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

 

67. 말씀 안에 들어있는 가장 깊은 아케이나, 지금까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고, 또 내세(來世, the other life)의 본성을 알기 전까지는 알 수도 없는, (말씀의 속뜻(internal sense) 가운데 무척 많은 부분이 내세에 관한 것이거나 설명, 혹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씀의 내적 의미(internal meaning)를 아는 것이 제게 주어진 것은 주님의 신성한 자비(the Lord’s Divine mercy)입니다. 저는 수년 간, 이 기간, 저는 영들 및 천사들과 흔쾌히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그동안 듣고 본,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을 이제는 밝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As of the Lord’s Divine mercy it has been given me to know the internal meaning of the Word, in which are contained deepest arcana that have not before come to anyone’s knowledge, nor can come unless the nature of the other life is known (for very many things of the Word’s internal sense have regard to, describe, and involve those of that life), I am permitted to disclose what I have heard and seen during some years in which it has been granted me to be in the company of spirits and angels.

 

 

68.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그가 살아 있어 몸 안에 있는 동안은 영들 및 천사들과 절대 말할 수 없다 할 거라는 걸, 그리고 그들은 또한 그 모든 게 다 판타지라 할 거라는 거, 또 다른 사람들은 제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그러는 거라 할 거고,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반대들을 할 거라는 걸 말이지요. I am well aware that many will say that no one can possibly speak with spirits and angels so long as he lives in the body; and many will say that it is all fancy, others that I relate such things in order to gain credence, and others will make other objections.

 

하지만 저는 이런 걸로 단념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직접 보고, 듣고, 감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But by all this I am not deterred, for I have seen, I have heard, I have felt.

 

 

69. 사람은 몸 안에 사는 동안 영들 및 천사들과 대화가 가능하도록 주님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태고 때(太古, the most ancient times)에는 그랬습니다. 영이 몸을 옷처럼 입고 있을 때, 그는 하나, 곧, 영육 간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Man was so created by the Lord as to be able while living in the body to speak with spirits and angels, as in fact was done in the most ancient times; for, being a spirit clothed with a body, he is one with them.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육체와 세속의 일(corporeal and worldly things)에 자신을 깊이 잠기게 하고, 대신 그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 바람에 그만 이 길이 닫힌 것이지요. But because in process of time men so immersed themselves in corporeal and worldly things as to care almost nothing for aught besides, the way was closed.

 

하지만 사람이 이 육체의 일(the corporeal things)에서 물러나면 바로 그 원래의 길은 다시 열립니다. 그는 다시 영들 가운데 있게 되며, 일상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Yet as soon as the corporeal things recede in which man is immersed, the way is again opened, and he is among spirits, and in a common life with them.

 

 

70. 지난 수년간 제가 듣고 본,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을 이제는 밝혀도 좋다 허락하셔서 여기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며, 그 내용은 먼저, 사람이 다시 깨어날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즉, 사람이 몸 안의 삶(the life of the body)에서 저 영원한 삶(the life of eternity)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하는 내용입니다. As it is permitted me to disclose what for several years I have heard and seen, it shall here be told, first, how the case is with man when he is being resuscitated; or how he enters from the life of the body into the life of eternity.

 

저로 하여금 사람들은 사후(死後, after death)에도 살아 있다는 걸 알게 하시려고, 생전(life in the body)에 저와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지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저 하루나 한 주 정도가 아니라 무려 여러 달, 심지어 일 년 정도씩 이어지고 그랬는데요, 저는 그들과 이 세상에서처럼 그렇게 말하고 함께 어울리고 그랬습니다. In order that I might know that men live after death, it has been given me to speak and be in company with many who were known to me during their life in the body; and this not merely for a day or a week, but for months, and almost a year, speaking and associating with them just as in this world.

 

그들은 자기들도 몸 안에 사는 동안 그랬고, 정말 많은 사람들 역시, 사람은 사후 이어지는 삶 같은 건 없을 것으로 믿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랬습니다. 실제로는 사람은 사후 그들이 내세에 들기 전 거의 하루도 무슨 단절되는 게 없습니다. 죽음은 삶의 연속입니다. They wondered exceedingly that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they were, and that very many others are, in such incredulity as to believe that they will not live after death; when in fact scarcely a day intervenes after the death of the body before they are in the other life; for death is a continuation of life.

