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16-17)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6, 17)

 

해설

AC.80은 창2:16-17의 개요이며,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질서에 하나의 중요한 제한을 제시합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에덴동산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아는 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별이 나타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선과 진리를 아는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금지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알려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2:16-17의 금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등장한다고 해서 지식이나 이성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AC.75에서는 천적 인간에게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음을 말했고, AC.78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이 겉 사람에게 속하며 이것들까지도 지혜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80의 문제는 인간이 알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선과 진리 및 신앙의 아르카나를 무엇으로부터 알고 판단하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천적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AC.77에서는 에덴동산의 보기에 좋은 나무들이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선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0은 그 퍼셉션의 근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오는 퍼셉션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을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직감이나 자기 확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그 뜻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혀 줍니다. 그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안 됩니다. 여기서 감각적인 것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외적인 것들과 관계되고, ‘기억지식은 사람이 배우고 경험하여 기억에 받아들인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자체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AC.78에서 기억지식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AC.80은 자연계의 사실을 관찰하거나 기억지식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신적인 것의 진실 여부를 인간 자신이 결정하려는 질서를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는 된다는 말을 질문이나 연구 자체의 금지로 읽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의 속뜻을 밝히면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구별하고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C.80에서 금지되는 것은 탐구라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라는 방식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 구별 때문에 AC.80을 반지성주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자연적인 사실을 감각과 관찰을 통하여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다루는 것은 신앙의 아르카나입니다. 자연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과 기억지식을 그대로 신적인 것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인식 방법의 차이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닙니다. 2:17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속뜻에서는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되는 것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AC.73에서 거듭남 이전의 사람이 죽어 있던상태라고 한 것과 AC.80에서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AC.79AC.80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도 보입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번호 모두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지거나 아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방향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여기서 proprium이나 인간의 자유에 관한 전체 교리로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AC.79AC.80이 보여 주는 직접적인 연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AC.80은 따라서 창2:16-17의 금령을 알지 말라는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은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부터 아는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질서입니다.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할 때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는 것이, 이 개요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16-17에 관하여 먼저 제시하는 핵심입니다. (AC.80 해설)

 

심화

1. 개역개정에는 열매 들어가 있는가?’(2:16-17)

 

2:16-17을 개역개정과 AC에 실린 영어 성경으로 함께 읽으면 작은 차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개역개정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AC에 인용된 영어에서는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이라고 되어 있어 열매에 해당하는 단어가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개역개정은 왜 열매를 넣었을까요?

 

먼저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 본문에도 이 두 절에서 열매에 해당하는 별도의 명사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너는 먹을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먹지 말라에 가까운 구조입니다. 따라서 AC에 실린 영어가 tree를 그대로 살린 것은 히브리어의 표현 구조와 잘 맞습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나무에서 먹는다또는 문맥에 따라 나무를 먹는다는 표현이 독자에게 어색하거나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먹는 것은 나무 자체가 아니라 나무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의 나무의 열매는 이 뜻을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전달하기 위해 먹는 대상을 명시적으로 풀어 준 번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매가 히브리어 원문에 별도의 단어로 있는데 영어 번역이 빠뜨린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개역개정이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임의로 첨가했다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AC를 읽을 때 이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개별 표현을 매우 세밀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역개정의 열매라는 번역 표현을 근거로 창2:16-17의 속뜻에 원문에 없는 별도의 열매상응을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AC.80에서 스베덴보리가 해설하는 것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것들을 알려 하거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을 AC와 함께 읽을 때는 개역개정의 자연스러운 한국어와 원문의 표현 구조를 함께 기억하면 좋습니다. 예배에서 개역개정을 읽을 때는 그대로 나무의 열매라고 읽으면 됩니다. 그러나 AC의 속뜻을 검토할 때는 히브리어와 AC의 영어가 실제로 나무에서 먹는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번역문에 명시적으로 보이는 단어와 원문에 실제로 있는 단어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역개정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 번역AC 속뜻 해설이 서로 다른 일을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성경 번역은 원문의 뜻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한국어로 전달해야 하고, AC 해설에서는 그 번역 뒤에 있는 원문의 표현까지 확인하면서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무엇을 근거로 속뜻을 설명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창2:16-17에서는 개역개정의 열매를 그대로 존중하여 읽되, AC의 상응을 판단할 때 그것을 원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어처럼 취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AC.80 심화 1)

 

 

 

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은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이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룬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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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이와 같은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절) Th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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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천적 인간은 이와 같은 동산입니다. 그러나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 The celestial man is such a garden. But as the garden is the Lords, it is permitted this man to enjoy all these things, and ye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verse 15).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5)

