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결혼 이야기’ (2023/2/4)

 

오늘은 오전 10시, 멀리 대전 도안 어느 웨딩홀에서 지인 자녀의 결혼식이 있어 부부 동반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잠깐 이 ‘결혼’, 특히 ‘천국 안의 결혼’(Marriages in Heaven)에 대하여 몇 가지 살피는 것으로 오늘은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래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10,837개의 글로 주석한 창세기, 출애굽기 각 장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특별히 따로 다룬 여러 다양한 주제 가운데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들의 세계’ 관련 이슈들만 따로 추려 책 한 권으로 펴낸 ‘천국과 지옥’ 40장 ‘천국 안의 결혼’(366-386)에 나오는 내용이며, 김은경 역입니다.

 

 

366. 천국은 인류로 구성되고, 따라서 천사들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창조되었고, 둘은 서로에게 속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양쪽 성에 선천적인(innate)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과 마찬가지로 천국에도 결혼이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결혼은 지상의 결혼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 따라서 이제 천국에서의 결혼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지상의 결혼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점이 비슷한가를 설명하겠다.

 

367. 천국에서의 결혼은 두 마음이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먼저 이 결합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마음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력(the understanding)이고, 하나는 의지(the will)이다. 이 두 부분이 하나로 움직일 때 한 마음이라고 한다. 천국에서는 남편이 사고력이라고 하는 부분의 역할을 하고, 아내는 의지라 하는 부분의 역할을 한다. 사람의 내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이 결합이 몸에 속하는 더 낮은 차원으로 내려오면 사랑으로 느껴지고 지각되는데 이 사랑이 바로 결혼애(結婚愛, marriage love)다. 이것은 결혼애가 두 마음이 하나 되는 결합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국에서는 이것을 함께 산다고 하고, 둘은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결혼한 한 쌍을 둘이 아니라 한 천사라고 한다.

 

369.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누구나 사고력과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남자는 사고력이 지배적이고(predominate), 여자는 의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지배적인 것이 사람의 특성을 결정한다. 하지만 천국의 결혼에는 지배적인 것이 없다. 아내의 의지는 실제로 남편의 것이 되며, 남편의 사고력은 아내의 것이 된다. 이것은 두 사람이 상호적으로 서로 상대방과 똑같이 의도하고 생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하나로 결합된다. 이 결합은 실제적인 결합니다. 그것은 아내의 의지가 남편의 사고력 안으로 들어가고, 남편의 사고력이 아내의 의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특히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이루어진다. 이것은 앞에서도 되풀이해 말했지만,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각과 애정을 나누기 때문인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그것이 더 특별히 이루어진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천국에서 결혼을 이루고, 결혼애를 낳는 것인 마음의 결합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 자기 것이 상대방의 것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82. 천국의 결혼과 지상의 결혼이 다른 점은 지상 결혼의 목적 중 하나는 자녀를 낳는데 있지만 천국 결혼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천국에서는 자녀 대신 선과 진리를 낳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설명했듯 천국 결혼이 선과 진리의 결혼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결혼에서는 무엇보다도 선과 진리, 그리고 그 둘의 결합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 결혼에서 늘어나는 것도 선과 진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나오는 ‘출생’과 ‘자손’은 영적 출생과 자손, 즉 선과 진리의 늘어남을 의미한다. ‘부모’는 생산하는 주체인 선에 결합된 진리를 의미하고, ‘아들’과 ‘’은 불어난 진리와 선을, ‘사위’와 ‘며느리’는 그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하는 등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천국 결혼은 땅 위의 결혼과 같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천국에서의 결혼은 영적이기 때문에, ‘혼례’(marryings)라 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선과 진리의 결합에서 오는 마음의 결합이라고 해야 한다. 반면 땅 위의 결혼은 영적 결합뿐 아니라 몸의 결합도 되기 때문에 혼례다. 천국에 혼례가 없기 때문에, 그곳의 배우자들을 남편과 아내라 하지 않고, 두 마음이 하나로 합해진다는 천사들의 개념에 따라 ‘서로에게 속한다’는 뜻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를 보면,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에 대한 아래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20:34-36)