 

※ 사후에도 이렇게나 생생하게 여전히 살아 있는 자신들을 보면서 굉장히 어리둥절해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나 분명한 걸 우리는 생전에 믿지 않았었다고? 우리가 정말 그렇게나 어리석었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71.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말씀 본문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여기저기 흩어지고, 그래서 연결이 잘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제가 어떤 순서에 따라 이 창세기 각 장 앞뒤로 붙여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이 소개글은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But as these matters would be scattered and disconnected if inserted among those contained in the text of the Word, it is permitted, of the Lord’s Divine mercy, to append them in some order, at the beginning and end of each chapter; besides those which are introduced incidentally.

 

 

72. 그래서 사람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 어떻게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지 하는 내용은 본 장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At the end of this chapter, accordingly, I am allowed to tell how man is raised from the dead and enters into the life of eternity.

 

 

창2:1-17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ese are the nativitie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when he created them, in the day in which Jehova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73. 사람은 처음에는 죽은 상태였다가 영적(靈的, spiritual) 상태가 되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이번에는 천적(天的, celestial)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이제부터 다루는 내용입니다. (1절) When from being dead a man has become spiritual, then from spiritual he becomes celestial, as is now treated of (verse 1).

 

 

74.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이때 주님은 안식하십니다. (2-3절)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on which the Lord rests (verses 2–3).

 

 

75. 안개로 적셔진 땅에서 나는 ‘초목’(shrub, 관목)과 ‘채소’(herb)는 이 천적 인간의 지식(knowledge)과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을 말합니다. (5-6절) His knowledge and his rationality [scientificum et rationale ejus] are described by the shrub and the herb out of the ground watered by the mist (verses 5–6).

 

 

76.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는 그의 생명(life)을 말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77. 그후, ‘동방 에덴동산’(the garden in Eden, in the east)은 천적 인간의 지성(intelligence)을,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the trees pleasant to the sight)는 진리에 속한 퍼셉션(perceptions, 知覺)을, ‘먹기에 좋은 나무’(the trees good for food)는 선에 속한 퍼셉션을 각각 말합니다. ‘생명 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는 신앙을 각각 의미합니다. (8-9절) Afterwards his intelligence is described by the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which the trees pleasant to the sight are perceptions of truth, and the trees good for food are perceptions of good. Love is meant by the tree of lives, faith by the tree of knowledge [scientiae] (verses 8–9).

 

 

78. ‘동산을 적시는 강’(the river in the garden)은 지혜(wisdom)를 의미합니다. Wisdom is meant by the river in the garden.

 

네 개의 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과 진리이며, 두 번째는 모든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입니다. From thence were four rivers, the first of which is good and truth; the second i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of good and truth, or of love and faith.

 

이 둘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These are of the internal man.

 

세 번째는 이성(reason), 네 번째는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인데, 이 둘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The third is reason, and the fourth is memory-knowledge [scientia], which are of the external man.

 

모든 것이 지혜로부터 나오며, 이 지혜는 주님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나옵니다. (10-14절) All are from wisdom, and this is from love and faith in the Lord (verses 10–14).

 

 

79. 천적 인간은 그런 일종의 동산입니다. The celestial man is such a garden.

 

이 동산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천적 인간이 동산 안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15절) But as the garden is the Lord’s, it is permitted this man to enjoy all these things, and ye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verse 15).

 

 

80.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가지고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러나 신앙의 신비에 대한 탐구를 자기 자신과 세상, 혹은 감각(sense)과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짓은 그의 천적 본성의 죽음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16-17절)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속뜻

THE INTERNAL SENSE

 

 

81. 이 장은 천적 인간에 관한 장입니다. 앞 장에서는 영적 인간을 다루었지요. 영적 인간은 일종의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dead man)으로부터 빚어진 사람입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celestial man, as the preceding one did of the spiritual, who was formed out of a dead man.

 

그런데 오늘날은 천적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영적 인간에 대해서나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먼저 저로 하여금 그 각각의 본질을 간략히 서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차이점들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But as it is unknown at this day what the celestial man is, and scarcely what the spiritual man is, or a dead man, it is permitted me briefly to state the nature of each, that the difference may be known.

