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2.심화

 

5.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천적 인간’,  일곱째 날에 대한 위와 같은 생각은 AC.13, 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상태에도 이르지만, 이렇게 여섯 번째 상태까지 이르는 이는 적고(few),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라는 글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C.13의 ‘일곱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 없다(scarcely)’는 말씀은 ‘천적 인간은 극히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해당된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의 거듭남이 그만큼 깊고 어려운 과정이며, 실제로 완전한 안식의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다’는 현실적 진술입니다. 즉, ‘배제의 선언’이 아니라 ‘과정의 난이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이 문장의 무게를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없다’라고 하지 않고 ‘거의 없다(scarcely)라고 합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문을 닫는 표현이 아니라, ‘열려 있지만, 매우 깊고 어려운 상태’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그 상태로 이끄시지만, 인간 쪽에서 거기까지 온전히 응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AC 전체 흐름으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여섯째 상태까지는 ‘싸움과 선택의 과정’입니다. 여기까지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곱째 상태는 ‘싸움이 끝나고, 사랑이 완전히 중심이 되어,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 이르려면, 단순히 몇 가지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희귀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하나 더 있습니다. AC.13에서 말하는 ‘일곱째 상태’는 매우 ‘강한 의미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즉, 거의 흔들림이 없는, 깊이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이라도 평안을 경험하면 일곱째인가?’처럼 낮춰 보면 혼선이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완전히 정착된 안식 상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드물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제 목사님 질문과 연결하면 핵심이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이 극히 적은 것 아닌가?’—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정해진 소수’로 이해하면 균형이 깨집니다. AC의 흐름에서는 언제나 ‘열려 있음’이 유지됩니다. 누구든지 그 길로 인도받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 깊이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꼭 보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적다(few), 거의 없다(scarcely)’는 표현은 종종 ‘영적 질서의 기준’에서 말한 것이지, 우리가 통계적으로 셀 수 있는 숫자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즉, ‘인간의 상태가 그만큼 깊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걸 목회적으로 풀어보면 오히려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대부분은 여기까지밖에 못 갑니다’라는 낙심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 길은 깊고 긴 길이지만, 주님이 끝까지 이끄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일곱째 상태를 완전히 이룬 사람’을 찾기보다, ‘지금 이 사람이 그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이렇게 정리하시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힙니다. ‘일곱째 상태, 곧 천적 상태는 실제로 깊고 어려운 단계이기 때문에 드물게 보이지만, 그것은 닫힌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도받고 있는 방향이며, 각 사람은 그 길 위에서 자기 정도만큼 그 안식에 참여하게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AC.13 거의 없다는 표현은 천적 상태가 배제된 소수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깊고 완전한 거듭남의 상태가 실제로는 드물게 성취된다는 현실적 진술입니다.’

 

 

 

AC.62, 창1:31, '여섯째 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2 인간의 거듭남에 속한 시간들과 상태들은,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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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심화 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AC.62.심화 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그러면...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어요. 천성적으로 ‘사랑스런’ 사람, 처음부터 사랑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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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네요?

 

그러면...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척 적겠어요. 천성적으로 사랑스런 사람, 처음부터 사랑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어서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목사님 생각처럼 천적 인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인식은 어느 정도 맞지만,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극단적으로 희귀한 존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가 더 정확한 균형입니다. 왜냐하면 천적’이라는 것을 흔히 말하는 성격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먼저 중요한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천적 인간 = 타고나기를 사랑스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온순함, 다정함, 눈물 많음, 배려심 같은 것은 자연적 애정일 수도 있고, 영적 과정 중의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천적’은 그런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의지의 가장 깊은 중심이 주님과 직접 결합된 상태’,  선 자체를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이건 단순한 기질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깊이’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부드럽지 않은 사람도 천적일 수 있고, 반대로 매우 따뜻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도 아직 자연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먼저 분명히 하셔야 천적 인간은 극소수일 것 같다’는 느낌이 조금 정리됩니다.

