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C.037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전구한다’ – 주님께 직접 나아가는 기도에 마리아의 중재가 필요한가?

 

해설

‘마리아는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전구한다.’ 이것은 천주교의 마리아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전구’(轉求, intercession)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전구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행위를 말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마리아가 지상 생애를 마친 후에도 천국에서 신자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모송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타납니다. 신자들은 마리아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지금과 죽을 때에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가 천국에서도 신자들을 모성적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이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는 신앙적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을 접하면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마리아가 천국에 있다는 사실과 지상의 신자들이 드리는 기도를 듣는다는 사실은 같은 것일까요? 천국의 천사들과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직접 기도를 드려도 된다는 근거가 될까요? 무엇보다 주님께서 무한한 사랑과 자비 자체이시라면, 인간이 그분께 나아가기 위하여 마리아의 도움을 먼저 요청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 문제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청하는 관행의 적절성을 넘어, 기도의 대상과 영적 교통의 질서, 주님의 유일한 중재, 그리고 천국의 모든 생명과 권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묻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입니다.

 

먼저 천주교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62항은 마리아가 천상의 영광에 들어간 후에도 모성적 역할을 계속하며, 여러 형태의 전구를 통하여 신자들이 구원의 은총을 받도록 돕는다고 설명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969항 역시 이러한 내용을 가르치며, 마리아를 ‘변호자’(Advocate), ‘도움이신 분’(Helper), ‘중재자’(Mediatrix) 등의 칭호로 부르는 전통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970항은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를 약화시키거나 대체하지 않으며, 그 모든 구원적 영향력이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구원자로 가르치거나, 그에게 독립적인 신적 능력이 있다고 선언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전구를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에 참여하는 종속적인 협력으로 설명합니다. 다만 여기서 구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전구가 주님의 권능에 종속되어 있다는 설명과, 마리아가 실제로 지상의 신자들이 드리는 청원을 알고 그들을 위하여 전구한다는 사실이 신적으로 확증되었다는 주장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검토해야 할 핵심은 후자의 주장입니다.

 

천주교가 전구를 설명할 때 중요하게 사용하는 개념은 ‘성도의 통공’(聖徒의 通功, communion of saints)입니다. 이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신자들과 죽은 후 정화를 받는 이들, 그리고 천국의 성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영적 공동체를 이룬다는 가르침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954–959항은 죽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영적인 결합을 끊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956항은 천국의 성인들이 지상의 신자들을 위하여 전구하며, 이러한 형제적 사랑이 지상의 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리아의 전구는 성인들의 일반적인 전구와 연결되지만, 그가 주님의 어머니이자 교회의 영적 어머니라는 특별한 지위 때문에 더욱 뛰어난 모성적 역할로 이해됩니다. 성경 역시 살아 있는 신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약5:16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병이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하며, 바울도 여러 서신에서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므로 전구라는 행위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천국에 있는 특정한 성인에게 직접 기도를 청하는 일이 동일한 영적 질서에 속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천주교는 성도의 통공을 근거로 두 행위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이해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영계의 질서를 설명하면서 이 문제를 다르게 가르칩니다.

 

