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

 

1558. 4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Verse 4. Unto the place of the altar which he had made there in the beginning;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제단이 있는 곳으로’, 예배(worship)에 관한 거룩한 것들을, ‘그가 처음으로 쌓은’, 주님의 어린 시절,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것을, ‘아브람이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 상태에서 드린 내적 예배를 각각 의미합니다. Unto the place of the altar” signifies the holy things of worship; “which he had made in the beginning” signifies which he had when a child;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signifies the internal worship in that state.

 

 

1559. 제단이 있는 곳으로 Unto the place of the altar.

 

이것이 ‘예배에 관한 거룩한 것들’에 관한 의미임은 ‘제단’의 의미가 예배에 관한 주된 표상(principal representative)인 점을, 제단하면 예배임을 생각할 때 분명합니다. (AC.921 참조) That this signifies the holy things of worship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n “altar” as being the principal representative of worship (concerning which, see n. 921).

 

 

1560. 그가 처음으로 쌓은 Which he had made in the beginning.

 

이것이 ‘주님이 아이였을 때 가지셨던’이라는 의미임은 앞장 8절의 내용을 보시면 됩니다. That this signifies which he had when a child,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in the preceding chapter at verse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8)

 

여기서는 ‘처음으로’(in the beginning)라 하고, 앞절에서는 ‘전에’(at the first)라 하는 이유는, 그때가 주님이 지식으로 가득 채워지시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It is here said, “in the beginning,” and in the preceding verse, “at the first,” because that was before the Lord had been imbued with knowledges.

 

사람이 가르침을 받기 이전 모든 상태를 ‘’(the first)[라. 이니티움 initium]이라 하고, 그가 가르침을 받기 시작할 때를 ‘처음’(the beginning)[라. 프링치피움 principium]이라 합니다. All the state before a man is instructed, is “the first” [initium]; and when he begins to be instructed, it is “the beginning” [principium].

 

 

1561. 아브람이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이것이 ‘그 상태에서 드린 내적 예배’라는 의미임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의 의미를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AC.440, 1455 참조) That this signifies the internal worship in that stat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lling on the name of Jehovah” (explained above, n. 440, 1455).

 

여기서도 역시, 그 유사한 상태들 때문에, ‘제단’이 언급되고 있으며, 이르기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하고 있습니다. 앞장 8절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다만 그 차이가 있다면, 앞장 8절이 뿌연 상태였다면 지금 여기는 또렷한 상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Here too, because of the similarity of the states, mention is made of an “altar,” and it is said that he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as was the case in the preceding chapter, verse 8; but there is this difference, that as compared with the former, the state here described is a lucid one.

 

위에 묘사된 상태에서 지식이 이식되어 뿌리를 내리면, 그 지식은 상태를 명료하게 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선이 지식을 통해 먼젓번 천적 상태와 조인이 될 때, 그때 그 활동이 지금 우리 앞에 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배 자체가 어떤 활동으로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천적인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When knowledges are implanted in the state described above, they make it lucid; and when truth and good are conjoined with the former celestial state by means of knowledges, its activity is then described as in the words now before us; for worship itself is nothing but a certain activity coming forth from the celestial which is within.

 

천적인 것 그 자체는 활동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The celestial itself cannot possibly exist without activity.

 

예배는 그 첫 번째 활동입니다. 천적인 것은 그 자신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천적인 것은 이런 것, 곧 주님을 예배하는 데서 기쁨을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Worship is its first activity; for it puts itself forth in this way, because it perceives joy in it.

