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다음 달 초 둘째를 볼 큰애가 아이 이름 관련, 조언을 구하는 가운데 나눈 글입니다.

 

초태생’(初胎生, firstborn), ‘처음 난 자’ 등에 대해 찾아보니,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4:1, 2)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구나.

 

여기서 잠시 어떤 배경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 내가 직접 하기 보다, 원본을 그대로 좀 가져와 보마.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the man and Eve his wife)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태고 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그 첫 자식, 처음 난 자녀는 신앙(信仰, faith)인데, 여기 ‘가인(Cain)이 바로 이 신앙을 말합니다. 그녀의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I have gotten a man, Jehovah)는 ‘가인’이라는 사람들로 인해 신앙이라는 게 독립된 어떤 걸로 인식되고 인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그들, 곧 인류 첫 교회인 태고 교회지요, 이 아담이라고 하는 교회는 신앙이 무엇인지에 관해 마치 무지한 듯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의 모든 것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 특별히 학습하지 않아도 마치 천국 천사들처럼 주님으로 말미암아 직관하는 영적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런 완전한 모(母) 교회로부터 나오기 시작한 자식 교회들의 경우, 사랑과 신앙이 한 몸이었던 모 교회로부터, 즉 모 교회의 교리로부터 굳이 신앙의 교리를 따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퍼셉션으로 그냥 알던 것들을 굳이 가져다가 따로 교리화하였고,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전에는 그냥 심비(心碑)에 새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두 번째 자녀는 ‘아벨(Abel), ‘아우(brother)로 상징된 체어리티(charity, 仁愛, 이웃 사랑)입니다. ‘양 치는 자(a shepherd of the flock)는 체어리티라는 선을 행하는 사람을, ‘농사하는 자(a tiller of the ground)는 체어리티 없는, 사랑과 분리된 신앙, 이런 건 전혀 신앙이 아닌데, 이런 절름발이 신앙, 거짓, 가짜 신앙에 있어서는 또 아주 제대로일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의 두 번째 자녀가 체어리티인 것은, 교회는 신앙과 체어리티 말고는 잉태하고 해산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등... 인용은 이 정도만 하마.

 

이 정도로도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또는 교회, 교리)의 신앙이 어떤 건지, ‘아벨’이라 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어떤 건지와, 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를 살짝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이 두 신앙의 역사이지 싶구나. 주님은 이 둘의 하나 됨, 한 몸 됨을 정말 원하셨고, 그래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까지 하셨는데...

 

다음 말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13:2)

 

에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Sanctify to Me all the firstborn)는 말씀은, 신앙, 곧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을 뜻한다고 한다.

 

주님은 태고 교회의 후손들을 통해 잃으신 참 신앙을 되찾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열린다 성경’ 저자 류모세 선교사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일부로 전체를 대신한다’는 게 있댄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초실절’이라고... 아마 십일조 정신을 이렇게 연결해도 되지 싶다. 원래는, 즉 십일조의 기원은 리메인스이지만...

 

두루두루 아이의 이름을 이런 말씀 가운데서 찾게 하심의 증거를 주심이 기쁘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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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 설명,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창1:5) (2024/6/17)

 

오늘 22번 글은 좀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글 내용 일부인,

 

...‘저녁’은 모든 선행 상태(preceding state)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그늘 상태, 즉 거짓의 상태, 불신앙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모든 뒤따르는 상태(subsequent state)입니다. 한 종류 빛이나 진리, 그리고 신앙 지식이 되는 상태이지요...

 

이런 내용은 지금의 저조차 그저 어렴풋이만 이해할 뿐 처음 접하시는 분께 밝히 설명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속 주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고민하던 중, 아래 ‘천국과 지옥’ 17장, ‘천사들의 상태 변화’를 소개하는 정도로 우선은 만족해야지 싶습니다.

