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3

말씀에서 (gold)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보다 흔한 것은 없습니다. 궤와 성전과 금상과 등잔대와 기구들과 아론의 의복에 있던 모든 금은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했습니다. 선지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gold.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는 금과 (gold and silver), 선과 진리가 지혜와 지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silver) 여기서 진리를 의미하며, 궤와 성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gold and silver,or the good and the true, forsilver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또한 이와 같이, Thus also:

 

1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에서도 (gold) 선을 의미하고,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그것들을 여호와의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ere alsogold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the praises of Jehovah.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해설

AC.113은 앞의 AC.110에서 하윌라 땅의 이 선을 의미한다고 한 것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해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금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의미하고 표상하는 것이 매우 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선지서의 몇몇 구절에만 한정하지 않고, 궤와 성전과 금상과 등잔대와 여러 기구들, 그리고 아론의 의복에 사용된 금에까지 넓힙니다. 따라서 창2의 하윌라 땅에 있는 금도 말씀 전체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표상적 언어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막과 성전의 거룩한 기물에 사용된 금이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표상했다는 설명은 금이라는 물질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금은 그곳에서 선을 표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점은 앞의 AC.103에서 살펴본 원칙과도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물 자체에 독립적인 거룩함이 있어서 그 물질만 소유하면 영적인 선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표상적 예배의 질서 안에서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28:4에서는 지혜와 지성으로 재물을 얻고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했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금과 은을 선과 진리로 이해하며, 특히 은은 진리를 의미한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바로 앞 AC.112에서 지혜와 선을 사랑에 관계시키고, 지성과 진리를 신앙에 관계시킨 설명과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금과 은은 단순히 귀중한 두 금속을 나란히 열거한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는 선과 진리가 함께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60:6에서는 스바에서 오는 사람들이 금과 유향을 가져와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합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마2:1, 11에서 동방 박사들이 주님께 드린 금과 유향과 몰약을 같은 흐름 안에서 읽습니다. 여기서 금은 선을 의미하며, 유향과 몰약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물들은 단순히 귀중한 물품을 주님께 바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속뜻에서는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주님께 드려지는 것들과 관계됩니다.

 

이 연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사야의 스바와 주님의 탄생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함께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두 본문에서 금이 등장한다는 외형적인 유사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려지는 금을 선의 표상으로 읽습니다. 72:15스바의 도 같은 흐름에서 인용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와 문맥의 말씀들이 금이라는 표상을 통하여 선이라는 내적 의미 안에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AC.113의 초점은 금, , 유향, 몰약 각각의 상응을 모두 상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현재 설명의 중심은 AC.110금은 선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말씀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은이 진리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함께 제시되고, 유향과 몰약의 의미도 언급되지만, 각각의 세부적인 차이는 여기서 모두 밝혀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스베덴보리가 직접 설명한 범위를 보존하고, 각 표상의 더 세밀한 의미는 뒤의 설명이 나올 때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AC.113은 하윌라의 금을 이해하는 시야를 창2 한 구절에서 말씀 전체로 넓혀 줍니다. 궤와 성전과 예배의 기물들에 있는 금, 선지서에 나오는 금, 주님의 탄생 때 드려진 금, 시편의 스바의 금이 모두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이라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앞의 AC.112에서 모든 참된 선은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으므로, 금이 표상하는 선 역시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창2의 하윌라 땅에 있는 금을 말씀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게 하는 AC.113의 핵심입니다. (AC.113)

 

 

 

AC.114, 창2:11-12, ‘보석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표상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4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들’(stones)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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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2, 창2:11-12,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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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2

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혜는 없으며, 신앙에서, 따라서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지성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선은 없으며,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진리도 없습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들도 실제로는 이러한 이름들로 불리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해설

AC.112는 앞의 AC.111에서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던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매우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지혜는 사랑에서 나오고, 지성은 신앙에서 나오며,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이 네 가지의 관계를 분류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각각을 설명할 때마다 결국 따라서 주님으로부터라고 덧붙입니다. 사랑과 신앙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오므로,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 역시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성의 구별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앞의 AC.107에서는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것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C.111에서는 지혜와 지성이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으며, 이제 AC.112에서는 지혜를 사랑에, 지성을 신앙에 관계시킵니다. 아직 두 개념의 차이가 모두 설명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베덴보리가 두 말을 단순한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혜는 사랑과 특별히 관계되고 지성은 신앙과 특별히 관계됩니다.

