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4, AC.118-121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Verse 14,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 14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세 번째, 네 번째 특징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합리적 영역으로 흐르는 이성과 그 경계인 지식, 세상 팩트에 기반을 둔 지식입니다.

 

 

118. 힛데겔 강(The river Hiddekel)은 이성, 즉 이성의 명석함(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입니다. ‘앗수르(Asshur)는 이성적인 마음(the rational mind)이고,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은 이성의 명석함이 주님에게서 나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이성적인 마음(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안으로 들어가는 걸 의미합니다. ‘유브라데(Phrath, or Euphrates)는 기억-지식(memory-knowledge), 즉 맨 끝, 경계(the ultimate or boundary)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119. 앗수르가 이성적인 마음, 즉 인간의 이성(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 에스겔 같은 선지서를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31:3-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을 ‘레바논 백향목’이라 하고 있으며,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은 기억 지식들, 곧 이 매우 큰 곤경 가운데 있는 지식들입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 개역개정 4판 번역이 좀 엉뚱한데요, 영어 표현 번역은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즉 ‘빽빽한 가지들 가운데 난 새 가지’입니다.

 

※ ‘이 매우 큰 곤경 가운데 있는(which are in this very plight)이라는 이 부분 역시 지금의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서술입니다. 에스겔 31장 전체를 읽어보면, 애굽에 대한 책망을 하시면서, 앗수르가 이러했음에도 그 역시 이랬거든 하물며 너는... 이라는, 그 속뜻으로는 인간의 이성조차 이랬거든 하물며 기억-지식에 불과한 너는... 이라는 내용이어서 이런 전반적인 문맥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이것은 이사야를 보면 더욱 명료해집니다.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애굽’은 위 본문과 다른 여러 구절에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앗수르’는 이성(reason)을,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성(ntelligence)을 의미합니다.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120. 애굽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또한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및 이들 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미가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As by “Egypt,” so also by “Euphrates,” 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그래서 선지서들에서 주님의 오심(the coming of the Lord)과 관련하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사 그로 하여금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입니다.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서 ‘애굽’과 ‘유브라데’는 함께 기억-지식을, ‘앗수르’는 이런 기억-지식을 가지고 하는 합리적 사고능력, 추리, 추론(reasonings thence derived)을 의미합니다. 시편입니다. where “Egypt” and “Euphrates” 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 “Asshur” reasonings thence derived. In David: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서 ‘강’(the river Euphrates)의 의미는 감각적인 것과 기억에 속한 것(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입니다. 유브라데는 앗수르를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였는데, 이는 기억 지식(the knowledge of the memory)이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의 경계인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 또한 같습니다. where also the “river Euphrates”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이들 두 경계는 같은 걸 의미합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121. 천적 질서의 본질(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곧 생명은 어떻게 진행하는가(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하는 것은 이들 강들로부터, 이신 주님으로부터(from the Lord, who is the East)임이 분명하며, 주님으로부터 지혜(wisdom), 지혜를 통해 지성(intelligence), 지성을 통해 이성(reason), 그리고 그렇게 이성을 사용하여 이번에는 기억 지식(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이 생생해지는 등 이런 순서로 진행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질서, 순서(the order of life)이며, 그런 것이 천적 인간들(celestial men)이고,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the elders of Israel)이 천적 인간들을 표상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wise, intelligent, and knowing)이라 한 것입니다(1:13, 15).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or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is evident from these rivers, namely, from the Lord, who is the “East,” and that from him proceeds wisdom, through wisdom intelligence, through intelligence reason, and so by means of reason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are vivified. This is the order of life, and such are celestial men; and therefore, since the elders of Israel represented celestial men, they were called “wise, intelligent, and knowing” (Deut. 1:13, 15).

 

13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신1:13, 15)

 

그래서 궤를 만든 브살렐을 이렇게 말한 것이지요. Hence it is said of Bezaleel, who constructed the ark, that he was: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35:31)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출36:1-2) Filled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scientia], and in all work. (Exod. 31:3; 35:31; 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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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3, AC.116-117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Verse 13,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 13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두 번째 특징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으로, ‘기혼’이라 하였으며, 이런 걸 담을 수 있는 천적 인간의 마음의 역량을 가리켜 ‘구스 땅’이라 하였습니다.