 

그래서 먼저,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 죽은 상태의 사람은 진리와 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대신 오직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만 잘 아는, 그리고 그런 걸 아주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First, then, a dead man acknowledges nothing to be true and good but what belongs to the body and the world, and this he adores.

 

다음은 영적 인간입니다. 영적 인간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일종의 원리(principle)로부터만 알아요. 그의 행위의 기반은 이런 신앙 원리 같은 거거든요. 사랑이 아니고 말입니다. A spiritual man acknowledg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but he does so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is likewise the ground of his actions, and not so much from love.

 

끝으로, 천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믿고 지각하는 사람입니다.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행위가 뒤따르는 신앙 말고 무슨 다른 신앙 같은 것은 모르는 그런 사람입니다. A celestial man believes and perceiv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acknowledging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is from love, from which also he acts.

 

※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을 각각 머리 신앙, 가슴 신앙으로 비유해도 좋겠습니다.

 

[2] 두 번째는,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육체적, 세상적 목표만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릅니다. 혹시 알게 되어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Second: The ends which influence a dead man regard only corporeal and worldly life, nor does he know what eternal life is, or what the Lord is; or should he know, he does not believe.

 

영적 인간의 경우는 영생입니다. 그 결과는 곧 주님이시지요. The ends which influence a spiritual man regard eternal life, and thereby the Lord.

 

천적 인간은 바로 처음부터 주님입니다. 그 결과가 주님의 나라와 영생입니다. The ends which influence a celestial man regard the Lord, and thereby his kingdom and eternal life.

 

[3] 세 번째, 죽은 상태의 사람들은 삶 가운데 전투가 있을 때, 즉 선악 간 싸움이나 진리, 거짓 간 싸움으로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면 거진 다 매번 집니다. 그렇지 않을 때, 즉 전투가 없을 때, 그때는 악과 거짓이 그를 지배하며, 그래서 그는 그들의 종이 됩니다. Third: A dead man when in combat almost always yields, and when not in combat, evils and falsities have dominion over him, and he is a slave.

 

그의 묶임은 겉으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법, 목숨, 부, 소득, 명성 등 소위 안전한 삶을 위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His bonds are external, such as the fear of the law, of the loss of life, of wealth, of gain, and of the reputation which he values for their sake.

 

영적 인간은 전투가 있어도 늘 승리합니다. 영적 인간에게 있어 묶임은 내적(內的, internal) 묶임이며, 양심(conscience)의 묶임이라 합니다. The spiritual man is in combat, but is always victorious; the bonds by which he is restrained are internal, and are called the bonds of conscience.

 

천적 인간에게는 전투가 없습니다. 악과 거짓의 무슨 난폭한 공격이 있어도 그는 그것들을 경멸, 무시해 버리며, 그래서 그를 가리켜 정복자(conqueror), 이긴자라 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not in combat, and when assaulted by evils and falsities, he despises them, and is therefore called a conqueror.

 

그는 정말 그 무엇도 그를 속박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하며, He is apparently restrained by no bonds, but is free.

 

그에게 있어 굳이 속박이라 하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지각능력이지 싶습니다. His bonds, which are not apparent, are perceptions of good and truth.

 

https://youtu.be/ipL2m1CON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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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64. 다음은 말씀의 속뜻, 겉 글자의 뜻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가장 놀라운, 더할나위 없는 생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then is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its veriest life, which does not at all appear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비록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나타나지만, 그러나 이 아케이나(arcana, 秘義, 영적, 천적 의미 전반에 관한 통칭)는 사실은 그 속에 담긴 것이 너무나 엄청나 이 정도의 볼륨들 가지고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But so many are its arcana that volumes would not suffice for the unfolding of them.

 

여기서는 아주 조금만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게 거듭남이며, 거듭남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질 겁니다. A very few only are here set forth, and those such as may confirm the fact that regeneration is here treated of, and that this proceed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천사들이 말씀을 지각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It is thus that the angels perceive the Word.

