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3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들(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에게 있어서 몸의 감각적 것들(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은 그들의 내적 사람(internal man), 그러니까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성격의 것이었으며, 그들은 그 이상으로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후에는, 감각적인 것들을 속 사람보다 앞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그것들은 분리되어 육체적인 것(corporeal)이 되더니, 그렇게 하여 정죄(condemned)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In 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 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 were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compliant and subservient to their internal man, and beyond this they did not care for them. But after they had begun to love themselves, they set the things of sense before the internal man, and therefore those things were separated, became corporeal, and so were condemned.

 

 

해설

 

이 글은 AC.242의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배로 기어간다’, ‘흙을 먹는다’라는 상징을 통해 감각 파트가 하늘을 향하던 상태에서 땅만 바라보는 상태로 변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들도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감각에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감각은 내적 사람, 곧 속 사람을 섬기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 자체가 아니라, 감각을 통하여 드러나는 영적 의미와 신적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AC.241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세상을 보면서 천국을 생각하였고, 자연을 보면서 신적인 걸 생각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감각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겼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원래의 질서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속 사람, 그 아래에 이성, 그 아래에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감각은 마지막 단계에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마치 창문이 스스로 목적은 아니지만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후’입니다. 자기 사랑이 생기자, 인간은 더 이상 감각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감각을 기준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속 사람이 감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속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느껴지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 ‘이해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감각적인 것들을 속 사람보다 앞세웠다’고 말합니다. 이 한 문장 안에 타락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감각의 존재가 아니라, 감각의 위치입니다. 종이 주인이 되고, 도구가 목적이 되며,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 위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 결과 감각은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감각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속 사람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래 감각은 속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끊어져 독립된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감각은 점점 더 ‘육체적인 것(corporeal)이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육체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몸에 속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것과 분리되어 오직 몸과 세상만을 실재로 여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감각은 더 이상 천국을 향한 창문이 아니라, 인간을 세상 속에 가두는 벽이 되어 버립니다.

 

마지막의 ‘정죄(condemned) 역시 주님께서 벌을 내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각이 본래의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오직 세상과 몸에만 매이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의 원천과 분리된 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이전 AC들에서 반복해서 보았듯이, 스베덴보리에게 정죄와 저주는 주님의 행동이 아니라 인간이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초래, 자초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AC.243의 핵심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감각을 사용했지만, 감각에 지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생기자, 감각을 속 사람보다 앞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감각은 영적인 것과 분리되어 순전히 육체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이 바로 인간 타락의 핵심이며, 동시에 ‘뱀이 배로 기어가고 흙을 먹게 되었다’는 말씀의 실제 의미인 것입니다.

 

 

 

AC.244,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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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2,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AC.242-24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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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3:14)



AC.242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는 건, 그들이 자기들의 감각 파트(sensuous part)가 타락의 원인임을 깨달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뱀이 모든 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았다(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천적인 것들로부터 등을 돌려 몸에 속한 것들을 향했으며, 그 결과 스스로를 저주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서 짐승(beast)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은 앞에서와 같이 애정(affections)을 의미합니다. ‘배로 기어간다(serpent going upon its belly)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몸과 땅의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평생 흙을 먹는다(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몸과 땅에 속한 것들 외에는 아무 걸로도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곧 지옥 상태(infernal state)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By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at they perceived their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and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signify affections, as before. The “serpent going upon its belly”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ts “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bu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it became infernal.

 

 

해설

 

이 글은 창3:14에 담긴 상징들을 하나씩 해설하면서, 감각적 인간이 어떻게 영적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는 건, 실제 뱀과의 대화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어느 정도는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들이 감각과 자기 판단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감각 파트는 원래 인간 안에서 가장 바깥 단계에 있으며, 위로는 이성(rational)을 섬기고, 더 위로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질서가 뒤집혔습니다. 감각이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지배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뱀이 ‘스스로를 저주하였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게 아니라, 하늘의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배로 기어간다’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원래 인간의 내적 시선은 위를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천국과 주님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이 주인이 되자 시선이 완전히 아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관심의 중심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아니라 몸과 세상, 이익과 소유, 감각적 만족이 됩니다. 이것이 ‘배로 기어간다’는 상징의 내적 의미입니다.

