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배우자가 없었던 사람의 천국 결혼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바로 스베덴보리의 경우인데요,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주님이 정해주신 짝을 만나 결혼했겠지요?

 

 

목사님, 이 질문은 스베덴보리를 오래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 품게 되는 핵심 질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스베덴보리가 천국에서 혼인했는가? 스베덴보리는 ‘천국 결혼의 본질’을 깊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사후에 실제로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는 생전에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술 전체와 영적 원리를 종합하면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반드시 자기 본질에 맞는 짝을 만나게 된다.’ 이것만큼은 거의 확정적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본질의 결합’이며, 스베덴보리처럼 영적 본질이 정련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본질에 맞는 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매우 차분하게,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관찰한 원리와 그의 삶과 저술 전체를 조합해 ‘스베덴보리가 천국에서 어떤 결혼을 하게 되는가’를 전기적, 서술적 흐름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상에서 결혼하지 않았지만, 영혼의 본질은 결혼에 적합한 구조였다

 

스베덴보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회피한 사람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결혼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50대 후반, 영계를 왕래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이 ‘개인적 가정생활’보다 인류 전체에 대한 사명으로 옮겨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 176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결혼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영혼의 가장 깊은 층은 짝을 향해 열려 있는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지상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영계에서의 결혼과는 무관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영계를 왕래하면서 천국 결혼이 영혼의 본질 일치에 의해 결정됨을 직접 확인했다

 

스베덴보리가 보았던 천국 부부들은 지상에서 어떤 관계였느냐보다 ‘영혼이 어떤 성질이었느냐’가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천국에서 부부는 서로의 내적 선과 진리의 일치로 결합한다.’(‘결혼애’ 41, 50, 56 ) 스베덴보리는 인류 중에서 내적 선과 진리의 결합이 가장 깊고 특수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결론은 하나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도 반드시 그 내적 본질에 맞는 짝이 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생전에 결혼에 적합한 상태에 있었다

 

스베덴보리가 기록한 천국 결혼의 준비 조건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선함과 하나가 된 상태

2. 영혼의 이기심이 정화된 상태

3.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둔 상태

 

스베덴보리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생전 25년 이상 철저히 갖추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특히 영계 왕래 후에는 감정, 사랑, 욕망, 동기까지 투명하게 드러나는 상태에서 자신의 내적 상태가 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천국에서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은 그의 저술 전체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후에 주님이 예비한 짝을 만날 가능성이 사실상 100%이다

 

천국에서의 결혼 원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영혼의 본질이 맞으면,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스베덴보리가 영계에서 본 여러 부부의 모습은 다 다음과 같은 흐름을 보여줍니다. 서로의 영혼의 냄새(seemly aura)를 바로 알아보고, ‘이 사람이구나!’ 하는 강렬한 인식이 생기며, 천국의 빛 속에서 그 결합이 영원히 굳어진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창조하신 완전한 결혼이다.’ 스베덴보리처럼 영혼이 완전히 정련된 사람은 천국에서 가장 조화로운 짝을 만나게 됩니다. 그 짝은 동시대에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고, 다른 시대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시대, 민족,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다.’

 

 

스베덴보리는 생전에는 나는 결혼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겸손했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결코 ‘나는 천국에서 결혼할 것이다’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자신의 사명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지, 자신의 개인적 영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단서를 남겼습니다. ‘천국적 결혼은 주님이 직접 이루시는 가장 큰 선이다.’, ‘이 결혼은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진리를 사랑한 이에게는 그에 맞는 짝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진리를 목숨처럼 사랑하며, 진리의 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스베덴보리가 천국에서 결혼하지 않을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결론,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반드시 자기 본질에 완벽히 맞는 짝을 만나 결혼했을 것이다

 

이것은 교리적 상상이나 추정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남긴 영계 관찰 전체를 종합한 영적 필연성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1. 천국적 결혼은 영혼의 본질이 결정한다.

2. 스베덴보리는 영혼의 본질이 선과 진리의 완성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3.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적으로 상응하는 짝이 있다.

4. 천국에서는 그 짝을 찾지 못하는 일이 없다.

