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천국 공부에 힘써야 하는 세 가지 이유 (2025/5/8)

 

첫째,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대략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듯 천국 또한 그렇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주님을 알기 위한 건데요, 천국 또한 알면 알수록 천국을 포함, 영계 전체를 그렇게 설계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 하늘의 해를 공부하겠다고 맨눈으로 해를 볼 수는 없듯 주님 또한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이렉트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불덩어리 그 자체인 해에서 나오는 열과 빛으로 우리가 사는 것처럼 주님 역시 그렇습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열과 빛, 곧 선과 진리로 만물이 존재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불덩어리에서 나오는, 주님의 이 신적 진리(Divine Truth)는 여섯 단계, 등급(degree)이 있는데요,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처음 두 단계의 진리는 심지어 삼층천 천사들조차 이해 불가한 진리입니다. 세 번째 단계부터 차례로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 천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각 단계마다 수천수만 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상에 사는 우리는 마지막 여섯 번째에 해당,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의 언어로 기록된 말씀(The Word)입니다. 그러니까 각 천국, 각 대상마다 자기 역량에 따라 맞추고 조절된, 허용된 진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의 일생은 그 목적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이를 위한 일종의 가이드로 주신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의 일생은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일생인데요, 어디서 태어나 무슨 삶을 살든 말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지만 세상 편하기만 한 꿀 보직 같은 건 없습니다. 겉보기엔 그래도 결국은 어디나 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고, 쓴맛 단맛이 있습니다. 군 뿐이겠습니까? 세상일이 다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로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커 보이는 남의 떡 때문에 원망과 불평으로 세월 낭비하지 마시고, 오히려 그 시간에 천국 공부에 집중, 지름길 인생을 사시길 권합니다. 결국 우리가 갈 곳을 미리 공부, 거기에 맞춘 맞춤식 인생을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험문제도 그 출제자의 의도를 얼른 읽는 게 중요하듯 우리네 인생 역시 창조주의 의도를 얼른 파악, 거기에 맞춘 삶을 사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아무렴 창조주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신 이유가 우리 맘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겠습니까? 우리 거실 요만한 소품 하나도 무슨 이유가 있는 건데 말입니다. 우리는 자기 사랑으로 세월 낭비하라고, 그리고 최종 목적지도 아닌 이 세상을 사랑하라고 지음받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랬다간 결국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아궁이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이 그런 곳이며, 그래서 그것이 천국 입국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면 삶이 또렷해집니다.

 

셋째, 천국을 알아야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도 결국은 저마다 자기 사는 동안은 좀 평안한 삶, 형통한 삶 살기를 원하는데요, 이는 주님도 원하시는 바이며, 이 역시도 그러려면 천국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상태의 나라입니다. 우리처럼 시공간의 나라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올라가고 싶으면 그 사람의 상태, 그러니까 그의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천국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자기 안에 흘러들어오며, 그것은 곧 천국의 모든 것, 즉 모든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능력과 부요가 자기 삶 가운데 흘러들어오는 것이지요. 물론 자기 역량만큼만이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복의 정체입니다. 누가 내게 안수하여 복을 빌어도 정작 내 속 사람의 역량이 그 복을 수용할 수 없으면, 내 속 사람이 하늘의 어떤 것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5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10:5, 6)

 

그러니까 기도응답의 정체, 비밀도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속 사람의 역량이 넉넉하다면? 그렇다면, 천국의 지혜와 평안, 능력과 부요가 내 삶 가운데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속 사람의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요? 즉 어떻게 해야 내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래서 천국을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 세상 사랑에 매인 바 된 우리의 이 시야, 이 가치관에서 철저히 물러나 천국에 오리엔티드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 철저히 사로잡힌 그런 새로운 시야, 새로운 가치관을 옷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 천사들처럼 말입니다.