 

 

어휴... 총 21개 글에서 좀 추리는 것도 쉽지가 않군요. 글 뒷부분엔 지상의 결혼 관련, 여러 이슈들도 살짝살짝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간음, 불륜이라든지, 이혼이나 일부 다처제 같은... 다 다룰 수 없어 따로 보내드리는 스캔 pdf 파일을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에 비추어 한 가지 분명, 또렷해지는 사회적 이슈가 저 개인적으로는 있었습니다. 바로 ‘성평등’이라든지 ‘성전환’ 같은 것인데요...

 

당사자에겐 미안한(?) 말씀이지만, 아무리 육체에 무슨 손을 대어 성전환을 하신들 사후 영계에서는, 곧 그 사람의 영은 누구나 영원히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자기는 육체로는 여자인데, 분명 그 성 지향성이 남성성이 강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 항의하실 수는 있겠으나... 네,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그저 주님과 개인적으로 해결을 보셔야만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선과 진리이신 분, 이 둘이 결혼, 하나의 신성으로 계신 분입니다. 주님의 이 신성으로부터 세상 만물이 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 등의 대칭구조로 창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무슨 소위 ‘성평등’이라는 중간지대(?)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런 일에 매진하느라 귀한 은사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그만... ㅎㅎㅎ

 

그럼, 주말 잘 보내시고, 내일 복된 주일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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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를 매일 한 편씩 다루는 이유’ (2023/2/3)

 

즉, 서울 새 교회에서는 매주 한 편씩 다룬 주일설교 수백 편을 저는 매일 한 편씩 쉬지 않고 다시 다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래전 읽은, 아주 특별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제목이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라는 책인데, 대한민국 어느 신대원 전도사가 중국 모처에 가서 탈북 형제자매 수백 명을 모아 성경통독을 통해 그들 의식 속 인 박힌 주체사상을 깨부수고, 복음의 전사들로 새 무장시켜 다시 북한으로 들여보냈다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내용이었지요.

 

한 15년 전 읽은 내용이라 지금은 어렴풋이만 기억나지만, 한 가지 아주 특별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내용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위 도입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들이 힘썼던 훈련 프로그램은 아주 지극히 단순한 것으로서, 모처 숙소라는 곳에 십수 명씩 숨어지내며, 그저 새벽부터 밤까지 카세트를 틀고, 주구장창 성경통독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사람들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거의 없어 모든 학습을 거의 ‘세뇌’라는 방식으로 해야만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무슨 저명한 설교가가 와서 그럴듯한 감성, 이성을 동원하며, 무슨 3대지 설교다 뭐다 이런 걸 하면 그들은 당췌 거이 무슨 소리냐고...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고 불평하지만...

 

자기들 중에 누가 나서서 말씀을 인용하며, ‘자,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시지 않았습네까?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합네다.’ 하면, 다들 ‘옳소!’ 하며 박수치고 환호하고 그런답니다...

 

놀라운 것은,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들어왔던 주체사상이라 그 머릿속에 아예 인이 박힌 사상인데도, 그런데 이 단순무식(?)해 보이는 성경통독이 그걸 깼다는 말입니다. 밤낮없이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던 성경통독으로 말입니다!

 

대전한밭제일교회를 담임하시던 이영환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지금은 원로로 섬기시지만 오히려 현역 때보다 더 수고하시는 사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4014 사역입니다. 3일 금식, 4일 보식을 열네 번, 그러니까 열세 번 하고 하루 더 하면 40일 금식하는 것이라는...

 

이 사역은 금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스피릿을 통해 목회자 본인의 근본적 변화와 그에 따른 목회 현장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이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표어 하나가 있는데, 바로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이었고, 저 역시 이 운동의 1기생으로서 이 표어는 제가 느슨,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저를 다잡는 아주 효과 만점의 표어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답이 된 것 같은데요...

