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21

천적 질서의 본질, 생명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강들로부터 분명합니다. 동쪽(East)이신 주님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지혜를 통하여 지성이, 지성을 통하여 이성이 나오며, 이와 같이 이성을 통하여 기억에 속한 앎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질서이며, 천적 인간은 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천적 인간을 표상했기 때문에 지혜롭고(wise), 지성 있고(intelligent), 아는(knowing) 사람들이라 불렸습니다. (1:13, 15) 그러므로 궤를 만든 브살렐에 관하여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or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is evident from these rivers, namely, from the Lord, who is theEast,” and that from him proceeds wisdom, through wisdom intelligence, through intelligence reason, and so by means of reason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are vivified. This is the order of life, and such are celestial men; and therefore, since the elders of Israel represented celestial men, they were calledwise, intelligent, and knowing(Deut. 1:13, 15). Hence it is said of Bezaleel, who constructed the ark, that he was: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모든 일을 알게 하신 자들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부르매 (36:1, 2) Filled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scientia], and in all work. (Exod. 31:3; 35:31; 36:12)

 

13너희의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1:13, 15)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5:31)

 

해설

AC.121은 에덴에서 흘러나와 네 갈래로 나뉜 강들에 관한 설명을 하나의 질서로 종합합니다. 지금까지 각 강을 따라가면서 지혜와 지성, 이성과 기억지식이 차례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서로 흩어진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천적 질서를 이룬다고 명시합니다. 그 질서의 출발점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동쪽이신 주님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지혜를 통하여 지성이 나오며, 지성을 통하여 이성이 나오고, 마침내 이성을 통하여 기억에 속한 앎들이 생명을 얻습니다.

 

이 순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AC.98AC.101에서 동쪽은 주님을 의미한다고 했고, AC.107에서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AC.112에서는 지혜는 사랑에서, 지성은 신앙에서 나오며, 따라서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21은 그동안 제시된 내용을 하나의 생명의 흐름으로 묶습니다. 천적 인간의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앎은 각각 독립적으로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장 안쪽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질서 있게 생명을 받습니다.

 

여기서 지혜를 통하여 지성이, 지성을 통하여 이성이 나온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앞의 AC.111은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 의지와 이해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121의 질서는 이 모든 것을 같은 것으로 만드는 설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구별되는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생명 안에서 질서 있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지혜와 지성과 이성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아래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과 단절되어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천적 질서는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단계인 기억에 속한 앎들이 생명을 얻는다는 표현은 AC.80 이후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감각과 기억지식 자체를 제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AC.118에서는 기억지식이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했고, AC.120에서는 그것이 영적이고 천적인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경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AC.121에서는 그 기억에 속한 앎들조차 이성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기억지식의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방향입니다. 기억지식이 스스로 출발점이 되어 위의 것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지혜와 지성과 이성을 거쳐 기억에 속한 앎들에까지 이르는 것이 올바른 질서입니다.

 

1:13, 15의 이스라엘 장로들이 인용되는 것도 바로 이 질서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지혜롭고(wise), ‘지성 있고(intelligent), ‘아는(knowing) 사람들이라고 불린 것은 스베덴보리에게 단순히 행정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들이었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천적 인간을 표상했기 때문에, 그들을 묘사하는 세 표현도 천적 인간 안에 질서 있게 존재하는 지혜와 지성과 앎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인용은 앞에서 설명한 천적 질서가 말씀의 표현 속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브살렐에 관한 출31:3과 병행 구절들도 같은 이유로 인용됩니다.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드는 일을 맡은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을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출발점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로부터 지혜와 이해와 지식이 이어지고 마침내 실제 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천적 질서가 단지 인간의 내면에서 끝나는 추상적인 단계가 아니라 가장 바깥의 실제 행위에까지 내려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은 안에서 시작하여 밖으로 진행되고, 마침내 자연적인 삶의 쓰임 가운데 나타납니다.

 

따라서 AC.121은 에덴의 네 강에 관한 지금까지의 설명을 읽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네 강은 서로 무관한 네 가지 상징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인간 안에서 어떻게 질서 있게 진행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가장 바깥의 이성과 기억에 속한 앎들도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천적 인간이란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지성과 이성과 앎 전체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도록 질서 지어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이 강들을 통하여 보여 주는 생명의 질서입니다. (AC.121)

 

 

 

AC.122, 창2:15,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다 - 주님의 것을 누리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창2:15) AC.122‘에덴동산’(garden of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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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0, 창2:14, ‘유브라데 -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애굽’(Egypt)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도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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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20

애굽(Egypt)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선지서의 말씀에서 분명합니다. 미가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s byEgypt,so also byEuphrates,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 성벽을 건축하는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바다에서 바다까지, 산에서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선지자들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실 주님의 오심에 관하여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네가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서 애굽(Egypt) 유브라데(Euphrates) 마찬가지로 기억지식을 의미하고, 앗수르(Asshur) 거기서 나오는 추론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whereEgyptandEuphrates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Asshurreasonings thence derived. In David:

 

8주께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서도 유브라데강(river Euphrates)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유브라데가 앗수르 쪽을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던 것처럼, 기억지식은 영적이고 천적인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다음 말씀도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where also theriver Euphrates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자손에게 주노니 (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경계는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해설

