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0)
AC.41
사람의 본성(own, proprium)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으며,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때는 뼈처럼 단단하고 검은 물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때는 반대로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이 말은 믿기 어려우실지 모르지만, 정말 진짜입니다. 천사적 영 안에 있는 모든 표현 하나하나, 모든 생각 하나하나, 그리고 생각의 가장 미세한 부분 하나까지도 모두 살아 있으며, 그 가장 작은 요소들 안에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애정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님을 향한 신앙을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며, 여기서는 이러한 것들이 ‘생물’(living soul)로 상징됩니다. 또한 그것들은 일종의 몸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여기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what moves itself) 또는 ‘돌아다니는 것’(creeps)이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들은 아직 사람에게는 깊은 비밀이며, 지금은 다만 본문에 ‘생물’(living soul, thing moving itself)이 나와서 잠깐 언급한 것입니다. Whatever is proper to man has no life in itself, and whenever it is made manifest to the sight it appears hard, like a bony and black substance; but whatever is from the Lord has life, containing within it that which is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when presented to view appears human and living. It may seem incredible but is nevertheless most true, that every single expression, every single idea, and every least of thought in an angelic spirit, is alive, containing in its minutest particulars an affection that proceeds from the Lord, who is life itself. And therefore whatsoever things are from the Lord, have life in them, because they contain faith toward him, and are here signified by the “living soul”: they have also a species of body, here signified by “what moves itself” or “creeps.” These truths, however, are as yet deep secrets to man, and are now mentioned only because the “living soul,”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re treated of.
해설
AC.41은 앞의 AC.39에서 제시한 ‘주님에게서 오는 것만이 생명을 가진다’는 원리를 창1:20의 ‘생물’이라는 표현과 연결하여 한 걸음 더 깊이 설명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생명’은 단순히 사람이 숨 쉬고 생각하며 활동한다는 자연적 의미의 생명이 아닙니다. 그는 영적인 의미에서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고유한 것, 곧 proprium은 그 자체 안에 생명의 근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참된 생명은 오직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게서 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의 본성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다’는 강한 표현도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가치하다거나 실제로 살아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거듭나기 전의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을 외형적으로 아무 선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독립적인 영적 생명의 원천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며, 선과 진리와 그것을 사랑하는 애정의 생명은 주님에게서 옵니다. AC.39에서 사람이 처음에는 선과 진리를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도록 허락받지만, 점차 그것들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고 나중에는 지각하게 된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차이를 매우 특이한 시각적 묘사로 표현합니다. 사람의 proprium에 속한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날 때에는 ‘뼈처럼 단단하고 검은 물질’처럼 보이는 반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사람답고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묘사를 지나치게 해부하거나 구체적인 영계의 물질 구조처럼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AC.41이 강조하려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과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 사이에는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천사적 영에 관한 설명은 이 ‘생명’이 얼마나 깊은 곳까지 미치는지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적 영의 말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 심지어 생각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도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 가장 작은 것 안에도 주님에게서 나오는 ‘애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AC.41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어떤 생각이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생각이 정확하거나 논리적이라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생각 안에 주님에게서 오는 애정이 있으며, 그 애정으로 말미암아 그 생각 전체가 생명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궁극적인 근원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주님입니다. AC.41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들이 ‘주님을 향한 신앙’을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창1:20의 ‘생물’(living soul)로 상징됩니다. 다시 말하면 ‘생물’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사람 안의 것들이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 살아 있는 것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앞의 AC.39에서 풀과 나무가 아직 ‘무생물’에 비유되다가 이제 물에서 움직이는 생물과 새가 등장하는 이유도 이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이 살아 있는 것들이 ‘일종의 몸’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또는 ‘기는 것’으로 상징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아직 사람에게 ‘깊은 비밀’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창1:20에 ‘생물’과 ‘움직이는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기 때문에 잠깐 언급할 뿐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여기서 영적 몸이나 천사의 사고 구조에 관한 상세한 체계를 미리 만들어 내기보다, AC.41이 밝히는 만큼만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AC.39-41의 흐름도 선명해집니다. AC.39에서는 사람이 거듭나면서 선과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고, AC.40에서는 그렇게 살아나기 시작한 사람 안의 기억 지식과 이성적·지적인 것들을 물고기와 새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AC.41은 그 모든 것이 왜 ‘살아 있다’고 불릴 수 있는지를 밝힙니다. 생명은 사람 자신에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며,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은 가장 작은 생각과 애정에까지 스며듭니다.
그러므로 AC.41의 중심은 인간의 개성이나 활동을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행한다’고 경험하면서도 그 안의 참된 선과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아 가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붙잡을수록 proprium에 머물지만, 그것이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수록 그의 생각과 애정은 참으로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 창1:20의 ‘생물’은 바로 거듭남이 이처럼 ‘살아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심화
1. ‘천사적 영’
AC.41, 심화 1, ‘천사적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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