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2:23-24)라는 내용을 가리켜 유튜브에서 성경 역사상 가장 난해한 구절이라 하며 대문짝만하게 다루는 걸 보았습니다. 겉뜻으로만 보면 정말 그러지 싶은데요, 이 말씀의 속뜻을 알고 싶습니다.

 

 

이 본문은 겉뜻 그대로만 보면 매우 거칠고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처럼 보입니다만,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의 이런 장면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 ‘영적 상태와 교회의 질서’를 보여 주는 상응으로 읽어야 합니다. 즉 여기서 핵심은 ‘아이들을 벌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진리를 조롱하고 거부하는 상태가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상징적 계시입니다. 이 전제를 놓치면 이 장면은 잔혹하게만 보이지만, 상응의 빛에서 보면 매우 엄중한 영적 법칙을 드러내는 본문입니다.

 

먼저 ‘엘리사’는 단순한 한 인물이 아니라 ‘말씀의 진리,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교리’를 상징합니다.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뒤를 잇는 구조 자체가 ‘옛 상태에서 새 상태로의 계승’, 곧 진리의 전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벧엘’은 문자 그대로는 장소이지만, 영적으로는 ‘교회’ 혹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벧엘은 종종 ‘타락한 예배’, 즉 외형만 남고, 내적 진리가 사라진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간다는 것은 ‘참된 진리가 타락한 교회 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다음 ‘작은 아이들’이 나와 조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순한 어린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아이’는 상태를 나타내며, 특히 ‘미성숙한 이해, 혹은 왜곡된 단순한 생각’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성읍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상태에서 나온 사고’임을 뜻합니다. 즉 이들은 ‘진리를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그것을 비웃고 거부하는 교회의 생각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외친 ‘대머리여 올라가라’라는 말은 더욱 결정적입니다. 성경에서 ‘머리털’은 ‘진리의 가장 외적 표현, 곧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대머리’라는 것은 ‘진리가 겉모습까지도 제거된 상태’, 곧 ‘말씀의 외적 진리마저 부정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조롱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말씀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올라가라’는 말은 ‘여기서 사라져라,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결국 ‘진리를 완전히 배척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이제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다’는 부분을 보면, 이것 역시 사람이 분노하여 저주했다기보다 ‘영적 법칙이 작동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주님의 본성과 질서, 곧 진리와 선의 전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으로 저주한다’는 것은 ‘그 질서에 의해 결과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이 누군가를 임의로 벌하신 것이 아니라, ‘진리를 끝까지 조롱하고 거부하는 상태가 스스로 파괴를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암곰 둘이 나와 사십이 명을 찢었다’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은 말씀의 ‘외적 의미’, 특히 그것을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하여 사용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암곰’이라는 표현은 그 왜곡된 상태가 ‘강하게 감정적이고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은 종종 ‘선과 진리의 결합’ 혹은 그 반대로 ‘왜곡된 결합’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거짓과 악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십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시험과 심판의 완성된 상태’를 의미하는 수로,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 상태가 끝까지 차올랐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 전체는 ‘진리를 조롱하고 거부하는 교회의 상태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말에 이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결국 이 본문은 ‘하나님이 아이들을 잔인하게 벌하신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의 진리를 경멸하고 배척하는 상태가 어떤 영적 결과를 낳는가’에 대한 매우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모르고 있는 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비웃고 밀어내며 자기 확신 속에 머물게 될 때,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진리를 받아들일 길이 닫히고, 결국 자기 안의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본문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향한 겸손과 경외를 잃지 말라’는 깊은 영적 권면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SC.66, ‘사후, 천국에서 가족은 서로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가’

천국에서의 가족 관계, 스베덴보리가 직접 보고 배운 실제 모습들 스베덴보리가 천국을 왕래할 때, 그가 처음부터 확신했던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서도 지상처럼 가족이 그대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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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64,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의 부부, ‘두 사람 같으나 하나인 삶’

스베덴보리가 천국을 왕래하며 가장 놀라워했던 장면 중 하나는 지상에서 배우자였던 사람들, 혹은 영적으로 결합된 부부들이 천국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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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26, ‘구세주를 아는 이들’, 70, ‘피난처 있으니입니다.

