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10)
AC.28
말씀에서 ‘물’(waters)로는 여러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바다’(seas)로는 그 많은 물, 곧 지식의 집합을 의미할 때가 참 많은데요, 이사야에 보면, It is a very common thing in the Word for “waters” to signify 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 and consequently for “seas” to signify a collection of knowledges. As in Isaiah: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9)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scientia] of Jehova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Isa. 11:9).
이사야 또 다른 데 지식의 결핍이 다루어지는 곳을 보면, And in the same prophet, where 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 is treated of: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사19:5, 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ea, and the river shall be dried up and become utterly dry, and the streams shall recede (Isa. 19:5–6).
학개에서 새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In Haggai, speaking of a new church: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6, 7)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the dry [land]; and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 2:6–7).
또 거듭나는 중인 사람에 대해 스가랴서에서는 And concerning man in the process of regeneration, in Zechariah: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14:7, 8) There shall be one day, it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and it shall be in that day that living waters shall go out from Jerusalem, part of them toward the eastern sea, and part of them toward the hinder sea (Zech. 14:7–8).
시편에도 보면, 황폐해졌다가 거듭나 주님을 경배하게 될 사람을 묘사하면서, David also, describing a vastated man who is to be regenerated and who will worship the Lord: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시69:33, 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땅’(earth)이 그릇(recipient)을 의미한다는 것이 스가랴를 보면 분명한데, That the “earth” signifies a recipient, appears from Zechariah: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슥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해설
AC.28은 창1:10의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를 설명하면서, 앞의 AC.27에서 밝혀진 ‘물’, ‘바다’, ‘땅’의 의미가 말씀의 다른 곳에서도 실제로 사용된다는 것을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해 보여 줍니다. 핵심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물’은 여러 지식(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바다’는 그렇게 모인 지식들의 집합을, ‘땅’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그릇을 의미합니다.
처음 읽는 독자라면 먼저 ‘왜 물이 지식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AC.28은 그 이유를 이론적으로 길게 설명하기보다 말씀의 실제 용례를 제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11:9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기서는 ‘물’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한 문장 안에서 직접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말씀들을 근거로 ‘물’이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말씀에서 매우 흔한 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19:5-6에서는 ‘바닷물이 없어지고’, ‘강이 말라 버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지식의 결핍’이 다루어지는 예로 제시합니다. 물이 지식을 나타낸다면 물이 없어지고 마르는 것은 그에 대응하여 지식이 결핍된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지식이 어떻게 사라지는지까지 AC.28이 설명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우선 ‘물의 있음과 없음’이 ‘지식의 있음과 결핍’을 표현하는 말씀의 방식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다’는 왜 지식의 집합을 의미할까요? 창1:10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단서를 줍니다. 흩어져 있던 물들이 모이고, 하나님께서 그 ‘모인 물’을 바다라고 부르십니다. 따라서 물이 여러 지식을 나타낸다면, 그 물들이 모인 바다는 자연스럽게 여러 지식이 모여 있는 집합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앞의 AC.27에서 거듭나는 사람의 기억 속에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저장되어 기억 지식 가운데 분류된다는 설명과도 이어집니다.
학2:6-7, 슥14:7-8, 시69:33-34의 인용도 물과 바다와 땅이 단순한 자연물만을 가리키지 않고 말씀 안에서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다만 AC.28은 이 각각의 구절에 등장하는 모든 표현의 세부적인 상응을 여기서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슥14:8의 ‘동해’와 ‘서해’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까지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용들의 세부 상응을 미리 확정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이 구절들을 인용했는지를 따라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곧 ‘물’과 ‘바다’가 말씀에서 지식과 그 집합을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슥14:8의 ‘생수’라는 표현을 보고 ‘그렇다면 살아 있는 지식과 죽은 지식이 따로 있다는 뜻인가?’라고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스베덴보리의 더 넓은 가르침 안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AC.28 자체의 논지는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물은 우선 지식의 상응을 보여 주기 위해 인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수’를 곧바로 ‘생명으로 변화된 지식’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 문단이 직접 말하는 범위를 넘어갑니다.
마지막에는 시선이 ‘물’과 ‘바다’에서 ‘땅’으로 옮겨 갑니다. 스베덴보리는 슥12:1을 인용하면서 ‘땅’이 ‘그릇’(recipient)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릇이라는 말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앞의 AC.27에서는 ‘마른 땅’이 겉 사람을 의미한다고 했으므로, 두 글을 함께 읽으면 거듭나는 사람의 겉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땅이 그릇이다’라는 말은 땅 자체가 지식에 생명을 만들어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릇은 받아들이는 것이지 생명의 근원은 아닙니다. 앞의 AC.27에서도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기억 속에 많은 지식이 쌓였다는 사실만으로 그것들이 자동으로 살아 있는 영적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은 중요하지만 지식 자체가 생명의 근원은 아닙니다.
이 점은 AC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많이 배운다는 것은 분명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이 안다’는 것과 ‘그 진리로 산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AC.28은 아직 그 다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주님께서 거듭남을 이루어 가시는 가운데 지식들이 ‘물’과 ‘바다’로 표현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겉 사람이 ‘땅’이라는 그릇으로 표현된다는 기본 구조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AC.28에서 ‘물–바다–땅’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물은 여러 지식, 바다는 그 지식들의 집합, 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땅’에서 실제로 무엇이 싹트기 시작하는지는 바로 이어지는 창1:11-13과 AC.29에서 설명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글을 전개하는 순서대로 따라가면, 지식이 모이는 것과 실제 영적 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서로 혼동하지 않으면서 셋째 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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