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7, AC.9701–9795

 

제단 (1-8절, AC.9713-9739)

성막의 뜰 (9-19절, AC.9740-9777)

등불 관리 (20-21절, AC.9778-9789)

 

9710.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사랑의 선으로 주님을 예배함(the worship of the Lord from the good of love)인데요, 이 예배를 제단(the altar)으로 상징하고 있고,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이 제단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worship of the Lord from the good of love. This worship is signified by “the altar” and is described in general by all things relating to the altar.

 

9711.그다음 다루는 주제는 가장 바깥 천국(the ultimate heaven)인데요, ‘(the court)로 표상, 설명하고 있습니다. Afterward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ultimate heaven, which is represented and described by “the court.

 

9712.끝으로 다루는 주제는 체어리티의 선(the good of charity)이며, 이를 통해 영적 천국(the spiritual heaven)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진리들(the truths of faith) 안에서 조명되고 있습니다. ‘감람유(the oil of olive)등불(the luminary)은 이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Lastly the subject treated of is the good of charity, through which the spiritual heaven is illumined by the Lord in the truths of faith; these things are signified by “the oil of olive” and by “the lu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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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9-17(D1)-주일예배(2504, 눅12,54-59),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며,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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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hWBCaaU_YM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며,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5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58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 하리라 하시니라 (눅12:54-59)

 

 

하나님의 신성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흘러들어온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쪽이어야 하며, 자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인 것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능력이 사람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며, 사람이 악을 제거하는 만큼 그 능력은 비록 주님의 것이지만 사람의 것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for the Divine proceeding which is “the Father in the heavens,” flows in with the evil equally as with the good, but the reception of it must be on man’s part, yet not on man’s part as from man, but as if from man, for the ability to receive is given to man continually, and it also flows in to the extent that man removes the evils that oppose, and does this also from the ability that is continually given, the ability itself appearing to be man’s, although it is of the Lord. (AE.644:23)

 

 

※ 오늘로 누가복음 12장을 마칩니다. 지난 7월 30일 주일부터 시작, 오늘까지 8주에 걸쳐 다루었는데요, 늘 이렇게 원고를 프린트하여 나누어드렸으니 수시로 다시 여러 번 읽으시고 확실히 자기 걸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겉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은 이 속뜻 설교를 결코 한번 듣고 완전히 자기 걸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렇게 속, 곧 내적(內的, internal)으로 말씀 읽기를 연습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도 천사들처럼 내적으로, 영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이 세상과 세상 모든 일, 곧 주변 일상을 비롯,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에서 한발 물러나 그 영적 의미들을 천국, 천사들 관점, 곧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서 우리 모두 세속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을 향해 우리를 정결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세상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복음서에는 외식하는 자에 대한 에피소드가 자주 나옵니다. 외식(外飾)이라는 말은 한글 성경의 번역이고, 영어 성경 표현은 위선(僞善)입니다. 위선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겉으로는 진실한 듯하나 속으로는 속이는 것, 겉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증오하거나 멸시하는 것이지요. 복음서에 위선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들은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왜곡, 말씀 속에 있는 내적이고 거룩한 것들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겉으로만 경건할 뿐, 속에는 악의와 교활한 속임수가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과 같다 비난하셨던 것입니다. 겉은 그럴듯하게 꾸몄지만 그 속은 죽은 자들의 해골과 뼈로 가득한 무덤처럼 말이지요. 교회의 교리가 잘못될 경우, 그 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들 같은 위선자가 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공간 안에 있으면 누구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 여기 ‘감염(感染)이라고 했는데요, 출애굽, 즉 애굽을 나오다, 애굽에서 출발하다 하는 출애굽 모든 여정은 그 속뜻으로는, 악과 거짓에 감염된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 천국을 향해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자, 그렇다면 참된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위선자가 아닐까요? 비록 참된 신앙 안에 있다 하더라도 거듭나기 전에는 위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의 영적 상태에 따라 누구나 조금씩은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위선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이고, 거기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하면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한 각 사람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54절과 55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5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구름이 서쪽에서 일면 소나기가 온다고 합니다. 이는 주님 활동하신 유대 땅의 지형적 특성 때문인데요, 그러나 그 속뜻으로도,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사랑이 없는 때, 즉 교회의 마지막 때를 나타내며, 또 구름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가리키고, 소나기는 진리를, 그러므로 구름이 서쪽에서 일면 소나기가 온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께서 말씀의 진리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절에는 남풍이 불면 심히 더울 거라는 것 역시 그 지역 지형적 특성이지만, 역시 그 속뜻으로도, 남풍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선을 뜻하며, 그러므로 남풍이 불면 덥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의 선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합해 보면, 이 말씀은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이 말씀의 진리와 선으로 오신다는 뜻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자아의 욕망을 좇을 때 교회는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 신앙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서지 않으면, 석양에 해 기울듯 교회 안에는 사랑이 식어갑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오셔서 타락한 교회를 정리하시고, 새로운 교회를 여시지요. 교회는 세상의 심장과 폐와 같아서 한순간도 없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말씀의 진리와 선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소나기는 바로 그 진리이고, 남풍은 그 선을 뜻합니다.