 

우리는 지상 언어로 기록된 말씀을 겉 글자로만, 문자로만 보는데 아주 매우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틀을 거의 못 바꾸지요... 마치 저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주체사상의 틀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것, 곧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입니다. 물론 주님의 빛 비추심을 간구하면서 말이지요.

 

작년 11월 25일부터 시작한 이 속뜻 새벽예배... 오늘로 딱 71일 되었는데요, 벌써 저희 부부, 이제 말씀을 겉뜻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음을 느낍니다. 뭐, 아직은 많이 어렴풋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역량 있는 분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지난 여러 해 설교를 빌려 살짝 제 수준에 맞게 덧대어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살짝 덧대는 작업마저 사실은 체중 빠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때마다 주님의 빛을 구하며, 저 표어,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을 속으로 외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네, 오늘은 좀 특별한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받는 이 다소 분량이 과한, 그래서 많이 좀 부담되는 이 카톡 공유시겠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꾹꾹 참고 한 몇 달 같이 달리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실 줄 믿습니다. 곧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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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2023/2/3)

 

11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눅7:11-17)

 

 

① 교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 (AC.81)

 

그 내면 상태에 따라 ‘죽은’(dead), ‘영적’(spiritual), 그리고 ‘천적’(天的, celestial)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죽은’ 상태의 사람은 영적 전투에서 항상 지고, 전투 중이 아닐 땐 악과 거짓의 종으로 지냅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적(external) 구속(bonds) 상태에 있는데 예를 들면, 법이라든지, 생명이나 부, 이익 및 평판 등 그가 평소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혹시 잃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두 번째, ‘영적’ 상태의 사람은 반대로 영적 전투에서 늘 이깁니다.

 

그는 내적(internal) 구속 상태에 있으며, 거의 유일한 구속은 그의 양심입니다.

 

세 번째, ‘천적’ 상태의 사람은 아예 전투 자체가 없습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괴롭혀도 그는 아예 무시, 경멸하며, 그래서 전투, 즉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그를 구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선(善, good)과 진리(眞理, truth)에 관한 천사들의 퍼셉션(perceptions, 영적 통찰, 지각)입니다.

 

 

②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12절)

 

과부’는 선에 대한 애정은 있으되 선을 행할 참 진리는 없는 상태를 말하며, 특별히 여기 과부는 나인이라는 성, 곧 나인이라는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교회의 많은 교리, 진리는 알고 있으되 삶이 받쳐주지 않는, 그 가운데 ‘나인’이라는 진리에 관해서는 늘 넘어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리는, 그리고 교리는 실행되지 않는 한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진리가 실행될 때 그게 바로 선이며, 그래서 선은 실행된 진리, 곧 겉으로 구현된, 나타난 진리입니다.

 

참 진리는 선을 동반한, 그 안에 선을 행할 능력이 있는 진리를 말하며, 이 진리는 오직 주님만이 주십니다. 주님이 오셔서 함께하셔야만 가능한 진리입니다.

 

시험을 만나 이길 때는 우리 안에 새로운 선과 진리, 곧 아들, 딸이 생겨나지만, 반대로 질 때는 우리 안에 그나마 있던 선과 진리가 사망합니다. 과부의 독자의 ‘죽음’은 이것을 말합니다.

 

 

③ ‘울지 말라’,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3-15절)

 

과부가 슬피 우는 것은 ‘이별’, ‘작별’, 곧 즉 나인이라는 교회의 어떤 사람이 자기를 괴롭히는, 그래서 늘 넘어지는 어떤 진리 앞에 이젠 그만 자포자기하려는 걸 말합니다.

