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창5:16-17)

 

 

512. 이 표현들은 앞의 비슷한 표현들과 같은 의미입니다. It is the same with these words as with the like words before.

2021-07-15(D5)-매일예배(AC.512, 창5,16-17), '마할랄렐 시대를 살더라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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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1DwSQRcg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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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창5:15)

 

 

510. ‘마할랄렐’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섯 번째 교회를, ‘야렛’은 여섯 번째 교회를 각각 상징합니다. By “Mahalalel” is signified, as before said, a fifth church; by “Jared” a sixth.

 

 

511. 퍼셉션 능력의 감소와, 이 능력이 더욱 예리해지거나 뚜렷해지는 대신 오히려 평범해지거나 모호해졌을 때, 사랑 혹은 쓰임새의 삶(생명) 또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랑 혹은 쓰임새의 삶(생명)의 모습이 퍼셉션 능력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As the perceptive faculty decreased, and from being more particular or distinct, became more general or obscure, so also did the life of love or of uses; for as is the life of love or of uses, so is the perceptive faculty.

 

선에서 진리를 아는 것이 천적(天的, celestial)입니다. ‘마할랄렐’이라는 교회를 구성하던 사람들은 진리에서 큰 기쁨 얻는 것을 그 진리를 사용함으로써 맛보는 기쁨보다 더 좋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런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제가 영계에 있을 때, 마할랄렐 때 사람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봄으로써 알게 된 것입니다. From good to know truth is celestial; the life of those who constituted the church called “Mahalalel” was such that they preferred the delight from truths to the delight from uses, as has been given me to know by experience among their like in the other life.

 

참고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주님의 선을 행할 뿐인데 사람들은 거기서 주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퍼셉션은 선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그들의 심비(心碑)에 심으셨기 때문인데, 그들의 조상, 곧 태고교회 첫 교회인 아담교회가 거듭남을 완성하여 안식에 들어간 천적 인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퍼셉션을 통해 선과 진리를 알았으면 이제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퍼셉션의 생명이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주석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2021-07-14(D4)-매일예배(AC.510-511, 창5,15), '마할랄렐이라는 교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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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uAu_3vKx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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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창5:13-14)

 

 

508. 여기 ‘’과 ‘’의 수, 곧 햇수는 앞서와 같은 상징들을 갖습니다. The “days” and numbers of “years” have the same signification here as before.

 

여기 ‘자녀’ 또한 진리와 선을 상징합니다. 이 교회 사람들에게도 역시 퍼셉션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들은 앞 세 교회보다 더 일반적으로만 취급했습니다. Sons and daughters” here also signify truths and goods, whereof the members of the church had a perception, but in a more general manner.

 

즉, 덜 소중하게, 시큰둥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점점 더 자기를 사랑하게 되어 자기들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이 퍼셉션 능력을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퍼셉션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뜻에 아주 예민한 상태로 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주님보다 자기와 세상을 더 사랑하고픈 사람에게는 이 천부적 재능처럼 불편한 재능도 아마 없었지 싶습니다...

 

그가 ‘죽었다’라는 것은 이런 퍼셉션의 상태가 멈춘,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그런 것을 상징합니다. That he “died” signifies in like manner the cessation of such a state of perception.

 

 

509. 여기서 꼭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은 교회의 상태와 어떻게 관련되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It is here only to be remarked, that all things are determined by their relation to the state of the church.

 

모든 천사가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듯 모든 사람은 가장 작은 형태의 교회입니다. 모든 천사와 사람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를 담는 그릇입니다. 모든 것은 그가 주님의 신성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로 결정되며, 그렇게 교회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021-07-13(D3)-매일예배(AC.508-509, 창5,13-14), '게난, 퍼셉션을 불편해하기 시작한 교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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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LKJYnamH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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