2025년 11월 4일 바티칸 신앙교리부가 발표한 ‘신자들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는 이러한 가르침을 더욱 명확하게 정리했습니다. 이 문서의 24–29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시며, 그분의 중재는 다른 피조물의 도움으로 보충해야 하는 불완전한 중재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37–42항은 마리아의 모성적 전구를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에 참여하는 특별한 협력으로 이해합니다. 특히 38항은 마리아의 기도가 다른 성인들의 전구와 구별되는 특별한 가치와 효력을 지닌다고 설명하고, 41항은 마리아가 천국에서도 신자들의 기도에 모성적으로 동참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이 문서가 마리아의 역할을 단순한 상징이나 신앙의 모범으로 축소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실제적인 천상 전구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은총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주님의 자비를 대신 관리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구별합니다. 이러한 설명에는 주님의 유일한 구원을 보존하려는 중요한 신학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전구가 그리스도께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지상의 수많은 신자가 드리는 청원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알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질문까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 문제는 자연계와 영계 사이의 영적 교통이 어떤 질서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천주교가 마리아의 전구를 설명할 때 자주 제시하는 성경은 요2:1–11의 가나 혼인 잔치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님께 그 사정을 알리고, 하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권합니다. 천주교는 여기서 마리아가 사람들의 필요를 민감하게 살피고 그것을 주님께 아뢰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인정해야 할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건과 후대의 신학적 적용은 구별해야 합니다. 요2장의 마리아는 지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던 인간이었으며, 혼인 잔치의 구체적인 상황을 직접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사정을 예수님께 알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사후에도 지상의 모든 신자가 드리는 기도를 듣고 주님께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사건에서 실제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분은 마리아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권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으며, 하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권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중심은 마리아의 독립적인 중재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를 마리아의 전구를 보여 주는 신앙적 표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전구의 구체적인 작용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천사들이 인간을 돕는 말씀과 계8:3–4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환상도 천상 전구의 근거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성경적 연결 역시 그 의미를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인간을 돕는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인간이 특정한 천사나 성인에게 직접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계8장의 환상도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상징적 장면이지, 마리아에게 직접 전구를 요청하라는 명령은 아닙니다. 한편 딤전2:5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한 분이시며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살아 있는 신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구원하시는 유일한 중재자가 주님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신자들의 상호 기도, 천사들의 도움, 천국의 성인들에게 드리는 전구 요청, 그리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적 중재는 각각 구별해야 합니다. 이들을 모두 하나의 의미로 취급하면 성경이 직접 가르치는 내용과 후대의 신학적 해석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살펴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HH, 1758)에서 인간이 죽은 후에도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영계에서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위한 선한 쓰임 가운데 살아갑니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인간이 이웃을 향한 사랑을 잃거나 다른 존재를 위한 선한 마음을 모두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국의 삶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체어리티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국의 사랑이 곧 지상의 인간이 원하는 특정한 영적 존재를 자유롭게 불러 자신의 청원을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연계와 영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치지만, 그 연결이 인간의 선택에 따라 특정한 성인이나 천사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참된 영적 교통은 주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 자신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천사들이 인간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직접 기도하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전구뿐 아니라 모든 성인에게 드리는 기도를 검토할 때 적용해야 할 원칙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스베덴보리의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 824–825항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나타납니다. TCR.824에서 스베덴보리는 영계에 들어온 가톨릭 신자들, 특히 수도자들이 자신들이 지상에서 공경하던 성인들을 찾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성인들은 천국이나 영계의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지상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기도하고 공경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자신이 성인으로 공경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공경을 원하는 영들은 오히려 영적 혼란에 빠진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TCR.825에서는 성인들에게 드리는 청원이 실제로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더욱 명확하게 말합니다. 그는 지상의 신자들이 성인들에게 전하는 기도가 그들에게 도달하여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관행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 두 항목은 스베덴보리의 성인 전구에 관한 입장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직접 근거입니다. 여기서 그의 비판은 단순히 성인들의 지위가 주님보다 낮다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지상의 신자가 천국의 성인들에게 직접 청원하고, 그들이 그 청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관행 자체가 영계의 실제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적 경험과 그에 근거한 가르침으로 제시한 것이므로, 성경 본문과 동일한 종류의 역사적 증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학 안에서는 성인에게 드리는 기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명백한 자료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피해야 합니다. 천국의 성인들이 지상의 신자들이 자신들에게 드리는 청원을 듣지 못한다는 스베덴보리의 설명이 천사들이 인간을 돕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천사들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을 보호하고 인도하며, 악령들의 영향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자신의 독립적인 능력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보호의 역사에 참여합니다. 따라서 천사들의 도움은 실제적이지만 그 근원은 언제나 주님입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어떤 천사가 함께하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천사의 보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도움은 인간의 의식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도움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도움을 받기 위하여 특정한 영적 존재를 직접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인간은 천사들에게 직접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서 자신의 섭리에 따라 천사들을 통하여 인간을 보호하고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천국의 사랑과 선한 쓰임을 인정하는 일은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정당화하는 일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마리아의 전구와 일반 성인들의 전구도 비교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모든 성인의 전구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에 종속되어 있으며, 마리아의 전구는 그 가운데 특별한 모성적 성격과 뛰어난 지위를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성인들에게 직접 드리는 청원이 실제 영계의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예외적인 기도 청취 능력이 주어졌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TCR.827에서 자신이 영계에서 마리아와 만났다고 기록하면서, 마리아가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주님과 나란히 신적 권능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생명을 받는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 기록이 마리아의 모든 천상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에게 어떠한 사랑이나 선한 쓰임도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마리아가 지상의 모든 신자가 드리는 기도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TCR.824–825의 직접적인 성인 기도 비판과 TCR.827의 마리아에 관한 기록을 함께 고려하면,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하는 관행을 신적으로 확정된 진리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마리아가 복된 여인이라는 사실과 그에게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은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이 주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주님께 도달하기 위하여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 7–12항에서 천국의 모든 선과 진리가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주님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말씀드리기 전에는 알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며, 다른 피조물이 인간의 사정을 설명해야만 비로소 그를 이해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주님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 자체이시며, 인간의 내적인 상태와 필요를 모든 피조물보다 완전하게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주님께 기도하는 일은 그분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 드리거나, 원래 베풀지 않으려 하셨던 은총을 설득하여 받아 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열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이해와 의지를 주님의 뜻에 맞추어 가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리아의 전구가 없으면 주님의 자비에 가까이 나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천주교의 공식 교리 역시 마리아의 전구가 없으면 주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직접 전구를 청하는 관행을 특별한 신앙적 도움으로 제시한다면, 그러한 방식이 주님께 직접 나아가는 기도의 질서에 실제로 부합하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주님은 인간에게 이미 가까이 계시며, 인간이 그분께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별도의 천상 인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인간의 실제적인 신앙 감정과도 관련됩니다. 어떤 신자는 하나님을 엄격한 심판자로 생각하면서 그분께 직접 기도하기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마리아에게는 자신의 연약함과 아픔을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 자체를 경솔하게 비판하거나 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서로 다른 신앙적 배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께서는 각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과 진리를 통하여 그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의 대상을 더욱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보다 더 자비롭고 인간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모든 참된 모성애와 위로와 자비의 근원은 오직 주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천주교의 2025년 ‘신자들의 어머니’ 문서 역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마리아의 전구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특정한 신앙 감정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신앙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모든 사랑과 자비의 근원으로 인정하는가를 살피는 데 있습니다. 참된 신앙의 성숙은 우리를 주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주님께서 이미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는 분임을 깨닫도록 이끕니다.

