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34.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천적 인간까지 되고 난 다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요? 이런 건 이미 영적 인간 단계에서 해결된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animate, inanimate 같은...

 

 

바로 그 지점이 창세기 2장과 AC 초반부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 우리는 ‘천적 인간’이면 이미 완성된 상태, 다시는 흔들릴 가능성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오히려 거기서부터 아주 미세하고 깊은 문제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천적 인간의 시험은 더 이상 ‘선과 악을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선을 누구의 것으로 돌릴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인간 단계에서는 큰 틀에서 이미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따라 살려 하며,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싸움도 어느 정도 질서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단계에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거의 ‘animate/inanimate’, 곧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수준의 변화가 이미 일어납니다. 쉽게 말하면, 영적 인간은 적어도 ‘무엇이 살아 있는 길인가’를 압니다. 그래서 큰 방향은 이미 주님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천적 인간 단계는 그보다 훨씬 더 미세합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선이냐 악이냐’ 자체가 중심 문제가 아니라, ‘선을 행하는 이 생명 자체를 누구에게 귀속시키느냐’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다시 말해, 영적 인간이 ‘나는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단계라면, 천적 인간은 그 안에서조차 아주 은밀하게 올라오는 ‘그래도 이것은 내가 한 것 아닌가’라는 미세한 자기 귀속의 움직임이 문제 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에덴 이야기가 바로 천적 인간의 배경 안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골적인 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밝고 아름다운 상태 안에서, ‘‘자기 것처럼 느끼는 자유가 어떻게 자기중심으로 기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가능성이 곧바로 ‘타락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 한, 그 자유 속에는 언제나 자기 쪽으로 기울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천적 인간은 그 가능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질서 안에 있지만,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완전히 기계처럼 고정된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 가장 깊어질수록, 자유도 가장 깊은 자리에서 유지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천적 인간의 문제는 영적 인간보다 더 미세하고 더 깊습니다. 영적 인간의 싸움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거짓과 진리, 선과 악의 충돌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시험은 겉으로는 거의 선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사랑한다’는 상태 안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그래도 이 사랑은 내 것 같다’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proprium의 가장 깊은 층입니다.

 

그래서 AC의 흐름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영적 인간 단계에서는 ‘죽은 상태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의 전환’이 중심이고, 천적 인간 단계에서는 ‘살아 있는 그 생명을 자기 것으로 돌리지 않는 순수성’이 중심입니다. 전자는 생명의 여부가 문제이고, 후자는 생명의 귀속이 문제입니다.

 

결국 천적 인간에게조차 이런 문제가 언급되는 이유는, 주님이 인간을 단순히 ‘올바르게 작동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유 안에서 사랑하는 존재로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의 마지막 긴장은 ‘내가 주님을 따르는가?’가 아니라, ‘주님의 것을 끝까지 주님의 것으로 돌릴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AC.134, 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AC.134.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그럼 proprium은 영적 인간 단계에서는 아직 없는 건가요? 아직 영적 인간인 사람들한테는 이 proprium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자아, 자기, 고유 본성 같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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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4, 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AC.134.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본문 영역,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에 두 own이 나옵니다. 하나는 ‘his own’, 다른 하나는 ‘an own’. 이 둘은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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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4.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본문 영역(英譯),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에 두 own이 나옵니다. 하나는 his own’, 다른 하나는 an own’. 이 둘은 서로 다른 거죠? 그리고 이 own이 바로 proprium이죠?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AC.134의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에서 나오는 두 own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미묘하게 층위가 다릅니다. 그리고 둘 다 결국 라틴어 원문에서는 proprium 계열을 번역한 것입니다. 다만 첫 번째는 ‘상태’, 두 번째는 ‘실체적 자기감(自己感)’ 쪽에 더 가까운 표현입니다.

 