 

 

116. 기혼(Gihon)이라 하는 둘째 강(The second river)은 지식(the knowledge [cognitio])을 의미하는데, 이 지식은 선한 것과 참된 것(the good and the true),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말합니다. ‘구스 땅(the land of Cush)은 마음, 즉 역량(the mind or faculty)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의지와 이해(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로 되어 있는데요, 첫째 강에 관해 드린 말씀이 의지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 둘째 강은 이해에 관한, 즉 선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고, 진리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는(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of good and of truth) 내용입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117. 더욱 구스 땅’, 즉 에디오피아는 금과 보석 및 향신료(spices)로 풍부했는데요, 이는 전에 말씀드린 대로, 선과 진리 및 여기서 나오는 감사할 만한 것들(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곧 사랑과 신앙 관련 지식에서 나오는 것들(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을 말합니다. 이는 위 113번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60:6, 2:1, 11, 72:15)을 보면 분명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말씀에서 ‘구스’나 ‘에디오피아’(Ethiopia), 그리고 또 ‘스바’(Sheba)가 의미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은 스바냐 같은 선지서들을 보면 분명한데요, 가령, 스바냐에 ‘구스 강’(the rivers of Cush)이라고 언급된 부분입니다.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그리고 다니엘에서 북으로는 리비아, 남으로는 구스의 왕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여기 ‘애굽’(Egypt)은 세상에서 학습하는 지식인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구스’(the Ethiopians)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지식(knowledges)을 가리킵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그렇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같은 식으로 이들을 가지고 신앙 관련 지식(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을 의미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시편에서도 주님에 대해, 그리고 그 결과, 천적 인간에 대해 말하면서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앞뒤 구절들과 함께 살펴보면, 이 말씀들은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celesti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합니다. 스바 여왕에 관한 말씀 또한 그런데요, 열왕기상을 보면 그녀는 솔로몬 왕에게 와서 어려운 것들을 물으며, 그에게 향신료와 금, 그리고 보석들을 가져왔습니다. (왕상10:1-2).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2)

 

이는 선지서들을 비롯, 말씀의 역사 관련 부분들(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에 들어있는 모든 것은 아르카나(arcana, 秘義)를 의미, 표상 및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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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별세 소식에 불현듯 지난날 유신고 시절인 1980년 9월 30일 밤, 당시 기숙사 사감이셨던 ○ 선생님 전화 받고 우리 A동 같은 방 모두 사감실 올라가 내 어머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접하고는, 룸메이트들이었던 자네와  , 이 등과 함께 전원, 그 밤, 성 빈센트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간 기억이 마치 비디오를 보듯 생생하게 떠오르더군... 벌써 햇수로 43년 전 일이야 ^^

 

목사로서 몇 가지만 간단히 적음세.

 

① 오늘이 사흘째지? 이제 어머니께서는 영계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눈을 뜨시게 되고, 몇 가지 절차를 밟으신 후, 드디어 생전에 먼저 떠나보내셨던 모든 그리운 분들, 곧 부모님 및 여러 혈육들, 친구, 지인들 등, 먼저 가신 모든 분과 재회하시는 너무나 반가운 시간들을 가지실 걸세.

 

② 처음엔 지상의 모습 그대로이셔서 어머니를 기억하던 모든 분들이 알아보시겠지만 서서히 어머니의 내면, 곧 속 사람이 주가 되고, 외면, 곧 겉 사람은 휴면 상태에 들어가면서 어머니는 천국으로 올라가실 준비를 마치게 되지. 이때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생전에 결코 본 적 없던 놀랍도록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라네. 어머니의 일생이 선한 삶이셨다면 말일세.

 

③ 우리의 육체는 사실 우리의 영이 잠시 이 지상 생활을 하기 위해 빌려 입었던 거라, 이렇게 말하면 좀 불경스러울까?, 무슨 특별한 의미는 없어. 죽음이란 다음 세계인 영계로 이사 가는 거니까 말일세.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지상에 묻어둔 육체를 다시 찾을 일은 없어. 육체의 다시 살아남, 곧 우리가 부활이라 믿고 있는 그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주님의 부활로 족하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네. 우리의 부활은 이렇게 지상에서 잠들었다가 영계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하지.

 

④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슬퍼하고, 보내드리는 예를 다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동안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라네. 거듭 부모는 사실은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늘 계셨던 주님이시며, 그래서 부모에 대한 태도는 곧 주님에 대한 태도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더러 십계명에서조차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하신 것이네.

 

거듭 모친을 떠나보내는 자네와 모든 유족을 주님이 크게 위로하시며, 또 이후 모든 일정에 크게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하네.

 

어머니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였을 참 진실한 친구 에게 주께서 천 대까지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오며...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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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12, AC.110-115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Verses 11, 12.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 11, 12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이라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의 마음은 마치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두르듯 주님의 선과 진리로 촉촉합니다.

 

 

110. 첫째(The first), 첫 번째 강 비손(Pishon)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은 마음(the mind), ‘(gold)은 선을, ‘베델리엄과 호마노(bdellium and the onyx stone)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이 두 번 언급된 이유는 이 금이 사랑의 선(the good of love)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the good of faith from love)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역시 하나는 사랑의 진리(the truth of love),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the truth of faith from love)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천적 인간(the celestial man)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Such is the celestial man.