 

오늘은 2 두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2절로 8절, AC 글 번호로는 85번에서 99번입니다. 그 주간 진도에 맞추는 본문이다 보니 절과 절 사이가 중첩될 수 있습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2:2-8)

 

이 본문을

 

안식 안에서 열리는 에덴, 사랑에서 나오는 지성

 

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시티아(Arcana Coelestia) 본문 및 해설, 그리고 심화 리딩 주일설교 시작합니다.

 

 

 

AC.85, 창2:2-3, 창2 '안식'의 확장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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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6, 창2:2-3, ‘안식’의 구조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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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7, 창2:2-3, 영계의 질서로 본 '안식'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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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8, 창2:2-3, ‘안식’, 정체성의 변화, '하나님의 일'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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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9, 창2:4, ‘하늘과 땅의 내력’, 천적 인간의 형성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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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0, 창2:5-6, ‘초목과 채소’, 천적 인간의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것(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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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1, 창2:5-6, ‘비, 안개’, 천적 상태의 평온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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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2, 창2:5-6, '안식', 평화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이 겉 사람 전체를 적시는 상태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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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3, 창2:5-6,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천적 인간의 상태’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 6) 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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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4, 창2:7, 겉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되는 과정(AC.94-9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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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5, 창2:7, 겉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사랑의 생명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이 다루어집니다. 앞의 두 절에서 그의 신앙,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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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6, 창2:7,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 오해 바로잡기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6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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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7, 창2:7, '호흡 자체가 영적 상태와 직결되어 있었던 태고교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7 생명이 ‘숨 쉼’(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태고교회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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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8, 창2:8, ‘동방의 에덴동산’, 천적 인간의 지성(AC.98-101)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 ‘동산’(garden)은 지성(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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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9, 창2:8, 생명의 질서에서 본 ‘에덴동산’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 영적 인간한테 있어서의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신앙을 통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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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범위 중 메인으로 읽은 AC.99번 글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AC.99는 인간 안에 작용하는 ‘생명의 질서’를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대비로 설명합니다. 영적 인간에게도 주님은 실제로 이해와 이성, 기억 지식 속으로 흘러들어오시지만, 겉 사람이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그 유입의 출처가 가려집니다. 그래서 그는 지성이 마치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이성과 기억 지식에서 나온 것처럼 느끼며, 이것이 ‘거꾸로 된 질서’입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온 신앙을 통하여 주님의 유입을 받으며,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 싸움이 없기 때문에 그 출처를 그대로 퍼셉션합니다. 즉 지성과 생명의 흐름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압니다. 이때 질서는 회복되며, 이 상태 자체가 ‘동방의 에덴동산’이라 불립니다.

 

이 ‘에덴동산’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하여 지성으로 흐르는 살아 있는 질서이며, 최고 의미에서는 주님 자신, 가장 내적인 의미에서는 주님의 나라와 천국을 뜻합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동시에 이 질서 안에 있을 수 있으며, 이때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 전체는 주님으로부터 열려, 그 안에 천적이고 영적인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람의 지성과 삶은 겉으로는 자기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생명의 근원은 주님께 있으며, 그 흐름이 가려져 있느냐 드러나 있느냐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가르는 본질적 차이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과 자비, 붙드심의 은혜가 돌아오는 한 주간에도 여전히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설교

2026-04-19(D1)

 

2647, 2, 창2.2, 2026-04-19(D1)-주일예배(창2,2-8, AC.85-99), ‘안식 안에서 열리는 에덴, 사랑에서 나오는 지성’.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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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26, 창2:8-12, AC.100-113), ‘에덴의 구조 : 네 강의 비밀, 첫째 강 비손’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71, ‘예부터 도움 되시고’입니다. 오늘은 창2 세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8절로 12절, AC 글 번호로는 100번에서 113번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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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4/12, 창2:1-3, AC.67-84),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천적 인간의 시작

※ 오늘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25, ‘면류관 벗어서’, 찬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입니다. 오늘은 창2 첫 번째 시간으로, 본문은 1절로 3절, AC 글 번호로는 82번에서 84번입니다만, 창2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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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가 천국을 왕래하며 가장 놀라워했던 장면 중 하나는 지상에서 배우자였던 사람들, 혹은 영적으로 결합된 부부들이 천국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결혼’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기록합니다.

