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4:20)

 

AC.413

아다(Adah)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그의 맏아들 야발이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조상(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이자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and of cattle)이라고 불리는 데서 분명해집니다. 이것들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을 의미하므로 천적인 것입니다. That byAdahis signified the mother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is evident from her firstborn Jabal being called the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which are celestial because they signify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goods thence derived.

 

해설

AC.413은 앞 번호에서 밝힌 야발의 속뜻을 근거로, 그의 어머니 아다가 왜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AC.412에서는 야발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번호는 그 설명을 거꾸로 따라 올라갑니다. 야발이 뜻하는 것들이 천적이기 때문에, 그를 낳은 아다는 신앙의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번호의 중심은 새로운 상응을 하나 더 제시하는 데 있지 않고, 아다와 야발의 의미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밝히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아다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신앙이나 성품을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문자적으로 아다는 야발의 어머니이고,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모자 관계를 새 교회 안에서 생겨나는 것들의 관계로 읽습니다. 아다가 어머니라는 것은 그녀에게서 태어나는 것으로 표현된 것들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보여 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야발의 속뜻을 살펴보면 아다가 의미하는 바도 더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야발이 뜻하는 것은 왜 천적인 것입니까? AC.413은 그 이유를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 천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고상하거나 종교적인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번 문맥에서는 사랑과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에 관계된 것을 가리킵니다.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이 천적이므로, 그것들에 관한 교리를 뜻하는 야발도 천적인 것과 관련됩니다. 이처럼 스베덴보리는 천적이라는 이름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천적인지를 사랑과 선의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특히 그로부터 나오는이라는 표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선은 사랑과 무관하게 따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이 무엇을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가에 관계된다면,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은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과 관계됩니다. 물론 겉으로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그 일을 움직이는 사랑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선을 말하면서도 그 근원인 사랑을 함께 말합니다. 이번 번호의 순서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이 먼저이고, 그 사랑에서 나오는 선들이 그다음입니다.

 

이 설명은 앞서 가인의 계보를 읽으며 반복해서 살펴본 신앙과 체어리티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인의 계보에서는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고, 그 분리가 깊어져 마침내 신앙마저 소멸하는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새 교회의 계보에서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가 등장합니다. 다만 AC.413이 새 교회의 모든 성격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번호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야발이 의미하는 교리의 천적인 성격과, 그 성격을 통해 밝혀지는 아다의 의미입니다.

 

성도들은 이 대목에서 아다가 천적인 것들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낯선 상응 하나로만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곧 야발이 의미하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선들이 천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의 연결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랑과 선을 함께 말하되, 선이 사랑에서 나온다는 질서를 기억해야 합니다. AC.413은 아다와 야발의 관계를 통해 새 교회의 천적인 것들이 무엇과 관련되는지를 한층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AC.413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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