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24, 25)
AC.46
‘짐승’(beasts)이 사람의 애정(affections)을 뜻한다는 사실, 곧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한다는 사실은 말씀의 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요, 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에 대해 말하는)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입니다.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시편에서도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예레미야에서 거듭남을 다루며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 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 ‘들짐승’(Wild animals)도 비슷한 의미인데요, 호세아입니다.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입니다.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 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는 앗수르에 대한 말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뜻하며, 에덴동산에 비유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시편입니다.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이렇게 여기서 전반적으로 ‘용들’(whales), ‘과수’(fruit tree), ‘짐승’(wild animal), ‘가축’(beast),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가 함께 언급되는데, 이것들이 사람 안의 살아 있는 원리들을 뜻하지 않는다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자들은 ‘가축’(beasts)과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earth), 또 ‘가축’(beasts)과 ‘들의 짐승’(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별합니다. 그럼에도 사람 안의 선한 것들은 ‘가축’(beasts)이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주님과 가장 가까운 이들도 ‘생물’(animals)이라 하는데,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주3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 (Rev. 7:11),3
※ AE.462에 의하면, 여기 ‘모든 천사’(the angels)는 일층천, 즉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을, ‘장로들’(the elders)은 이층천, 즉 중간 천국 천사들을, ‘네 생물’(the four animals)은 삼층천, 즉 가장 높은 천국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19:4).
또한 복음이 전파되는 이들도 ‘피조물’(creatures)이라 하는데, 이는 그들이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주3. 여기 이 단어는 ‘비스트’(beasts, 짐승, 야수)가 아닌,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에서처럼 ‘애니멀’(animals, 짐승, 동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 ‘준’(ζοόν, z¯oon)과, 라틴과 영어의 ‘애니멀’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며, ‘생물’(a living creature)이라는 의미에 맞기 때문입니다. 원전(the original) 해당 구절들에서 사용된 단어는 준이며, 만일 ‘비스트’ 사용을 의도했다면 썼을 법한 테르(θήρ, th¯er)나 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 아닙니다. 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 living 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해설
AC.46은 바로 앞의 AC.45에서 제시한 중요한 원리, 곧 말씀에서 ‘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뜻한다는 것을 수많은 성경 구절을 통해 확인하는 글입니다. 첫 문장부터 그 목적이 분명합니다. 짐승은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하며, 이것은 말씀의 많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 성경 인용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새로운 주제를 계속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짐승 = 애정’이라는 해석이 창1:24-25에만 임의로 적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 전체의 용례를 통해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겔36:9,11과 렘31:27-28은 ‘거듭남’이라는 문맥에서 인용됩니다. 겔36에서는 황폐했던 땅이 다시 갈리고 심어지며 그 위에 ‘사람과 짐승’이 많아지고 번성합니다. 렘31에서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에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고, 이어서 세우고 심으시겠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가져오는 핵심 이유는 문자 그대로 사람과 동물의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거듭남에 관한 이 말씀의 속뜻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여기의 짐승이 사람 안에서 살아나는 내적인 것, 특히 애정과 관련된 것을 뜻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AC.46은 여기서 ‘사람의 씨는 정확히 무엇이고 짐승의 씨는 정확히 무엇이다’라는 세부 대응까지 설명하지 않으므로 그 이상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욜2:22의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도 같은 방향에서 사용됩니다. 들의 풀이 돋고 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회복의 장면에서 들짐승 역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반면 시73:22에서는 시편 기자가 자신의 우매함을 고백하며 ‘주 앞에 짐승’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 두 구절만 보아도 ‘짐승’이라는 말 자체에 언제나 선한 뜻이나 언제나 악한 뜻 하나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AC.46의 첫 문장이 이미 말했듯이 악한 사람에게서는 악한 애정을,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애정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호2:18, 욥5:22-23, 겔34:25에서는 ‘들짐승’이 언약과 평화라는 문맥에 등장합니다. 호세아에서는 들짐승과 새와 땅의 곤충과 언약을 맺고, 욥기에서는 들짐승이 사람과 화목하게 되며, 에스겔에서는 화평의 언약과 함께 ‘악한 짐승’이 땅에서 그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들을 함께 제시하는 것은 말씀에서 짐승과 들짐승이 단순한 동물 이야기를 넘어 사람의 내적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겔34:25가 굳이 ‘악한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짐승’이라는 말 자체가 곧 악이라는 뜻이라면 ‘악한’이라는 구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43:20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들짐승이 여호와를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광야에 물이 생기고 사막에 강이 생겨 하나님의 백성이 마시게 되는 장면에서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도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문자적 자연물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들이 사람 안의 살아 있는 원리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말씀의 속뜻에서 인간의 내적 상태와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겔31:6에서는 앗수르가 큰 나무로 묘사되고 그 가지에는 새들이 깃들이며 그 아래에서는 들짐승들이 새끼를 낳습니다. AC.46은 여기서 앗수르가 ‘영적 인간’을 뜻하고 에덴동산에 비유된다고 짧게 설명합니다. 이 구절 역시 새와 짐승이 단순히 배경을 꾸미는 자연물이 아니라 영적 인간에게 속한 것들을 표현하는 말씀의 언어로 사용된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됩니다. 다만 이번 글은 앗수르나 나무, 가지, 새 각각의 속뜻을 자세히 해설하려는 곳은 아닙니다. 인용의 목적은 계속 ‘짐승이 인간 안의 살아 있는 것들을 표현한다’는 중심 주장에 있습니다.
