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135, 창2:18-25, '본문, 개요, 배경'(AC.131-137) - '24절 개요'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개요

135

천적, 영적 생명이 인간의 오운(own, proprium, ~다움, ~스러움, 그에게 고유한 어떤 성질, 그를 딱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거) 마치 그 둘이 하나로 보일 정도로 인접합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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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34, 창2:18-25, '본문, 개요, 배경'(AC.131-137) - '21-23절 개요'

 

21-23절,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개요

134

그가 자기 오운(own, proprium, ~다움, ~스러움, 그에게 고유한 어떤 성질, 그를 딱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거)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므로, 어떤 한 오운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게 바로 본문에서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라고 한 그 갈빗대입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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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33, 창2:18-25, '본문, 개요, 배경'(AC.131-137) - '19-20절 개요'

 

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개요

133

먼저 주님은 그가 당신이 주신 선에 대한 애정들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에 대해 알게 하셨지만,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다움, ~스러움, 그에게 고유한 어떤 성질, 그를 딱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거)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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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32, 창2:18-25, '본문, 개요, 배경'(AC.131-137) - '18절 개요'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개요

132

인간은 원래 주님의 인도하심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또한 자신과 세상, 혹은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다움, ~스러움, 그에게 고유한 어떤 성질, 그를 딱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거)으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여기서는 그에게 허락된 오운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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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31, 창2:18-25, '본문, 개요, 배경'(AC.131-137) - '본문, 개요'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개요

 

131

자신들의 오운(own, proprium, 자아, 고유속성)(주3)을 향해 기울어졌던, 태고교회의 후손을 여기서 다루고 있습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3 is here treated of.

 

(주3), 라틴어 proprium은 원전에서 사용된 용어로, 여기와 다른 여러 곳에서 own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 온 말입니다. propius의 사전적 의미는 형용사로서는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입니다. proprium은 중성인데 명사로 사용되면, possession,” “property를 의미하며,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어 형용사 own웹스터에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를 의미하는 걸로 봐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own이라는 말은 proprius와 매우 정확히 일치하며, 라틴 proprium에 맞는 어떤 명사를 만들면, 아주 가까운 번역 효과를 얻지 싶습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 위 영어 'own'은 고민 끝에 그냥 발음 그대로 '오운'으로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옮기기가 참 쉽지 않아서 그런데요, 그런 게 여럿 있습니다. 가령, 영어 'perception'이 그렇고, 'affection'이 그러하며, 'charity' 또한 그렇습니다. 이들 역시 발음 그대로 '퍼셉션', '어펙션', 그리고 '체어리티'로 보통은 옮기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들 단어들은 만일 어느 하나로 옮길 경우, 그밖의 더욱 풍부한 여러 뉘앙스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 우리말에 '거 참... 과연 그 친구답군!' 같은 표현이 있는데요, 이 '오운'의 뉘앙스가 거의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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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30,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30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한테는 그의 ‘동산’에 감각과 기억-지식([sensualia et scientifica])이 있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그에게는 ‘에덴’이며, 그에게 있어 ‘’은 서, 곧 자기 자신입니다. 그의 ‘유브라데 강’은 그의 모든 기억-지식인데, 이는 정죄를 받는 것이요, 그의 ‘두 번째 강’, 거기는 ‘앗수르’인데, 이는 정신나간, 거짓을 낳는 이성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 여기는 ‘구스(Ethiopia)인데요, 악과 악에서 나오는 거짓의 원리들로서, 이는 그가 가진 신앙과 관련된 지식들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은 거기서 나오는 지혜인데, 말씀에서는 이걸 ‘마법’이라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애굽’, 기억-지식을 상징하지요, 이 지식이 마법이 된 후, 애굽은 그런 사람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자아로부터 지혜로워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 관해 에스겔에 기록하기를,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 “garden”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 “Eden”; his “east” is the west, or himself; his “river Euphrates” 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 “second river,” where is “Assyria” 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 “third river,” where is “Ethiopia” 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 “fourth river” 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 “magic.” And therefore “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같은 선지서에서, 그런 사람들을 또한 ‘지옥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이라고 하는데, 바로(Pharaoh), 또는 애굽인들을 다루는 본문입니다. Such men are also called “trees of Eden in hell,” 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서 ‘에덴의 나무들’은 말씀으로 말미암는 지식들([scientifica et cognitiones])을 가리키는데, 저들이 이런 식으로 이성 활동을 통해 모독하는 것입니다. where the “trees of Eden” 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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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9,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9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인간은 그가 세운 원칙들에 의해 지배되며, 그 원칙들이 설령 노골적인 거짓이어도 말입니다, 그의 모든 지식과 이성은 그 원칙들을 편든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들에 대한 지지 성향의 수많은 고려사항들이 그의 마음에 기꺼이 제공되고, 그렇게 해서 그는 거짓된 것 가운데서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돼!’와 같은 어떤 원칙을 세운 사람은 결코 무얼 믿을 수가 없는데요,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 곧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뒤따르고, 그의 눈이 밝아지는데, 심지어 이성과 기억-지식에 관한 것들까지도([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그렇게 됩니다. 이는 그가 과학을 배운다고 해서 못하게 하거나, 과학은 그의 삶에 유용하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그가 신앙 안에 있다고 해서 그가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거나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가능한 한, 영적 천적 진리들을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학계에 친숙한 용어들로 확실하게 하는 것은 이 원칙에서 비롯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그의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하며, 결코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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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8,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8