 

 

HH.154,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천사들의 상태 변화라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신앙, 거기서 나온 지혜와 지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17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Changes of State of the Angels in Heaven 154천사들의 상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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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55,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천사들의 사랑은 항상 일정한 상태가 아니며, 그 결과 지혜도 항상 같지 않다. 그들의 지혜는 모두 그들의 사랑에서 나오고, 그 사랑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렬한 사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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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56,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천사들의 사랑과 지혜에 속한, 그들의 내면 상태가 변화함에 따라 그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물의 상태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도 변한다. 그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은 그들 내면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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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57,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모든 천사가 이러한 상태 변화를 거치고 지난다. 그들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각자가 겪는 변화는 서로 다르다. 그들의 사랑과 지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17천국 천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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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58,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나는 왜 천국에 그러한 상태 변화가 있는지를 그곳에서 배웠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천사들은 설명했다. 첫째, 천사들이 주님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지혜에서 생기는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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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59,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해로 계신 주께서 천적 나라의 천사들에게 그들의 첫째, 둘째, 셋째 상태에 각각 어떻게 나타나시는가를 나는 허락하심에 의해 볼 수 있었다. 나는 해로 계신 주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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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60,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천사들의 이 마지막 상태는 그들이 자기 본성에 빠져있을 때인데, 이때 그들은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이 그 상태에 있을 때,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우울함을 보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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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161,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  지옥에도 상태의 변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지옥’ 편에서 설명하겠다.  17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Changes of State of the Angels in Heaven 161지옥에도 상태의 변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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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창세기 1장의 무척 생소한 표현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의미가 이해됩니다.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천국의 많은 것들은 비록 그곳에 직접 가서 직접 목격을 한다 한들, 그리고 밝히 이해를 했다 한들 지상에 돌아와서는 지상의 언어로 어떻게 형용이나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상 생활을 하는 우리도 그러니까요. 예를 들면,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겪었던 일들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아무리 설명을 한들 ‘후라이까지 말라우’ 하며 안 믿는다지 않습니까? 안 믿는 게 아니라 못 믿는 거죠... 이런 걸 감안하면, 스베덴보리가 이 창세기, 출애굽기 주석을 주님으로부터 받아적을 때,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잘 아시는 주님은 그래서 27년 간 거의 매일 쉬지 않고, 스베덴보리를 천국으로, 영계로 들어 올려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신 것이고요...

 

아, 방금 ‘받아적었다’ 했는데, 곧이곧대로 무슨 프린터 역할만 했다는 건 아니고, 어떤 메인 아이디어를 주시면 그걸 스베덴보리가 본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 ‘주님, 그건 이렇게 표현하면,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하면서 협업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아르카나가 담긴 신구약 성경들 역시, 이사야면 이사야, 예레미야면 예레미야 등 그 기록자들의 퍼스낼러티 역시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AC.22, 창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AC.22-23)

5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22‘저녁’이 의미하는 바와 ‘아침’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 알 수 있는데요, ‘저녁’은 모든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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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1 설명,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5) (2024/6/16)

 

어제 ‘’에 대한 설명글에 인용했던 ‘천국과 지옥’ 127번 글을 다시 보면,

 

...천국의 빛은 세상 빛 같은 자연적 빛이 아니라 영적 빛이다. 그 빛은 해로 계신 주께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해는 신적 사랑(the Divine love)이기 때문이다. 해로 계신 주께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천국에서는 신적 진리(Divine truth)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본질은 신적 진리에 융합된 신적 선(Divine good united to Divine truth)이다. 이로부터 천사들은 열과 빛을 얻는다. 빛은 신적 진리에서, 열은 신적 선에서 얻는다. 천국의 빛과 열이 이 근원에서 나온다는 사실에서 그 빛과 열은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 해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해 자체는 불덩어리요, 거기서 빛과 열이 나오는데, 둘은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 세상 해의 이러한 속성은 천국 해의 상응으로, 이 세상 해와 그 속성을 잘 관찰함으로써 천국 해와 그 속성, 곧 주님과 주님의 신성을 알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해에서 나오는 햇볕이 열과 빛으로 되어 있듯 천국 해로 계신 주님에게서 천국의 열인 신적 선과, 천국의 빛인 신적 진리가 나옵니다. 이 세상 해가 불덩어리인 것처럼 천국의 해는 주님의 사랑인데요, 천국이 광명한 나라인 것은 주님한테서 나오는 신적 진리가 그렇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해로 계신, 즉 사랑으로 계신 주님으로부터 주님의 선, 곧 신적 선과 주님의 진리, 곧 신적 진리가 온 천국에 충만한 나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셨습니다. 곧 우리 마음 상태가, 우리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상태, 곧 주님 사랑의 상태여야 천국이 우리 안에 임한다는 것이며, 그럴 때 위와 같은 천국의 빛이 우리 안에 충만하여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며, 어둠은 우리로부터 물러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AC.21, 창1:4, 5,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AC.21)

4, 5절,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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