 

그들은 글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심지어 단어 하나가 가지는 가장 가까운 의미 조차 전혀 모릅니다. 나라, 도시, 강과 인물 등, 말씀 내 역사, 예언 파트에 아주 자주 나오는 이런 것들 역시 더더욱 모릅니다. They know nothing at all of what is in the letter, not even the proximate meaning of a single word; still less do they know the names of the countries, cities, rivers, and persons, that occur so frequently in the historical and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그들은 오직 단어와 이름이 상징하는 것에 관한 어떤 아이디어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They have an idea only of the things signified by the words and the names.

 

그래서 낙원에 있는 아담 하면, 그들은 태고교회를 지각합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 아니라 그 교회가 가졌던 주님 신앙을 지각하는 것이지요. Thus by Adam in paradise they perceive the most ancient church, yet not that church, but the faith in the Lord of that church.

 

노아 하면 그들은 태고교회의 후손들과 함께 살아남아 아브람의 때까지 계속되었던 교회를 지각합니다. By Noah they perceive the church that remained with the descendants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at continued to the time of Abram.

 

아브라함 하면 천사들은 결코 아브라함을 개인으로가 아닌, 그가 표현한 어떤 구원 신앙을 지각하는... 네, 계속해서 이런 식입니다. By Abraham they by no means perceive that individual, but a saving faith, which he represented; and so on.

 

천사들은 이렇게 단어와 이름하고는 완전 별개인 영적, 천적인 것을 지각합니다. Thus they perceiv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entirely apart from the words and names.

 

 

65. 제가 말씀(the Word)을 읽고 있을 때, 어떤 천사들이 천국 뜰 첫 번째 입구로 옮겨져 거기서 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Certain ones were taken up to the first entrance court of heaven, when I was reading the Word, and from there conversed with me.

 

그들은 말하길, 자기들은 제가 보고 있는 말씀 안 무슨 단어는 고사하고 글자 하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가장 근접한 속뜻이 뭘 상징하는지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너무도 아름답고, 그런 일련의 순서로 자기들을 깊이 감동, 감명케 한다고, 그것은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They said they could not there understand one whit of any word or letter therein, but only what was signified in the nearest interior sense, which they declared to be so beautiful, in such order of sequence, and so affecting them, that they called it glory.

 

 

66. 일반적으로 말씀에는 네 가지 서로 다른 스타일이 있습니다. There are in the Word, in general, four different styles.

 

첫 번째 스타일은 태고교회(太古敎會) 스타일입니다. The first is that of the most ancient church.

 

그들의 표현 모드는 다음 같은 것이었는데요, 그들은 어떤 지상에 속한(terrestrial) 것이나 세속적인(worldly) 것을 언급할 때, 그것이 표현하는 영적, 천적인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Their mode of expression was such that when they mentioned terrestrial and worldly things they thought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which these represented.

 

그래서 그들은 그런 것들을 표현할 때, 더욱 생생한 표현이 되게 하기 위해 어떤 대표성을 띤(representatives) 걸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또한 무슨 일종의 역사 시리즈(historical series)로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 모드로 그들은 정말 최고 수준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They therefore not only expressed themselves by representatives, but also formed these into a kind of historical series, in order to give them more life; and this was to them delightful in the very highest degree.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예언이 바로 이런 스타일입니다. This is the style of which Hannah prophesied, saying: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삼상2:3) Speak what is high! high! Let what is ancient come out of your mouth. (1 Sam. 2:3)

 

※ 위 우리말 개역개정 번역은 사실 많이 빗나간 번역입니다. 원문을 보면 너무나 다르지요? 태고교회, 고대교회 같은 이런 배경을 전혀 모르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런 표상 표현들(表象, representatives)을 시편에서는,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Dark sayings of old)이라고 했습니다. Such representatives are called in David, “Dark sayings of old” (Ps. 78:2–4).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78:2-4)

 

창조, 에덴동산 등 아브람의 때까지 내려오는 이런 구체적인 내용들을 모세는 태고교회의 후손들로부터 얻었습니다. These particulars concerning the creation, the garden of Eden, etc., down to the time of Abram, Moses had from the descendants of the most ancient church.

 

[2] 두 번째 스타일은 역사적 기술이며, 아브람의 때부터 이어진 모세의 책들에서,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 시대, 사무엘, 열왕들의 책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e second style is historical, which is found in the books of Moses from the time of Abram onward, and in those of Joshua, Judges, Samuel, and Kings.