 

마리아의 지상 생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도 이러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요2:5에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권합니다. 눅1:38에서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부르며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눅1:46–47에서는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 자신의 구주를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에서 마리아는 자신에게 특별한 신적 권능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그가 보여 준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특별한 쓰임을 감당한 복된 여인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역할이 그를 영원한 기도 요청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의 귀중한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에게 기도를 드리고 영적인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모든 천사와 구원받은 인간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피조물이며, 그들이 지닌 모든 선한 쓰임의 근원은 오직 주님입니다. 참된 존중은 그들에게 주님의 권능을 나누어 부여하는 데 있지 않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선과 진리를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교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 기도는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의 짐을 지는 체어리티의 중요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자연계의 인간이 천국의 특정한 성인들에게 직접 청원하고, 그들이 그 청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관행을 영계의 실제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능력으로 인간을 돕지만, 인간은 그들에게 직접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마땅히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주님 자신입니다. 이는 천사들의 도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도움의 시작과 끝이 주님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마리아 역시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된 복된 여인이었지만, 그에게 어떠한 사랑과 선한 쓰임이 있다면 그것 역시 주님에게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마리아에게 머무르거나 그를 거쳐야만 주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 각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마음을 열 때 사랑과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참된 기도의 목적은 어떤 천상 존재의 특별한 영향력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주님과의 직접적인 영적 결합 안에서 우리의 이해와 의지가 새로워지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결국 모든 기도의 궁극적인 대상과 모든 자비와 구원의 근원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SL.RC.037 해설)

 

요약

‘마리아는 신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전구한다’라는 명제에는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전구를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와 동등한 권능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그분의 구속과 은총에 종속된 모성적 협력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2025년 신앙교리부 문서는 주님의 자비가 부족하여 마리아가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이해를 경계합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구별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상의 신자들이 천국에 있는 마리아에게 기도를 청할 때 그가 실제로 그 청원을 알고 주님께 전구한다는 주장은 성경이 직접적으로 확정하는 내용을 넘어서는 신학적 주장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와 신자들의 상호 기도, 천사들의 도움에 관한 말씀들은 각각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마리아에게 사후의 전구를 요청하는 행위를 직접 명령하거나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스베덴보리는 TCR.824–825에서 천국의 성인들이 지상에서 자신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알고 듣는다는 생각을 직접 비판하며, 그러한 관행이 실제 영계의 질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이번 문제에서는 그의 주님론에서 도출되는 해석적 판단뿐 아니라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에 관한 직접적인 반론도 확인됩니다. 다만 이것이 천국의 천사들과 구원받은 인간들이 사랑을 잃거나 주님의 섭리 안에서 선한 쓰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류의 핵심은 마리아를 복된 여인으로 존중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랑의 행위를 인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에게 특별한 기도 청취 능력과 전구의 역할이 부여되었다고 확정하고, 그에게 직접 청원하는 행위를 정당한 영적 교통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모든 천국의 선과 권능은 주님에게서 나오며, 주님은 이미 인간의 모든 내적인 필요를 알고 계시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 자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주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마리아의 전구를 요청해야 할 신학적 필요는 없으며, 참된 기도는 주님께 직접 마음을 열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하지만, 모든 영적 생명과 구원의 유일한 근원이신 주님 한 분만을 기도의 궁극적인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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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며 모든 신자의 영적 어머니다.’ 이것은 천주교가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교회의 어머니’(Mother of the Church)와 ‘영적 모성’(靈的母性, spiritual motherhood)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천주교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육신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넘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와 교회 전체에 대하여 특별한 어머니의 역할을 지닌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마리아는 신자들을 모성적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이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도우며, 교회의 믿음과 순종을 보여 주는 특별한 모범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모든 신자의 어머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질까요? 성경은 마리아가 교회 전체의 영적 어머니라고 직접 가르칠까요? 사람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주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일인데, 여기에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라는 별도의 관계가 필요한 것일까요? 무엇보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타낸다고 가르치는데, 교회의 영적 모성과 마리아 개인에게 부여된 모성적 지위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마리아에게 사용하는 존칭의 적절성을 넘어, 인간이 누구에게서 영적 생명을 받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거듭나는가를 묻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명제를 검토하려면 천주교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고, 성경과 스베덴보리의 교회론 및 거듭남의 가르침에 비추어 그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천주교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53항은 마리아가 사랑으로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지체인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태어나도록 도왔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61항은 마리아가 순종과 믿음, 소망과 사랑으로 구세주의 구원 사업에 특별하게 협력했으므로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가르칩니다. 62항은 그러한 모성적 역할이 마리아의 지상 생애에만 국한되지 않고 천상에서도 계속된다고 설명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963–970항 역시 이 가르침을 계승합니다. 특히 968항은 마리아가 인간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는 구속의 역사에 특별하게 협력했다고 설명하며, 969항은 그가 천상에서도 신자들을 위한 모성적 돌봄과 전구를 계속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천주교의 영적 모성은 단순히 마리아를 존경할 만한 신앙의 선배로 기억한다는 뜻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과 특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신자들의 영적 삶을 돕는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이러한 역할을 그리스도에게서 독립된 권능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교회헌장 60항은 그리스도의 중재가 유일하며, 마리아의 모든 구원적 영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에 의존한다고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가 마리아를 영적 생명의 독립적인 근원으로 선언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공식 교리의 실제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칭호의 역사적 발전도 중요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4년 11월 2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 연설에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교회란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목자들과 모든 신자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후 이 칭호는 가톨릭의 전례와 신심 안에서 더욱 널리 사용되었으며, 2018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에 따라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라는 생각이 1964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사상은 오랜 교회 전통 안에서 발전했으며, 마리아를 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모범으로 이해하는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주교 역시 교회의 설립자와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교회의 생명은 그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교회의 창설자나 최고 통치자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칭호가 단순한 명예적 표현을 넘어 모든 신자와의 실제적인 영적 관계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면, 그러한 관계가 성경과 주님의 영적 질서에서 어떤 근거를 갖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2025년 11월 4일 바티칸 신앙교리부가 발표한 ‘신자들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는 특히 주목할 만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의 34–37항은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모든 지체와 관계되는 모성으로 확장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마리아가 단순히 과거의 모범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에도 신자들을 위한 모성적 협력과 ‘전구’(轉求, intercession)를 감당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를 약화시키거나,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와 나란히 서는 독립적인 구원적 역할을 부여하는 표현을 경계합니다. 특히 45–47항은 마리아가 하나님과 별도로 은총을 보관하거나 모든 은총이 반드시 그의 손을 통하여 전달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마리아의 역할은 신자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모성적 협력이며, 실제로 영적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정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천주교의 공식 교리 자체가 마리아를 주님의 은총과 독립된 생명의 근원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별을 인정하더라도 마리아 개인에게 모든 신자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 신적으로 확정된 진리인지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주교의 영적 모성론과 스베덴보리의 교회론을 비교해야 합니다.