 

해설

AC.79는 창2:15의 개요입니다. 바로 앞의 AC.77에서는 천적 인간의 지성이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되고, 그 안의 나무들이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이며, 생명나무는 사랑을, 지식의 나무는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AC.78에서는 동산의 강이 지혜이고, 거기에서 나온 네 강이 속 사람과 겉 사람에 속한 것들을 나타내며, 이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고 그 지혜가 다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79는 이 모든 설명을 받아 천적 인간은 이와 같은 동산입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에덴동산은 단지 천적 인간이 들어가 있는 외부의 장소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뜻에서 천적 인간 자신이 이와 같은 동산입니다. 앞에서 지성, 퍼셉션, 사랑과 신앙, 지혜, 그리고 속 사람과 겉 사람에 속한 것들이 차례로 언급된 뒤, 이제 그 전체를 천적 인간이라는 하나의 동산으로 묶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매우 중요한 제한을 덧붙입니다. ‘ 동산은 주님의 것입니다.천적 인간이 동산이라고 해서 그 동산이 천적 인간 자신의 소유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로 앞의 AC.78에서도 네 강으로 묘사된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고, 그 지혜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AC.79에서는 그 동산 자체가 주님의 것이라고 명시합니다.

 

이 때문에 이어지는 누리는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의 구별이 중요합니다. 천적 인간에게 그 동산에 속한 모든 것을 누리는 은 허락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을 버리거나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누리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기 것으로 소유한다는 말을 단순한 물질적 소유의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말하는 동산은 천적 인간 자신과 그의 지성, 퍼셉션, 사랑과 신앙, 지혜 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실제로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니라, 주님의 것인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구별은 AC.79의 문장 자체 안에 들어 있습니다. ‘누리는 은 허락되고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인간은 아무것도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아무것도 자기 삶 안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천적 인간은 동산에 속한 것들을 실제로 누립니다. 다만 그 동산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 동산은 주님의 것입니다.

 

현행 해설은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 선을 마치 자기에게서 하는 것처럼 행하는 문제, 그리고 proprium의 교리까지 연결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그러나 AC.79라는 개요에서는 아직 그 전체 교리를 미리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자기 것으로 소유한다는 한 표현만으로 이후의 proprium 교리 전체를 이 번호 안에 끌어들이기보다, 우선 스베덴보리가 직접 제시한 누림소유의 대조를 정확하게 보존하는 편이 좋습니다.

 

2:15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는 말씀 역시 아직 여기서 자세히 풀 필요가 없습니다. AC.79는 그 명령의 세부적인 속뜻을 설명하기보다, 천적 인간이 이와 같은 동산이며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그가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릴 수는 있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는 없다는 개요를 먼저 제시합니다. ‘경작하며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해당 본문의 상세 해설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원리를 곧바로 창3의 타락에 적용하여 에덴의 상실은 주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한 결과라고 완성해 버리는 것도 아직은 기다려야 합니다. AC.79가 이후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번호 자체는 아직 타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우선 에덴의 상태에서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허락되지 않는지를 분명히 기억하면 됩니다.

 

AC.79에서 붙들어야 할 것은 결국 매우 단순하면서도 중요합니다.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그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는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짧은 문장으로 천적 인간과 그가 누리는 모든 것 사이에 하나의 분명한 질서를 세웁니다. 인간은 동산을 누리는 자이지만, 동산의 주인은 아닙니다. (AC.79 해설)

 

 

 

AC.80, 창2:1-17 개요, '주님으로부터 알고,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하지 말라' (16-17절)

AC.80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해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sens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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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창2:1-17 개요, ‘에덴의 강과 네 강, 지혜에서 나오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것들’ (10-14절)

AC.78동산의 강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네 강이 나왔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것,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앎입니다. 이것들은 속 사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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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동산의 강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강이 나왔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앎입니다. 이것들은 사람에게 속합니다셋째는 이성이고, 넷째는 기억지식이며, 이것들은 사람에게 속합니다. 모든 것은 지혜에서 나오며,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옵니다. (10-14) Wisdom is meant by the river in the garden. From thence were four rivers, the first of which is good and truth; the second i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of good and truth, or of love and faith. These are of the internal man. The third is reason, and the fourth is memory-knowledge [scientia], which are of the external man. All are from wisdom, and this is from love and faith in the Lord (verses 1014).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땅을 둘렀으며 12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0-14)

 

해설

AC.78은 창2:10-14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강과 네 강의 속뜻을 개요로 보여 줍니다. AC.77에서는 천적 인간의 지성이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되고, 그 동산의 나무들이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이며, 생명나무는 사랑을, 지식의 나무는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78에서는 동산의 강이 지혜를 의미한다고 하고, 거기에서 나온 네 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례대로 밝힙니다.