 

끝으로, 천국을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특별히 주님의 은혜로 어느 날 기도 중에 불쑥 들림받아 천국을 다녀오지 않는 한, 천국을 다녀온, 그리고 주님의 허락을 받아 그 사실을 잘 기록한 어떤 사람의 기록을 접하는 것이 무난하지 싶습니다. 물론 유튜브도 있지만, 그게 좀... 워낙 중구난방 다양해서 말이지요. 뭐, 어쨌든 자기에게 끌리는 것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시다 보면, 아, 이건 좀... 싶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지니까요. 저 역시 지금 이 자리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걸 두루 경험해야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현재 8년째 늘 곁에 두고 읽는 책입니다. 제가 무슨 책 광고? 뭐 그런 거 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저는 이 책으로 천국 공부 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른 걸로 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아래 첫 번째는 릴리즈된 영문이고요, 그 아래 두 번째는 현재 구입할 수 있는 링크입니다. 여러 번역 중 저한테는 이게 제일 낫더군요. 저는 이 출판사나 번역자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아래 링크들은 혹시 도움 되실까 달았습니다. 그럼...

 

heaven_and_hell, 581.pdf
1.77MB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영인들의 세계의 구조, 현상, 그곳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후 겪게되는 세계를 스베덴보리의 천사와의 대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알게되며 영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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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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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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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속뜻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20:12)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prolonged upon the land which Jehovah thy God giveth thee. (Exod. 20:12)

 

 

앞에서 말씀드린 십계명의 네 가지 계명에 이어서 나머지 계명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십계명의 각 계명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아에 대한 사랑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렇게 되면 속 사람을 통해 들어오는 천국의 흐름이 막히고, 지옥의 흐름이 열리게 되며, 그렇게 해서 지옥으로부터 악하고 거짓된 것들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한마디로 자아를 사랑하지 말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 이 설교는 이순철 목사님의 청주 새 교회 및 서울 새 교회 시절 설교하신 ‘출애굽기 속뜻 강해’ 중 한 편입니다. 원래는 13절, 14절까지 포함된 본문이지만, 5월이 가정의 달이며, 어버이날, 어린이날이 있는 달이어서 12절만 따로 다루겠습니다.

 

※ 다음은 십계명 관련, 먼저 좀 알고 있어야 할 내용입니다.

 

...부모 공경에 관한 계명이 그러한 것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겉 글자의 뜻하고는 너무 거리감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십계명(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은 세상과 천국, 양쪽 사람들의 삶을 다스리는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겉 글자, 즉 겉뜻으로는 세상 사람들을, 그리고 영적, 즉 속뜻으로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계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 겉과 속, 즉 세상 살 동안 천국에도 속한 사람들을 위한, 그러니까 교리적 진리를 따라 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십계명이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말씀에 나오는 모든 것의 속뜻으로부터,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곧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 천사들, 아니 온 천국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도 아주 명백한데요, 이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는 천국을 경유, 관통, 사람한테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시내 산에서 이 십계명을 말씀하신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천국의 비밀 8899) ...That such things are signified by the commandment about honoring parents, may seem strange, because they are remote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But be it known that 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 are rules of life both for those who are in the world and for those who are in heaven—the sense of the letter or the external sense being for those who are in the world, and the spiritual or internal sense for those who are in heaven—and consequently both senses, external as well as internal, are for those who while they are in the world are also in heaven, that is, for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life according to the truths of doctrine. That 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 are also for those who are in heaven, is plain from the internal sense of all things in the Word, and clearly from the fact that the things which Jehovah God (that is, the Lord) Himself speaks, are not only for men, or for the world; but are also for angels, nay, for the whole heaven, because the Divine truth which proceeds from the Lord flows through heaven and passes through down unto man. This is the case with these ten commandments, which the Lord Himself spoke from Mount Sinai. (AC.8899) //

 