 

과부는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자신 안에 선을 행할 능력의 진리, 주님의 참 진리가 없어 이젠 그만 포기하려는 그 순간, 주님은 마침 알맞은 타이밍에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아들, 곧 그가 포기하려 했던 진리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관에 손을 대시고 다시 살리십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망가진 차를 완전 새 차처럼 온전히 수리하여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을 행할 능력을 수반한 참 진리가 다시 과부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일부러 나인 성을 찾아 참 알맞은 타이밍에 과부를 만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도 범사 그리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불꽃같이 지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원고 : https://bygrace.kr/1431

 

매일예배(2023/2/3, 눅7:11-17),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bygrace.kr

 

설교 : https://youtu.be/3DNGsrKUr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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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종에 관한 법 (2)’ (2023/2/2)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21:1-6)

 

 

① ‘’, ‘자유인’(5절)

 

다음은 종과 자유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애정(affection)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가슴(the heart)으로, 그래서 자유(freedom)로 행하며, 또한 진리를 위해 진리를, 선을 위해 선을 행하고, 그렇게 해서 이웃을 위해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인애)를 실천합니다. 그러나 복종심(obedience)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같아 보여도 그들은 가슴으로 하지 않고, 그러므로 당연히 자유로도 행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들이 스스로 여기길 나는 가슴으로, 자유로 행하는 거야 하더라도 그건 그렇게 착각하게 하는 어떤 자기 영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해, 선을 선 자체를 위해 행하는 게 아니며, 다만 이런 걸 할 때 오는 어떤 영광의 기쁨(delight)을 맛보기 위해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은 이웃을 위해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을 행하는 게 아니며, 다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무슨 세속적 보상을 받기 위해서만 합니다. (AC.8987:2)

 

한마디로 종은 억지로, 그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자유인은 주님을 사랑해서 자원하여,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는, 종은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자유인은 머리와 가슴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②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5절)

 

여기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가지고 살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대접과 높임 받는 걸 말하며, 그 결과, 이렇게 빨아먹는(?) 단물이 너무 좋아 굳이 거듭나기 위한 마음고생 같은 건 1도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려면, 악과 거짓 앞에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며, 그래서 그 과정이 결코 간단치가 않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주님의 선과 진리는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한테만 비로소 그 의지 안으로 흘러들어와 심기고 정립되며, 그렇게 비로소 사람은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난 여섯 해,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셨음에도 기한이 다하도록 이 히브리 종은 정신을 못 차리고, 이제라도 깨닫고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나는 이대로가 좋습니다’며, 세상과 세속, 자기 사랑에 함몰되고 마는, 그런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③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6절)

 

이는 그에게 주어진 기한이 다하였으므로 이제 새로운, 그리고 영원한 어떤 영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종은 진리만 있고 선은 없는 상태요, 자유인은 진리와 선이 결합한 상태입니다.

 

천국은 오직 자유인으로만 들어가는 나라, 곧 자유인이라는 상태라야만 있을 수 있는 곳입니다. 종의 상태, 즉 선과 진리가 결합하지 않은 상태로는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의 종이 가게 될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눈앞 세속적 그 어떤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마시고, 부디 높은 것, 하늘의 것에 시선을 돌려 홀가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좀 잊혀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고, 생활이 좀 그래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고 말입니다. 벗어버리고 갈 이 육을 섬기시는데 남은 시간과 소유를 낭비하지 마시고, 부디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원고 : https://bygrace.kr/1429

 

매일예배(2023/2/2, 출21:1-6), '히브리 종에 관한 법 (2)'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출애굽기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bygrace.kr

 

설교 : https://youtu.be/kbtkjqWKv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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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 (2023/2/1)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눅7:1-10)

 

 

①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2절)

 

속뜻으로는 ‘’은 겉 사람을, ‘’은 여러 가지 영적 질병,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그 속뜻으로는 교회 밖 어느 이방인의 겉 사람이 아주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걸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질병은 여러 가지 영적 문제들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맹인이나 귀머거리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을, 절름발이나 중풍병자는 진리를 알면서도 의지가 약해 살아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②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3절)

 

주님의 신성(The Divine)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으며, 그래서 주님의 호칭들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신성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여호와’, 진리에 대한 호칭은 ‘하나님’이시며,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예수’, 진리에 대한 호칭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백부장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는 것은 교회 밖 이방인인 백부장이 교회가 가르치는 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교회, ‘장로’는 선한 삶을 통해 체득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로 몇을 주님께 보내어 도움을 청하는 것은 행동하는 진리, 진리 실천이라는 선한 삶을 통해 주님과 소통하는 것, 곧 백부장 편에서는 참 진리를 가지고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고, 주님 편에서는 원하는 진리를 그에게 충분히 주시는 것입니다.