 

 

111. 하지만 이런 것들을 그 속뜻 상태 그대로(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설명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오늘날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faith from love)이라는 게 뭔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이라는 건 또 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겉의 사람들, 외적이기만 한 사람들(external men)은 기억-지식 밖에는(anything but memory-knowledge) 거의 아는 게 없는데, 그들은 이런 걸 지혜와 지성, 신앙으로 부르고들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모르며, 또 의지와 이해가 뭔지, 그리고 이 둘이 합쳐 하나의 마음(one mind)을 이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것들은 저마다 구별됩니다. , 정말 확실하게 구별되는데요, 천국 전체(the universal heaven)를 주님은 사랑과 신앙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이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112. 더욱 다음과 같은 사실은 알려져야 하는데요, 사랑에서(from love) 나오지 않은 지혜, 그러니까 주님한테서(from the Lord) 나오지 않은 지혜라는 것은 없으며(there is no wisdom),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지성,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지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은 선,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오지 않은 선 또한 없으며,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진리,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진리 역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것들을 실제로는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모두 가짜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113. 말씀에서 지혜나 사랑의 선(the good of wisdom or of love)(gold)으로 상징, 표상되는 것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법궤, 성전, 향단, 촛대, 그릇들 및 아론의 의복 등에 사용된 모든 금은 지혜나 사랑의 선을 상징하고 표상했습니다. 에스겔에서처럼 선지서들에서도 그렇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지혜와 지성에서 ‘금과 은’(gold and silver), 즉 선과 참(the good and the true)이 나온다는 것인데요, 여기 ‘은’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법궤와 성전에서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이사야입니다.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그래서 또 Thus also: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황금’(gold)은 선을, ‘유향과 몰약’(frankincense and myrrh)은 참 감사한 것들(things that are grateful)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그래서 ‘여호와를 찬송’(the praises of Jehovah)이라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시편에서 그렇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114. 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precious stones)으로 상징, 표상되는데요, 판결 흉패(the breastplate of judgment)와 아론의 에봇 어깨받이(the shoulders of Aaron’s ephod)에 있는 보석들처럼 말이지요. 흉패 짜는 재료인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거기 물릴 보석들(the precious stones)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표상합니다. 에봇 어깨받이 위 두 기념 보석(the two stones of memorial)처럼 말입니다. 이 기념 보석은 호마노이며, 금테에 물린 것이지요. (28:9-22)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 “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 “stones” 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 “stones of memorial” 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28:9-22)

 

이 보석들의 의미는 에스겔에서도 분명한데요, 에스겔은 천국의 부(heavenly riches), 곧 지혜와 지성(wisdom and intelligence)을 소유한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이르기를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5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모두에게 분명한 것은 위 말씀은 보석(stones)이 아닌, 신앙에 속한 천적 영적인 것들(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인데요, 네, 그렇지요, 여기 각각의 보석은 신앙의 어떤 본질적인 것(some essential of faith)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115. 태고인들은 (lands) 하면 땅 그 자체가 아닌, 그 땅이 상징하는 게 무엇일까 하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가나안 땅, 시온산 하면, 그게 어디 있는지 그 위치나 그 산이 있는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닌, 천국(heaven)을 말하는 걸로 이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의 하윌라 땅(the land of Havilah)이 바로 그런데요, 이는 이스마엘 자손들에 대한 언급 부분인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거주하였더라(창25:18,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에 다시 나옵니다.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적 사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은 이 말씀에서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만 지각하는데요(perceive), 그래서 비손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다’(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고 하는 본문의 이 ‘두르다’(to compass)라는 표현을 통해 이들은 어떤 흘러드는 걸(a flowing in)지각합니다. 아론의 에봇 어깨받이 위 금테로 둘러싸인 호마노(출28:11)를 통해서도 이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온다(should inflow into) 지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다른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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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아는 데 도움 되는 사전 지식들’ (2023/10/15)

 

천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김은경 역, ‘천국과 지옥’ 44장 ‘중간 영계란 무엇인가(What the World of Spirits Is)에 나오는 글이며, 이어지는 글들은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들입니다.

 

422. ...사람 안에 있는 천국(The state of heaven in man)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 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靈人, a man-spirit)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 영계(the world of spirits)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 상태(an intermediate state)에 있기 때문이다...

 

※ ‘영인’이란 사후 영이 되었지만, 아직 천국 상태도, 지옥 상태도 아닌 상태의 영을 말합니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100% 선하거나 악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100% 선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나라, 지옥은 100% 악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100% 상태를 윗글에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했네요.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일단은 이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곧 중간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아주아주 희귀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악이 조금씩은 섞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주아주 희귀한 이 몇몇의 사람은 살아생전에 이미 이 100% 상태가 완료된 사람들로서, 이들은 중간 영계에서 깨어나는 즉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뛰어듦으로서 괜히 이 중간 영계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중간 영계를 합쳐 ‘영계(靈界)라 하는데. 이 영계는 지상 자연계처럼 무슨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이 상태 변화의 나라입니다.