 

선과 진리도 같은 질서 안에서 설명됩니다. 선은 사랑에서 나오고 진리는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앞의 AC.110에서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세밀하게 구별했던 내용과도 이어집니다. 지금 단계에서 그 모든 차이를 하나의 체계로 완성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선과 사랑, 진리와 신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천적 인간 안에서 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AC.112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 안에서 지혜가 생각되고, 지성이 활동하며, 선을 원하고 행하고, 진리를 알고 말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앞의 AC.109에서 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오직 주님의 것이라고 했듯이, 여기서는 그 원리가 선과 진리에까지 확대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것, 지성 있는 것, 선한 것, 참된 것은 모두 사랑과 신앙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원리를 반대편에서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들도 세상에서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매우 영리한 판단이 지혜처럼 보일 수 있고, 많은 지식을 가진 것이 지성처럼 보일 수 있으며, 외적으로 선해 보이는 행위나 그럴듯한 주장이 선과 진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무엇이라고 불리는가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봅니다. 그 근원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신앙에 있지 않다면, 이름은 같아도 여기서 말하는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AC.111에서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부른다는 설명과도 바로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기억지식이나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모습이나 명칭만으로 영적인 실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합니다. 무엇인가가 지혜처럼 보인다는 것과 실제로 지혜인 것은 같지 않으며, 무엇인가가 선이라고 불린다는 것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인 것도 같지 않습니다. 참된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겉으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그것이 사랑과 신앙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AC.112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의 차이를 말하면서도 결국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근원으로 모읍니다. 지혜와 선은 사랑에 관계되고, 지성과 진리는 신앙에 관계되지만, 사랑과 신앙 자체가 주님으로부터 오므로 그 모든 생명의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이것은 앞에서 생명나무가 주님의 자비이며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사람 안에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가 있을수록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천적 인간의 질서입니다. (AC.112)

 

 

 

AC.113, 창2:11-12, ‘금은 지혜와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3말씀에서 ‘금’(gold)으로 지혜 또는 사랑의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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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1, 창2:11-12, ‘사랑과 신앙의 차이는 무수하며, 천국은 그 차이에 따라 질서 지어진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1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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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2:11, 12)

 

AC.111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억지식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며, 많은 사람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각각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앙의 차이는 무수한데, 주님께서는 차이에 따라 천국 전체를 가장 뚜렷한 방식으로 질서 지으십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해설

AC.111은 앞의 AC.110에서 나온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과 거기서 비롯되는 지혜와 지성을 오늘날의 사람이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것들을 속뜻에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내용 자체가 모호해서가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의 내적인 차이를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110에서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세밀하게 구별한 것은 단순한 용어상의 차이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람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제적인 내적 차이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겉 사람들이 기억지식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한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도 기억지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에서 이미 기억지식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올바른 질서 안에서 쓰일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지성이나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여기는 데 있습니다. 어떤 진리를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진리를 이해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것이 곧 신앙 자체인 것도 아닙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많은 사람은 의지와 이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을 이룬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지와 이해는 서로 분리된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을 이루면서도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앞의 AC.95에서 겉 사람의 생명을 신앙에 속한 것과 사랑에 속한 것으로 나누고, 전자를 이해에, 후자를 의지에 관계시켰던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따라서 한 마음을 이룬다는 것은 차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구별되는 것들이 하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서 각각은 서로 구별되며,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 지혜와 지성은 비슷한 종교적 표현들을 여러 방식으로 부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지금 AC.111에서 그 차이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사람이 그 차이를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속뜻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우리 역시 이 번호에서 각 개념의 차이를 미리 완성하여 설명하기보다 앞으로 그것들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계속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는 이 문제가 개인의 마음을 넘어 천국 전체의 질서로 확대됩니다. 사랑과 신앙에는 무수한 차이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그 차이에 따라 천국 전체를 가장 뚜렷하게 질서 지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천국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사랑과 신앙의 상태들이 주님 안에서 질서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하나 됨은 모든 차이가 없어지는 획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상태들이 주님께서 정하시는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이 설명은 AC.110의 세밀한 구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 사랑의 진리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굳이 구별하는 까닭은 스베덴보리에게 영적 생명의 차이가 실제로 매우 세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같은 뜻의 반복이라고 없애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가 서로 다른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우선 그 차이를 보존하면서 뒤의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AC.111은 앞으로 번역과 해설을 할 때에도 중요한 기준을 줍니다. 기억지식과 지성, 지혜와 신앙을 쉽게 같은 것으로 처리하지 않고, 사랑과 신앙도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지 않으며, 의지와 이해 역시 하나의 마음을 이루면서 서로 구별된다는 점을 보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 모든 차이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스베덴보리가 구별한 것을 번역과 해설에서 먼저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 무수한 차이를 따라 천국 전체가 주님에 의해 질서 지어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AC.111)

 

 

 

AC.112, 창2:11-12, ‘참된 지혜와 지성과 선과 진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창2:11, 12) AC.112또한 사랑에서, 따라서 주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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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0, 창2:11-12, ‘비손 -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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