 

 

③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4, 5절)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는 장로들의 말은 사실은 유대 장로들의 말이 아니라 진리로 소통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그렇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이 사람의 병 치유됨이 합당하다 판단하시는 것이지요.

 

민족’, 곧 나라는 선을, ‘회당’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는 것은 백부장이 주님의 선을 선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의 내면에 이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은 그가 병 고침 받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합당하다 여기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수반하는 진리를 받을 수도, 따라서 병의 치유도 어렵습니다.

 

 

④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 7, 8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주님으로부터 백부장에게로 진리가 흘러 들어가는데 그 안에 선이 들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은 이웃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웃 사랑을 통해 우리 각 사람에게 오십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인간의 지성을 주님의 진리보다 위에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또는 주님의 진리 위에 무슨 사사로운 세상 지식이나 자기 생각을 섞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우선시나 왜곡이 있게 되면 주님의 일이 힘 들어지며, 그래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원고를 참고하시고요, 오늘부터 당분간 매일 설교 공유 시간이 좀 늦어지겠습니다. 매일예배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늦춰지게 되었고, 또 설교 내용을 앞뒤 한 장으로 요약하는 시간이 좀 소요되어 그렇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전후로 맞춰보겠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 역시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 즉 한 시간씩 늦어지겠습니다

 

원고 : https://bygrace.kr/1427

 

매일예배(2023/2/1, 눅7:1-10), '어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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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https://youtu.be/8YHDlqK8g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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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종에 관한 법 (1)’ (2023/1/31)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21:1-6)

 

 

① ‘히브리 종을 사면

 

이스라엘이라는 영적 교회 안에는 ‘’과 ‘자유인’이 있습니다. ‘’은 신앙의 진리 안에는 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선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을, ‘자유인’은 신앙의 진리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주님을 사랑하는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씀에 나오는 ‘산다는 것’(buying)은 영적인 어떤 것을 자신의 생명이나 의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히브리 종을 사면’이라는 표현은 이 ‘히브리 종’이라는 상태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②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여섯 해’는 거듭남의 전 과정, 곧 영적 전투의 기간을, ‘일곱째 해’는 거듭남의 완성, 곧 쉼과 안식을 말합니다.

 

이 기간, 얼핏 보면 우리가 싸운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이 대신 싸워주신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몸값을 물지 않고’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인’은 진리를 행하되 종으로서 억지로 행하는 게 아니라 주인, 곧 주님을 사랑하여 즐겁게 행하는 사람입니다.

 

 

③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남자 종은 진리, 그 종의 아내는 진리에 대한 기쁨을 말하며, 그래서 남자 종이 단신으로 왔다는 것은 진리를 행하기는 하는데 기쁨은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 장가를 들어 아내가 있는 상태는 진리를 배우고 행하면서 기쁨을 느끼기는 하는데 이 기쁨이 주님 주시는 기쁨이 아니라 자아로부터 오는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일곱째 해가 되어 나갈 때, 즉 거듭남의 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 세상을 떠날 때지요, 이 둘, 즉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 이 사람과 여전히 자아로 말미암은 이 기쁨은 주님하고는 상관이 없으므로 분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④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상전이 준 아내와 종이 데리고 온 아내는 서로 다릅니다. 종이 데리고 온 아내는 자아에서 오는 기쁨이나 선을, 상전이 준 아내는 주님이 주시는 선을 말합니다. 여기 아들, 딸은 진리를 실천, 선을 행함으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 ‘상전이 준 아내와 그로 말미암은 아들이나 딸’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그래서 주님께 속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가 나갈 때, 주님께 반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헤어지지 않으려면, 즉 여섯 해 주인을 섬기던 거듭남의 기간 동안 함께했던 기쁨과 애정, 깨달음과 즐거움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으면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을 추구하시면 됩니다.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은 일상 가운데 악과 거짓에 대한 분명한 태도에서 출발하며, 다음 네 가지 키워드가 필요합니다.