 

※ 사람의 일생은 사실은 천국을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는 ‘거듭남을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 거듭남을 위한 과정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 ‘역량’이라 표현한 이유는 천국은 준비된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역량도 없으면서 무슨 낙하산으로 초우량기업에 들어간들 버틸 수 없어 얼마 못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윗글에서 계속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good)과 ‘진리(truth)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이 이 ‘’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사랑이라는 천국의 해로부터 선이라는 열과 진리라는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천국에 충만한 그런 나라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이란 모든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 이 선과 진리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만 세상, 세속 진리와 주님의 진리가 다른 점은, 주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세상 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세속적 진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그러나 정작 주님을 위한 선한 삶을 살지는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과 ‘진리’로 연결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한 의지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한 의지로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행위’로, 사람의 이해, 생각은 ‘’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위와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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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10-15(D1)-주일예배(2508, 눅13,18-21),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pdf
0.36MB
2023-10-15(D1)-주일예배.축도.pdf
0.22MB

https://youtu.be/rHHowQJxzbs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눅13:18-21)

 

 

악과 결합한 거짓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사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면 그때 곡식 가루와 포도즙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작용이 일어난다. 이 발효로 인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분리되고, 맞는 것은 합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회가) 정화되고 맑아진다. (하나님의 섭리 25)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하는 내용인데요, 본문을 살피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김은경 역, ‘천국과 지옥’ 44장 ‘중간영계란 무엇인가?’(What the World of Spirits Is)에 나오는 글들입니다.

 

422.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은 바로 그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하나된 상태다. 또 사람 안의 지옥은 그 사람 안의 악과 거짓이 하나된 상태다. 영인(靈人) 안에서 선이 진리와 하나되면 그는 천국에 이른다. 이미 말했듯이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람 안에서 악이 거짓과 하나되면 그는 지옥에 이른다. 그 하나됨이 사람 안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됨의 과정은 중간영계에서 일어난다. 사람은 그때 중간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사람이 100% 선하거나 악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100% 선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나라, 지옥은 100% 악한 상태여야만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100% 상태를 윗글에서는 ‘하나됨’이라고 표현했네요.

 

※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일단은 이 중간영계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곧 중간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아주아주 희귀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선과 악이 조금씩은 섞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이 중간영계를 합쳐 ‘영계’(靈界)라 하는데. 이 영계는 지상 자연계처럼 무슨 시공간(視空間)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상태변화의 나라입니다.

 

