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

 

6. 5:22-23

 

다음은 욥기입니다.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5:22, 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이 구절도 앞의 호2:18과 같은 흐름이지만, 한 가지 더 나아가 ‘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5:2223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 안의 자연적 욕망과 감정들이 더 이상 그 사람을 위협하거나 끌고 가지 못하고, 오히려 질서 안에서 평화를 이루게 된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부터 보겠습니다. 여기서 ‘들짐승’은 앞과 같이 ‘자연적 애정, 즉 욕구, 감정, 쾌락의 움직임’입니다. 이 애정들은 질서 밖에 있을 때는 사람을 흔들고 끌고 가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은 이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분노, 욕심, 인정 욕구 같은 것들이 올라올 때, 그것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몰라 불안해지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들짐승을 두려워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이유 때문입니다. ‘돌과 언약을 맺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언약’과 ‘화목’입니다.

 

먼저 ‘(stones of the field)입니다. 말씀에서 ‘’은 ‘기초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기준’을 뜻합니다. 즉, 사람이 삶 속에서 붙들고 있는 기본적인 옳고 그름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돌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진리와 안정된 관계를 맺고,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흔들리는 기준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 위에 서게 되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바로 다음 표현이 나옵니다.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욕망과 감정이 사람을 흔들고 끌고 갔다면, 이제는 그것들이 ‘진리 아래에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게 되는 상태’가 됩니다. 즉, 욕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적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건 그러니까 이런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두려워합니다. ‘내가 또 저러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그 위에 서기 시작하면, 분노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것이 ‘방향을 바꾸고 조절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것이 파괴가 아니라, 필요할 때는 바른 판단과 결단의 힘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화목하게 사는 상태’입니다.

 

또 다른 예로, 욕심이나 인정 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그것이 사람을 끌고 다녔지만, 진리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책임감, 성실함, 다른 사람을 세우는 에너지’로 바뀝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이 혹시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흐름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진리와 언약을 맺는다  기준이 세워진다  욕망과 감정이 질서 안에 들어온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평화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한 단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면, 우리 안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됩니다.’

 

5:2223 들짐승과 화목, 진리 위에 선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애정들과도 조화를 이루어 더 이상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듭남의 평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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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18

 

다음 여섯 구절은 들짐승(wild animals) 구절이라는데 먼저 호세아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이 구절은 ‘들짐승’이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것만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 들어와 함께 평화를 이루는 대상으로 변하는 애정들’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18 들짐승은 사람 안의 자연적이고 거칠 수 있는 애정들이며,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것들이 주님의 통치 아래 들어와 질서와 평화를 이루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먼저 ‘그날에 언약을 맺는다’는 표현입니다. 말씀에서 ‘언약(covenant)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주님과 사람 사이에 질서와 결합이 이루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즉, 서로 연결되고 조화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자연계의 동물과 협약을 맺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안의 여러 요소들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제 세 가지가 나옵니다. ‘들짐승’, ‘공중의 새’, ‘땅의 곤충’입니다. 이것들은 각각 사람 안의 서로 다른 층위를 가리킵니다. ‘공중의 새’는 앞에서 보셨듯이 ‘이성적, 지적인 것들’, 곧 생각과 이해에 속한 것들입니다. ‘땅의 곤충’은 ‘아주 낮은 감각적이고 육적인 수준’, 즉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습관이나 본능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바로 ‘들짐승’입니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애정들’, 곧 기쁨, 욕구, 감정, 삶의 동력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들짐승’ 앞에 붙은 ‘(field)입니다. ‘’은 말씀에서 ‘사람의 교회 상태, 곧 진리와 선이 자라는 자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들짐승’은 단순히 거친 욕망이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질서 안으로 들어온,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수준에 있는 애정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완전히 타락한 욕정이 아니라, ‘다스려질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애정들’입니다.