먼저 ‘a state of his own’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직역하면 ‘그 자신의 상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도인데, 여기서 own은 형용사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남의 것이 아닌 자기 쪽의 상태’, ‘자기에게 속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더 이상 단순히 주님의 직접적인 인도만 받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처럼 느끼는 상태’, 즉 생각도 자기가 하는 것이고, 선택도 자기가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느끼는 상태, ‘이런 걸 하는 주체가 나다. 주도권이 나한테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상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유와 시험, 책임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반면 뒤의 ‘an own is given him’은 훨씬 더 특별한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own이 명사처럼 쓰입니다. 영어 문법으로 보면 약간 인위적인 표현인데, 바로 라틴어 proprium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직역하면 ‘하나의 own이 그에게 주어진다’인데, 자연스럽게 풀면 ‘자기 것처럼 느껴지는 중심 감각’, 혹은 ‘자기 자신으로 느끼는 어떤 것, 그러니까 자기성(自己性)’ 혹은 자기감(自己感)’ 같은 것이 그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둘의 차이는 이렇게 이해하시면 가장 좋습니다. ‘a state of his own’은 ‘그가 들어가는 상태’, 곧 자기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조건, 상황, 상태를 말하고, ‘an own’은 그 상태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자기 귀속의 감각 자체’, 곧 proprium을 말합니다. 하나는 환경 혹은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상태 안에서 느껴지는 ‘자기성(自己性)’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an own is given him’이라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이 가진 proprium조차도 사실은 ‘주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그것을 완전히 자기 본래의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자유와 사랑이 가능하도록 주님이 허락하신 ‘자기감(自己感)’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기 것,  자기에게 고유해 보이는, 그래서 그 소유권과 주도권이 마치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것을 가진 존재이지만, 그조차도 사실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어진 것, 그러니까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스베덴보리 신학 전체의 핵심 구조를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은 자기처럼 느끼는 상태 안으로 들어가고, 자기 것처럼 느껴지는 proprium을 부여받지만, 그 목적은 ‘진짜 독립’이 아니라, ‘자유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리하면, 네, 두 own은 둘 다 proprium과 연결되지만, 첫 번째는 ‘자기 상태’, 두 번째는 ‘자기감 자체’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표현인 ‘an own’은 바로 라틴어 proprium을 영어에서 최대한 살려 낸 번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AC.134, 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AC.134.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천적 인간까지 되고 난 다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요? 이런 건 이미 영적 인간 단계에서 해결된 거 아닌가요?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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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4, 창2:18-25 개요, ‘여자의 창조 : 프로프리움의 형성’(21-23절)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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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1-23)

 

AC.134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프로프리움 상태로 들어가게 되며, 하나의 어떤 프로프리움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이 갈빗대로 여자를 세우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21-23).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해설

 

이 단락은 창세기 2장 전체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하고 오해되기 쉬운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여자의 창조를 어떤 사회적, 생물학적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상태의 변화’, 곧 ‘프로프리움(proprium)이 실제로 형성되는 순간을 묘사한 것입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표현은 ‘자신의 프로프리움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순수하게 주님으로부터만 흐름을 받는 상태에 머물지 않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이제 인간은 ‘나에게 속한 것’,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선택하는 것’을 갖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 상태 자체가 즉시 악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이 ‘프로프리움’은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갈빗대’라는 상징을 통해 형성됩니다. 갈빗대는 심장을 보호하는 구조로서, 사랑과 생명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중심 그 자체는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자기성(自己性)이 ‘사랑의 중심에서 분리된 주변부로부터 형성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프로프리움은 생명의 중심이 아니라, 중심을 둘러싼 외곽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 갈빗대가 ‘여자’로 세워진다는 표현은, 프로프리움이 단순한 자아의식이 아니라 ‘애정의 형태’, 곧 인간이 스스로 느끼고 반응하는 정서적 주체로 형성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여자는 열등하거나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 자기성을 표상하는 살아 있는 구조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인간의 요청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주님께만 인도받는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가 자기로 느끼는 삶의 구조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구조는 결코 중심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갈빗대에서 나왔고, 심장 옆에서 나왔으며, 본래의 생명 중심을 대체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AC.134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프로프리움’은 주님과의 결합을 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된 구조이며, 그 기원과 위치를 잊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AC.134, 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AC.134.심화 1.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본문 영역,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에 두 own이 나옵니다. 하나는 ‘his own’, 다른 하나는 ‘an own’. 이 둘은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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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AC.134, 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AC.134.심화 2. ‘천적 인간 단계에서 proprium 문제가 시작되는 이유’ 천적 인간까지 되고 난 다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요? 이런 건 이미 영적 인간 단계에서 해결된 거 아닌가요?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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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적 인간과 proprium

 

 

AC.134, 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AC.134.심화 3. ‘영적 인간과 proprium’ 그럼 proprium은 영적 인간 단계에서는 아직 없는 건가요? 아직 영적 인간인 사람들한테는 이 proprium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자아, 자기, 고유 본성 같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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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사와 proprium

 

 

AC.134, 심화 4,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사와 proprium'

AC.134.심화 4. ‘천국과 지옥, 그리고 천사와 proprium’ 계시록이나 이사야 등에 나오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를 높이려는’ 세력들의 등장 이유를 이 proprium의 시작에서 찾아도 될까요?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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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5, 창2:18-25 개요, ‘결합되어 있으되 동일하지 않은 상태’(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4절) AC.135 천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사람의 프로프리움에 결합, 그것들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24절). Cele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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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3, 창2:18-25 개요,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과 진리, 그럼에도 자신의 프로프리움으로’(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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