 

첫째, reflect, 즉 자기 안에 악이 늘 수면 위에 어른거리듯 비치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 acknowledge, 즉 자기가 본 것을 시인,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resist, 악에 저항하며, 악과 거짓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넷째, supplicate, 주님의 도우심을 엎드려 간구, 간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에는 위 네 가지가 반드시 들어있어야 하며, 그래야 우리 안에서 이 거듭남의 기간 동안 진정한 ‘결혼’이 일어나고, 그래서 차후 우리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원고 : https://bygrace.kr/1425

 

매일예배(2023/1/31, 출21:1-6), '히브리 종에 관한 법 (1)'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출애굽기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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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https://youtu.be/WIfFuexMU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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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기억 전체를 유지하는 몇 가지 생생한 사례들’ (2023/1/30)

 

※ 아래 사례들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 462번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기억 전체를 유지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경우를 통해 보아왔다. 기록할 만한 많은 것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보겠다.

 

이 세상에서 지은 자기 죄와 악행을 부인하는 영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지 못하도록 그들의 기억에서 생의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모든 행위가 차례로 꺼내져 재현되었는데 주로 간음과 음탕한 행위들이었다.

 

악한 기술로 남을 속이고 훔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사기행각과 도둑질도 연달아 모두 드러났는데 그중 많은 것은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고백해야 했다. 그 당시 그들 마음속에 뒤섞여 있던 모든 생각, 의도, 즐거움과 두려움까지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과 관련, 뇌물을 받고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억으로 조사받았고, 처음 직책을 맡은 때부터 그만둔 날까지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자세한 뇌물의 액수와 가치, 받은 일시, 당시 그들의 마음 상태와 의도까지 수백 가지가 떠올라 눈앞에 상영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들이 그런 행위를 기록해 둔 수첩까지 한 장 한 장 펼쳐져 읽힌다.

 

처녀들을 유혹해 수치스럽게 했거나 순결을 빼앗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심판을 받는다.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범행이 자세하게 떠오르고 재현된다. 처녀들과 여자들의 얼굴, 장소, 그때 했던 말들과 의도가 실제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어떤 장면을 눈으로 볼 때처럼 즉각 나타나고 어떤 때는 그 상연이 몇 시간씩 계속된다.

 

남을 중상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의 비방과 중상이 그때 사용한 단어들까지 그대로 재연되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서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감추어 왔음에도,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과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상연되었다.

 

사기로 친척의 유산을 가로챈 사람이 있었다. 그도 같은 심판을 거쳐 판결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오간 서류와 편지가 읽혀지는 것이 내 귀에 들렸는데, 그것은 한 글자도 빠짐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 사람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이웃을 몰래 독살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밝혀진 과정은 이렇다. 그가 발밑에 구덩이를 파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구덩이에서 한 사람이 마치 무덤에서 나오듯이 나와서 그를 향해 외쳤다.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그러자 그 살인자가 친절하게 말을 거는 모습, 잔을 건네주는 모습, 게다가 그 행위를 하기 전에 그가 한 생각과 그 후에 일어난 일까지 모든 것이 드러났다.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자 그는 지옥을 판결받았다.

 

한마디로 모든 악한 영에게는 그의 모든 악과 범행과 약탈과 사기와 속임수가 밝히 드러나고, 그의 기억에서 떠올려져 죄과가 충분히 입증된다. 또 모든 상황이 전부 공개되므로 이것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나는 사람의 기억을 천사가 조사할 때, 그가 한 달 동안 생각한 것이 하루하루 일어난 그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되살려지는 것도 보았다.

