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창2:4)
AC.89
‘하늘과 땅의 내력’(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은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그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뒤따르는 모든 세부 사항으로부터 매우 분명합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는 것,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 들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만드셨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이들의 형성은 이미 앞 장에서 다루어졌음에도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처음으로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Jehovah God)이라 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단지 ‘하나님’(God)이라고만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지면’(ground)과 ‘들’(field)이 언급되는 반면, 앞에서는 오직 ‘땅’(earth)만 언급되었습니다. 또 이 구절에서는 먼저 ‘하늘’(heaven)이 ‘땅’(earth)보다 앞에 언급되고, 그 후에는 ‘땅’(earth)이 ‘하늘’(heaven)보다 앞에 언급됩니다. 그 이유는 ‘땅’(earth)은 겉 사람을, ‘하늘’(heaven)은 속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땅’(earth), 곧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여기서 다루는 천적 인간에게서는 속 사람, 곧 ‘하늘’(heaven)로부터 시작됩니다.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are the formations of the celestial man. That his formation is here treated of is very evident from all the particulars which follow, as that no herb was as yet growing;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s well as that Jehovah God formed man, and afterwards, that he made every beast and bird of the heavens, notwithstanding that the formation of these had been treated of in the foregoing chapter; from all which it is manifest that another man is here treated of. This however is still more evident from the fact that now for the first time the Lord is called “Jehovah God,” whereas in the preceding passages, which treat of the spiritual man, he is called simply “God”; and, further, that now “ground” and “field” are mentioned, while in the preceding passages only “earth” is mentioned. In this verse also “heaven” is first mentioned before “earth,” and afterwards “earth” before “heaven”; the reason of which is that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and “heaven” the internal, and in the spiritual man reformation begins from “earth,” that is, from the external man, while in the celestial man, who is here treated of, it begins from the internal man, or from “heaven.”
해설
AC.89는 창2:4부터 시작되는 내용이 창1의 창조 기사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하늘과 땅의 내력’은 속뜻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뒤따르는 내용으로부터 매우 분명하다고 합니다. 창1에서는 이미 초목이 나고 사람과 동물과 새가 창조되었는데, 창2에서는 다시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았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후에 들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이미 앞 장에서 그 형성이 다루어졌는데도 다시 언급되는 것은 이제 ‘다른 사람’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두 번째 역사적 개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다룬 영적 인간과 구별되는 천적 인간의 상태를 말합니다. AC.83에서 영적 인간에게서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이 주된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했고, AC.84-88에서는 그 천적 인간을 일곱째 날과 안식일, 그리고 하나님의 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AC.89부터는 그 천적 인간의 형성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부터 다른 사람이 다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본문상의 변화도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이라고 하였지만, 이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합니다. 또한 앞에서는 ‘땅’만 언급되었지만 이제는 ‘지면’과 ‘들’이 등장합니다. 이 변화들은 우연한 표현상의 차이가 아니라 지금부터 천적 인간의 형성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다만 AC.89는 왜 영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하나님’이라 하고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번호에서는 우선 호칭의 변화 자체가 의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차이의 더 깊은 이유는 별도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면’과 ‘들’ 역시 이 번호에서 아직 각각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으므로 뒤따르는 해설을 기다려야 합니다.
AC.89의 가장 중요한 설명은 창2:4의 어순에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에서는 하늘이 땅보다 먼저 나오지만, 이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에서는 땅이 하늘보다 먼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순서까지 속뜻에서 의미 있게 읽습니다. ‘땅’은 겉 사람을, ‘하늘’은 속 사람을 의미하며, 영적 인간에게서는 개혁이 ‘땅’, 곧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천적 인간에게서는 속 사람, 곧 ‘하늘’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적 인간에게 속 사람이 없고 천적 인간에게만 속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있지만,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구별하는 것은 개혁과 형성이 시작되는 질서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곧바로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형성 과정을 세부적으로 완성해 설명하기보다, 영적 인간의 개혁은 겉 사람으로부터,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원문 자체의 구별을 정확히 보존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AC.89는 앞으로 이어지는 창2의 상세 해설을 읽는 중요한 안내판입니다. 초목과 지면과 들, 사람과 짐승과 새가 다시 등장한다고 해서 창1과 같은 내용을 되풀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다루는 것은 천적 인간의 형성이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지면’과 ‘들’이라는 새로운 표현, 그리고 ‘하늘과 땅’, ‘땅과 하늘’의 순서가 그 전환을 보여 줍니다. 특히 영적 인간의 개혁이 겉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데 비하여 천적 인간의 형성은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이 번호에서 밝혀지는 핵심적인 차이입니다. 다만 이것을 인간이 자기 내면을 탐색하여 스스로 천적 인간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 AC.88에서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천적 인간의 형성이 속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역시 그 형성의 주체가 인간 자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창조의 질서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AC.89 해설)
심화
1.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
AC.89에서 스베덴보리는 창2부터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지적합니다. 앞에서 영적 인간을 다루는 구절들에서는 주님을 단지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천적 인간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먼저 AC.89가 실제로 말하는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이 호칭의 변화를 분명히 지적하고, 이것을 지금부터 앞에서 다루었던 영적 인간과는 다른 사람, 곧 천적 인간이 다루어진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AC.89 자체에서는 왜 영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하나님’이라 하고 천적 인간을 다룰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한 번호만으로 ‘여호와는 언제나 사랑을 의미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진리를 의미한다’거나,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고정해서 설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다른 곳에서 여호와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더라도, 그것을 확인하지 않은 채 AC.89의 짧은 언급만으로 전체 호칭 체계를 먼저 완성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이 질문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 ‘주’, ‘구주’, ‘아버지’,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성령’ 등 주님에 관한 모든 호칭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도 AC.89의 독자가 지금 필요로 하는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러한 호칭들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각각 성경의 문맥과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 호칭을 설명하는 곳에서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여러 호칭이 나온다고 해서 먼저 각 호칭에 하나씩 고정된 ‘기능’이나 ‘작용’을 배정해 놓고 이후의 본문을 그 틀에 맞추어 읽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AC.89의 호칭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 자신이 이것을 천적 인간의 형성이 새롭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했으므로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창1에서 영적 인간이 형성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창2에서 천적 인간의 형성을 다루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독자는 우선 이 변화가 우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AC를 읽는 방법에서도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달라질 때 그 차이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이름 하나를 발견하자마자 미리 만든 의미표를 기계적으로 대입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그 이름의 차이를 실제로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따라가야 합니다. AC.89에서는 우선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의 변화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주제가 전환되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지라는 데까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하나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가?’라는 질문은 여기서 완전히 닫기보다 가지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AC.89가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호칭의 변화가 의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더 깊은 이유는 스베덴보리가 이후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이름들을 직접 설명할 때 하나씩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먼저 만든 주님의 호칭 체계로 AC를 읽는 것이 아니라, AC 자체가 주님의 여러 이름을 어떻게 열어 가는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AC.89 심화 1)
AC.88, 창2:2-3,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은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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