※ 사람의 일생은 사실은 천국을 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며, 그것을 다른 말로 ‘거듭남을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 거듭남을 위한 과정을 통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 윗글에서 계속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선과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천국이 이 ‘선과 진리’, 곧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사랑이라는 해로부터 선이라는 열과 진리라는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천국에 충만한 그런 나라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이란 모든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 이 선과 진리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 진리는 선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만 세상, 세속 진리와 주님의 진리가 다른 점은, 주님의 진리에는 주님의 선을 행할 능력이 있지만, 세상 진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속적 진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주님을 위한 선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good)과 ‘진리(truth)로 연결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선한 의지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만, 지옥에 속한 사람은 악한 의지로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행위’로, 사람의 이해, 생각은 ‘’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하는 행위와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입니다.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각 사람의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요, 땅에 있는 것은 교회이며,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입니다. 신앙과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고, 교회마다 다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교리인데, 교회마다 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들은 각자의 신앙과 사랑의 특성에 따라 천국의 수많은 사회 중 하나와 결합하고, 그것을 통해 주님과 결합합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주님과 결합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진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 천국은 무슨 평평한 곳에 다함께 모여 있는 데가 아닙니다.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동체, 크고 작은 사회로 되어 있는데요, 이는 주님의 선의 종류가 이렇게 많기 때문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후 각자 자신의 선과 맞는 곳으로 배정됩니다. 사실은 본인은 못 느끼지만, 생전에도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선의 종류와 맞는 천국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지하고 지혜가 없다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교회가 아직 주님과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진정한 주님의 나라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 교회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실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19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통해 겨자씨를 구경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겨자씨를 실제로 보면 아시겠지만, 겨자씨는 들깨만큼이나 작은 씨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것은, 그것이 작은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거창한 일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진리에 따라 작은 선을 행하더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길에다 담배꽁초나 일회용 컵을 버리지 않는다든가, 일을 할 때 두 번 손이 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한다든가, 이웃을 보면 밝게 웃으며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작은 진리들을 하나씩 실천할 때 그의 진리는 큰 나무가 되어 씨를 많이 품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자신의 밭에도 떨어지고 이웃의 밭에도 떨어져 끝없이 씨를 퍼뜨립니다. 진리는 이렇게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지만 무한히 천국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자아의 저항과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진리라 하더라도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자아와의 싸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겨자씨 한 알의 진리가 큰 나무로 자라고 그곳에 새가 둥지를 틀고 날아다닙니다. 씨가 나무로 자라는 것은 작은 진리로부터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새가 둥지를 틀고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 지성을 뜻합니다. 새는 진리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생각과 추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내면의 교회에서 천국의 새들이 날아다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지금 내가 있는 곳, 이 직장, 이 현장이 오늘 본문의 ‘채소밭’일 수 있으며, 나의 생각 하나, 나의 일처리 하나, 나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다 ‘겨자씨 한 알’일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무슨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단지 주님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지만, 주님은 그걸 씨앗 삼아 나중에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천국을 다르게 비유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뜻하고, 가루는 진리인데 선이 들어있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면 누룩은 뭘까요? 누룩은 악과 결합한 거짓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거짓이 아니라 진짜 거짓, 즉 악의적인 거짓이 누룩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가루 속에 누룩을 넣는 것은 주님께서 영적인 발효를 통해 교회를 정화시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인 시험을 통한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영적인 발효를 통한 방법입니다. 영적인 발효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 25항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악과 결합한 거짓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사회 안으로 흘러들어오면 그때 곡식 가루와 포도즙 안에서 발효 작용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발효로 인해 서로 맞지 않는 것들은 분리되고, 맞는 것은 합쳐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회가 정화되고 맑아진다.” 사람 안에 수많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들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그렇게 선과 악, 진리와 거짓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으면 사람도 사회도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순수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바탕이 순수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악과 거짓들을 이용해 선과 진리를 도발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누룩이 포도즙을 발효시킬 때 원액은 원액대로, 찌꺼기는 찌꺼기대로 모여 서로 분리되는 것처럼 선과 진리가 모이고, 악과 거짓이 따로 모여 두 진영 사이에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교회가 내적으로 정화되고 맑아집니다. 그것이 영적인 발효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발효가 내면에서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인 발효와 시험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이념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사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음 차례는 우리 한반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의 두 나라처럼 우리도 지금 좌우가 갈려 극심한 대립 가운데 있으며, 특히 북한 때문입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으로는 악과 거짓의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적인 발효를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선을 순수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의 교회가 새들이 둥지를 틀고 날아다니는 큰 나무와 같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거듭날 때 비로소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의 무지에서 벗어날 때 그들을 통해 새 교회의 진리가 세상 밖으로 끝없이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찾아 몰려올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겔17:22-23)

 

아멘

 

 

원본

2020-12-06(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10-15(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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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0, AC.107-109

10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Verse 10,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 10절 속뜻

 

동산으로 표현된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지혜가 흐르고, 지성으로 온 동산을 적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성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07.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A river out of Eden)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에덴은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동산을 적시고(to water the garden)는 지성을 주는 것(to bestow intelligence)이며,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는 다음과 같이 네 개의 강을 가지고 지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A “river out of Eden” signifies wisdom from love, for “Eden” is love; “to water the garden” is to bestow intelligence; 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 is a description of intelligence by means of the four rivers, as follows.

 

 

108. 태고인들은 인간을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또한 지혜 및 지혜와 관련된 것들을 (rivers)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부르기도 했는데요, 그건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훗날 선지자들도 그랬는데요, 그들 역시 가끔 그렇게 비유했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말이지요.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 “garden,” 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 “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곧 거듭난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주2)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민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예레미야를 보면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을 동산과 나무로 비유하는 대신, 그렇게 불렀습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겔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이들 구절에서 분명한 사실은 태고인들은 사람, 즉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이 동산을 적실 수 있는 ‘물’(the waters)과 ‘강’(rivers)을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물과 강으로 동산, 즉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하면서 말이지요.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 “garden,” they added the “waters” and “rivers” 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109. 비록 지혜와 지성이 사람한테서 보이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이들은 오직 주님께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이 에스겔을 보면 유사 표상들(similar representatives)을 통해 분명히 선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That although wisdom and intelligence appear in man, they are, as has been said, of the Lord alone, is plainly declared in Ezekiel by means of similar representatives: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47:1, 8-9, 12) Behold, waters issued out from under the threshold of the house eastward; for the face of the house is the east; and he said, These waters issue out to the border toward the east, and go down into the plain, and come to the sea, which being led into the sea,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which creepe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 up all trees for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s,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 8–9, 12)

 

여기서 주님은 ‘동쪽’(the east)과, 물과 강이 나오는 ‘성소’(the sanctuary)로 상징되는데요,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Here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east,” and by the “sanctuary,” whence the waters and rivers issued. In like manner in John:

 

1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going forth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of the river on this side and that, was the tree of life, which bare twelve [manner of] fruits, and yielded her fruit every month; and the leaf of the tree was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Rev.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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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9, AC.102-106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Verse 9,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 9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허락하시고, 그의 안을 동산 삼아 그 안에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감각과 지식의 나무들을 두셨습니다.