※ 주님이 우리에게 한 부모 밑에 태어나게 하시고, 부모와 자녀, 즉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묶어주시는 이유를 살피기 위해, 이 지상 혈연관계가 사후 천국에까지 이어지는 여부에 대해서 본 설교 후반에 따로 조금 다루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천국을 염두에 둔 올바른 자녀 사랑, 그리고 부모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 스베덴보리는 히브리 및 슈미트(Schmidt)의 라틴 성경(1696) 넘버링을 따르고 있으며, 그래서 이 계명을 네 번째 계명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관련 내용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계명은 순서상 네 번째이며, 거룩함에 있어 이어지는 계명들을 능가합니다. 여호와, 즉 주님을 경배함에 관한 계명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인데, 이는 주님은 가장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안식일(the Sabbath)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의 신성 자체와 신적 인성 간 연합(the union of the Divine Itself and the Divine Human in the Lord)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부모 공경의 계명이 이어집니다. 이 계명은 주님을 사랑함과 그에 따른,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를 사랑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 8899:2) ...therefore this commandment is the fourth in order, and surpasses in holiness those which follow. The commandment concerning the worship of Jehovah, that is, the Lord, is first and second, because the most holy one. Next comes the commandment concerning the Sabbath, because by this in the supreme sense is signified the union of the Divine Itself and the Divine Human in the Lord. After this follows the commandment concerning honoring parents, because by this is signified the love of the Lord and the consequent love of good and truth which are from the Lord. (AC.8899:2)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기서 부모는 육신의 부모로만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건 겉뜻이고요, 속뜻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과 진리를 의미합니다.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와 내적 의미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자연적인 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과 내적으로 상응(相應, correspondence)하기 때문입니다.

 

※ 즉 그래서 말씀 또한 모두 상응으로만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라고 하면 세상에서는 육신의 부모라고 생각하지만, 천국의 천사들은 선과 진리로 이해합니다. 즉 아버지는 선을 뜻하고, 어머니는 진리를 뜻하지요. 선과 진리를 부모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은 선과 진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부모는 선과 진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선과 진리 그 자체인 주님이십니다. 세상 부모는 세상에 있는 동안만 우리를 돌보는 부모이지만, 주님은 영원한 부모이십니다.

 

※ 그러니까 세상 부모는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효가 고스란히 주님을 향한 효가 되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한 가지,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따르고 의뢰할 때까지만 세상 부모는 부모이고, 더 이상 의뢰하지 않고, 제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하늘의 하나님이 그의 부모가 된다고 합니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지난날 제가 써놓은 글입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 후에는 그는 전처럼 아버지(father)를 아버지로 인정하면 안 되는데, 그 이유, 즉 왜 아버지는 자녀가 자랄 동안만 아버지인가 하는 이유는, 그때는 그가 주님을 대신하기 때문이며, 그때는 아직 자녀가 어려 아버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장성하여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제법 스스로 생각할 줄도 알고, 스스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때는 이미 주님이 그의 아버지(Father)이심이 틀림없는데요, 이 아버지 노릇을 그동안은 육신의 아버지가 해왔었죠... (천국의 비밀 6492) ...after a son becomes his own master he ought not to acknowledge his father as father, as before; for the reason why the father is to be acknowledged during the bringing up of the son, is that the father is then in the Lord’s stead, nor does a son know at that time what he ought to do except by the direction of his father. But when a son becomes his own master, and competent to think for himself, and seems to himself to be able to direct himself from himself, then the Lord must be his Father, whose vice regent his natural father had been... (AC.6492)

 