 

먼저 동산의 강은 지혜를 의미합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강이라는 자연물의 특징을 살펴 우리가 지혜라는 상응을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직접 그 의미를 밝혀 줍니다. 따라서 이 개요에서 우선 붙들어야 할 것은 에덴동산의 강이 지혜를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강이 지혜를 의미하며, 왜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는지는 뒤의 상세 해설에서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강에서 네 강이 나옵니다.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둘을 가리켜 이것들은 사람에게 속합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첫째와 둘째 강이 속 사람과 관계된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해석이 아니라 AC.78이 직접 밝히는 내용입니다.

 

둘째 강에 사용된 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Pottsknowledge라고 번역하면서 라틴어 cognitio를 함께 표시하고 있는데, 넷째 강에 사용된 memory-knowledge [scientia]와는 다른 말입니다. 둘을 모두 일반적인 지식으로 옮기면 이 번호에서 나타나는 구별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cognitio’, ‘scientia기억지식으로 구별합니다. 다만 AC.78 한 번호만으로 이 두 라틴어의 모든 용례와 차이를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셋째는 이성이고 넷째는 기억지식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겉 사람에게 속한다고 합니다. 이 점은 AC.75와 함께 읽으면 특히 중요합니다. AC.75에서는 천적 인간의 기억지식과 이성이 언급되었지만 그것들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AC.78에 와서 스베덴보리 자신이 이성과 기억지식을 겉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밝힙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 이성과 기억지식을 잃는다는 뜻이 아님도 다시 확인됩니다.

 

여기서 속 사람은 선하고 겉 사람은 악하다고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AC.78은 겉 사람에게 속한 이성과 기억지식까지도 지혜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번호가 제시하는 구별은 선한 부분과 악한 부분의 구별이 아니라, 속 사람에 속하는 것과 겉 사람에 속하는 것의 구별입니다. 겉 사람 자체나 그 안의 이성과 기억지식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근거는 이 번호에 없습니다.

 

이 네 가지를 말한 뒤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문장으로 전체를 묶습니다. ‘ 모든 것은 지혜에서 나오며,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옵니다.첫째의 선과 진리, 둘째의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 셋째의 이성, 넷째의 기억지식이 모두 하나의 지혜와 관계되며, 그 지혜는 다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 때문에 AC.78은 앞의 개요 번호들보다 천적 인간의 내적·외적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스베덴보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구조를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기억지식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선과 진리로 올라가는 길과 사랑과 신앙에서 지혜를 거쳐 아래로 내려오는 길을 서로 대립시키는 완성된 인식론을 이 한 번호에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AC.78이 직접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지혜에서 나오고, 그 지혜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성과 기억지식이 사람을 섬긴다고까지 아직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번호에서 분명한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이 겉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과 그것들도 지혜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하고 하나가 되는지는 뒤에서 더 설명됩니다. 따라서 지금은 그 관계를 미리 완성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제시한 구별과 공통의 근원을 정확히 보존하는 것이 좋습니다.

 

AC.77과의 연결도 중요합니다. AC.77에서는 생명나무가 사랑을, 지식의 나무가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고, AC.78에서는 지혜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과 신앙이 천적 인간의 지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 안에서 사랑과 신앙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느 것이 주된 것인지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까지 이 개요에서 미리 끌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이 네 강을 창3의 타락과 곧바로 연결하여, 사람이 자기 이성과 기억지식을 최종 판단자로 삼으면 이 질서가 뒤집힌다고 설명하는 것도 지금은 기다리는 편이 좋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지만 AC.78은 타락한 질서가 아니라 현재 다루고 있는 천적 인간에게 속한 것들을 개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AC.78에서 먼저 기억할 구조는 명확합니다. 동산의 강은 지혜입니다. 첫째 강은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앎이며, 이 둘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셋째는 이성이고 넷째는 기억지식이며, 이 둘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혜에서 나오며, 그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옵니다. 각각의 강이 왜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앞으로 창2:10-14의 상세 해설에서 하나씩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AC.78 해설)

 

 

 

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이와 같은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15절) Th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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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7, 창2:1-17 개요, ‘에덴동산의 지성, 퍼셉션, 사랑과 신앙’ (8-9절)

AC.77그다음 그의 지성은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안에서 보기에 좋은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생명나무는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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