 

모든 사랑의 선과 체어리티의 선은 그 자체가 본질적, 필수적 활동입니다. All the good of love and of charity is essential activity itself.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3장 4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속뜻)

지식을 통해 이젠 명료한 상태가 되신 주님은 어린 시절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 천적인 것들과 결합, 참된 예배의 기쁨을 맛보셨다

 

※ 창세기 12장부터는 표상교회의 시작입니다.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이후 주님의 초림 때까지의 모든 말씀(The Word)은 표상으로 읽어야 합니다. 즉,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을 표상합니다. 하란을 출발, 가나안을 거쳐 애굽에 내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는 이 일련의 여정은, 주님의 어린 시절, 주님의 지식과 이성, 지성이 어떻게 발전하셨는지, 어떻게 세상 여느 어린이들처럼 시작하셨는지, 그러나 또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빠른 성취를 이루실 수 있었는지 등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2021-11-07(D1)-주일예배(2228, AC.1558-1561,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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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8_G2FGsP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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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7(D1)-제9권45호통428호.성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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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장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천국이 사람을 반영하는 것은

주님의 신적 인성에서 비롯된다

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78. 천국이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사람을 반영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신적 인성(神的 人性, the Divine Human)에서 비롯된다는 이 사실은, 앞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서술하고 보여드린 모든 내용의 당연한 귀결인데요, 즉, That 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follows as a conclusion from all that has been stated and shown in the preceding chapters, namely:

 

(1)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That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2)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3) 천국은 무수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지며, 각 공동체는 작은 형태의 천국이고, 각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다. Heaven consists of innumerable societies; and 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4) 모든 천국은 전체적으로 한 사람을 반영한다. 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5) 모든 천국 각 공동체는 한 사람을 반영한다. Each society in the heavens reflects a single man.

 

(6) 그러므로 모든 천사는 완벽한 사람 형태이다. 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이 모든 내용으로 말미암아 다음과 같은 필연적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천국을 만드는 것은 신성이기 때문에, 천국은 틀림없는 사람 형태라는 것입니다. All this leads to the conclusion that as it is the Divine that makes heaven, heaven must be human in form.

 

 

 

이 신성이 주님의 신적 인성이라는 사실은 Arcana Coelestia 에서 수집, 하나의 묶음(compendium, 叢書)으로, 본 장 끝에 부록으로 제공한 걸 보면 더 자세히 아실 수 있습니다. That this Divine is the Lord’s Divine human can be seen still more clearly, because in a compendium, in what has been collected, brought together and collated from Arcana Coelestia and placed as a supplement at the end of this chapter.

 

주님의 인성은 신성이라는 것, 그리고 교회 내에서 믿고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인성은 신성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이런 내용들 또한 위 발췌 부록에서, 그리고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이라는 제목의 책 끝부분, 주님에 관한 장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at the Lord’s human is Divine, and that it is not true that his human is not Divine, as those within the church believe, may also be seen in the same extracts, also in the chapter on the Lord, in the 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at the end.

 

 

79. 이것이 사실임을 저는 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말씀을 이제 좀 드리겠습니다. That this is true has been proved to me by much experience, about which something shall now be said.

 

천국 어느 천사도 신성을 사람 형태 아닌 다른 어떤 걸로 지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더 높은 천국 천사들일수록 신성을 어떤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No angel in the heavens ever perceives the Divine as being in any other than a human form; and what is remarkable, those in the higher heavens are unable to think of the Divine in any other way.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흘러드는 신성 자체에 기인하며, 또 천국의 형태가 그들의 생각이 확산되어 나가는 형태와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The necessity of thinking in this way comes from the Divine itself that flows in, and also from the form of heaven in harmony with which their thoug

 

 

hts spread forth.

 

 

천사 한 명이 하는 모든 생각은 천국 안으로 확산되어 나가며, 모든 천사는 그 가진 총명과 지혜만큼 그 생각이 확산되기 때문에, For every thought of an angel spreads forth into heaven; and the angels have intelligence and wisdom in the measure of that extension.

 

그 결과 천국의 모두가 주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오직 주님에게만 신적 인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It is in consequence of this that all in heaven acknowledge the Lord, because only in him does the Divine human exist.

 

이 모든 걸 저는 천사들한테서 들었을 뿐 아니라, 제가 천국의 가장 내적 영향권 안으로 들려올라갔을 때, 이런 걸 직접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Not only have I been told all this by angels, but when elevated into the inner sphere of heaven I have been able to perceive it.