 

 

102. 나무(A tree)는 퍼셉션(perception)을 상징합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a tree desirable to behold)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truth), ‘먹기에 좋은 나무(a tree good for food)는 선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good),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감각적인 것, 즉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을 상징합니다. A “tree” signifies perception; a “tree desirable to behold,” the perception of truth; a “tree good for food,” the perception of good; the “tree of live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

 

 

103. 여기서 나무가 퍼셉션을 상징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 인간이 주제라면 그때는 달라지는데요, 주제에 따라 서술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rees” here signify perceptions is that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but it is otherwise when the subject is the spiritual man, for on the nature of the subject depends that of the predicate.

 

 

104. 오늘날에는 퍼셉션이라는 게 무엇인지(what perception is)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어떤 내적 느낌, 감각인데요,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를 아는 것(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입니다. 이는 태고교회에는 아주 잘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천사들의 경우, 그들은 이 퍼셉션이 매우 완벽한데요, 그들은 이 퍼셉션으로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와 그것이 주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서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퀄러티(the quality of anyone)를 단순한 그의 접근과 그가 가진 생각 하나만으로도 알며, 또 그에 관한 지식을 가질 정도입니다. 영적 인간(The spiritual man)은 퍼셉션은 전혀 없고, 대신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A dead man)은 이 양심조차 없지요. 많은 사람이 양심이라는 게 뭔지 모르며, 하물며 퍼셉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At this day it is unknown what perception is. It is 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 and it was very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perception is so perfect with the angels, that by it they are aware and have knowledge of what is true and good; of what is from the Lord, and what from themselves; and also of the quality of anyone who comes to them, merely from his approach, and from a single one of his ideas. The spiritual man has no perception, but has conscience. A dead man has not even conscience; and very many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and still less what perception is.

 

 

105.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이며, ‘동산 가운데(in the midst of the garden)는 속 사람의 의지 안(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말씀에서는 마음(the heart)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천사와 함께 주님의 주된 소유(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입니다. 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사람의 것인 양 여기저기 기술되고는 있지만, 사실 사람이란 아무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의지, 즉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람의 것이 아니며, 탐욕(cupidity), 사람들은 이걸 의지라고 하는데, 이 탐욕이 바로 사람의 것입니다.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는 데지요, 여기가 의지이며, 그리고 인간한테는 의지는 전혀, 대신 탐욕만 있을 뿐이므로, ‘생명나무는 참으로 주님의 자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랑과 신앙,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The “tree of lives”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in the midst of the garden” is 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 The will, which in the Word is called the “heart,” is 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 with man and angel. But as no one can do good of himself, the will or heart is not man’s, although it is predicated of man; cupidity, which he calls will, is man’s. Since then the will is the “midst of the garden,” where the tree of lives is placed, and man has no will, but mere cupidity, the “tree of lives” is the mercy of the Lord, from whom comes all love and faith, consequently all life.

 

 

106. 그러나 동산의 나무(the tree of the garden), 즉 퍼셉션(perception),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 즉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he tree of knowledge), 즉 감각적인 것, 그리고 단지 기억-지식일 뿐인 것에서 시작하는 신앙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But the nature of the “tree of the garden,” or perception; of the “tree of lives,” or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and of the “tree of knowledge,” or faith originating in what is sensuous and in mere memory-knowledge, will be shown in the following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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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8, AC.98-101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Verse 8,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 8절 속뜻

 

동산’은 지성, ‘에덴’은 사랑, ‘동방’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에덴동산’은 천적 인간의 지성을 말하며, 주님 자신이시고, 주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참된 지성은 참된 질서, 곧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98. 동산(a garden)은 지성(intelligence), ‘에덴(Eden)은 사랑을, ‘동방(the east)은 주님에 대한 상징이며, 그 결과 동방의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 eastward)은 천적 인간의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즉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지성을 말합니다. By a “garden” is signified intelligence; by “Eden,” love; by the “east,” the Lord; consequently by the “garden of Eden eastward” is signified 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which flows in from the Lord through love.