이 글은 스베덴보리의 창세기 주석 중, 입류(influx)와 사람의 영과 육 사이 교류를 다룬, ‘About Influx and The Intercourse of The Soul and The Body’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느 날 꿈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주 내용입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더 이상 육신의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며, 그때는 주님이 그의 아버지시라는 이 글을 읽고 했던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이 글에 의하면, 그 이유는 먼저, 육의 아버지는 우리의 어린 시절, 어디까지나 주님의 대역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이때 아버지 노릇을 하는 우리 육의 아버지들은 끊임없이 실제 아버지이신 하늘의 주님께 안테나를 세우고, 그 주파수를 고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당연한 귀결, 곧 그때 주님으로부터 나와 내게 흘러들어오는 입류를 통해, 내게 맡기신 이 아이를 내 뜻, 내 생각, 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해서는 안 되고, 늘 주님 뜻대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장성한 자녀도 이제는 하늘의 주님께 직접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상의 혈연, 그리고 서류상, 행정적으로는 여전히 부모-자식 간이지만,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의 실제 아버지는 주님이심을 시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가운데 끝없이 아버지께 여쭙고, 아버지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위 원본 내용 중, ‘세상의 부모는 세상에 있는 동안만 우리를 돌보는 부모’라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내적으로는 선과 진리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과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아니면 물질적 이득을 보기 위해 선과 진리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보통 행하지는 않고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원하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선과 진리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이성 가운데 있던 선과 진리가 의지 가운데 심어지고, 그렇게 해서 사람의 생명이 됩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의도하고 행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땅이란 주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하늘의 천국과 땅에 있는 교회가 주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면 그곳에서 생명이 길다고 하십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폐의 호흡이나, 심장의 박동을 생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육체의 생명이지 영원한 생명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의지, 또는 의지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가 무엇을 의도하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의지와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말씀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사후에 천국에서도 그 사랑이 영원히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란 선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며,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많은 세상 사람처럼 세속적 성공이나,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교회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복을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영원한 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를 우리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를 처음 받아들일 때는 머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직 의지에 심어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 두 번 진리를 행할 때, 그것은 의지에 심어지고 생명이 됩니다. 진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명이 되는데 그것은 사후에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리고 진리가 생명이 될 때의 기쁨은 세상 어느 것에서 얻는 기쁨보다 비교할 수 없는 내적인 기쁨입니다. 주님은 그 기쁨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살 때에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후에는 천국에서 그 사랑이 영원히 커진다는 뜻입니다.

 

※ 다음은 시작 때 말씀드린, ‘이 지상 혈연관계가 사후 천국에까지 이어지는 여부’ 관련, 전에 제가 정리해 둔 글입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53장, ‘사람의 사후 셋째 상태’ 512번 글입니다.

 

죽은 후의 사람, 즉 영의 셋째 상태는 교육받는 단계다. 이 상태는 천국에 들어가 천사가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는 이 단계가 없다. 그들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둘째 상태는 셋째 상태를 겸한 것이며, 그들이 자기 자신의 사랑, 즉 그 사랑이 있는 지옥 사회로 완전히 돌아서면 완료된다. 이렇게 완료되면, 그들은 그 사랑으로 의도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옥적이므로, 그들은 오직 악한 것만 의도하고, 그릇된 것만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 의도를 그들은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이전에 자기의 사랑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했던 모든 선하고 참된 것을 거부한다. The third state of man after death, that is, of his spirit, is a state of instruction. This state is for those who enter heaven and become angels. It is not for those who enter hell, because such are incapable of being taught, and therefore their second state is also their third, ending in this, that they are wholly turned to their own love, thus to that infernal society which is in a like love. When this has been done they will and think from that love; and as that love is infernal they will nothing but what is evil and think nothing but what is false; and in such thinking and willing they find their delights, because these belong to their love;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y reject everything good and true which they had previously adopted as serviceable to their love as means.

 