 

이런 사실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천사들이 더 지혜로울수록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지각한다는 것과, 주님이 천사들에게 나타나시는 것도 이 사실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이는 신성을 시인하고 믿는 사람들한테는 사람 모습을 가진 신적 천사로 나타나시지만, 보이지 않는 신성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나타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From this it is evident that the wiser the angels are the more clearly they perceive this truth; and it is from this that the Lord is seen by them; for the Lord is seen in a Divine angelic form, which is the human form, by those who acknowledge and believe in a visible Divine being, but not by those who believe in an invisible Divine.

 

전자는 신성을 볼 수 있지만, 후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For the former can see their Divine being, but the latter cannot.

 

 

80. 천사들은 형체 없는 신성, 보이지 않는 신성은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대신, 오직 사람 형태의 보이는 신성만 지각하기 때문에, 주님 홀로 사람이시며, 자기들이 사람인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음이고, 각자 주님

 

 

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일상화되었습니다. Because the angels have no perception of an invisible Divine, which they call a Divine devoid of form, but perceive only a visible Divine in human form, they are accustomed to say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it is from him that they are men, and that each one is a man in the measure of his reception of the Lord.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주님은 자신의 선 안에, 진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지혜와 총명, 지성이라고 부릅니다. By receiving the Lord they understand receiving good and truth which are from him, since the Lord is in his good and in his truth, and this they call wisdom and intelligence.

 

천사들은 말하기를, 지성과 지혜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지, 이런 걸 떠난 생김새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님을 모든 천사가 알고 있다고 합니다. Everyone knows, they say, that intelligence and wisdom make man, and not a face without these.

 

내적 천국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지혜와 총명 가운데 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사람 모습입니다. 반면, 더 낮은 천국 천사들은 덜 완벽하고 덜 아름다운 사람 모습입니다. The truth of this is made evident from the appearance of the angels of the interior heavens, for these, being in good and truth from the Lord and in consequent wisdom and intelligence, are in a most beautiful and most perfect human form; while the angels of the lower heavens are in human form of less perfection and beauty.

 

다른 한편,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 빛으로는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괴물 같은 모습들입니다. 그들은 선과 진리가 아닌, 악과 거짓 안에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지혜와 총명하고는 정반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On the other hand, those who are in h

 

 

ell appear in the light of heaven hardly as men, but rather as monsters, since they are not in good and truth but in evil and falsity, and consequently in the opposites of wisdom and intelligence.

 

이런 이유로, 그들의 삶을 가리켜 삶이 아닌, 영적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For this reason their life is not called life, but spiritual death.

 

 

81. 천국은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주님의 신적 인성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 안에 있다 하며, 또 일부는 말하기를, 자기들은 주님의 몸 안에 있다 합니다. 그 의미는, 자기들은 주님의 사랑의 선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Because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from the Lord’s Divine human, reflects a man, the angels say that they are in the Lord; and some say that they are in his body, meaning that they are in the good of his love.

 

이것은 주님 자신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And this the Lord himself teaches, saying,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4-10)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except it abide in the vin

 

 

e, so neither can ye, except ye abide in Me. For apart from Me ye can do nothing. Abide in My love.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John 15:4–10)

 

 

82. 신성에 대한 이런 지각이 천국에는 있기 때문에, 천국 인플럭스(influx, 入流)를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람 모습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그 안에 심겨져 있습니다. Because such a perception of the Divine exists in the heavens, to think of God as in a human form is implanted in every man who receives any influx from heaven.

 

그래서 고대인들이 주님을 그렇게 생각했고, 현대인들 역시 교회 안팎을 불문, 주님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Thus did the ancients think of him; and thus do the moderns think of him both outside of the church and within it.

 

단순한 사람들은 주님을 광채나는 마법사 에인션트 원으로 생각합니다. The simple see him in thought as the Ancient One in shining light.

 

그러나 이런 인사이트는 자기중심적 지성으로 악하게 살아 천국 인플럭스를 거절한 사람들한테는 소멸되었습니다. But this insight has been extinguished in all those that by self-intelligence and by a life of evil have rejected influx from heaven.