 

서쪽에서 구름이 일면 소나기가 올 것을 아는 것처럼 진실한 신앙인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자기 안의 악과 거짓에 맞서 싸웁니다. 마치 노아 시대에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이 세상을 덮은 거짓의 홍수와 맞서 싸우듯 그렇게 싸웁니다. 진실한 신앙인들은 그런 방법으로 시험을 딛고 한 단계 한 단계 거듭납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 내면의 교회에 오신 주님, 자신들을 찾아오신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해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 644번 글 20번 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면의 악과 거짓으로 인해 눈이 어두운 자들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주님의 임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럴 경우,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56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그래서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한탄하신 것입니다. 시대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생각할 때는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외부의 교회든 내면에 있는 교회든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는 누구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때는 영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영이 순수하다는 것은 진리를 위해 진리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해 마지막 때가 되면 신앙인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타인의 판단을 믿습니다. 자신의 순수한 영으로 진리를 바라보지 않고 타락한 교회의 교리를 통해 진리를 바라보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말씀에서 ‘베드로’는 교회의 신앙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는 진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부터 진리를 생각하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교회의 마지막 때 사람들은 스스로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 즉 잘못된 교리를 통해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신앙인들이 스스로 진리를 판단하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자유이며,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은 노예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위선자가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판단으로 진리를 믿을 수 있을까요?

 

58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주님께서는 그 대답으로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글 성경 번역이고, 영어 성경의 번역은 이렇습니다. ‘네가 원수와 함께 행정관에게 갈 때 길에서 근면하여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넘겨 옥에 갇히지 않도록 하라’입니다. 말씀에서 ‘감옥에 갇히는 것’은 신앙인들이 진리와 선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악과 거짓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가 있어야 악과 거짓을 물리칠 수 있는데 진리가 없으니 악과 거짓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의 삶이 아니라 죽은 자의 삶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길에서 근면하라, 즉 진리 안에서 근면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 근면한 것일까요? 진리가 명령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진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9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 하리라 하시니라

 

말씀에서 ‘갚는 것’은 진리를 가지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주님 앞에 큰 빚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지고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깨닫고 고쳐나간다면 그것은 주님의 빚을 갚는 일이며,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한 푼도 남김없이 갚으라 하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교회가 아무리 죄를 짓더라도 그것을 허용하십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악이 선을 넘게 되면, 다시 말해서 그대로 두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 같으면 지체 없이 오셔서 낡은 교회를 폐하시고 교회 안의 남은 자를 데리고 새 교회를 여십니다.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오랜 섭리이며 방법입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 낡은 교회를 폐하시고 새 교회를 세우시는 이 섭리는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신앙인들이 주님의 질서에 반하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어느 정도는 허용하시지만, 도를 넘으면 직접 그의 내면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임재하실 때 진실한 사람들은 주님을 받아들여 주님과 함께 내면의 악과 거짓을 몰아내는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한 번 더 거듭납니다. 반대로 진리보다는 세상에 뜻을 둔 위선자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험에서 이길 수 없으며 결국 점점 더 깊이 악의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주님은 위선자가 되기 쉬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첫째는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겉 사람의 자아로부터 진리를 바라보지 말고 속 사람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 있으며, 그를 붙잡고 있는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리 안에서 근면하라 하십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진리 안에서 근면한 것은 진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고 진리에 합당한 일은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게으름 부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진리의 명령 앞에서 게으름을 부릴 때 어둠이 내려앉는 것처럼 악하고 거짓된 것이 삶 가운데 은밀하게 내려앉습니다. 신앙인들은 그렇게 해서 지옥에 갇히게 되는데요,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근면해야 합니다. 항상 속 사람으로부터 진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3)