선한 영들은 이와 반대로 둘째 상태에서 셋째 상태로 인도된다. 이 상태는 교육을 통해 천국에 갈 준비가 이루어지는 상태다. 선과 진리를 알아야만, 즉 가르침을 통해서만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될 수 있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아야만 영적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 그에 반대되는 악과 거짓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이 올바름과 정직함인지, 즉 무엇이 사회적, 도덕적 선과 진리인지 배울 수 있다. 세상에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가르치는 사회적 법이 있고, 또 대인관계에서 도덕적 법에 따라 사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정직하고 올바른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선과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에서 나오지 않고 천국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말씀에서, 그리고 말씀에서 도출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에 속한 내면이 천국에 있지 않으면, 영적 선과 진리는 사람의 삶 속으로 유입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신성을 인정하고, 말씀에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올바르고 정직하게 행할 때, 그 마음이 천국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나 세상을 목적으로 해서가 아니라 신성을 위해서 올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Good spirits, on the other hand, are led from the second state into the third, which is the state of their preparation for heaven by means of instruction. For one can be prepared for heaven only by means of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that is, only by means of instruction, since one can know wha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and what evil and falsity are, which are their opposites, only by being taught. One can learn in the world what civil and moral good and truth are, which are called justice and honesty, because there are civil laws in the world that teach what is just, and there is association with others whereby man learns to live in accordance with moral laws, all of which have relation to what is honest and right. Bu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learned from heaven, not from the world. They can be learned from the Word and from the doctrine of the church that is drawn from the Word; and yet unless man in respect to his interiors which belong to his mind is in heaven, spiritual good and truth cannot flow into his life; and man is in heaven when he both acknowledges the Divine and acts justly and honestly for the reason that he ought so to act because it is commanded in the Word. This is living justly and honestly for the sake of the Divine, and not for the sake of self and the world, as ends.

 

그러나 아무도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그렇게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사후 생활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 말씀은 신성하기 때문에 말씀 안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것 등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을 알고 인정하지 못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영적인 생각이 전혀 없다면, 영적인 것을 의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의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위와 같은 것을 의도할 때, 천국이, 즉 천국을 거쳐서 주께서 그의 삶 속에 들어오신다. 주께서는 사람의 의지 속으로 들어오시고, 의지를 통해서 생각 속으로 들어오시며, 그 둘을 통해 삶 속으로 들어오신다. 사람의 삶 전체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영적 선과 진리는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천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며, 사람은 가르침을 통해서만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But no one can so act until he has been taught, for example, that there is a God, that there is a heaven and a hell, that there is a life after death, that God ought to be loved supremely, and the neighbor as oneself, and that what is taught in the Word ought to be believed because the Word is Divine. Without a knowledge and acknowledgment of these things man is unable to think spiritually; and if he has no thought about them he does not will them; for what a man does not know he cannot think, and what he does not think he cannot will. So it is when man wills these things that heaven flows into his life, that is, the Lord through heaven, for the Lord flows into the will and through the will into the thought, and through both into the life, and the whole life of man is from these. All this makes clear tha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learned not from the world but from heaven, and that one can be prepared for heaven only by means of instruction.

 

나아가서 주님은 사람의 삶 속으로 유입하시는 정도만큼 그를 가르치신다. 그 정도만큼 주님은 사람의 의지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랑으로 불붙이시고, 진리를 앎에 따라 그의 사고를 밝히 깨우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만큼 사람의 내면은 열리고, 천국이 그 안에 심어진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성하고 천국적인 것이 사람의 도덕적 삶에 속하는 정직한 행위와, 사회적 삶에 속하는 올바른 행위 안으로 유입되어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때 사람은 그런 행위를 신으로 말미암아, 즉 신성을 목적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덕적, 사회적 삶에서 그런 목적으로 행하는 정직하고 올바른 행위는 영적 삶의 필수적인 결과이며, 결과의 모든 요소는 그 결과를 낸 원인에서 파생된 것이다. 원인의 성격이 결과의 성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Moreover, so far as the Lord flows into the life of anyone he instructs him, for so far he kindles the will with the love of knowing truths and enlightens the thought to know them; and so far as this is done the interiors of man are opened and heaven is implanted in them; and furthermore, what is Divine and heavenly flows into the honest things pertaining to moral life and into the just things pertaining to civil life in man, and makes them spiritual, since man then does these things from the Divine, which is doing them for the sake of the Divine. For the things honest and just pertaining to moral and civil life which a man does from that source are the essential effects of spiritual life; and the effect derives its all from the effecting cause, since such as the cause is such is the effect. (천국과 지옥 512, 김은경 역)

 

좀 길었지요? 네, 좀 길었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이라, 가령, 주님은 어떤 조건과 상황 가운데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지, 우리의 내면은 어떻게 열리는 건지, 우리의 지상 생활이 어떻게 해서 영적으로 변화되는지 등등...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번역도 참 깔끔하게 잘 되었고요.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충분히 ‘정독’하시면, 점차 밝아지며, 환하게 이해되실 줄 믿습니다.