 

그 다음으로, 왜 천적 인간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느냐를 보면,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리를 통해 자라기 때문입니다. 즉, ‘이게 옳다’를 배우고, 그걸 따라 살면서 점점 변화됩니다. 이것이 영적 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대부분은 이 길을 걷습니다. 설교도, 교훈도, 교육도 대부분 이 구조를 전제로 합니다.

 

반면 천적 상태는 사랑이 먼저’인 상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이 따뜻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따지기 전에 이미 선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는 인간이 타락 이후 일반적으로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드물게 느껴지는 것이 맞습니다. 스베덴보리도 태고교회를 바로 이 천적 상태’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천적 인간이 적다’는 것을 특별한 몇 사람만의 영역’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AC의 흐름과 어긋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사람을 결국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랑’이 어떤 구조 위에서 형성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영적 인간도 결국 사랑에 이르지만, 그것은 진리를 통해 형성된 사랑’입니다.

 

이걸 목회적으로 풀어보면 훨씬 편안해집니다. 어떤 성도는 계속 이게 맞나요?’를 묻고, 고민하고, 분별하며 자랍니다. 또 어떤 성도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선한 방향을 택합니다. 둘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둘 다 주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누가 더 높다’가 아니라 각 사람이 어떤 길 위에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사님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천적 인간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는 것이 맞지만, 그것은 소수 엘리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보통 진리를 통해 거듭나는 구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 위에서 결국 사랑 중심의 상태로 인도됩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천적 인간은 드물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방식의 차이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 방식 안에서 사랑 중심의 완성으로 인도됩니다.’

 

 

 

AC.62, 심화 5, ‘일곱 번째 상태에 이르는 이는 거의(scarcely)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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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심화 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AC.62.심화 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음... 위 설명은 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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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화의 가능성, 완성의 방식

 

... 위 설명은 좀 서로 충돌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 최종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가 말이죠.

 

 

결론부터 분명히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느끼신 대로 그 두 문장은 그대로 두면 충돌처럼 들리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이것은 내용의 모순이라기보다 ‘두 층위(가능성 vs 최종 구조)를 한 문장 안에 섞어 말하면서 생긴 혼선’입니다. 이걸 분리해서 보면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는 자유는 열려 있지만, 그 변화는 아무 형태로나 무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조 안에서 완성된다’입니다.

 

먼저 ‘최종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가리키는 층위부터 보겠습니다. 이것은 ‘사람은 처음 상태에 묶여 있지 않고, 선택과 거듭남을 통해 실제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즉, 처음에 자연적이었던 사람이 영적이 될 수 있고, 영적 인간도 더 깊이 사랑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맞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출발 상태에 묶어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장, ‘사랑이 중심이 되는 상태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구조와 본질은 여전히 영적 방식 위에 있다’는 전혀 다른 층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거듭났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적 인간은 ‘진리를 통해 사랑에 이르는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깊이 사랑에 이르더라도, 그 사랑은 ‘진리를 통해 형성된 사랑’입니다. 반면 천적 인간은 처음부터 ‘사랑이 먼저’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정확히 나누면 이렇게 됩니다. ‘변화의 가능성’ 차원에서는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성된 구조’ 차원에서는 차이가 유지됩니다. 즉, 영적 인간이 사랑에 이르더라도 그는 ‘영적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고, 천적 인간은 ‘천적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걸 비유로 풀어보면 더 또렷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평안’에 이르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오랜 고민과 분별, 선택의 과정을 거쳐 평안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처음부터 그 평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평안하지만, 그 평안의 ‘형성 방식’은 다릅니다. 이 차이가 바로 영적과 천적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영적 사람이 천적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꾸는 것이 정확합니다. ‘영적 사람도 사랑 중심의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예,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천적 인간의 사랑과 동일한 구조인가?’—아니오, 형성 방식이 다릅니다.

 

이렇게 보시면 두 문장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열려 있음(자유와 변화 가능성)’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형성된 질서(구조의 고유성)’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가장 정확한 정리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중심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사랑은 각자가 거듭난 방식에 따라 영적 구조 안에서 혹은 천적 구조 안에서 완성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완성의 방식은 각자의 구조에 따라 다르게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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