 

자기중심적 지성으로 그걸 소멸해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원하는 반면, 악한 삶을 통해 그걸 소멸해온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 자체를 원하지 않습니다. Those that have extinguished it by self-intelligence prefer an invisible God; while those that have extinguished it by a life of evil prefer no God.

 

둘 중 어느 쪽도 그런 인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걸 모릅니다. 그게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 사람의 안으로 근본적으로 흘러들어오는 건 주님의 신성 그 자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천국에 가기 위해 태어나는데, 하지만 신성에 대한 컨셉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Neither of these are aware t

 

 

hat such an insight exists, because they do not have it; and yet it is the Divine heavenly itself that primarily flows into man out of heaven, because man is born for heaven, and no one without a conception of a Divine can enter heaven.

 

 

83. 이런 이유로, 천국에 대한 컨셉이 전혀 없는, 즉 천국이 비롯되는 신성에 관한 컨셉이 전혀 없는 사람은 사후에 깨어나 천국의 첫 번째 문턱도 넘지 못합니다. For this reason he that has no conception of heaven, that is, no conception of the Divine from which heaven is, cannot be raised up to the first threshold of heaven.

 

이런 사람은 천국에 접근하자마자 어떤 저항과 일종의 아주 강한 반발을 지각합니다. 천국에 대하여 수용적이어야 할 그의 내면이 천국 형태가 되지 않도록 오히려 닫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천국에 더 다가갈수록 그의 내면은 아주 더 타이트하게 닫힙니다. As soon as such a one draws near to heaven a resistance and a strong repulsion are perceived; and for the reason that his interiors, which should be receptive of heaven, are closed up from their not being in the form of heaven, and the nearer he comes to heaven the more tightly are they closed up.

 

이것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님은 부인하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소시니아인들 같이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Such is the lot of those within the church who deny the Lord, and of those who, like the Socinians, deny his Divinity.

 

그러나 교회 밖에서 태어나 말씀이 없어 주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lot of those who are born out of the church, and who are ignorant of the Lord because they do not have the Word, will be described hereafter.

 

 

84. 아브라함, 롯, 여호수아, 기드온, 마노아와 그의 아내 및 그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신을 보면 옛사람들이 신을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hat the men of old time had an idea of the Divine as human is evident from the manifestation of the Divine to Abraham, Lot, Joshua, Gideon, Manoah and his wife, and others.

 

그들은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그를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하늘과 땅의 하나님, 여호와로 불렀습니다. These saw God as a man, but nevertheless adored him as the God of the universe, calling him the God of heaven and earth, and Jehovah.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분이 주님이셨음을 주님은 요한복음 8장 56절을 통해 친히 가르치십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주님이심을 그분의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That it was the Lord who was seen by Abraham he himself teaches in John 8:56; and that it was he who was seen by the rest is evident from his words: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요1:18; 5:37) No one hath seen the Father, nor heard his voice, nor seen his form. (John 1:18; 5:37)

 

 

85. 그러나 겉 사람에 속한 감각적 컨셉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사람들한테는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감각의 사람은 신에 대한 생각도 세상과 거기 속한 걸로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그는 어떤 신성과 영성의 사람을 생각할 때도 같은 식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육(肉)적이고 자연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But that God is man can scarcely be comprehended by those who judge all things from the sense conceptions of the external man, for the sensual man must needs think of the Divine from the world and what is therein, and thus of a Divine and spiritual man in the same way as of a corporeal and na

 

 

tural man.

 

그래서 그는 결론짓기를, 만일 하나님이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온 우주만큼 커야 하며, 만일 그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신다면, 세상 왕들이 하듯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이지요. From this he concludes that if God were a man he would be as large as the universe; and if he ruled heaven and earth it would be done through many others, after the manner of kings in the world.

 

만일 그가 천국에는 이 세상 같은 무슨 공간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If told that in heaven there is no extension of space as in the world, he would not in the least comprehend it.