 

이상의 사례들로, 사람은 자기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간다는 것과 사후에 만인 앞에 드러나지 못하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주님 말씀도 그것을 의미한다.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12:2-3)

 

※ 물론 이런 일들은 악인들, 사후 영이 되었으나 여전히 악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영계는 겉과 속이 같은 뎁니다. 여기처럼 겉과 속이 달라도 버젓이 살아갈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사후 두 번째 상태가 지나면 우리는 속의 사람, 곧 완연한 영으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때 드러나는 우리의 참모습이 정말 천사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워야지 지옥의 영들처럼 흉측한 괴물 모습이면 절대로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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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2023/1/30)

 

원고 : https://bygrace.kr/1422

 

매일예배(2023/1/30, 눅6:46-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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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https://youtu.be/vQOehs3w-T8

 

46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눅6:46-49)

 

①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믿음의 교리를 살펴봅니다. 구원과 관련, 과연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말입니다.

 

혹시 우리 안에 ‘선행이 좀 안 받쳐줘도 우리가 구원받는 덴 무슨 큰 문제는 없지 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거니까, 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받는 거니까...’ 하는 어떤 속삭임이 있는 건 아닌지...

 

② ‘주님의 공로와 의’(Christ’s merit and righteousness)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전가’(轉嫁, imputation)에 대해서도 살펴봅니다.

 

③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

 

집은 우리 각 사람 내면에 있는 교회를, 반석은 주님에게서 오는 신성한 진리나 믿음을 말합니다. 즉 이 말씀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선이 있는 진리, 또는 행동하는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④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우리가 무엇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은 모두 우리 영에 기록이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생명책’입니다. 우리의 사후, 조사 천사들은 우리의 영을 조사하는데 다음은 그 한 예입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며, 그래서 우리의 생전 모든 걸 저장하고 있는 이 영을 가리켜 ‘생명책’이라 하는 것입니다.

 

...재판에 관련해 뇌물을 받고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억으로 조사받았고, 처음 직책을 맡은 때부터 그만둔 날까지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자세한 뇌물의 액수와 가치, 받은 일시, 당시 그들의 마음 상태와 의도까지 수백 가지가 떠올라 눈앞에 상영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들이 그런 행위를 기록해 둔 수첩까지 한 장 한 장 펼쳐져 읽힌다...

 

위 예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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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023/1/29)

 

원고 : https://bygrace.kr/1420

 

주일예배(2023/1/29, 출20:22-26),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출애굽기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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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https://youtu.be/luGFH_KsSOo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燔祭, burnt offerings)와 화목제(和睦祭, thank offerings)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출20:22-26)

 

①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하늘’은 우리 내면에 있는 천국입니다. 내면에 있는 천국이란 주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저마다의 천국과 연결되며, 그때 해당 천국의 빛이 흘러들어오고, 우리는 그 빛을 통해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러니까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는 바로 십계명이며, 오늘 본문은 이 십계명을 일상 가운데 붙들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②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는 하는데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이런 것이 바로 우상, 곧 은, 금의 신상입니다. 주님의 계명은 그것이 주님의 선이요, 진리이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안 됩니다

 

③ ‘토단’(土壇, altar of ground), ‘돌단’(石壇, altar of stone)

 

주님께 선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고,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선으로 드리는 예배는 토단(土壇, altar of ground)으로,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돌단(altar of stone)으로 표상(表象)되었습니다. ‘돌단’이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상징하기 때문에, 주님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이 돌단을 세우라 하셨고, 또 그 위에 법, 곧 하늘의 거룩한 진리들을 새기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거룩한 진리의 총합이기 때문입니다. (AC.8940)

 

오늘 설교는 꼭 원고 필독을 권합니다.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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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동기 부친상 조문글' (2023/1/28, D7)

 

※ 다들 짧게들 마음을 표현하셔서 조금(?) 긴 제 글이 많이 눈치가 보이네요...