 

천주교가 마리아의 영적 모성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성경은 요19:26–27입니다. 십자가 위에 계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마리아에게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역사적 문맥에서 주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시고, 그 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돌보도록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돌보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여기에서 더 깊은 신학적 의미를 발견합니다. 사랑하시는 제자가 모든 신자를 대표하며, 주님께서 마리아를 그 제자의 어머니로 맡기신 것은 교회 전체에 마리아를 영적 어머니로 주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을 교회의 삶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19:26–27은 모든 시대의 신자들이 마리아를 반드시 영적 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접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말씀만으로 마리아가 천국에서 모든 신자의 영적 생명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특별한 권위를 받았다고 확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직접 기록한 사건과 그 사건에 부여한 후대의 신학적 해석을 구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주님론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 102항에서 주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취하신 인성을 영화하셨으므로, 영화 이후의 주님을 여전히 마리아에게서 비롯된 자연적인 인성에 의하여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요19:26–27을 인용하며, 주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가 아니라 ‘여자여’라고 부르신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의 문자적 문맥과 스베덴보리의 신학적 해석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의 호칭 자체가 자연적인 모자 관계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며, 이 장면은 오히려 주님께서 마리아를 돌보시는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영원한 신적 정체성이 마리아에게서 받은 자연적인 인성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주님의 지상 생애에서 실제로 어머니였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 자연적인 모성을 근거로 영화된 주님과 교회 전체에 대한 영원한 모성적 권위를 도출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신 사건과 마리아에게 모든 신자의 거듭남을 돌보는 보편적 직분이 부여되었다는 주장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어머니’가 지니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AC, 1749–1756) 289–290항에서 창3:20의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불린 이유를 해설합니다. 그는 여기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타내며, ‘산 자’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게서 오는 믿음과 생명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AC.289는 아내와 어머니가 교회, 넓은 의미에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를 나타낸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AC.290은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에서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것은 어떤 한 여성이 모든 인간의 영적 생명을 직접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의 영적 역할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AC.2691과 2717항에서도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머니를 교회와 연결하여 해석하며, 특히 진리에 대한 애정과 관계된 영적 교회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어머니가 지니는 속뜻은 단순한 자연적 출생을 넘어, 주님의 선과 진리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과 관계됩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영적 모성을 검토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성경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타낸다는 사실과 마리아라는 역사적 인물에게 모든 신자의 보편적인 영적 모성의 권위가 주어졌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 의미는 성경의 다른 말씀에서도 확인됩니다. 갈4:26에서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자유자이며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특정한 인간 여성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는 자유와 생명을 지닌 영적 공동체를 나타냅니다. 또한 계12:1의 해를 입은 여자에 관하여 스베덴보리는 ‘계시록 해설’(Apocalypse Revealed, AR, 1766) 533항에서 그 여인이 새 하늘에 있는 주님의 새 교회와 땅 위에 세워질 새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어머니와 여자가 교회의 영적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상응의 원리를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합니다. 어떤 여성이 교회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여성 개인에게 교회의 모든 영적 권위가 실제로 부여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한 모습은 교회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신앙적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교회를 나타내는 모범이라는 주장과 그가 모든 신자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주장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원리는 역사적인 인물을 신격화하거나 그에게 특별한 종교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말씀 안에 담긴 주님의 선과 진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적 출생의 근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요3:3–8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며,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요1:12–13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거듭남’(regeneration)은 인간이 주님에게서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는 과정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인간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악을 죄로 여겨 피하며 선을 행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만큼 영적으로 새로워집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의 삶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적인 어머니의 쓰임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생명의 근원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말씀과 진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곳이며, 실제로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오시는 자연적인 출생에서 특별한 역할을 감당했지만, 다른 모든 인간의 영적 출생이 마리아에게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스베덴보리의 교회론은 영적 모성의 중심을 특정한 역사적 인물보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교회의 쓰임에 둡니다. 그리고 그 교회조차 모든 생명을 주님에게서 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천주교와 스베덴보리의 가르침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가 함께 나타납니다. 천주교 역시 영적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 마리아 자신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영적 모성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은총에 종속되어 있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 모성적 협력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리아 개인에게 모든 신자를 향한 지속적인 모성적 역할이 실제로 주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반면 스베덴보리의 직접적인 가르침에서 영적 어머니라는 표현은 우선 교회와 관계되며, 인간의 거듭남은 주님께서 말씀과 선과 진리를 통하여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교회의 모범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의 자연적인 모성을 모든 신자를 향한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적 직분으로 확장하는 데에는 별도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천주교가 마리아의 영적 모성을 천상에서 계속되는 전구와 돌봄의 역할로 설명하는 부분은 스베덴보리의 영계 이해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천국의 천사들이 서로 사랑하며 선한 쓰임을 감당한다는 사실과, 특정한 한 인간에게 모든 신자를 향한 특별한 모성적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주장은 구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마리아의 전구와 중재에 관한 후속 해설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TCR.827에서 자신이 영계에서 마리아와 만난 경험을 기록합니다. 그는 마리아가 자신은 주님의 어머니였지만 주님께서 어머니에게서 취하신 인간적인 것을 벗으시고 인성을 신적으로 만드셨으므로 이제는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 기록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적 경험으로 보고한 내용이므로, 자료의 성격을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마리아 이해를 직접 보여 주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주님을 예배하는 영계의 인간으로 나타나며, 모든 신자의 영적 생명을 낳거나 보존하는 독립적인 권위자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록에 특별한 모성적 직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마리아가 천국에서 어떠한 사랑이나 쓰임도 감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의 천국론에 따르면 모든 천사는 자신에게 맡겨진 선한 쓰임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특별한 쓰임을 감당했다는 사실과, 그가 영원히 모든 인간의 영적 어머니로서 특별한 천상 권위를 행사한다는 주장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성경과 스베덴보리의 저작이 직접 뒷받침하지만, 후자는 그의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실제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위로와 보호, 따뜻함과 돌봄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성경 역시 사49:15에서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잊을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설령 어머니가 자식을 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어머니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도록 돕는 비유이지만, 주님의 사랑이 부족하여 다른 존재가 그것을 보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참된 모성애의 근원은 주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특별히 자비로운 영적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주님께서는 멀고 엄격하시지만 마리아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 주는 분이라고 여긴다면, 그 신앙적 이해는 다시 살펴야 합니다. 주님은 이미 무한한 사랑과 자비 자체이시며, 인간이 그분께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다른 피조물의 모성적 보호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천주교의 공식 가르침과 개인적인 통념을 구별해야 합니다. 2025년 신앙교리부 문서는 마리아를 주님의 엄격한 심판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별도의 피난처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의 표상을 주님과 인간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별도의 영적 권위나 관계로 확정하는 데 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을 존중하는 일은 이러한 신학적 구별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눅1:38에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부르며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눅1:46–47에서는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 자신의 구주를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요2:5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리아가 교회의 믿음과 순종을 보여 주는 중요한 모범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주장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교회의 믿음과 순종의 본보기로 기억하는 데에는 귀중한 신앙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과 순종이 모든 신자에게 마리아와의 직접적이고 영원한 모자 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인간의 참된 위대함은 특별한 칭호나 지위를 받았는가보다,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제적인 삶에서 실천하는가에 있습니다. 마리아가 참으로 복된 여인인 것도 그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되었고, 그 말씀을 믿음과 순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그의 삶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방향,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의 참된 영적 모성이 무엇이며 인간이 누구에게서 새롭게 태어나는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타낸다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과 진리를 전하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교회조차 생명의 근원은 아닙니다. 교회가 참된 교회인 것은 오직 주님께서 그 안에 계시고, 그분의 선과 진리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인간으로 오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복된 어머니였으며, 그의 믿음과 순종은 교회가 본받아야 할 귀중한 모범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영적으로 낳고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마리아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인간과 영적인 모자 관계를 맺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며 모든 신자의 영적 어머니다’라는 명제를 검토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마리아의 모성적 지위를 높이거나 낮추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라는 영적 표상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교회의 참된 쓰임을 이해하고, 모든 영적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 한 분이심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영적인 어머니의 쓰임을 감당하지만, 그 모든 생명과 사랑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주님 자신이십니다. (SL.RC.036 해설)

 