 

 

1. 천국의 부부는 서로를 닮아 간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부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들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얼굴 생김새가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 기운, 눈빛, 마음의 색깔이 서로 비슷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존재지만, 마음의 결합 속에서는 하나가 된다.’(‘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 1768) 후반부 요지) 이 ‘닮아감’은 억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서로의 선(善)과 진리(眞理)가 하나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상에서 말하자면, 너무 오래 함께 살아서 마음의 온도가 같은 사람들, 혹은 서로를 미리 알기라도 하듯 마음이 통하는 부부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2. 천국의 부부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었기 때문에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부부가 ‘하나처럼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로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같은 진리, 같은 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보통 ‘배우자를 사랑한다’, ‘배우자에게 끌린다’가 출발점이지만, 천국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천국의 결혼은 주님을 중심으로 동일한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 사랑 때문에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구조입니다. 즉, 영적 관점에서는 내가 주님을 향한 방향을 갖고 있고, 상대도 같은 방향을 갖고 있을 때, 그 둘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이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결혼을 ‘주님 안에서의 둘의 결합’이라고 부릅니다.

 

 

3. 천국의 부부 일치는 겉으로 보이는 조화가 아니라 속에서 일어난 결합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부부들이 겉으로 보기엔 조화롭고 평온하지만, 그 조화는 단순히 정서적 친밀감이나 성격 궁합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선과 진리를 통해 결합한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기보다 갈등의 근원이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지상의 결혼은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

 

지상에서는 서로 다른 배경, 성격, 상처로 인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자연입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입니다.

 

천국의 결혼은 이미 성화된 두 마음의 결합

 

천국에서는 서로의 악과 상처, 오해의 뿌리가 제거된 뒤에 서로를 만나기 때문에 지상에서 흔한 갈등의 씨앗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의 부부는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같아져서 하나가 됩니다.

 

 

4. 천국의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은 고요하지만 깊은 환희가 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서 부부들을 보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들은 말수가 적지만, 너무나 깊은 기쁨이 내면에서 흐른다.’ 그들의 기쁨은 흥분이나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따뜻한 빛 속에 오래 있었던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기쁨입니다. 그는 이 기쁨을 ‘내면의 고요 속에서 우러나는 환희’라고 묘사합니다. 이것이 천국 부부의 특징입니다. 서로 말이 많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기 때문에 침묵조차 평안의 교류가 됩니다.

 

 

5. 스베덴보리를 감동시킨 장면, 손을 잡고 걷는 천국의 부부

 

스베덴보리는 어느 천국 사회에서 부부가 함께 산책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손을 가볍게 잡고,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천국의 정원을 조용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영혼의 결합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깊이 깨닫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장면은 스베덴보리 생애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들 중 하나였습니다.

 

 

6. 지상의 결혼에 대한 실제적 메시지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부부를 본 뒤, 지상에서 결혼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원리를 남깁니다.

 

지상에서의 결혼은 천국 결혼의 준비 과정이다

 

지상에서는 갈등, 상처, 오해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겪으며 서로의 마음이 주님을 향하게 된다면 그 결혼은 이미 천국적 결혼의 씨앗이 됩니다.

 

부부의 가장 큰 일치는 마음의 방향성이 같아지는 것

 

성격도, 취향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향한 방향만 같으면 천국에서 ‘진짜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부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간다

 

천국에서 부부가 다시 만나는 이유는 ‘법적 부부였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영적으로 결합된 부부는 죽음에서도 끊어지지 않는다.’

 

 

 

SC.65, ‘엘리사와 암곰 둘에게 찢긴 사십이 명의 아이들’(왕하2:23-24)

왕하2:23-24, ‘2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엘리사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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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63, ‘AI의 발전과 상관없이 나는 지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유튜브를 통해 AI의 엄청난 발전을 보면서 불현듯 든 생각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ChatGPT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대략 10년쯤 걸리겠지 하며 하고 있는, 이 스베덴보리 저작 번역의 일이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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