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And Cain went out from the faces of Jehovah, and dwelt in the land of Nod, toward the east of Eden. (4:10-16)

 

AC.330

 

핏소리(voice of bloods)는 소멸된 체어리티를(10),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curse from the ground)는 왜곡된 교리를(11),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는 거기에서 비롯된 거짓과 악을(12) 각각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습니다.(13-14)가인에게 표를 주신 것(mark set upon Cain)은 그러나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될 것이었으므로,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음을 의미합니다.(15)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는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16) Charity extinguished is called the “voice of bloods.” (verse 10); perverted doctrine, the “curse from the ground.” (verse 11); the falsity and evil originating thence, the “fugitive and wanderer in the earth.” (verse 12) And as they had averted themselves from the Lord, they were in danger of eternal death. (verses 13–14) But as it was through faith that charity would afterwards be implanted, faith was made inviolable, and this is signified by the “mark set upon Cain.” (verse 15) And its removal from its former position is denoted by “Cain dwelling toward the east of Eden.” (verse 16)

 

 

해설

 

AC.330은 창4:10-16 전체의 속뜻을 한꺼번에 압축하여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개요입니다. 앞의 AC.325-329에서 사랑과 신앙의 분리로 시작된 과정은 마침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 곧 체어리티의 소멸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AC.330에서는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체어리티가 사라지자 교리는 왜곡되고, 그 왜곡된 교리에서 거짓과 악이 생겨나며, 사람은 주님에게서 점점 멀어져 영원한 죽음의 위험에 처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그런 가인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를 주어 보호하십니다. 왜냐하면 훗날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에게 심어질 때, 바로 ‘신앙’을 통하여 심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AC.330은 가인의 타락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 타락 가운데서도 미래의 거듭남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먼저 ‘소멸된 체어리티는 피들의 소리라 불린다’고 합니다. 창4:10의 개역개정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에는 ‘’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 스베덴보리는 이를 ‘voice of bloods’, 곧 ‘피들의 소리’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피 자체가 아니라 아벨로 표상되던 체어리티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AC.329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것은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인 사람들에게서 체어리티가 소멸된 것을 뜻했습니다. 따라서 ‘피들의 소리’는 그렇게 죽임당한 체어리티가 주님 앞에서 증거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체어리티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사라졌지만, 그 소멸된 상태가 주님 앞에서 감추어질 수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는 ‘왜곡된 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 ‘’은 단순한 자연계의 토양이 아니라 교회, 또는 교회에 속한 사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본래 교회 안에서 신앙과 체어리티는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신앙의 교리는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 교리를 살아 있게 해 줄 선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선과 분리되면 사람의 proprium이 그것을 붙들고 자기 목적에 맞게 해석하기 시작하며, 그 결과 교리는 점차 왜곡됩니다. 따라서 가인의 길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왜곡된 교리’로 진행됩니다.

 

그 결과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왜곡된 교리에서 비롯되는 ‘거짓과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상응입니다. 진리가 선과 결합되어 있을 때, 사람에게는 영적인 중심과 방향이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지 알고, 그것을 왜 행해야 하는지도 알며, 주님을 향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어리티가 소멸되고 교리가 왜곡되면 그 중심을 잃습니다. 생각은 이 교리에서 저 교리로 흔들리고, 삶 역시 선이라는 중심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됩니다. 거짓에는 참된 영적 안식처가 없고, 악에는 주님 안에서의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결국 더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AC.330은 ‘그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에 처할 위험에 놓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서 돌아서셨다’고 하지 않고 ‘그들이 주님에게서 자신을 돌이켰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하나님 이해에서 계속 나타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사랑과 생명을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태양이 계속 빛과 열을 내듯 주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모든 사람에게 흘러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사랑과 거짓을 향하여 돌아설 때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원한 죽음의 위험은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셔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에게서 스스로 돌아서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AC.330의 놀라운 반전이 나타납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신앙은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고,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 역시 함께 없애 버리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를 주십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이후 체어리티가 신앙을 통하여 심어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창4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은 사랑에서 떨어져 나와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신앙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후 인류의 영적 구조가 달라지면서 바로 그 신앙이 다시 체어리티로 가는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은 사랑으로부터 신앙에 이르렀습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진리를 퍼셉션으로 지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천적 질서가 무너진 뒤에는 인간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거듭날 수 없게 됩니다. 이후에는 진리를 배우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그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사람 안에 심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신앙은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되었습니다.’ 여기서 ‘faith was made inviolable’은 신앙이 절대적으로 가장 높은 것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을 없애서는 안 되도록 주님께서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 가인이 잘했기 때문에 보호받은 것이 아닙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이 훗날 주님의 구원 섭리에서 다시 사용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랑에서 직접 진리를 지각할 수 없게 된 뒤에는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체어리티에 이르는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에게 주어진 ‘’는 악에 대한 승인이나 면죄의 표가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위하여 신앙이라는 기능 자체를 보존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표상합니다.