 

따라서, 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주님이 정해주신 짝을 만나 결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 영계의 질서상 ‘반드시’라고 말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 결혼은 지상의 어떤 결혼보다 훨씬 깊고 밝고 자유로운 결합일 것입니다.

 

 

 

SC.74, ‘이미 한쪽은 천국에서 자신의 진짜 짝을 만나 결혼한 경우’

이미 한쪽은 천국에서 자신의 진짜 짝을 만나 결혼했지만, 뒤늦게 지상 배우자가 사후 중간 영계에 막 도착할 경우는? 이 질문은 결코 엉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결혼론과 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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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2:10)

 

AC.109

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들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이 에스겔에서 이와 비슷한 표상들을 통하여 분명히 선언됩니다. That although wisdom and intelligence appear in man, they are, as has been said, of the Lord alone, is plainly declared in Ezekiel by means of similar representatives: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흘러내리는 물로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것이며, 12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열매를 맺으리니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열매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 8-9, 12) Behold, waters issued out from under the threshold of the house eastward; for the face of the house is the east; and he said, These waters issue out to the border toward the east, and go down into the plain, and come to the sea, which being led into the sea,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which creepe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 up all trees for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s,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 89, 12).

 

여기서 동쪽(east) 물과 강들이 흘러나온 성소(sanctuary) 주님을 의미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re the Lord is signified by theeast,and by thesanctuary,whence the waters and rivers issued. In like manner in John:

 

1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가운데로 흐르더라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열매를 맺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22:1, 2)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going forth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of the river on this side and that, was the tree of life, which bare twelve [manner of] fruits, and yielded her fruit every month; and the leaf of the tree was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Rev. 22:12).

 

해설

AC.109는 앞의 AC.107에서 사랑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준다고 한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혜와 지성이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합니다. 지혜와 지성은 사람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사람이 자기 힘으로 소유하고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오직 주님의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에스겔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요한계시록의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수의 강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물이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동쪽과 물이 흘러나오는 성소가 주님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AC.101에서도 에스겔의 말씀을 통하여 동쪽이 주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그 동쪽을 향한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강조점은 물이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물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에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지혜와 지성의 근원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물이 흘러가는 곳에서는 죽어 있던 것이 살아나고 생물이 살며, 강 좌우에는 먹을 과실나무가 자랍니다. 그 나무들은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달마다 새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고 밝혀집니다. AC.108에서 물과 강들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했다면, AC.109에서는 그 성장시키는 생명의 근원까지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람 안에 선과 진리의 열매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은 성소로 표상된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이어지는 계22:1-2은 이 의미를 더욱 직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나오며,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계속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의 치료를 위하여 있습니다. 2의 강과 생명나무, 에스겔의 성소에서 나오는 물과 과실나무, 계시록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서로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함께 인용하는 까닭은 사람에게 생명과 성장과 열매를 주는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동일한 질서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퍼셉션과도 연결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지혜와 지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풍성하게 있지만, 그는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AC.104에서 천사들은 무엇이 주님으로부터 오고 무엇이 자기 자신들로부터 오는지를 퍼셉션으로 알아차린다고 했고, AC.105에서는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09에서는 지혜와 지성도 같은 질서 안에 놓입니다. 사람 안에 실제로 나타나고 활동하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주님의 이라는 표현을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첫 문장부터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사람 안에 나타난다고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 안에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강물이 동산과 나무 안에 생명을 일으키지만 그 물의 근원은 성소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이해와 삶 안에서 나타나는 참된 지혜와 지성도 사람에게 실제로 주어지지만 그 근원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이 구별은 인간의 능력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의 생명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게 합니다.