 

이 외에도 이 교육장의 전체 구조 및 교육생들의 구성, 그리고 생전에 비기독교인이었던 영들의 경우, 이곳에서 어떻게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지 등은, 그리고 교육이 다 끝나면, 주님이 직접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그가 영원히 있게 될 해당 공동체로 인도하시는 등등은, 글이 너무 길어져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중에 사후 다 알게 될 사항들을 굳이 이렇게 미리 다루는 이유는, 이런 내용은 닥쳐서 깨닫기에는, 그리고 겪어서 알기에는 너무 늦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혈연과 혈육으로 지내게 하신 그 참뜻을 몰라 이 관계가 천년만년 갈 줄 알고, 내 핏줄, 내 혈육, 우리 집과 가문 등에 올인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면, 곧 속 사람의 형성에 올인해도 모자랄 시간을 외면, 곧 겉 사람의 삶으로 죄다 낭비를 하는 것과도 같아 사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참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이란 실상은 그의 애정, 곧 그의 중심 사랑(ruling love, 그 사람의 모든 언행을 지배하는 사랑)이 사람의 모양을 띤 것이며, 이것은 오직 삶을 통해서만 형성됩니다. 삶의 대부분을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놓고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그런 건 없습니다.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공정하지 않은 무슨 허락이나 자비, 은혜를 받아 들어가는 게 아닌, 오직 이런 만인 앞에 공정하고도 공의로운 방법과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음은 다섯 번째인, ‘⑤ 자신의 영원한 공동체에 합류’인데요, 이 내용은 위 책, 40장, ‘천국 안의 결혼’ 383번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윗글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곧 선이 비슷한, 거의 같은 사람들끼리는 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물론, 한 공동체 내에서도 모든 구성원의 선이 다 다르며, 그것은 중심에서 동심원 퍼져나가듯 그렇게 다릅니다. 즉 중심에는 그 공동체의 가장 뚜렷한 선을 가진 사람이, 바깥으로 갈수록 좀 덜한 사람이 배열됩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을 정도로만 다릅니다. 마치 아들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얼굴에 아버지의 얼굴이 반영된 것처럼 말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는 비록 처음 보는 초면일지라도 마치 오랜 고향 사람 만나듯 친숙하고 반갑습니다. 그러나 천국일지라도 공동체가 다르면, 즉 선이 다르면 마치 외국인을 만난 듯 그저 대면대면합니다.

 

네,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상의 혈육 관계는 휴면 상태로 들어가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의 남편 혹은 아내를 천국에서도 계속 부부로 만나 지내고 싶으면, 그리고 지금의 자녀들과 또 그리 하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 서로 선이 같으면 됩니다. 즉 그 중심 사랑이 같으면, 참된 결혼 생활을 하면 됩니다. 아내가 원하는 걸 남편도 원하고, 남편이 말하는 걸 아내는 따르고... 하여 둘이 한 몸 되면 됩니다!

 

끝으로 ‘⑥ 우리가 지상에서 혈연관계로 살아가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속 사람, 곧 내면을 준비하게 하시려고’입니다.

 

땅 위 혈연관계는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모종밭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인류로 채워지며 구성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천사들은 땅 위 혈연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결혼을 가장 신성시합니다. 천국 자체가 ‘결혼’입니다. 천국 결혼과 지상 결혼의 차이는 천국 결혼은 그 결과 선과 진리가 생겨나지만, 지상 결혼은 그 결과, 아들, 딸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손주, 우리의 자녀들을 보며, ‘이 아이의 선과 진리는 어떤 면에서 나랑 살짝 다를까?’, 영적 시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땅 위 혈연관계를 통해 부지런히 우리는 자신의 속 사람, 영의 내면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녀, 부모, 손주 등 혈육, 핏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이들을 볼 때, 영의 눈이 함께 켜져서 주님의 모습 또한 겹쳐 보여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볼 땐, 부부, 곧 주님의 선과 진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선과 진리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를 뵐 땐, 자신의 뿌리이신 주님의 선과 진리를 역시 볼 수 있어야 하겠고 말입니다.