 

이 점은 앞의 AC.328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선명합니다. 체어리티는 신앙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주된 것이 되어 체어리티보다 높임을 받지만 않는다면’ 체어리티는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문제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질서의 전도였습니다. 이제 아벨이 죽고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지만, 주님께서는 가인마저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신앙을 보존하여 언젠가 다시 체어리티와 결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앙과 체어리티를 갈라놓았지만, 주님의 섭리는 그 갈라진 신앙마저 붙들어 장차 다시 체어리티로 이끄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가인이 에덴 동쪽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신앙이 ‘이전의 위치에서 옮겨진 것’을 뜻합니다. ‘동쪽’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주님과 사랑을 표상하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인이 에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덴 동쪽’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것은, 신앙이 본래 태고교회에서 차지했던 위치와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위치로 옮겨졌음을 나타냅니다. 본래 신앙은 사랑 안에 있었고 사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제는 그 직접적인 천적 질서 안에 있지 못합니다. 신앙은 여전히 보존되지만, 그 성격과 기능, 교회 안에서의 위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 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심화 1. 주님께서는 왜 ‘가인’을 보호하셨는가? AC.330에서 가장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은 역시 ‘가인의 표’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만 보면 가인은 부정적인 것의 연속입니다. 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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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1, 창4:17, ‘에녹’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And Cain knew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Enoch; and he was building a city, and 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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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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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9.심화

 

1. ‘아벨의 죽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AC.329를 오늘의 신앙생활에 비추어 보면, ‘아벨을 죽인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사람이 노골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데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미묘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신앙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올바른 신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올바르게 믿는다면 삶은 그다음 문제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구원은 신앙의 문제이므로 체어리티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여기게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벨의 생명이 꺼지기 시작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아벨이 죽은 뒤에도 가인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신앙의 교리는 계속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AC.329가 보여 주는 매우 엄중한 영적 현실입니다. 교회가 체어리티를 잃었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종교적 활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리도 남아 있고, 예배도 남아 있고, 신앙고백도 남아 있으며, 성경에 관한 많은 지식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교회가 여전히 활발해 보이는데, 그 안에서 아벨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말하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지만 그 진리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신앙을 지킨다고 하면서 자기 의와 자기 우월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시대를 넘어 모든 교회와 모든 신앙인에게 향하는 질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네가 고백하는 신앙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그 신앙 안의 체어리티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었는데 그 말씀으로 인해 이웃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 교리를 깊이 알게 되었는데 그 지식 덕분에 더 겸손해졌는가, 예배를 오래 드렸는데 그 예배로 인해 악을 더 미워하고, 선을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바로 AC.328에서 말한 ‘신앙의 질’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를 ‘가인’이라고 지목하기 전에, 먼저 자기 안을 살피게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속뜻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거듭남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옳은 것을 알고 있다’는 만족이 ‘나는 그것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밀어내는 순간, 우리 안에서도 가인이 아벨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진리가 나를 더 사랑하게 하고 더 겸손하게 만드는 대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면, 가인의 원리가 이미 작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AC.325에서 AC.329까지는 하나의 연속적인 영적 과정을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사랑과 신앙의 분리’였고, 다음에는 ‘예배의 분리’, 이어서 ‘내적 상태의 악화’, 그리고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높이는 질서의 전도’가 일어났으며, 마침내 ‘체어리티의 소멸’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의 속뜻입니다. 그러므로 창4의 첫 살인은 단순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빼앗은 이야기를 넘어, 교회 안에서 진리가 선과 분리되고, 신앙이 사랑보다 높아질 때, 마침내 교회의 참된 생명인 체어리티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깊은 영적 역사입니다.