 

 

99.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생명, 즉 생명의 질서라는 것(Life, or the order of life)은 실제로는 주님이 신앙을 통해(through faith) 그의 이해, 이성 및 기억(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안으로 유입하고 계시는 것임에도 불구, 아직은 그의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싸우는 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때는 지성이라는 것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소유한 기억과 이성에 관한 것들로부터 말미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데요, 이때는 주님이 사랑과 사랑의 신앙을 통해(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그의 이해, 이성 및 기억 안으로 유입하시며, 이 경우,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싸움이 없으므로, 그는 이런 걸 실제로 그렇게 지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인간과 함께 바로 이 순간까지 거꾸로 된 순서였던 질서가 이제는 천적 인간과 함께 정상으로 회복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런 질서, 곧 인간(this order, or man)을 가리켜 동방의 에덴동산(a garden in Eden in the east)이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의미로는(In the supreme sense)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가장 내적 의미, 곧 범우주적 의미로는(In the inmost sense, 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 이는 주님의 나라(the Lord’s kingdom)이며, 그가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있게 될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때 그의 상태는 그 자신 천국 천사들과 함께 있는 상태이며, 마치 그들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은 세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그의 모든 사고와 사고를 이루는 생각들(ideas of thoughts),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들까지 모두 열린 상태, 심지어 주님으로부터 열린 상태(open, even from the Lord)이며, 이 모든 것과 함께 그 안에 천적이고 영적인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다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이 주님의 생명이 그로 하여금 퍼셉션(perception)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Life, or the order of life, with the spiritual man, is such that although the Lord flows in, through faith,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yet as his external man fights against his internal man, it appears as if intelligence did not flow in from the Lord, but from the man himself, through the things of memory and reason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But the life, or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is such that the Lord flows in 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and as there is no combat between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he perceives that this is really so. Thus the order which up to this point had been inverted with the spiritual man is now described as restored with the celestial man, and this order, or man, is call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the supreme sense, 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 is the Lord himself. In the inmost sense, 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 it is the Lord’s kingdom, and the heaven in which man is placed when he has become celestial. His state then is such that he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and is as it were one among them; for man has been so created that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may at the same time be in heaven. In this state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 and even his words and actions, are open, even from the Lord, and contain within the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for each one [of these] has the Lord’s life within it, which enables him to have perception.

 

 

100. 동산(a garden)은 지성을, ‘에덴(Eden)은 사랑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이사야에도 나옵니다. That a “garden” signifies intelligence, and “Eden” love, appears also from Isaiah: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51:3) Jehovah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he will make her wilderness like Eden, and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Jehovah; joy and gladness shall be found therein, confession and the voice of singing. (Isa. 51:3)

 

이 구절에서 ‘사막’(wilderness), ‘기뻐함’(joy)및 ‘감사함’(confession)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 즉 사랑 관련된 것들에 대한 표현이지만, ‘광야’(desert), ‘즐거워함’(gladness)및 ‘창화하는 소리’(the voice of singing)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즉 이해 관련된 것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전자는 ‘에덴’에, 후자는 ‘동산’과 관계가 있는데요, 이 선지자의 경우, 동일한 것에 관한 두 가지 표현, 즉 하나는 천적인 것,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에 대한 표현이 늘 따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the garden in Eden)의 더욱 깊은 의미는 10절의 이어지는 내용을 보시면 됩니다.In this passage, “wilderness,” “joy,” and “confession” are terms expressive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relate to love; but “desert,” “gladness,” and “the voice of singing,” of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belong to the understanding. The former have relation to “Eden,” the latter to “garden”; for with this prophet two expressions constantly occur concerning the same thing, one of which signifies celestial, and the other spiritual things. What is further signified by the “garden in Eden,” may be seen in what follows at verse 10.

 

 

101. 주님이 동쪽(the east)이심은 말씀 에스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That the Lord is the “east” also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43:1-2, 4) He brought me to the gate, even the gate that looketh the way of the east, and behold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came from the way of the east; and his voice was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the earth shone with his glory. (Ezek. 43:1–2, 4)

 

성전 건축 전, 표상교회인 유대 교회(表象, the representative Jewish church)의 기도 관습, 곧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던 거룩한 관습이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이 ‘동’(東, the east)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It was in consequence of the Lord’s being the “east” that a holy custom prevailed in the representative Jewish church, before the building of the temple, of turning their faces toward the east when they pr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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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7, AC.94-97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Verse 7,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 7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을 지으시되 그의 이해와 의지에 맞게 각각의 생명을 주십니다. 앞의 5, 6절이 이해의 생명에 관한 내용이라면, 이번 7절은 의지의 생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님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게 사랑의 생명을 불어넣으시는데, 그것이 바로 퍼셉션을 주시는 것이며, ‘생기(the breath of lives)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입니다. 이 퍼셉션으로 말미암아 겉 사람은 속 사람을 기꺼이 사랑하는 상태가 되며, 이때가 ‘살아있는’(alive) 상태이고, 이를 일컬어 ‘사람이 생령(a living soul)이 되니라’ 하신 것입니다.

 

 

94.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는 그의 겉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인데요, 이 겉 사람은 5절에,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사람이 아니었음(was not man)을 알 수 있습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는 그에게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주는 것이며,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man became a living soul)는 그의 겉 사람도 살아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To “form man, dust from the ground” is to form his external man, which before was not man; for it is said (verse 5) that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To “breathe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is to give him the life of faith and love; and by “man became a living soul” is signified that his external man also was made alive.

