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창2:22)
151. ‘만드시고’는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세우는 to raise up what has fallen 것을, ‘갈빗대’는 생명 공급을 받지 못한 man’s own을, ‘여자’는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은 man’s own을,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는 his own인 것이 what is his own 그에게 승인되었음을 was granted him 각각 상징합니다.
이 교회 후손은 그들의 선조처럼 천적 인간이 되고자 하는 to be a celestial man 대신, 자기들의 own을 가지고 스스로 살아가기를 to be under their own self-guidance 원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own을 향해 기울어졌고, 그들이 원하던 삶이 그들에게 승인되었습니다. it was granted to them. 그러나 여전히 이 own이라고 하는 것에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공급되었으며, still an own vivified by the Lord, 이런 연유로, 이 own을 가리켜 ‘여자’라, 나중에는 ‘아내’라 한 것입니다.
152.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금 이 아케이나에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아 왔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아케이나가 들어 있음을 볼 수 있으려면 누구든지 매우 주의를 집중할 것이 요구됩니다.
그 ‘여자’에 the woman 의해 man’s own이 상징되고 있다는 사실은 속은 사람이 바로 그 여자였다는 it was the woman who was deceived 사실을 가지고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own, 혹은 같은 말인데요, or what is the same, 그동안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 말고는 어떤 것도 사람을 속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for nothing ever deceives man but his own,
153.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 to be built into a woman 하였지만 이것은 그 여자가 전에 거듭남을 다룰 때처럼, ‘창조’ created 나 ‘지음’ formed, 혹은 ‘만들어짐’을 made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이유는, ‘만드시고’는 to build 쓰러져 있는 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는 말씀에서 ‘만드시고’를 to build 가지고는 악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to raise up 가지고는 거짓들을, 그리고 ‘새롭게 함’을 to renew 가지고는 둘 다를 서술하는데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이사야입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사61:4)
이곳과 다른 구절들에서, ‘황폐하였던 곳’은 wastes 악들을, ‘무너진 곳’은 desolations 거짓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쌓다’는 to build 전자, ‘다시 일으키다’는 to set up again 후자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this distinction 선지자들에 의해 다른 곳, 가령 예레미야 같은 데서 주의 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렘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