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18 심화
1.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스베덴보리는 AC.418에서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노래는 영적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으면 마음속의 감정은 모두 천적이고, 입 밖으로 나오는 노래는 모두 영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번 번호의 문맥은 모든 인간의 감정과 노래를 무조건 천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 분류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기쁨이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이 노래로 표현되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과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설명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가 먼저 말하는 것은 천국의 기쁨입니다. 천국의 모든 기쁨은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은 노래로 표현됩니다. 이어서 현악기는 그 노래를 본뜨고 더욱 고양합니다. 여기에는 마음의 애정에서 노래로, 노래에서 악기의 소리로 이어지는 관계가 있습니다. 노래와 악기는 마음의 애정과 아무 관련 없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애정에서 비롯된 즐거움을 표현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노래와 현악기를 영적인 것들의 표상으로 설명하는 이유도 이 관계에 있습니다.
이 설명은 앞서 야발과 유발을 구별한 내용과 이어집니다. 야발은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거기서 나오는 선들에 관한 교리를, 유발은 같은 교회의 영적인 것들에 관한 교리를 나타냅니다. 야발의 장막과 가축에 관한 기록 다음에 유발의 수금과 퉁소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기록을 통해 사랑에 속하는 천적인 것들과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노래가 영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음악이 종교적 감정을 일으킨다는 뜻보다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노래가 그 자체로 영적인 선을 지닌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사랑이 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AC.418은 천국의 기쁨과 마음의 애정에서 비롯되는 노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번호의 설명을 모든 음악이나 모든 감정에 그대로 적용하여, 노래하는 행위 자체를 영적인 상태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노래라는 외적 표현이 아니라, 그 표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합창을 통해서도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천사들의 합창에는 천적인 합창과 영적인 합창이 있으며, 영적인 합창은 현악기의 소리에 비길 만한 특유의 음색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이 경험담은 천국의 노래를 지상의 음악 이론으로 분석하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별이 천사들의 합창에서도 나타난다는 그의 증언입니다. 그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더 설명하겠다고 밝힙니다.
여기서 사랑과 신앙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 마음의 애정과 관련된다면, 신앙은 그 사랑과 무관하게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마음의 애정과 노래를 연결한 설명은 사랑과 신앙을 서로 떨어진 두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를 ‘사랑은 언제나 말이 없고 신앙은 언제나 소리로 표현된다’는 식의 고정된 공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번호에서 노래는 사랑의 애정과 영적인 표현의 관계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상입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예배를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찬송의 아름다움과 음악의 풍성함은 귀한 것이지만, 스베덴보리의 설명에서 노래의 출발점은 마음의 애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했는가만이 아니라, 그 노래가 어떤 사랑과 기쁨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살펴보게 됩니다. 이것은 음악적 능력이 뛰어나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애정과 그 표현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애정은 천적이고 노래는 영적’이라는 말은 사랑과 신앙을 분리하기 위한 설명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쁨이 마음의 즐거움을 낳고, 그 즐거움이 노래와 악기의 소리로 표현되는 관계를 통해 두 가지의 구별과 연결을 보여 주는 설명입니다. 유발의 수금과 퉁소는 이러한 관계 안에서 신앙에 속하는 영적인 것들을 나타냅니다. 성도들은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표현을 그 근원인 사랑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AC.418 심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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