 

아멘

 

 

 

원본

2020-09-27(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9-1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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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6, AC.9585–9700

성막 (1-37절, 장 전체, AC.9593-9692)

 

9592.이 장에서는 성소와 장막에 의해서는 이층천, 즉 중간 천국이, 그리고 그 안에 이들 제작된 것들에 의해서는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이 표상되고 있으며, 이어 성소와 지성소, 즉 증거궤 사이 휘장(the veil between the habitation and the ark of the testimony)에 의해서는 이 천국과 가장 내적 천국(the inmost heaven)을 연결하는 중간 천국이 표상되고 있습니다. In this chapter the second or middle heaven is represented by the habitation and the tent; and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therein are represented by the things of which these were constructed. And afterward the intermediate that unites this heaven and the inmost heaven is represented by the veil between the habitation and the ark of the testi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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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5, AC.9443–9584

성소를 지을 예물 (1-9절, AC.9371-9483)

증거궤 (10-22절, AC.9484-9525)

진설병을 두는 상 (23-40절, AC.9526-9577)

 

9455.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성막(聖幕, the tabernacle)과 그 안에 있는 상들, 그리고 아론의 의복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the collection)인데요, 거기다가 증거궤(證據櫃, the ark), 진설병을 위한 상(陳設餠, the table for the bread), 그리고 등잔대(燈盞臺, the lampstand)를 만드는 것(the construction)도 포함입니다. 이것들은 주님이 계신 천국들, 그리고 천적이고 영적인(天的, 靈的,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모든 것을 표상하는데요(表象, represented), 이것들은 모두 그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들이지요. 성막은 천국 그 자체를 표상합니다. 그 안의 증거궤는 가장 내적 천국을, 궤 안에 있는 언약의 돌판(the testimony or law)은 주님을, 상 위 진설병과 등잔대는 천적인 것들을, 아론의 의복은 영적인 것들을 표상하며, 이들은 모두 천국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In this chapter is described the collection that was made for the tabernacle, for the tables therein, and also for the garments of Aaron; likewise the construction of the ark, of the table for the bread, and of the lampstand; by which were represented the heavens where the Lord is, and all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which are from the Lord therein. By the habitation was represented heaven itself; by the ark in it, the inmost heaven; by the testimony or law in the ark, the Lord; by the breads of faces upon the table, and by the lampstand, the celestial things; and by the garments of Aaron the spiritual things, which are from the Lord in the hea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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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4, AC.9363–9442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다 (1-11절, AC.9371-9412)

시내산에서 사십 일을 있다 (12-18절, AC.9413-9437)

 

9370.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천국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 및 그 말씀의 본성(what is the nature of it), 곧 말씀은 속뜻으로나 겉뜻으로나 신성하며(it is Divine), 말씀을 통해 주님과 사람 간 결합이 있다는 사실들입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Word given by the Lord through heaven; what is the nature of it; that it is Divine in both senses,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and that through it there is conjunction of the Lord wit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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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 것처럼,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사람들은 특별히 무슨 신학교육 같은 거를 받지 않아도 주님으로부터 천사들처럼 퍼셉션(perception)이라는 것을 받아 모든 걸 통찰, 지각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대에는 주님에 관한 진리들을 오늘날처럼 신학적 교리로 정돈하는 걸 무척 꺼리며 삼가던, 불편해 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는 예를 들면, 선하고 착한 사람들한테 주님을 생활과 삶으로 보여주지는 않고, 대신 교리교육으로만 가르치려 할 때, 그들이 낯설어 하고 힘들어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 그 시대에 벌써 주님에 관한 진리들을 수집, 체계화된 교리로 정돈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요, 이들이 바로 에녹이라 하는 사람들, 혹은 교회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인류는 나중에는 결국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교리로 주님과 연결될 것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므로 그들을 잠시 따로 떼어 보관하시는데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말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4)

 

의 배경, 속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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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3, AC.9239–9362

 