 

이들 책에서는 역사적 사실들이 글자의 뜻 그대로입니다. 즉, 그 내용 그대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이든, 구체적이든 속뜻으로는 아주 다른 일들이 그 안에 들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음이며,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순서대로 보게 됩니다. In these books the historical facts are just as they appear in the sense of the letter; and yet they all contain, in both general and particular, quite other things in the internal sense, of which, by the Lord’s Divine mercy, in their order in the following pages.

 

세 번째 스타일은 예언 스타일인데, 이것은 태고교회 시절 아주 높은 존경을 받았던 것에서 나왔습니다. The third style is the prophetical one, which was born of that which was so highly venerated in the most ancient church.

 

이 스타일은 그러나 태고교회 스타일처럼 이어지거나 역사적 형태로 남지 않고 깨어져 속뜻을 제외하고는 이제는 거의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 속뜻에는 가장 깊은 아케이나(arcana, 秘義)가 들어 있는데, 그 순서가 정말 아름다운 순서, 곧 사람의 겉과 속, 교회의 수많은 상태, 천국 그 자체, 그리고 주님을 향한 가장 내적 의미로까지 연결되는 그런 순서입니다. This style, however, is not in connected and historical form like the most ancient style, but is broken, and is scarcely ever intelligible except in the internal sense, wherein are deepest arcana, which follow in beautiful connected order, and relate to the external and the internal man; to the many states of the church; to heaven itself; and in the inmost sense to the Lord.

 

네 번째 스타일은 다윗의 시편 스타일입니다. 이 스타일은 예언 스타일과 일상의 스피치 스타일 간 중간 정도 스타일입니다. The fourth style is that of the psalms of David, which is intermediate between the prophetical style and that of common speech.

 

이 시편 스타일에서 왕으로서의 다윗은 사실은, 속뜻으로는 주님을 나타냅니다. The Lord is there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under the person of David as a king.

 

※ 이렇게 해서 창세기 1장을 마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진행됩니다. 즉, 본문 주석 앞뒤로 어떤 아케이나들이 곁들여져 성경을 읽는 우리의 이해를 깊게, 아주 깊고 넓게 열어 줄 것입니다.

 

https://youtu.be/ZE-XX1xB0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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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60.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Verse 31. 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앞의 상태들에 대해서는 단지 ‘좋았더라’(good)라고만 하는 반면, 이 상태를 가리켜서는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 합니다. 그 이유는, 이제 신앙에 속한 것들이 사랑에 속한 것들과 하나가 되어, 그래서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 사이, 드디어 일종의 결혼의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This state is called “very good,” the former ones being merely called “good”; because now the things which are of faith make a one with those which are of love, and thus a marriage is effected between spiritual things and celestial things.

 

 

61. 신앙에 속한 지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고, 주님과 우리의 이웃을 향한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을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합니다. 전자는 사람의 이해(understanding)에, 후자는 사람의 의지(will)에 속합니다. All things relati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re called spiritual, and all that are of love to the Lord and our neighbor are called celestial; the former belong to man’s understanding, and the latter to his will.

 

 

62. 사람의 거듭남의 때와 상태는 일반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여섯으로 나뉘며, 이를 가리켜 사람 창조의 날들이라 합니다. 사람의 처음 상태, 그러니까 거듭나기 전 상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상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먼저 뭔가가 되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섯째 날까지 이루어 가다가 여섯째 날, 비로소 하나님의 어떤 형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The times and states of man’s regeneration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divided into six, and are called the days of his creation; for, by degrees, from being not a man at all, he becomes at first something of one, and so by little and little attains to the sixth day, in which he becomes an image of God.

 

 

63. 그를 위해 끊임없이 악과 거짓을 대항하여 싸우시는 동안, 주님은 이 영적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서 확실하게 하십니다. Meanwhile the Lord continually fights for him against evils and falsities, and by combats confirms him in truth and good.

 

전투의 때는 주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을 가리켜 선지서에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빚으심이라 하고 있습니다. The time of combat is the time of the Lord’s working;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the regenerate man is called 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

 

사랑이 원리가 되어 움직일 때, 이때 전투가 그치는데요, 이때까지는 주님은 잠시도 쉬지 않으십니다. Nor does he rest until love acts as principal; then the combat ceases.