 

 

95.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생명(The life of the external man)을 다루고 있는데요, 앞 두 구절에서는 그의 신앙, 즉 이해의 생명을, 본 절에서는 그의 사랑, 즉 의지의 생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복종하려고도, 섬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계속해서 둘 사이엔 전투, 싸움이 있었으며, 그래서 겉 사람은 아직 사람(man)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천적 상태가 된 지금은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복종도 하고, 섬기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이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생명과 사랑의 생명으로 빚어지면서(being so rendered by) 말입니다. 이때 신앙의 생명은 그를 준비시키지만(prepares him), 그를 정말 사람이 되게 하는(causes him) 것은 사랑의 생명입니다. 생명을 삶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The life of the external man is here treated of—the life of his faith or understanding in the two former verses, and the life of his love or will in this verse. Hitherto the external man has been unwilling to yield to and serve the internal, being engaged in a continual combat with him, and therefore the external man was not then “man.” Now, however, being made celestial,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it also becomes “man,” being so rendered by the life of faith and the life of love. The life of faith prepares him, but it is the life of love which causes him to be “man.”

 

 

96.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이 표현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고대(ancient times)에는, 그리고 말씀에서는 ‘코’(nostrils, 콧구멍) 하면 향기, 곧 퍼셉션(perception)을 상징하는데요, 이 향기가 나는 건 무엇이든 맘에 드는, 괜찮은, 고마운 걸(whatever was grateful)로 이해했고, 그래서 여호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복적 표현, 곧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he smelled an odor of rest)라는 표현을 번제물들 및 여호와와 그의 나라에 대한 표현들 가운데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As to its being said that “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case is this: In ancient times, and in the Word, by “nostrils” was understood whatever was grateful in consequence of its odor, which signifies perception. On this account it is repeatedly written of Jehovah, that he “smelled an odor of rest” from the burnt offerings, and from those things which represented him and his kingdom; 

 

※ 예를 들면,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29:18)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29:25)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출29:41)

 

등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 관련된 것들을 여호와께서는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하시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여호와, 곧 주님의 기름 부으신 자(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를 가리켜 ‘콧김’(the breath of the nostrils)이라고 합니다. and as the things relating to love and faith are most grateful to him, it is said that “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Hence 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 is called the “breath of the nostrils” (Lam.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애4:20)

 

그리고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 친히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breathing on his disciples)라고 하심으로써 같은 걸 상징하셨습니다.And the Lord himself signified the same by “breathing on his disciples,” as written in John: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97. 생명(삶)을 ‘호흡’(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태고교회 사람들은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호흡(respiration)의 상태로 지각했기 때문인데, 이 호흡은 그들의 후손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지며 변화한 것입니다. The reason why life is described by “breathing” and by “breath” is also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perceived states of love and of faith by states of respiration, which were successively changed in their posterity.  

 

※ 여기 우리말로는 다 같이 ‘호흡’으로 번역할 수 있는 영어 표현들, ‘breathing’, ‘breath’ 및 ‘respiration’이 나오는데요, 그 차이를 찾아보니 제가 이해한 바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앞의 둘은 호흡, 숨에 관한 동사적, 명사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겠고요, 다만 들숨과 날숨, 폐 및 산소, 이산화탄소 등을 염두에 두면 되겠습니다. 맨 끝의 ‘respiration’은 온 세포의 호흡, 세포 단위의 숨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온몸으로 호흡하다, 느끼다’ 같은, 그런 겁니다.

 

이런 종류의 호흡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오늘날에는 이런 종류의 호흡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태곳적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매우 친숙했고, 저세상 사람들, 곧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들 역시도 그런데요, 이것이 바로 왜 그들이 영이나 생명을 ‘바람’(wind)에 비유했나 하는 이유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이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바로 이런 식으로 비유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Of this respiration nothing can as yet be said, because at this day such things are altogether unknown.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well acquainted with it, and so are those who are in the other life, but no longer anyone on this earth, and this was the reason why they likened spirit or life to “wind.” The Lord also does this when speak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in John:(주1)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voice thereof, and knowest not whence it cometh, or whither it goeth; so is every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John 3:8)

 

다윗도 그랬는데요. So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6) By the word of Jehovah were the heavens made, and all the army of them by the breath of his mouth. (Ps. 33:6)

 

29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29-30) Thou gatherest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29–30)

 

‘숨결, 기운’(the breath, [spiraculum])이라는 표현들을 신앙과 사랑의 삶(생명)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있음이 욥기를 보면 나옵니다. That the “breath” [spiraculum] is used for the life of faith and of love, appears from Job: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32:8) He is the spirit in man, and the breath of Shaddai giveth them understanding. (Job 32:8)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33:4) The spirit of God hath made me, and the breath of Shaddai hath given me life. (Job 33:4)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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