요약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며 모든 신자의 영적 어머니다’라는 명제에는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된 복된 여인이며, 그의 믿음과 순종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중요한 모범이 된다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영적 모성을 그리스도에게서 독립된 생명의 근원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그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속과 은총에 종속된 모성적 협력으로 가르칩니다. 특히 2025년 신앙교리부 문서는 마리아에게 독립적인 구원적 권위나 모든 은총의 필수적 전달자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이해를 경계합니다. 이러한 공식적인 구별은 정확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19:26–27에서 주님께서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신 사건을 모든 시대의 신자에게 적용하고, 그에게 영원한 영적 모성의 직분이 부여되었다고 확정하는 것은 성경 본문의 직접적인 진술을 넘어서는 신학적 해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289–290과 2691·2717항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나타내며, 모든 참된 영적 생명은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TCR.102와 827에서는 영화된 주님과 마리아의 자연적인 모자 관계를 구별하고, 마리아를 주님을 예배하는 영계의 인간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오류로 검토해야 할 핵심은 마리아를 복된 어머니로 존중하거나 교회의 믿음과 순종의 모범으로 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역사적 모성을 교회 전체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영적 모성으로 확대하고, 그에게 모든 신자를 향한 특별한 천상 직분을 신적으로 확정하는 데 있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가 이 칭호를 직접적으로 반박했다고 주장할 근거는 부족하며, 이러한 판단은 그의 주님론과 교회론, 거듭남의 가르침에 근거한 신학적 평가입니다. 성경에서 어머니가 나타내는 중요한 영적 의미는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이며, 실제로 인간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보여 주는 귀중한 모범으로 존중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영적 출생과 구원을 이해하기 위하여 마리아의 별도 모성적 권위를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시며, 참된 교회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전하는 영적인 어머니의 쓰임을 감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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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RC.035 |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 속 진리와 오류 100선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공경받는다’ – 천국의 참된 왕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마리아의 특별한 지위는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해설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공경받는다.’ 이것은 천주교의 마리아 신앙에서 널리 사용되는 ‘하늘의 여왕’(Regina Caeli, Queen of Heaven)이라는 칭호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마리아를 ‘천상 모후’(天上母后)라고 부르며, 성모상에 왕관을 씌우거나 왕좌에 앉은 마리아의 모습을 성화와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묵주기도의 영광의 신비 마지막 단에서는 마리아가 하늘의 모후로 관을 받으시는 일을 묵상합니다. 이러한 신심에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로서 특별한 영광을 받았으며, 천국의 모든 성인과 천사 가운데 뛰어난 지위를 차지한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접하면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국의 왕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신데, 어떻게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마리아가 하늘의 여왕이라는 말은 단순한 존칭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천국에서 특별한 권위를 행사한다는 뜻일까요? 무엇보다 천국의 모든 생명과 권능이 오직 주님에게서 나온다면, 마리아에게 별도의 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요? 이 문제는 단순히 마리아에게 사용하는 칭호의 적절성을 넘어, 천국이 어떤 질서로 이루어져 있는지, 천사와 성인들의 영적 권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모든 예배의 중심이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입니다.

 