공평에 관한 법 (1-9절, AC.9247-9270)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10-13절, AC.9271-9284)

세 가지 절기에 관한 법 (14-19절, AC.9285-9301)

명령과 약속 (20-33절, AC.9302-9362)

 

9246.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교리에 관한 거짓들, 그리고 삶에 관한 악들을 피하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 교리에 관한 진리들, 그리고 삶에 관한 선들이 심어지고,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에 속한 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In this chapter the subject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shunning of the falsities of doctrine and of the evils of life; and that when this is done, truths of doctrine and goods of life are implanted, and through these the man of the church is regenerated by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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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2, AC.9112–9238

 

배상에 관한 법 (1-15절, AC.9124-9186

도덕에 관한 법 (16-31절, AC.9187-9231)

 이 절 넘버링은 현 성경 넘버링, 원본은 히브리 성경 넘버링을 따름

 

9123.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신앙의 진리와 체어리티의 선(the truth of faith and the good of charity)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해진 상처(injuries)와 그 수정(amendment), 회복(restoration), 그리고 그러한 상처가 소멸될 때 필요한 도움(aid)입니다. 그 후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다루며, 끝으로 체어리티의 선 안에 있을 때, 즉 사람이 선을 행할 때, 그 사람의 삶(생명)의 상태를 다룹니다. The subject treated of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injuries occasioned in various ways to the truth of faith and the good of charity, and their amendment and restoration; also the aid to be brought should they be extinguished. Afterward instruction in the truths of faith is treated of; and lastly, the state of a man’s life when he is in the good of 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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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1, AC.8958–9111

 

종에 관한 법 (1-11절, AC.8972-9005)

폭행에 관한 법 (12-27절, AC.9006-9063)

임자의 책임 (28-36절, AC.9064-9097)

배상에 관한 법 (37절, AC.9098-9103)

 

※ 37절을 21장에 포함시킨 것은 히브리 성경을 따른 것입니다. KJV에서는 22장 1절입니다.

 

8970.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신앙의 진리나 체어리티의 선(the truth of faith or the good of charity)을 해치거나 파괴하는 사람들에 관한, 즉 벌은 무엇이고, 회복은 무엇인지(what is the penalty; and what the restoration)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종과 관련된 판결이나 법, 동료나 종에게 가한 사망이나 상해, 뿔로 받는 소와 구덩이와 관련된 판결이나 법에 들어있습니다. In this chapter in the internal sense the subject treated of is those who injure or destroy, in themselves or in others, the truth of faith or the good of charity; what is the penalty; and what the restoration. Such things are here involved in the judgments or laws relating to servants, to the death or injury occasioned to companions or to servants, also relating to oxen that strike with the horn, and to a pit.

 