AC.120은 앞의 AC.118에서 브랏’, 곧 유브라데가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미가 조금 더 구체화됩니다. ‘애굽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도 기억지식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러한 기억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까지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억지식이 왜 천적 인간의 질서에서 가장 바깥쪽에 놓이는지도 점차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연계에서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기억에 저장하는 것들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미7:10-12를 인용한 이유는 이 구절에 앗수르와 애굽과 강, 곧 유브라데가 함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실 주님의 오심에 관한 예언으로 읽습니다. 따라서 여러 나라와 지역과 경계에 관한 표현도 단순한 지리적 이동에 머무르지 않고, 거듭나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인 질서와 관계됩니다. 앞에서 에덴의 네 강을 천적 인간의 내적인 것들에 관한 묘사로 읽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2:18에서는 애굽의 시홀 물을 마시는 것과 앗수르로 가서 유브라데 물을 마시는 것이 함께 언급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애굽유브라데가 기억지식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추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인용은 특히 중요합니다. 앞의 AC.119에서는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추론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성적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 이성이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아 추론하는가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근거로 위의 것들을 판단하려는 질서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이성의 명철함을 받는 질서는 같지 않습니다.

 

80:8, 11의 포도나무는 애굽에서 나와 심어지고 그 가지가 바다까지, 넝쿨이 유브라데까지 뻗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유브라데강이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연적인 경계와 영적인 경계의 관계를 통하여 직접 설명합니다. 유브라데가 앗수르 쪽을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던 것처럼, 기억지식은 영적이고 천적인 인간에게 있는 지성과 지혜의 경계입니다. 따라서 경계라는 말은 기억지식을 무가치한 것으로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그것이 내적인 생명이 자연적인 차원에 이르는 가장 바깥쪽에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15:18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땅이 애굽 강에서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인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경계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을 둘러싼 자연적인 경계 역시 속뜻에서는 인간의 내적인 상태와 관계된 경계를 표현합니다. 이것은 앞의 AC.117에서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도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다고 한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AC.120은 또한 AC.80 이후 계속 남아 있던 감각과 기억지식의 문제를 상당히 선명하게 해 줍니다.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은 인간에게 없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에게도 그것들은 존재하며 전체 질서의 경계를 이룹니다. 문제는 가장 바깥의 경계에 있는 감각과 기억지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랑과 신앙의 내적인 것들을 판단하려는 데 있습니다. AC.118에서 참된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으므로, 거듭난 질서에서는 생명의 흐름이 가장 바깥에서 안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안을 거쳐 밖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AC.120의 여러 인용 구절은 모두 유브라데가 왜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을 의미하며, 왜 그것이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불리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합니다. 미가는 이 의미를 주님의 오심과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큰 문맥에 놓고, 예레미야는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추론의 문제를 보여 주며, 시편과 창세기는 유브라데라는 실제 경계를 통하여 기억지식이 지성과 지혜의 경계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감각과 기억지식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놓여야 하며, 그 위에 있는 이성과 지성과 지혜 역시 궁극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 안에 있어야 합니다. (AC.120)

 

 

 

AC.121, 창2:14, ‘천적 질서 -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성과 이성을 거쳐 기억지식까지’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1천적 질서의 본질, 곧 생명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 강들로부터 분명합니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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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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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atAsshur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은 레바논의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하며, 굵은 가지들 사이에 있는 가지(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cedar in Lebanon”; the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구절과 밖의 여러 구절에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앗수르(Asshur) 이성을, 이스라엘(Israel) 지성을 의미합니다. ByEgypt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Asshurreason, and byIsraelintelligence.

 

해설

AC.119는 앞의 AC.118에서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에스겔과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AC.118에서는 힛데겔강이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의 두 인용은 바로 그 가운데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먼저 겔31:3-4에서는 앗수르를 크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레바논 백향목이 이성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가지들과 관련된 표현은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인용에서 백향목과 그 가지들은 단순한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이성과 그것에 속하여 있는 앎들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특히 물과 깊은 물과 강들이 그 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묘사는 앞에서 강과 물이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의미는 사19:23-25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말씀에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등장하며, 서로 왕래하고 함께 여호와를 섬기며 마침내 셋이 함께 복이 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이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애굽은 기억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앗수르 하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구별된다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이 점은 최근 여러 번호에서 계속 나타난 용어의 구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AC.111에서는 기억지식을 곧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여기는 겉 사람의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AC.116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한다고 했고, AC.117에서는 애굽이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이 앎을 의미한다고 구별했습니다. 이제 AC.119에서는 애굽의 기억지식과 앗수르의 이성과 이스라엘의 지성이 다시 구별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기억지식, , 이성, 지성은 서로 바꾸어 써도 되는 비슷한 말들이 아니라 각각의 자리를 가진 개념들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19장의 인용 이유는 단순히 앗수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사이에 길이 열리고 서로 오가며 함께 섬긴다는 전체 장면 속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관계를 맺는 질서가 표현됩니다. 이성은 기억지식과 단절되어 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지성 역시 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구별되면서도 올바른 질서 안에서는 함께 작용하고, 그 전체가 여호와께 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AC.118에서 유브라데, 곧 기억지식을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기억지식의 무가치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확인해 줍니다. 19장에서 애굽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고 백성 애굽이라고까지 불리며 앗수르와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성과 지성과 어떤 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인 앎과 이성적 능력이 올바른 질서 안에 있을 때 그것들도 전체적인 영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119에서 에스겔과 이사야가 인용된 이유는 충분히 분명합니다. 에스겔은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성과 그에 속한 것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사야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함께 놓음으로써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과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118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천적 인간 안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제자리를 얻어 질서 있게 관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AC.119)

 

 

 

AC.120, 창2:14, ‘유브라데 -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애굽’(Egypt)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도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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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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