 

주님이 해 오신 일이 아주 잘 되어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이 일어날 때, 이때가 바로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이때 주님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의 모양(likeness)처럼 행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When the work has so far advanced that faith is conjoined with love, it is called “very good”; because the Lord then actuates him, as his likeness.

 

※ 사랑과 신앙이 하나 되어, 즉, 무엇을 해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는 모습이 마치 한 분 주님 안에서 세 위가 결혼한 상태와 같아 ‘하나님의 모양’ 같다는 것입니다.

 

이 여섯째 날 끝에 악한 영들은 떠나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국, 혹은 천적인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곳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At the end of the sixth day the evil spirits depart, and good spirits take their place, and the man is introduced into heaven, or into the celestial paradise; concerning which in the following chapter.

 

 

64. 다음은 말씀의 속뜻, 겉 글자의 뜻으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가장 놀라운, 더할나위 없는 생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then is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its veriest life, which does not at all appear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비록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나타나지만, 그러나 이 아케이나(arcana, 秘義, 영적, 천적 의미 전반에 관한 통칭)는 사실은 그 속에 담긴 것이 너무나 엄청나 이 정도의 볼륨들 가지고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But so many are its arcana that volumes would not suffice for the unfolding of them.

 

여기서는 아주 조금만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게 거듭남이며, 거듭남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질 겁니다. A very few only are here set forth, and those such as may confirm the fact that regeneration is here treated of, and that this proceed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천사들이 말씀을 지각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It is thus that the angels perceive the Word.

 

그들은 글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심지어 단어 하나가 가지는 가장 가까운 의미 조차 전혀 모릅니다. 나라, 도시, 강과 인물 등, 말씀 내 역사, 예언 파트에 아주 자주 나오는 이런 것들 역시 더더욱 모릅니다. They know nothing at all of what is in the letter, not even the proximate meaning of a single word; still less do they know the names of the countries, cities, rivers, and persons, that occur so frequently in the historical and prophetical parts of the Word.

 

그들은 오직 단어와 이름이 상징하는 것에 관한 어떤 아이디어만 갖고 있을 뿐입니다. They have an idea only of the things signified by the words and the names.

 

그래서 낙원에 있는 아담 하면, 그들은 태고교회를 지각합니다. 물론, 교회 자체가 아니라 그 교회가 가졌던 주님 신앙을 지각하는 것이지요. Thus by Adam in paradise they perceive the most ancient church, yet not that church, but the faith in the Lord of that church.

 

노아 하면 그들은 태고교회의 후손들과 함께 살아남아 아브람의 때까지 계속되었던 교회를 지각합니다. By Noah they perceive the church that remained with the descendants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at continued to the time of Abram.

 

아브라함 하면 천사들은 결코 아브라함을 개인으로가 아닌, 그가 표현한 어떤 구원 신앙을 지각하는... 네, 계속해서 이런 식입니다. By Abraham they by no means perceive that individual, but a saving faith, which he represented; and so on.

 

천사들은 이렇게 단어와 이름하고는 완전 별개인 영적, 천적인 것을 지각합니다. Thus they perceiv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entirely apart from the words and names.

 

 

65. 제가 말씀(the Word)을 읽고 있을 때, 어떤 천사들이 천국 뜰 첫 번째 입구로 옮겨져 거기서 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Certain ones were taken up to the first entrance court of heaven, when I was reading the Word, and from there conversed with me.

 

그들은 말하길, 자기들은 제가 보고 있는 말씀 안 무슨 단어는 고사하고 글자 하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가장 근접한 속뜻이 뭘 상징하는지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너무도 아름답고, 그런 일련의 순서로 자기들을 깊이 감동, 감명케 한다고, 그것은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They said they could not there understand one whit of any word or letter therein, but only what was signified in the nearest interior sense, which they declared to be so beautiful, in such order of sequence, and so affecting them, that they called it glory.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31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속뜻)

거듭남의 마지막 단계에서 드디어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가 하나 되어 결혼한 상태에 이르자 주님은 심히 좋아하십니다. 이때 드디어 악한 영은 떠나가고 이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아멘, 할렐루야!

 

https://youtu.be/0oa9xcZnM14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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