8971.말씀의 거룩함, 아니 지극히 거룩함(most holy)은 교회 안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신앙의 진리 안에 있고, 그에 따른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인정뿐 아니라 지각도(not only acknowledged, but is also perceived) 하는데요, 말씀을 읽을 때 그들은 거룩함에 대한 생각 가운데 계속 있기(continually kept in the idea of what is holy) 때문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신앙의 진리 안에도, 더욱 그에 따른 삶 가운데에도 있지 않은 사람들은 말씀 안의 그 어떤 거룩함도 인정은 고사하고 지각조차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읽을 때 기록된 것 말고는 다른 더 깊은 것은 못 보는데요, 이들은 마음속으로는 말씀의 거룩함을 부인하고, 속으로 말하길 인간의 글이 더 낫다, 문체에 관한 한 솔직히 사람들이 쓴 글이 더 멋지지 않냐? 합니다. 이런 사실을 저는 저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생생하게 알게 되었는데요, 그들은 생전에 말씀은 신성을 통해 감동되었다는 사실을 속으로 부인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후 거기서 말씀은 그 일점일획에조차(as to every jot and smallest point) 거룩하고 신성함으로 충만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것이 말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지 경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은 더 놀라운 말들을 듣고, 또 그 실상을 보았는데요,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에는 글자 상으로는 안 보이는 속뜻, 영적인 뜻이 있으며, 사람이 말씀을 읽을 때, 천국 천사들은 바로 이 속뜻과 함께한다는(this sense of the Word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런 사실을 보았으므로 그래서 인정은 했지만, 그러나 자기들은 세상에 있을 때 이런 사실을 몰랐으며, 그러므로 자기들은 비난에서 자유로운 거 아니냐는 거였습니다만,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이들은 살아생전, 그 어떠한 양심의 제약도 없이 그저 자기들이 좋아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왔고, 그 결과 마음속으로 신(the Divine), 천국과 지옥, 죽음 이후의 삶, 그리고 신앙 관련 다른 모든 문제를 부인해왔으며,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말씀의 거룩함을 그동안 모르고 살아오게 한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신앙의 진리들, 그리고 그에 따른 삶 가운데 있어 온 모든 사람은 말씀의 거룩함을 붙들고, 그리고 또한 말씀을 읽는 동안, 과연 그렇다는 것을 속으로 지각해 오고 있었음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살아온 원인이 말씀이 아닌, 그들 자신에게 있었음을 확실하게 인식했습니다. 선한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 내면이 천국을 향해 열려 있어 말씀의 거룩함이 천사들로부터 흘러 들어오지만, 반면, 악한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 내면이 천국을 향해서는 닫혀 있고, 대신 지옥을 향해 열려 있어 그 반대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Word is holy, nay, most holy, is known to everyone within the church. This is not only acknowledged, but is also perceived, by those who are in the truths of faith and in a life according to them, for when reading the Word they are continually kept in the idea of what is holy. But those who are not in the truths of faith and in a life according to them do not acknowledge, still less perceive, anything of holiness in the Word. When these persons read the Word, they do not see anything higher in it than in any other writing. And they who in their hearts deny the holiness of the Word also say to themselves when they read it, that the writings of men are finer, because insofar as regards the literal sense they are composed in a finer style. This has been shown me by living experience with regard to those in the other life who in their hearts have denied that the Word has been inspired by the Divine. But when they were told that the Word is holy and Divine as to every jot and smallest point in it, they stood amazed, and marveled whence this could be. And when they were told further, and also shown to the life, that all things which are in the Word contain in them a spiritual sense which does not appear in the letter, and that this sense of the Word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when the Word is being read by man, they then acknowledged it because it was shown; but they said that they did not know this in the world, and that because they did not know it, they are free from blame. But when these same persons were examined, it was observed that they had lived just as they liked, without any restraints from conscience, and had therefore at heart denied the Divine, heaven and hell, the life after death, and all other matters of faith, and that this was the cause of their not having acknowledged the holiness of the Word. And it was further shown that all those who have been in the truths of faith and in a life according to them, have held the Word to be holy, and have also while reading it perceived in themselves that it is so. From this they were convinced that the cause was not in the Word, but in themselves. For with those who are in a life of good the interiors are open into heaven, whence the holiness of the Word flows in from the angels; whereas with those who are in a life of evil the interiors are closed toward heaven, but are open into hell, whence there flows in the contrary.

 

[2] 이 장에 나오는 남종, 여종, 그리고 소에 관한 판례나 율법(the judgments or laws)을 예로 들어 보지요. 악한 삶 가운데 있어 말씀의 거룩함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런 판례나 율법 그 어디에 무슨 신성(Divine)이 있느냐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는 남종은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갈 것이요, 그의 상전은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을 것이요, 그에 따라 그는 그를 종신토록 섬길 것이라는 판례, 매를 맞은 남종이 하루나 이틀을 연명하면, 그를 친 그의 상전은 형벌을 면할 것이라는, 그 이유는 그는 상전의 재산이기 때문이라는 판례, 상전에 의해 눈이나 이를 잃을 경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 남종은 놓임을 받을 것이라는 판례, 뿔로 받는 소는 돌로 쳐서 죽일 것이라는, 그리고 그 밖에도 거기 언급된 다른 많은 판례 등이 있지요. 속으로 말씀의 거룩함(the holiness of the Word)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은 말씀이라 할 가치가 없으며,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구술하신(dictated by Jehovah Himself) 것이라고 하기에는 더더욱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에 나오는 다른 모든 것 역시, 그게 역사적이든 예언적이든 똑같이 여기는데요, 그들이 그렇게 여기는 이유 역시 같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악한 삶 때문에 천국이 그들에게 닫혀 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뒤집힌 지각(a contrary perception), 거꾸로 된 지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Take for example the judgments or laws in this chapter about menservants, maidservants, and oxen. They who deny the holiness of the Word, because they are in a life of evil, will say that in these judgments or laws they do not see anything Divine—as when it is said that a manservant who does not desire to go away free should be brought to a door or a doorpost, and his master should bore through his ear with an awl, and accordingly he should serve forever; also that if a manservant who is smitten shall live a day or two, his master who smote him shall not be punished, because he is his silver; as also that a manservant should be free for the loss of an eye or a tooth; and that an ox striking with the horn should be stoned, besides the other things there mentioned. They who in their hearts deny the holiness of the Word regard these things as not worthy of the Word, and still less worthy to be dictated by Jehovah Himself on Mount Sinai; in like manner do they regard all other things that are in the Word, whether historical or prophetical. But the reason why they so regard them is that heaven is closed to them on account of their life of evil, consequently they have a contrary perception. The case is quite different with those who are in a life of good.

