 지식에만 의존하는 자연적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맺는 열매는 자라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지붕의 풀’은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지붕 위에는 흙이 거의 없기 때문에, 풀이 잠시 돋아날 수는 있어도 오래 자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의 내적 연결 없이 외적 지식과 형식만으로 유지되는 신앙도 잠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 유혹과 시련을 만나면 쉽게 메말라 버립니다. 이는 겉 사람은 활동하고 있지만, 속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또한 ‘자라지 못한 곡초’는 영적 성장의 중단을 의미합니다. 곡식은 본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라야 하지만, 아직 익기도 전에 말라 버리면 아무런 결실도 남기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람 안에 심겨진 선과 진리도 주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을 공급받지 못하면 거듭남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도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이 영적 황폐(vastation)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이 본문의 ‘태초부터’와 ‘상고부터’라는 표현에도 주목합니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먼 옛날을 뜻하는 시간 표현으로 보지 않고, 홍수 이전 태고교회 말기를 가리키는 상응적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곧 이사야는 당시의 역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교회가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영적으로 메말라 갔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37:26-27은 창3과 직접 연결됩니다. 창3에서는 사람이 타락한 결과 ‘밭의 채소를 먹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사37에서는 그 결과가 ‘들의 풀’, ‘푸른 나물’, ‘지붕의 풀’, ‘자라지 못한 곡초’라는 다양한 상징으로 더욱 자세하게 설명됩니다. 즉,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잃을수록 점점 깊은 영적 황폐 속으로 들어가며, 결국 열매 없는 생명만 남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37:26-27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이 단순히 자연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영적 생명을 잃은 사람의 상태를 뜻한다는 사실을 성경 전체를 통하여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들의 풀’, ‘푸른 나물’, ‘지붕의 풀’, ‘자라지 못한 곡초’는 모두 생명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하며, 이를 통하여 스베덴보리는 타락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더욱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AC.274, 창3:18,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8)AC.274‘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to eat the herb of the field), 곧 거친 음식(wild food)을 먹는다는 것은, 들짐승처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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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4, 심화 1, ‘단4:25’

AC.274.심화 1.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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