 

그러므로 AC.109는 창2:10에덴에서 흘러나오는 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원의 원리를 다시 확인합니다.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주지만, 그 사랑과 지혜와 지성의 최초 근원은 모두 주님에게 있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성소에서 물이 나오고,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물이 이르는 곳에서 생명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며 열매가 맺힙니다. 사람에게 있는 참된 지혜와 지성도 이와 같이 주님으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을 받아 존재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AC.109의 중심입니다. (AC.109)

 

 

 

AC.110, 창2:11-12, ‘비손 -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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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8, 창2:10, ‘동산과 강 - 사람을 자라게 하는 지혜의 물’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도 ‘강들’(rivers)에 비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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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2:10)

 

AC.108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 비유할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도 강들(rivers) 비유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렇게 비유하기만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는데, 이것이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선지서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때로는 그것들을 그렇게 비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garden,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어둠이 낮과 같이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같을 것이라 (58:10, 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이는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룬 말씀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2)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17:7, 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들을 동산과 나무에 비유하는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부릅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 뿌리가 물가에 있으므로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시기하였느니라 (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구절들에서 분명한 것은, 태고인들이 사람 또는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동산(garden) 비유할 그를 적셔 (waters) 강들(rivers) 덧붙였으며, 물과 강들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했다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garden,they added thewatersandrivers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2. 라틴 tentoria, 텐트(tents), 얼핏 santalos 대한 미스프린트 같음 [편집자 ] The Latin is tentoria, “tents,seemingly a misprint for santalos. [Reviser]

 

해설

AC.108은 앞의 AC.107에서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의미한다고 한 것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보여 줍니다.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에 비유했고, 그 사람을 살아 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지혜와 지혜에 속한 것들을 물과 강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문학적 비유만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태고인들은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말했으며, 그들의 이러한 말하는 방식이 이후 선지서에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설명은 태고교회의 언어가 오늘날의 언어와 상당히 달랐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동산이나 강가에 심은 나무라고 하면 대개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태고인들에게 이러한 자연의 형상들은 사람 안의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동산이라고 하고, 그를 자라게 하는 것을 물과 강이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들이 내적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동산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은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이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룬다고 합니다. 흑암 가운데 빛이 떠오르고 메마른 상태가 물 댄 동산과 같이 되는 모습은 사람 안에 생명이 공급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산이 스스로를 적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공급받는다는 점입니다. 앞의 AC.107에서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가 지성을 준다고 한 것처럼, 사람 안의 영적 생명도 그 사람 자신을 근원으로 삼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생명입니다.

 

24:6과 렘17:7-8에서도 같은 모습이 이어집니다. 거듭난 사람은 강가의 동산과 같고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으며, 그 뿌리를 강변에 뻗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인용하는 까닭은 단순히 성경에 동산과 강이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강은 동산과 나무가 자라도록 하는 것들과 관계되며, 속뜻에서는 사람이 거듭나고 그의 내적 생명이 성장하도록 하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물가에 심어진 나무의 모습은 생명의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않고 계속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상태와 연결됩니다.

 

에스겔의 말씀에서는 이 점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거듭난 사람들이 동산과 나무에 단지 비유되는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린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물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강과 수로가 들의 나무들에게 흘러가며, 뿌리가 많은 물가에 있기 때문에 나무가 크고 아름다워집니다. 이것은 AC.107에서 강이 동산을 적시는 것이 지성을 주는 것이라고 한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물과 강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것들을 살아 있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AC.108에서는 아직 물과 강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세부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장도 물과 강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정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물은 언제나 이것을 의미하고 강은 언제나 저것을 의미한다고 고정하기보다, 현재의 문맥에서 그것들이 사람의 영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과 관계된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바로 앞 AC.103에서 같은 표현의 의미도 현재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AC.108의 여러 표상 역시 그 원칙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AC.108은 창2의 에덴동산이 단지 한 장소의 묘사가 아니라 사람의 내적 생명과 그 성장을 표현하고 있음을 말씀 전체의 언어를 통해 확인해 줍니다. 사람이 동산이라면 그 동산은 물을 받아야 하고, 나무가 자라려면 그 뿌리가 물가에 있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사야와 민수기와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함께 인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의 표현 방식이 창2에만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구절을 관통하는 핵심은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 거듭나고 성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AC.108)

 

 

 

AC.109, 창2:10, ‘지혜와 지성은 사람 안에 나타나지만 오직 주님의 것이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들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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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7, 창2:10,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 -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가 지성을 주다’ (AC.107-109)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에덴에서 흘러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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