세속적이고 육적인 사람은 속으로 말하기를, 만일 신앙과 신앙에 관계된 모든 것을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내가 볼 수 있게 하거나,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나는 안 믿을꺼야라고 말이지요. 그는 또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서로 절대 반대일 리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굳게 확신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감각에 속한 걸 가지고 천적이고 신적인 걸 배우고자 합니다만, 그러나 이는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더욱더 스스로를 눈멀게 하여 결국엔 아무것도, 심지어 어떤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영생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게 되는데요, 이런 결과는 그가 가정하고 있는 원리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더 많이 먹을수록 그는 더욱 죽게 되지요. 그러나 세상이 아닌, 주님을 통해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곧 말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요. 그는 이런 원리로 자신의 생각을 조절합니다. 그는 이성, 지식, 감각 및 자연에 속한 것들을 통해 스스로 굳게 확신합니다. 아니다 싶은 것들은 버리면서 말입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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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7,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7

감각과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조사해 보고 싶어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다음 장에서 다룰,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 몰락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교회가 그렇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삶 가운데 모든 거짓들과 악들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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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26,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AC.126-130)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126

이 말씀은 방금 드린 설명과 함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징하는데요,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퍼셉션을 가지고는 참과 선에 익숙해져도 되지만, 자아와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걸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 즉 우리는 감각과 기억에 속한 걸 가지고 신앙의 신비를 알아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신앙의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These words, taken together with those just explained, signify that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 즉, 주님과 주님께 속한 모든 것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 주님이 허락하신 것으로만 접근해야지 자아와 세상, 감각과 세속적 지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 지난 5년, 스베덴보리를 해오고 있는 제 생각으로는, 지상에서 생활하면서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상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익힌 일체의 것으로 천국을 준비하면 안 되고, 반대로 천국의 어떠함을 배워 천국 천사의 관점으로 지상에서 생활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순서는, 먼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책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라고 스베덴보리를 미리 준비시키셨고, 그리고 십수년 스베덴보리가 충분히 준비된 후, 책의 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제 경우는 지난 5년 간 수십 번을 읽고, 듣고 있습니다. 지금도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준비할 때 밟는 순서와 유사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 아래 제 글을 참고하세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이 내게 미친 영향 (2023/10/29)

‘...제가 처음 스베덴보리를 알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가족 중에 한 분이 ‘천국과 지옥’ 책을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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