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AC.36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한 사람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단지 생각이라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주님을 향한 생각이라고 여기며, 또 어떤 이들은 신앙의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신앙 교리에 포함된 모든 것을 아는 것과 인정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특히 그 교리가 가르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 교리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것, 곧 사람이 반드시 순종해야 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love to the Lord)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love toward the neighbor)입니다. 사람이 이 사랑 안에 있지 않다면, 그는 신앙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 주님은 너무도 분명하게 가르치셔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입니다. They who have separated faith from love do not even know what faith is. When thinking of faith, some imagine it to be mere thought, some that it is thought directed toward the Lord, few that it is the doctrine of faith. But faith is not only a knowledge and acknowledgment of all things that the doctrine of faith comprises, but especially is it an obedience to all things that the doctrine of faith teaches. The primary point that it teaches, and that which men should obey, is love to the Lord, and love toward the neighbor, for if a man is not in this, he is not in faith. This the Lord teaches so plainly as to leave no doubt concerning it, in Mark: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12:29-31) The foremost of all the commandments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therefore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oremo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namely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ark 12:29–31).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앞의 계명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first and great commandment)이라 하시며,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on these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라고 하십니다 (마22:37-40).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law and the prophets)는 신앙의 보편적 교리이며, 말씀 전체를 뜻합니다. In Matthew, the Lord calls the former of these the “first and great commandment,” and says that “on these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Matt. 22:37–41) The “law and the prophets” are the universal doctrine of faith, and the whole Word.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해설
AC.36은 매우 직접적인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한 사람들은 신앙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상당히 강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스베덴보리가 무엇을 ‘신앙’이라고 부르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는 어떤 교리를 머리로 알고 참이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신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여러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을 종교적인 생각이라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올바른 교리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문은 신앙이 신앙 교리에 포함된 것들을 ‘아는 것과 인정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라고 말합니다. 즉 ‘앎’과 ‘인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스베덴보리는 ‘특히 그 교리가 가르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순종’은 AC.36을 이해하는 중요한 말입니다. 신앙은 머릿속에 있는 교리로 끝나지 않고, 그 교리가 가르치는 것을 실제 삶에서 따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 질문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이란 결국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인가?’ AC.36은 곧바로 그 오해를 막아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순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수많은 규칙을 외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교리가 가장 먼저 가르치며 사람이 순종해야 할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순종이다’라는 말을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이 신앙이다’라는 뜻으로만 이해하면 부족합니다. 어떤 순종인가가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이 사랑 안에 있지 않다면 그는 신앙 안에 있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랑과 분리된 신앙을 독립적인 영적 실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AC.36의 논점은 신앙의 고백이나 교리의 인정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랑과 삶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신 사랑을 삶에서 완전히 떼어 놓는다면,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온전한 신앙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AC.36은 스베덴보리 자신의 철학이나 신학 체계를 먼저 제시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막12:29-31에서 주님은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로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을, 둘째로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시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스베덴보리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신앙의 중심에 두는 직접적인 근거입니다.
이어 마22에서도 같은 두 계명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더욱 중요한 말씀이 덧붙습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가 ‘신앙의 보편적 교리이며 말씀 전체’를 뜻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성경의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두 항목을 골라 중요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가 달려 있는 중심 원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는 중요하지 않고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도 다릅니다. 오히려 참된 교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교리는 무엇이 참인지 가르치고,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교리를 아무리 정확하게 알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AC.36의 기준에서는 신앙의 본래 목적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사랑을 강조한다고 해서 진리를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AC.36 자체가 ‘신앙의 교리’와 그것이 ‘가르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에 순종할지를 알려면 먼저 무엇이 참인지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대립시키는 것은 ‘교리냐 사랑이냐’가 아니라 ‘삶과 분리된 교리적 신앙’과 ‘사랑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신앙’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렇게 보면 앞의 AC.35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35에서는 이해가 하늘을 향하면서도 의지가 그 반대 방향을 향할 수 있는 인간의 분열을 다루었습니다. AC.36에서는 그 문제가 신앙의 언어로 다시 나타납니다. 이해로 교리를 알고 인정하는 것과 실제로 그 교리가 가르치는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 갈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36은 우리에게 단순히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고만 묻지 않습니다. ‘당신이 믿는다고 하는 것이 당신의 사랑과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라고도 묻습니다.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빠진 신앙은 아무리 많은 지식과 올바른 고백을 가지고 있어도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신앙의 본질에는 아직 이르지 못합니다.
결국 AC.36에서 신앙은 머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알고 인정한 진리가 사랑과 만나고, 그 사랑이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날 때 신앙은 신앙답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신앙을 사랑에서 분리하는 순간 신앙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중심에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두 큰 계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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