 

이래야 우리의 지상 혈육, 핏줄 사랑이 주께 복을 받으며, 안전할 것입니다. 이걸 놓치면, 우리는 그저 겉 사람의 일로, 육체의 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십계명의 의미를 배우면서 겉뜻과 속뜻의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십계명은 자연적 법이면서 영적인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법이면서 천국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뜻과 속뜻이 모두 중요합니다.

 

※ 즉 겉뜻도 지키지 않으면서, 속뜻, 속뜻 하는 것은 마치 기초 없이 집을 짓겠다 하는 것과 같고, 반대로 속뜻을 모르면서 겉뜻, 겉뜻 하는 것은 기초는 있는데 정작 집이 올라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속뜻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겉뜻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내면에서 천국적 결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신앙과 체어리티의 삶에 있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십계명의 속뜻뿐 아니라 겉뜻까지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체어리티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할 수 없고, 또한 순결한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외적인 뜻은 이렇게 내적인 뜻과 서로 통합니다. 새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들의 상응(相應)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이해하셔서 모든 교우께서는 십계명의 내적, 외적 은혜 가운데 충만한 삶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아멘

 

원본

2017-05-21(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5-05-0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5-04(D1)-주일예배(2596,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속뜻.pdf
0.51MB
성찬.pdf
0.14MB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목차 (Contents)

 

Contents

Contents Editor’s Preface ‘저자 서문’ (Author’s Preface, 1) HH.1, '저자 서문(序文)'(Author’s Preface)(HH.1)※ HH는 'Heaven and Hell'의 약어(略語)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공용 약어가 있습니다; 본문

heavenanditswondersandhel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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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와 본 사람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 (2025/4/26)

 

글 제목을 보면, 이미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고자 함인지 다들 아시겠지요? 맞습니다. 바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방법인데요, 가짜들은 평소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해오던 말이 실제로 일어나면 안 믿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인데요, 평소 그리스도, 그리스도 이미 오랜 세월 온 국민의 수 대, 수십 대, 수백 년을 이어온 염원이었지만, 정작 주님이 실제로 오시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유대인들 거의 전부가 몹시 불편해했어요. 이런저런 핑계들이 있겠지만, 일단 저들은 가짜여서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겁니다.

 

※ '가짜'라는 거북한 표현을 써서 좀 그러시지요? 많이 미안합니다...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5-27)

 

말씀처럼 말입니다. 주님도 ‘너희는 내 양이 아니다’, 즉 너희는 가짜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이 말씀도 같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십니다. 너희 역시 가짜다 하고 계십니다.

 