 

특히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매우 강렬합니다. 성경에서 흙은 종종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순전히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걸 의미합니다. 따라서 흙을 먹는다는 건, 더 이상 하늘의 선과 진리로 양육되지 못하고, 오직 몸과 세상에 속한 것만을 양식으로 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것에는 흥미를 잃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잡히는 것만을 실재로 여기게 되면, 바로 이런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AC.242는 단순히 뱀의 형벌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방향 전환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원래는 위를 바라보던 존재가 아래만 바라보게 되었고, 하늘의 양식을 먹던 존재가 흙을 먹게 되었으며, 주님의 빛 아래 살던 존재가 몸과 세상의 것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을 감각적 인간의 타락이며, 동시에 지옥 상태의 본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43, 창3:14,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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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1, 창3:14-19, ‘배경’

배경AC.241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적 인간(celestial men)이었기 때문에, 세상이나 땅 위의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단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물이 의미하거나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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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1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적 인간(celestial men)이었기 때문에, 세상이나 땅 위의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단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물이 의미하거나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시각은 단지 도구적인 역할을 할 뿐이었고, 그들의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어떠한 상태였는지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때, 실제로는 단어들을 듣고 있지만 마치 듣지 않는 것처럼 그 의미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단어의 의미조차 넘어서 그 안에 담긴 더 보편적인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땅 위 사물들을 볼 때, 그것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마음이 거기에 붙잡혔고, 그 사물들 자체를 생각하였으며, 그것들로부터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을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감각적인 것(the sensuous)이 주된 것이 되었고, 조상들에게서처럼 단지 도구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땅에 속한 것이 주된 것이 되면, 사람은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하늘의 일들을 추론하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를 눈멀게 합니다. 이것이 어떠한 상태인지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뜻은 듣지 않고 단어들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 의미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그 의미의 전체적인 취지는 더욱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단 한 단어, 심지어 문법적인 특징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말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기도 합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해설

 

이 글은 태고교회와 그 후손들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타락의 본질을 단순히 악한 행동이 아니라 ‘보는 방식의 변화’로 설명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눈으로 나무를 보았지만, 나무 자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통해 생명과 성장, 그리고 주님의 질서를 보았습니다. 태양을 보면서는 단순한 천체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였고, 빛을 보면서는 신적 진리를 생각하였습니다. 꽃을 보면서는 천국의 아름다움을, 결실을 보면서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생각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자연계는 목적이 아니라 창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창문을 본 것이 아니라 창문 너머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각은 주된 것이 아니라 도구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물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곧 생각의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물을 통해 천국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자연계가 더 이상 상응(correspondence)의 세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최종 실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을 감각적인 게(the sensuous) 주인이 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원래는 영적인 것이 위에 있고, 감각적인 것은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그 질서가 뒤집힌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우 흥미로운 예를 듭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보통 단어 자체보다 그 의미를 이해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의미는 보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말의 진정한 뜻을 놓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단어 하나나 문법 하나를 붙잡고 전체 내용을 판단하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영적인 삶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의미를 보았고, 후손들은 단어를 보았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상응되는 실체를 보았고, 후손들은 외형을 보았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국을 보았고, 후손들은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AC.241은 단순히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타락은 먼저 사랑의 방향이 바뀌는 데서 시작, 그다음에는 보는 방식이 바뀌며, 결국에는 도구가 주인이 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이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세상을 보면서 하늘을 보았지만, 그 후손들은 하늘을 생각한다 하면서도 결국 세상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감각은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었고, 인간은 하늘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AC.242,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AC.242-24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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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0, 창3:14-19, ‘19절 개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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