먼저 천주교가 말하는 마리아의 왕권(王權, queenship)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4년 10월 11일 회칙 ‘하늘의 여왕께’(Ad Caeli Reginam)를 발표하면서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공경하는 신학적 근거를 설명하고, 마리아의 왕권을 기념하는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처음에는 5월 31일에 지냈지만, 현재 로마 가톨릭 전례력에서는 성모 승천 대축일로부터 여드레 뒤인 8월 22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을 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1954년의 회칙이 마리아의 왕권을 처음으로 새로운 신앙의 교의로 선포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오 12세는 회칙 6항에서 새로운 신앙의 진리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의 전통과 전례 안에서 인정되어 온 마리아의 왕적 지위를 더욱 분명히 설명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왕권을 1954년에 갑자기 만들어 낸 교리라고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전통이 실제로 주님의 계시에 근거한 진리인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마리아의 왕권은 단순히 존칭으로만 이해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는 특별한 왕적 존엄과 영향력이 있으며, 그가 신자들을 위하여 모성적으로 전구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명예로운 칭호와 실제적인 천상 권위에 관한 주장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천주교가 마리아의 왕권을 설명하는 첫 번째 근거는 그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사실입니다. 눅1:32–33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예수님이 다윗의 왕위를 받으시고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또한 눅1:43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천주교는 이 말씀들을 근거로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도 특별한 왕실적 존엄이 주어졌다고 이해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왕실에서 왕의 어머니가 차지한 지위 역시 이러한 해석과 연결됩니다. 왕상2:19에서는 솔로몬이 어머니 밧세바를 위하여 일어나 절하고, 자신의 오른쪽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마리아를 왕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특별한 영광을 받은 여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경이 직접 증언하는 내용과 후대의 신학적 적용을 구별해야 합니다. 눅1:32–33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치지만, 마리아에게 천국의 왕권이 부여된다고 직접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왕상2:19 역시 고대 이스라엘 왕실에서 왕의 어머니가 존중받았다는 역사적 사례이지, 마리아가 천국에서 모든 천사와 성인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직접 가르치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왕권은 이러한 성경 본문들을 연결하여 형성된 신학적 해석이며, 성경이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주님의 영원한 왕권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비오 12세의 회칙은 마리아의 왕권을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지위에만 근거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특별하게 협력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합니다. 회칙 34–39항은 마리아가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으며, 그분의 고난과 승리에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왕적 존엄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회칙 39항은 엄밀하고 완전한 의미에서 참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마리아는 제한적이고 유비적인 의미에서 그 왕권에 참여한다고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여기서 마리아의 왕권은 그리스도에게서 독립된 신적 통치권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비롯되는 종속적인 권위라는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흠숭’(欽崇, adoration)과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恭敬, veneration)을 구별하며, 마리아에게는 다른 성인들보다 특별한 공경을 드린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구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66항과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971항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므로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마리아를 주님과 동등한 신으로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검토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의 왕권이 주님의 왕권에 종속되어 있다고 설명하더라도, 그에게 부여된 특별한 천상 권위와 신자들을 위한 ‘전구’(轉求, intercession)가 과연 성경과 천국의 영적 질서에 근거하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늘의 여왕’이라는 표현이 다른 문맥에서도 나타납니다. 렘7:18과 렘44:17–19에서는 유다 백성이 하늘의 여왕에게 제물을 바치고 분향하며 전제를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러한 행위를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천주교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곧 구약의 우상숭배와 동일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에서는 역사적 대상과 신학적 의미를 구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의 하늘의 여왕은 고대 근동의 여신 숭배와 관계된 표현인 반면, 천주교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 주어진 특별한 영광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대상과 의미가 자동으로 동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들을 마리아 공경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적 판정으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살펴야 할 영적 원칙이 있습니다. 인간이 주님께만 속한 신적 권능과 영광을 다른 존재에게 돌리고, 그 존재를 신적 생명과 구원의 근원처럼 의지한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의 질서를 벗어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마리아에게 사용하는 칭호가 고대 여신의 명칭과 같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누구를 모든 사랑과 자비, 권능과 구원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여기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 스베덴보리의 렌즈로 천국의 왕권을 살펴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HH, 1758) 2–6항에서 천국의 하나님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시라고 가르칩니다. 천국의 모든 천사는 주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그분과 나란히 독립적인 신적 통치권을 지니는 존재는 없습니다. 또한 HH.7–8에서는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이 천사들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거룩함이나 권능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흘러나와 천사들이 받아들이는 신적 선과 진리라고 설명합니다. 