 

우리는 사후 한 72시간 정도 지나야 눈을 뜹니다. 물론 이 육을 벗고 가는 저 영의 나라에서지요. 왜 72시간 정도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천국은 세 천국, 곧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옥 역시 정확히 이와 대칭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삼층천으로 갈수록 더 높은, 더 깊은(inmost) 천국이며, 그래서 물론 그곳 천사들은 더 내적(內的, internal)이며, 지혜와 능력, 사랑과 순수가 더 뛰어납니다. 그들은 주님께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지옥 역시 정확히 대칭적이므로 저 삼층지옥일수록 매우 지독하겠지요.

 

우리는 지상에서는 임종이라는 걸 하지만 영계에서는 이제 갓 태어나는 신생아와도 같은데요, 그래서 주님은 최고의 천사들을 보내어 이 막 눈을 뜨려는 신생 영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게 하십니다. 지상 신생아실의 위생 상태가 급이 다르듯 저 신생 영들을 돌보는 상황도 거의 비슷, 신생 영들을 노리는 악한 영들이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주님은 상급 천사들을 통해 각별히 신경을 쓰십니다.

 

천사들은 이 신생 영에게 이제 당신은 영이 되었다는 사실과 여러 가지 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알려줍니다.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거지요. 천국의 주인은 누구시며, 천국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말이지요.

 

모든 사람은 영이 된 후 몇 번의 상태변화를 겪게 됩니다. 첫 번째 상태변화는 영의 겉(external) 모습의 변화, 곧 겉 사람의 변화인데요, 우리의 영이 그동안 우리의 육에 붙어서 육으로 하여금 생전 여러 활동을 하게 했던 바로 그 겉 사람이 이제 서서히 휴면 상태로 내려가는 과정이지요.

 

이때는 아직 생전 모습이 남아 있어 생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 가족을 포함, 친구들, 지인들이 우리를 알아보며, 그래서 영계에서 만나 굉장히 반가워하며, 부부의 경우, 일정 기간 함께 지내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지상 요소들, 외적 요소들이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이유는 영계는 내적 나라, 내면의 나라라 사후엔 다시는 쓸 일이 없어 그렇습니다.

 

두 번째 상태는 진정한 영의 상태, 곧 진정한 속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순도 백 퍼센트의 선 또는 악의 사람이 되는 것인데요, 이 과정이 필요한 게, 천국은 요만큼의 악도, 반대로 지옥은 요만큼의 선도 못 가지고 들어가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영계는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입니다. 우리 여기처럼 무슨 시공간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속 사람은 우리 영의 속 사람으로, 그동안 육을 입고 살아온 우리는 자신의 영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두 모습이 참 다른 게, 육으로는 그렇게 볼품없으신 분이더라도 그 영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눈부신, 천사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요, 육으로는 그렇게 아름다워도 그 영은 거의 괴물 수준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허락으로 영안이 열리신 분들은 열린 동안은 사람들의 영을 보기 때문에 이 둘의 차이를 아주 생생하게 아시지요.

 

이 두 번째 상태가 완성되어 이제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생전에 우리의 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완전 변신(?)한 우리를 더 이상 못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령, 아름다운 나비의 일생에 비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비의 일생, 즉 알과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형하는... 애벌레 때 모습과 성충 때 모습이 완전 다르죠. 네, 이렇게 나비의 일생은 우리의 사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일종의 표상입니다.

 

아휴... 글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슬픔의 때에 이런 말씀을 굳이 드린 것은, 아버님의 사후, 이제 그곳에서 일어날 일이 이런 일들이라는 것을 남은 유족들께도 알려 너무 슬퍼하거나 근심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기를, 천국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버님이 생전 어떤 삶을 사셨는지는 모르나 모든 판단은 모든 영혼의 주인이신 주님이 하십니다. 주께서 부디 아버님에 대한 크신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후 모든 장례 절차와 일정, 그리고 상황과 환경 가운데 주님의 크신 돌보심 있으시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변일국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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