 

이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 풀립니다. 이것은 이 모든 층위, 곧 생각(새), 애정(들짐승), 감각적 습관(곤충)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아래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어지는 표현입니다. ‘활과 칼을 꺾고 전쟁을 없애며 평안히 눕게 하리라.’ 이것은 외적인 전쟁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계속되던 갈등, 곧 생각과 욕망의 충돌, 선과 악의 싸움이 점점 가라앉고, 조화와 평안이 자리 잡는 상태’를 뜻합니다.

 

사람 안에는 늘 싸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부딪힙니다. 어떤 때는 감정이 앞서고, 어떤 때는 생각이 억누릅니다. 그런데 주님의 질서가 들어오면, 이 싸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제자리를 찾아 조화를 이루기 시작합니다.’ 욕구는 사라지지 않지만, 방향이 바뀌고, 생각은 억압이 아니라 인도가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고 안정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평안히 눕게 하리라’입니다.

 

주님은 사람 안의 생각과 애정과 감각적 요소들까지 모두 질서 안에 두어, 서로 싸우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이것이 호2:18의 속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욕망을 없애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평안히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들짐승과의 언약은 자연적 애정들이 주님의 통치 아래 들어와, 생각과 감각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거듭남의 평화 상태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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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1:27-28

 

다음은 네 번째 인용 구절입니다.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27, 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이 구절은 앞선 것들과 연결되면서도, 한층 더 ‘질서 있게 회복되는 전체 구조’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람의 씨 짐승의 씨를 함께 뿌린다는 것은, 주님이 사람 안에 진리(이해)와 선(의지), 곧 생각과 사랑을 동시에 새롭게 심으신다는 뜻’이며,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핵심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이 둘은 단순한 민족 구분이 아니라, ‘사람 안의 두 측면’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주로 ‘진리, 곧 이해와 신앙의 영역’, ‘유다’는 ‘, 곧 사랑과 의지의 영역’을 뜻합니다. 이미 여기서 ‘두 축’이 등장합니다.

 

그다음 ‘씨를 뿌린다(sow)는 표현입니다. 씨는 언제나 ‘시작점, 가능성, 생명의 근원’을 뜻합니다. 그래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완성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라날 수 있는 근본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사람 안에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선의 씨앗을 심으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핵심 표현,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입니다. 여기서 ‘사람(man)은 앞서 계속 보셨듯이 ‘이해, 진리, 분별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반면 ‘짐승(beast)은 ‘의지, 애정, 사랑의 움직임’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두 종류의 생물을 늘린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 안에 생각의 씨 사랑의 씨를 함께 심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나옵니다. 왜 굳이 두 가지를 함께 말할까요? 그것은 거듭남이 ‘한쪽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만 심어지면 사람은 알기만 하고 살지 못합니다. 반대로 선만 있으면 방향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사람의 씨(진리)’와 ‘짐승의 씨(선)’를 동시에 심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AC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입니다.

 

이어지는 28절도 같은 흐름입니다. ‘뿌리 뽑고 무너뜨리고 전복하던 것처럼, 이제는 세우고 심는다.’ 이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이전의 잘못된 구조(거짓과 자기 사랑)를 허무시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구조(진리와 선)를 다시 세우시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근본을 바꾸는 재창조’입니다.

 

이걸 일상적으로 설명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이전에는 자기 생각과 욕망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사람 안에 먼저 ‘‘이것이 옳다는 진리(사람의 씨)’를 심으십니다. 동시에 ‘‘이렇게 살고 싶다는 선한 마음(짐승의 씨)’도 함께 주십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함께 자라면서, 그 사람의 삶이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구절이 말하는 ‘심고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은 사람 안에 진리와 선, 곧 생각과 사랑의 씨를 함께 심으셔서,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자라게 하신다.’ 이것이 렘31:27-28의 속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먼저 그것을 알게 하시고, 동시에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함께 주십니다.’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는 각각 진리와 선을 뜻하며, 주님이 이 둘을 함께 심으심으로써 거듭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구절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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