 

[3] 천국에서 유입되는(which flows in from heaven) 말씀의 거룩함이 말씀 어디에서 오는 건지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리고 보여드린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을 가지고 분명한데요, 즉 말씀에만 이 속뜻이라는 게 있으며, 이 속뜻은 천국에 속한, 즉 영생에 관한 그런 것들을 다룬다는 사실, 그리고 가장 내적으로는(內的, inmostly) 오직 주님에 관한 것만, 그래서 거룩한 것, 그 자체로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것들(of holy things, nay, of Divine things themselves which are most holy)을 다루며, 또 이 속뜻이라는 것은 사람이 말씀을 읽는 동안 그와 함께한 천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거, 결과적으로 신앙과 체어리티의 삶을 사는 사람들한테 거룩함에 관한 인플럭스와 그에 관한 퍼셉션(an influx of holiness, and a perception of it)이 함께하는 것은 이 속뜻으로 말미암음이라는, 이상의 사실들이 말씀의 속뜻과 관련, 모두 지금까지 말씀드려 왔고, 보여드려 온 것입니다. 이 장에 나오는 남종과 여종, 소에 관한 판례나 율법에 대한 말씀인데요, 속뜻으로는 이 안에 다음과 같은 것들, 곧 신앙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그리고 신앙과 체어리티(charity)에 속한 것들과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에 속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파괴하려는 자들에 관한, 그리고 가장 깊은,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을 직접 그 상해와 파괴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자들에 대한 신성한 질서, 주님의 질서(Divine order)에 관한 것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판례들 안에 얼마나 거룩한 것들이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글자 상으로는(in the letter) 이런 것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Whence comes the holiness of the Word which flows in from heaven, is evident from all that has hitherto been said and shown about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namely, that the Word alone has an internal sense, and that this sense treats of such things as belong to heaven, which are the things of eternal life, and that inmostly it treats of the Lord alone, thus of holy things, nay, of Divine things themselves which are most holy; and that this sense is for the angels who are with man while the Word is being read, consequently that there is from this source an influx of holiness, and a perception of it, with those who are in the life of faith and charity. As regards the judgments or laws in this chapter about menservants, maidservants, and oxen, these contain in the internal sense such things as are of Divine order with respect to those who are in the truth of faith, and also with respect to those who injure or destroy the things which belong to faith and charity, and those which belong to love to the Lord; and in the inmost sense, those things which would injure or destroy the Lord Himself. From this everyone can see how holy in themselves these judgments are, however little they appear so in th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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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0, AC.8853–8957

 

십계명 (1-17절, AC.8860-8925)

백성이 두려워 떨다, 제단에 관한 법 (18-23절, AC.8926-8946)

 

 

8859. 이 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 속뜻으로는 주님의 영적 교회에 속한 사람들한테 있는 선 가운데 심어질 신적 진리들(the truths Divine which are to be implanted in the good with those who are of the Lord’s spiritual church)입니다.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은 바로 그 진리들을 가리킵니다. 장 말미에 이어지는 희생제물들과 제단에 관한 계명들은 예배에 속한 외적 진리들(the external truths which are of worship)을 가리킵니다. In this chapter the subject treated of in the internal sense is the truths Divine which are to be implanted in the good with those who are of the Lord’s spiritual church. The ten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 denote these truths. The commandments concerning sacrifices, and concerning the altar, which follow in this chapter, denote the external truths which are of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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