 

오직 자연과 자연의 빛으로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그로서는 자기 눈에 보이는 공간 확장으로만 그런 걸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For he that thinks only from nature and its light must needs think in accord with such extension as appears before his eyes.

 

하지만 천국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가장 큰 실수입니다. But it is the greatest mistake to think in this way about heaven.

 

그곳의 공간 확장은 세상의 확장과 다릅니다. Extension there is not like extension in the world.

 

세상에서의 공간은 정해져 있고, 그래서 측정 가능한 것이지만, 천국의 공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측정불가입니다. In the world extension is determinate, and thus measurable; but in heaven it is not determinate, and thus not measurable.

 

천국 공간과 그 확장에 관해서는 나중에 영계의 공간과 시간과 연결지어 더 깊이 다루겠습니다. But extension in heaven will be further treated of hereafter in connection with space and time in the spiritual world.

 

좀더 말씀드리면, 사람들은 시력이라는 게 얼마나 멀리 뻗어나가는지, 즉 태양과 별을 넘어 훨씬 저 멀리 뻗어나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래서 좀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고에 속한 내적 시야는 훨씬 더 넓게 확장되며, 그래서 더 깊은 내적 시야일수록 훨씬 더 멀리 계속 확장된다는 걸 말이지요. Furthermore, everyone knows how far the sight of the eye extends, namely, to the sun and to the stars, which are so remote; and whoever thinks deeply knows that the internal sight, which is of thought, has a still wider extension, and that a yet more interior sight must extend more widely still.

 

그러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내적이시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시야, 신성의 시야에 대해서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What then must be said of Divine sight, which is the inmost and highest of all?

 

생각, 사고라는 게 이런 확장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의 여러 장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천국의 모든 것은 거기 있는 모두와 공유되며, 천국을 만들고 또 가득 채우는 주님의 신성에 속한 모든 것 또한 그렇게 공유됩니다. Because thoughts have such extension, all things of heaven are shared with everyone there, so, too, are all things of the Divine which makes heaven and fills it, as has been shown in the preceding chapters.

 

 

86. 천국 천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 즉, 생각으로도 선뜻 잡히지 않는 어떤 추상적 형태라 여기고 앉아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성인입네 한다는 사실과, 자기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배움이 없고 단순무식하다 한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말입니다. Those in heaven wonder that men can believe themselves to be intelligent who, in thinking of God, think about something invisible, that is, inconceivable under any form; and that they can call those who think differently unintelligent and simple, when the reverse is the truth.

 

그들은 또 말하기를,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시지요. 자신들이 자연, 즉 누구는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누구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리

 

 

켜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천사는, 영은, 사후에도 여전히 사는 그들의 영은,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의 삶은, 지성을 구성하는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것은 볼 줄 모르는 장님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반면, 그들이 단순하다 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 곧 하나님은 사람 모습으로 계신 신이시며, 천사는 하늘에 사는 사람이고, 그들의 혼은 사후에도 천사들처럼 사는 것이요,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의 삶은 신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They add, “Let those who thus believe themselves to be intelligent examine themselves, whether they do not look upon nature as God, some the nature that is before their eyes, others the invisible side of nature; and whether they are not so blind as not to know what God is, what an angel is, what a spirit is, what their soul is which is to live after death, what the life of heaven in man is, and many other things that constitute intelligence; when yet those whom they call simple know all these things in their way, having an idea of their God that he is the Divine in a human form, of an angel that he is a heavenly man, of their soul that is to live after death that it is like an angel, and of the life of heaven in man that it is living in accord with the Divine commandments.”

 

천사들은 이들이 지성인이며, 천국에 적합한 자들인 반면, 저들은 비지성, 몰지각, 어리석은 자라 합니다. Such the angels call intelligent and fitted for heaven; but the others, on the other hand, they call not intelligent.

 

2021-11-06(D7)-토요예배(2226, HH.1.11.78-86). '11장, 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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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H88_SWTw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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