 

 

 

AC.329, 창4:8-9,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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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4:8-9)

 

AC.329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앞세운 사람들한테서 체어리티가 소멸된 것을,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인 것(Cain slaying his brother Abel)이라고 합니다. (8-9) That charity was extinguished in those who separated faith, and set it before charity, is described by “Cain slaying his brother Abel.” (verses 8–9)

 

 

해설

 

AC.329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마침내 결정적인 지점에 도달했음을 보여 줍니다. AC.325에서는 사랑에서 신앙이 분리되어 ‘가인’이 되었고, 체어리티는 ‘아벨’이라 불렸습니다. AC.326에서는 이 분리가 예배에 나타나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로 드러났으며, AC.327에서는 분리된 신앙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져 가인의 ‘분함’과 ‘안색이 변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AC.328에서는 아직 마지막 가능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신앙이 자신을 주된 것으로 삼아 체어리티보다 높이지 않는다면, 체어리티는 여전히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AC.329에서는 그 질서가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신앙이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앞세운 결과 체어리티 자체가 ‘소멸’되는 단계에 이릅니다. 이것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의 속뜻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extinguished’라는 표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였다’는 창세기의 형제 살인 사건을 속뜻으로는 ‘체어리티가 소멸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불이 꺼지듯 체어리티의 생명이 꺼진 것입니다. 따라서 아벨의 죽음은 단순히 악한 신앙이 선한 체어리티를 공격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체어리티가 더 이상 살아 있는 원리로 작용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앙에 관한 교리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고, 예배도 계속될 수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말도 계속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이웃 사랑이라는 생명이 사라진 것입니다.

 

특히 AC.329는 ‘신앙을 체어리티에서 분리한 것’과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앞세운 것’을 구별하여 함께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분리’입니다. 신앙과 체어리티가 본래 하나였는데 그것을 서로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분리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단 둘을 분리하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가 생기고, 마침내 신앙을 체어리티보다 ‘앞세우게’ 됩니다. 본래 사랑과 선을 섬겨야 할 신앙과 진리가 오히려 주된 자리를 차지하고, 체어리티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납니다. 바로 이 질서의 전도가 결국 아벨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의 핵심은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앞섰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앞섰다’는 것은 단순히 순서를 먼저 두었다는 뜻이 아니라, 무엇이 교회의 본질이며, 무엇이 주된 것인가 하는 자리의 문제입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에서는 사랑이 생명이었고, 신앙은 그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선이 먼저이고, 진리는 그 선의 형체였습니다. 그런데 가인에게서는 이 질서가 뒤집혔습니다. 신앙이 스스로 주된 것이 되고, 체어리티는 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체어리티는 처음에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다음에는 불필요한 것이 되며, 마침내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아벨을 죽였다’는 말씀이 보여 주는 영적 과정입니다.

 

이 점에서 창4의 살인은 창4:8에서 갑자기 시작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AC.325에서 사랑과 신앙이 분리되는 순간부터 아벨의 죽음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분리는 예배의 분리로 이어졌고, 예배의 분리는 사람의 내적 상태를 악하게 만들었으며, 그 악한 상태에서 신앙은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높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창4의 몇 절 안에서 읽어 내는 것은 단순한 범죄의 진행이 아니라 교회가 영적으로 죽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다시 ‘신앙은 나쁘고, 체어리티만 중요하다’고 이해하면 AC.329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separated faith’, 곧 ‘분리된 신앙’입니다. AC.328에서 체어리티가 신앙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체어리티는 신앙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과 체어리티가 결합할 때, 교회의 생명이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가인이 아벨을 자신의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그보다 앞세운 데 있습니다. 따라서 참된 회복은 가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인과 아벨의 본래 질서, 곧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아우 아벨’이라는 표현도 의미심장합니다. 문자적으로 아벨은 가인의 동생이지만, 속뜻으로도 체어리티가 신앙보다 열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AC.328-329의 설명에서는 체어리티가 주된 것이며, 신앙은 체어리티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문자적 출생 순서와 영적 우선순위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닙니다. 가인이 먼저 등장한다고 해서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본질적으로 앞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그 신앙이 자신을 ‘앞세웠을’ 때 영적 질서가 뒤집히고,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습니다.

 

4:9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질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깊어집니다. 주님께서 아벨의 위치를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가인으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 ‘너희 안의 체어리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앙도 있고, 교리도 있고, 예배도 있는데, 그 신앙이 낳아야 할 이웃 사랑은 어디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가인의 대답인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이후 AC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미 체어리티에 대한 책임 자체를 부인하는 상태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심화

 

1. ‘아벨의 죽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AC.329, 심화 1, ‘아벨의 죽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AC.329.심화 1. ‘아벨의 죽음’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AC.329를 오늘의 신앙생활에 비추어 보면, ‘아벨을 죽인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사람이 노골적으로 사랑과 선행을 반대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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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30, 창4:10-16, ‘창4:10-16 전체의 속뜻’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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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8,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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