천사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참된 선과 자신들이 이해하는 모든 참된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어떤 천사도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천국을 이루거나 유지하지 않습니다. 천국의 모든 생명은 주님에게서 흘러들어오며, 천사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만큼 천국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마리아의 왕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합니다. 설령 마리아가 천국에서 매우 높은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독립적인 신적 권능이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어떤 천사가 특별한 지혜와 사랑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천사들에게 신적 생명을 부여하는 근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의 참된 통치권은 오직 주님에게 속하며, 모든 천사와 인간은 그분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에게 맡겨진 쓰임을 감당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TCR, 1771) 94항에서 마리아를 높이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신심을 직접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기보다 마리아의 아들로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로마 가톨릭이 마리아를 다른 모든 성인보다 높이고 여신이나 성인들의 여왕처럼 받들었다고 비판합니다. 원문에는 마리아를 ‘여신 또는 여왕’(goddess or queen)으로 높였다는 강한 표현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평가와 천주교의 공식 교리를 구별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여신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그에게 주님과 동등한 신적 왕권이 있다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TCR.94의 비판을 오늘날 천주교의 공식 교리를 그대로 설명한 문장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은 스베덴보리가 당시의 마리아 신심에서 발견한 영적 위험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그가 특히 경계한 것은 주님의 신적 정체성을 마리아에게서 비롯된 자연적인 모자 관계 안에 가두거나,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유일한 신성이 흐려지는 현상이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마리아에게서 자연적인 인성을 취하셨지만, 그 인성을 점차 영화하여 온전히 신적으로 만드셨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영화 이후의 주님을 여전히 마리아에게서 비롯된 자연적인 인성에 의하여 규정하거나, 그 모성에서 마리아의 영원한 왕적 권위를 도출하는 일은 그의 주님론에 비추어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별은 TCR.827에서도 확인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영계에서 흰옷을 입은 마리아를 보았으며, 마리아가 자신은 주님의 어머니였지만 주님께서 어머니에게서 취하신 인간적인 것을 벗으시고 인성을 신적으로 만드셨으므로 이제는 그분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한다고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마리아는 주님 안에 모든 신성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분을 여전히 자신의 아들로 이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적 경험으로 보고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증언과 동일한 종류의 자료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마리아 이해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천국의 왕좌에 앉아 다른 천사와 성인을 다스리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예배하는 영계의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이 기록이 마리아의 천국 내 모든 관계와 쓰임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므로, 마리아에게 어떠한 특별한 영적 상태나 영예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주님과 구별되는 피조물이며, 자신의 하나님으로 오직 주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천국의 모든 선과 생명이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는 HH.7–8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높은 지위나 특별한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흔히 자연계의 왕권을 기준으로 천국의 질서를 상상합니다. 자연계에서 왕이나 여왕은 영토와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이며, 높은 지위에는 더 큰 권력과 영향력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천국의 질서는 그러한 자연적인 권력 구조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천국에도 서로 다른 천사 사회와 질서가 있으며, 천사들은 각자의 상태와 쓰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참된 권위는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지혜를 받아들이고, 그 사랑과 지혜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선한 쓰임에서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막10:42–45에서 세상의 집권자들이 사람들을 주관하지만, 제자들 가운데서는 크고자 하는 사람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의 참된 높음은 바로 이러한 섬김의 질서와 관계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특별한 영적 상태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모든 천사와 성인을 지배하는 독립적인 권력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리아의 복됨은 주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쓰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한 데서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의 어떤 존재도 자신의 권능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만큼 참된 사랑과 지혜 안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주교의 공식적인 설명과 실제 신앙생활에서 형성될 수 있는 통념을 다시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왕권이 주님의 왕권에 종속되어 있으며,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돕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교리의 구별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신앙생활에서도 언제나 그 구별이 올바르게 유지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신자가 마리아를 주님보다 더 자비로운 존재로 생각하거나, 주님께서는 엄격하시지만 마리아가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에게 필요한 은총을 얻어 준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신앙적 통념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주님론은 매우 중요한 진리를 밝힙니다. 주님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 자체이시며, 모든 자비와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도우시기 위하여 어떤 피조물에게 설득을 받으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더욱 깊이 깨닫는 것과, 마리아가 주님보다 더 자비로워 그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전자는 신앙적인 정서와 해석의 문제로 살펴볼 수 있지만, 후자는 주님 자신의 신적 사랑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마리아의 왕권이라는 칭호 자체보다 전구와 중재에 관한 신학적 이해와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므로, 후속 해설에서 별도로 다루는 것이 적절합니다.