이런 케이스가 성경에 참 많이 나옵니다. 거의 모든 선지자와 사도들, 그리고 그 속사도들, 즉 사도들의 직계 제자들 또한 그랬는데요. 어쩌면 태고교회부터 고대, 유대, 기독 등 교회사 전체를 이 주제로 기술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그 숨은 동기에 있습니다. 가짜는 그 모든 겉보기와는 달리 그 숨은 동기가 자기 사랑입니다. 진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역시 그 모든 겉보기와는 달리 그러나 그 숨은 동기는 주님 사랑입니다. 천사들은 사람의 겉을 보지 않습니다. 내적 존재인 천사들한테는 사람의 겉은 안 보이고, 사람의 속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볼 때 사람은 곧 그의 의지이며, 어떤 일을 하는 그 숨은 동기입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지만, 천사들은 속, 곧 그 숨은 동기를 봅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주님에 관해서는 가짜들도 좀 그 혀가 뻣뻣해지는지 주님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의 고백 같은 거를 어색해 합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주님은 저런 분이십니다’ 하는 얘기를 잘 못해요. 아마 주님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대신 ‘아무개가 주님에 대해 이런 책을 썼는데 저는 그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개는 평생 주님과 동행했는데, 그 기록을 저는 읽어 보았습니다’ 식으로 그 핀트를 살짝 틉니다. 그리고 그런 책 많이 읽은 걸 자랑합니다. 본의 아니게 가짜가 되셨겠지만... 문제는, 이런 분들의 많은 말과 글을 접하고 나면,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하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 천국 해서 정말 천국에 대해 알고픈 모양이구나 싶어 주님의 허락으로 천국을 오랫동안 왕래한 사람이 천국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면, 정작 이 사람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천국을 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연구하고, 기술한 책만 잔뜩 읽고 있습니다. 엉뚱합니다. 천국, 천국 하는 그 숨은 동기가 정말 천국을 사랑하여 거기 가 살고픈 게 아니라 천국을 통해 얻고자 하는, 자기도 잘 모르는 무슨 목적들이 있었나 봅니다. 이런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혀 그럴 생각도, 그럴 마음도 없었는데 제 나이 57세 되던 어느 날 주님이 천사를 보내어 저를 부르시더니 이렇게 무려 27년간 영계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 중 기록으로 남기라 하신 것만 이렇게 적고 있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의 말입니다. 강문호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은 자원병을 쓰지 않으시고, 차출병을 쓰신다는 적확한 예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가고 없는 지금, 주님의 지시와 허락으로 그가 남기고 간 책을, 특히 그중에 ‘천국과 지옥’을, 신기하게도 저 역시 57세 때 접한 이후, 지난 8년 여의 세월, 집안 행사 등 부득이한 날만 빼고, 거의 하루도 낭비 없이 이 길을 달려왔습니다. 마치 뭐에 이끌리듯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 주변, 가족이며, 친지며, 교계 지인들이며...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아, 우리 큰아들 포함, 몇 분 계시군요. 다행입니다. 그러나 1%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어디에 적기를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사람도 쉽지 않다 했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몇몇 분한테서는 주님이 서둘러 저를 떼어놓으셨고, 대부분은 선량하신 분들입니다. 그 가운데 온유하신 분들과 다소 강한 분들의 차이만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과 이건 다른 건가 봅니다.

 

각 사람의 거듭남의 여정은 각 사람에게 맞춘 철저한 맞춤식이라 절대 획일적일 수도, 일률적일 수도 없습니다. 또한 각 사람이 붙들고 있는 나름의 교리적 입장은 그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아 주님조차 그걸 무조건 새것으로 가시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지금은 그의 생명이기 때문인데요,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을 헤아려 그에게 무슨 표를 주어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의 이단적 입장 역시 나중을 위해, 후손을 위해, 인류가 결국은 신앙에서 사랑을 분리하는 길로 걸어갈 걸 아시고, 그런 가인을 보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게 무슨 주님의 섭리 있으시지 싶고, 그래서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나 더 지상에 머무르게 될까요? 사실 천국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주님을 향한 경외감이 말할 수 없이 깊어지며, 그래서 그냥 오늘 밤에라도 훌쩍 떠난들 무슨 아무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처음 얼마 동안 좀 힘들어할까요? 제가 그동안 가정경제에 거의 보탠 게 없어 그 부분은 참 많이 미안합니다. 그래서 요즘 이 부분을 많이 주님께 구하고 있어요. 제 아내와 두 아들, 특히 작은아들에게 주님이 경제적으로 조금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말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주님 말씀이 전에 제게 들렸듯 오늘도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heaven_and_hell, 581.pdf
1.77MB

 

 

HH.1, '저자 서문(序文)'(Author’s Preface)(HH.1)

※ HH는 'Heaven and Hell'의 머릿글자입니다; 본문 번역은 김은경 역입니다. 단, 주석들은 저의 번역입니다; 주석에 나오는 참조 숫자들은 스베덴보리 저, 'Arcana Coelestia'(AC, 창, 출 속뜻 주석, 라틴,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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