시148은 이 논증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천사들뿐 아니라 바다의 큰 생물들, 과수, 짐승, 가축, 기는 것과 나는 새까지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개역개정의 ‘용들’에 해당하는 부분을 스베덴보리가 인용한 영어에서는 ‘whales’라고 표현합니다. AC.46은 바로 이 점을 붙들어, 이러한 것들이 사람 안의 ‘살아 있는 원리들’을 뜻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이 이번 글에서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해석 원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선한 애정입니까, 악한 애정입니까?’ AC.46의 대답은 ‘문맥과 그 짐승의 성질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이것은 상응을 단순한 암기표처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짐승 = 애정’이라는 기본 관계가 있다고 해서 모든 짐승이 동일한 애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하고 온순한 동물과 해로운 동물이 다르고, 같은 ‘짐승’이라는 표현도 어떤 사람과 어떤 상태를 다루느냐에 따라 선한 애정 또는 악한 애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말씀의 상응을 읽는 데 계속 필요한 원리이므로 별도의 심화에서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AC.46 후반부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구별이 나옵니다. 선지자들이 ‘가축’과 ‘땅의 짐승’, 또는 ‘가축’과 ‘들의 짐승’을 조심스럽게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차이가 실제로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 각각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풀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축은 질서 잡힌 높은 애정이고 들짐승은 본능적인 낮은 애정’이라는 식으로 우리가 빈칸을 채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AC.46이 확실하게 말하는 것은 사람 안의 ‘선한 것들’도 짐승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스베덴보리는 매우 놀라운 예를 하나 더 듭니다. 주님께 가장 가까운 하늘의 존재들도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생물’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계7:11과 계19:4의 ‘네 생물’이 그 예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영어 단어입니다. 각주에서 스베덴보리는 이곳의 말이 ‘beasts’가 아니라 ‘animals’로 번역되는 것이 정확하다고 설명합니다. 헬라어 ζῷον(zōon)은 ‘살아 있는 생물’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대목의 요점은 천사들을 야수에 비유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라는 표현이 얼마나 높은 영적 문맥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본문에 덧붙여 놓은 AE.462의 설명, 곧 ‘모든 천사’를 가장 낮은 천국, ‘장로들’을 중간 천국, ‘네 생물’을 가장 높은 천국과 연결하는 설명은 AC.46 자체의 직접 설명이 아니라 훗날 스베덴보리의 ‘계시록 해설’에서 가져온 보충 자료입니다. 참고할 수는 있지만, AC.46의 논증 자체와 구별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글에서 직접 필요한 것은 ‘주님께 가까운 하늘의 존재들조차 생물이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막16:15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번역하지만,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표현은 영어의 ‘every creature’, 곧 ‘모든 피조물’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해 받는 이들이 ‘피조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AC 전체의 큰 주제가 다시 만납니다. 거듭남은 단순히 기존의 사람에게 종교 지식 몇 가지가 더해지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AC.46에 왜 이렇게 많은 성경 구절이 한꺼번에 등장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각각의 구절을 완전히 해설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요엘, 시편, 예레미야, 호세아, 욥기, 이사야, 요한계시록, 마가복음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말씀에서 ‘짐승’, ‘들짐승’, ‘생물’, ‘피조물’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인간의 내적 생명과 연결되는지를 한꺼번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인용 구절을 따로 떼어 열세 편의 해설로 읽기보다, 이 인용들이 함께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보는 것이 AC.46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합니다.
AC.45가 ‘짐승은 인간의 애정을 뜻한다’는 원리를 소개했다면, AC.46은 말씀 전체를 펼쳐 그 원리가 고립된 해석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중요한 균형도 가르쳐 줍니다. 짐승이라고 해서 모두 악한 것도 아니고, 모두 선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애정에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듯이 말씀의 짐승도 그 성질과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애정을 표현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짐승이라는 단어를 보았으니 뜻은 이것이다’라고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의 문맥 속에서 어떤 생명과 어떤 애정이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심화
1. 왜 같은 ‘짐승’이 선한 애정도, 악한 애정도 뜻하는가?
AC.46, 심화 1, 왜 같은 ‘짐승’이 선한 애정도, 악한 애정도 뜻하는가?
심화1. 왜 같은 ‘짐승’이 선한 애정도, 악한 애정도 뜻하는가? AC.45와 AC.46을 읽다 보면 조금 혼란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뜻한다고 하면서 어떤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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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7, 창1:24-25, ‘순서가 말해 주는 거듭남 : 자기에서 주님으로 옮겨가는 방향'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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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 창1:24-25, ‘짐승’(beasts),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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