 

마리아라는 인물의 역사적 중요성과 믿음의 모범은 충분히 존중해야 합니다. 눅1:38에서 마리아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부르며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눅1:46–47에서는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 자신의 구주를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모습은 천국의 참된 질서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선과 진리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뻐합니다. 마리아의 복됨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성육신이라는 특별한 역사에 쓰임을 받았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을 믿음과 순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길은 그를 하늘의 여왕으로 높이는 표현이 얼마나 장엄한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인간으로 오신 주님의 신성과 구속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가 보여 준 순종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참된 영광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웃을 위한 선한 쓰임으로 살아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천국에는 과연 주님과 나란히 영광을 받으며 특별한 왕권을 행사하는 존재가 있을까요? 스베덴보리는 천국이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로 이루어진 하나의 영적 질서이며, 그 안의 모든 천사는 오직 주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고 가르칩니다. 천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천사 사회가 존재하며, 각기 서로 다른 선한 쓰임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다양성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 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복된 여인으로 기억하고 그의 믿음과 순종을 존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에게 천국의 모든 천사와 성인 위에 있는 특별한 왕적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신앙적으로 공경해야 할 지위로 확정하는 일은 별도의 근거를 요구합니다. 특히 그 권위를 주님의 영원한 왕권에 대한 참여라는 말로 설명하더라도, 그러한 참여가 실제로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지며 무엇을 근거로 마리아에게만 특별히 부여되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렌즈가 강조하는 것은 천국의 모든 생명과 통치가 오직 주님에게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를 공경하는 마음이 참으로 올바른 방향을 향한다면 그 마음은 마리아에게 머무르지 않고, 마리아가 자신의 하나님이자 구주로 찬양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역시 어떤 특별한 인간이나 천사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천국의 모든 사랑과 지혜, 모든 선과 진리, 모든 권능과 영광의 근원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의 참된 왕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시며, 그분의 왕권은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비롯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를 검토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마리아의 지위를 높이거나 낮추는 데 있지 않고, 천국의 모든 생명과 권능이 오직 주님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 데 있습니다. (SL.RC.035 해설)

 

요약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공경받는다’라는 명제에는 마리아가 주님의 성육신을 위하여 선택된 복된 여인이며, 그에게 부여되는 모든 영광과 은총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는 마리아의 왕권을 주님과 동등한 신적 통치권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왕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구속의 역사에 특별히 협력한 인물에게 주어진 종속적이고 참여적인 권위로 설명합니다. 또한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하나님께 드리는 흠숭을 구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리아가 천국에서 모든 천사와 성인 위에 있는 여왕으로 통치한다는 사실을 직접 선언하지 않습니다. 천주교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주님의 왕권, 고대 왕실에서 왕의 어머니가 차지한 지위, 마리아의 특별한 소명과 구속에 대한 협력을 연결한 신학적 해석에 해당합니다. 스베덴보리는 HH.2–12에서 천국의 모든 선과 권능이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된다고 가르치며, TCR.94에서는 마리아를 여신이나 성인들의 여왕처럼 높이는 당시의 신심을 직접 비판합니다. 또한 TCR.827에서는 마리아가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예배하는 영계의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오류로 검토해야 할 핵심은 마리아를 복된 여인으로 존중하거나 그가 특별한 쓰임을 감당했다고 인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가 주님의 어머니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천국의 모든 피조물 위에 있는 특별한 왕적 권위를 신적으로 확정하고, 그 권위를 종교적 공경과 전구 요청의 근거로 삼는 데 있습니다. 다만 이는 천주교가 마리아를 여신으로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며, 마리아의 왕권과 전구의 구체적인 타당성도 각각 구별하여 검토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천국의 모든 천사와 인간은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피조물이며, 그들의 참된 위대함은 독립적인 권능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받아 이웃을 섬기는 선한 쓰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여왕’이라는 칭호보다 더욱 중요한 진리는 천국의 유일한 왕이신 주님께 모든 영광과 권능이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신앙은 마리아의 왕권에 머무르지 않고, 마리아 자신이 자신의 하나님이자 구주로 찬양한 주님 한 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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