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0

그는 또한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16-17절)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6, 17절)

 

해설

AC.80은 창2:16-17의 개요이며, 앞에서 계속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질서에 하나의 중요한 제한을 제시합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에덴동산과 같은 사람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그 안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아는 것’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별이 나타납니다. 천적 인간에게 선과 진리를 아는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됩니다. 금지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알려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2:16-17의 금령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등장한다고 해서 지식이나 이성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AC.75에서는 천적 인간에게 기억지식과 이성이 있음을 말했고, AC.78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이 겉 사람에게 속하며 이것들까지도 지혜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AC.80의 문제는 인간이 알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선과 진리 및 신앙의 아르카나를 무엇으로부터 알고 판단하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천적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통하여 선과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AC.77에서는 에덴동산의 보기에 좋은 나무들이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선에 대한 퍼셉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AC.80은 그 퍼셉션의 근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을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직감이나 자기 확신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그 뜻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혀 줍니다. 그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감각적인 것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외적인 것들과 관계되고, ‘기억지식’은 사람이 배우고 경험하여 기억에 받아들인 것들과 관계됩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자체가 악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AC.78에서 기억지식은 천적 인간의 겉 사람에게 속하는 것으로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AC.80은 자연계의 사실을 관찰하거나 기억지식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가지고 신적인 것의 진실 여부를 인간 자신이 결정하려는 질서를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질문이나 연구 자체의 금지로 읽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의 속뜻을 밝히면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구별하고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C.80에서 금지되는 것은 탐구라는 행위 자체라기보다, 그 앞에 붙어 있는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라는 방식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그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서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 구별 때문에 AC.80을 반지성주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천적 인간에게 이성과 기억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자연적인 사실을 감각과 관찰을 통하여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다루는 것은 ‘신앙의 아르카나’입니다. 자연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데 사용하는 감각과 기억지식을 그대로 신적인 것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문제가 단순한 인식 방법의 차이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닙니다. 창2:17의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이 속뜻에서는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되는 것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AC.73에서 거듭남 이전의 사람이 ‘죽어 있던’ 상태라고 한 것과 AC.80에서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육체적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맥에 놓여 있습니다.

 

AC.79와 AC.80을 함께 읽으면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도 보입니다. AC.79에서는 천적 인간이 동산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AC.80에서는 선과 진리를 알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두 번호 모두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지거나 아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근원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방향을 경계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를 여기서 proprium이나 인간의 자유에 관한 전체 교리로까지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AC.79와 AC.80이 보여 주는 직접적인 연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AC.80은 따라서 창2:16-17의 금령을 ‘알지 말라’는 명령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은 무엇이 선이고 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부터 아는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퍼셉션을 통하여 아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알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질서입니다.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을 통하여 신앙의 아르카나를 탐구하려 할 때 천적 인간의 천적 본성이 죽게 된다는 것이, 이 개요에서 스베덴보리가 창2:16-17에 관하여 먼저 제시하는 핵심입니다. (AC.80 해설)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 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AC.80 심화1. 왜 개역개정에는 ‘열매’가 들어가 있는가? (창2:16-17) 창2:16-17을 개역개정과 AC에 실린 영어 성경으로 함께 읽으면 작은 차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개역개정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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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81, 창2:1-17 배경, ‘죽은 사람, 영적 인간, 천적 인간의 세 가지 차이’

AC.81이 장에서는 천적 인간을 다루는데, 앞 장에서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형성된 영적 인간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영적 인간이나 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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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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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AC.31

‘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이 사랑과 신앙을 뜻하고, 또한 ‘해와 달과 별’(sun, moon, and stars)이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은 선지자들의 글에서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처럼 말입니다. That the “great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and are also called “sun, moon, and stars,”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Ezekiel:

 

7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2:7, 8) When I shall extinguish thee,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make the stars thereof black;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ll the luminaries of the light of heaven will I make black over thee, and I will set darkness upon thy land (Ezek. 32:7–8).

 

이 구절들은 바로와 애굽을 다루는데, 말씀에서 바로와 애굽은 단지 감각과 단지 기억 지식의 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감각과 단지 기억 지식에 의해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었음을 말합니다. 이사야에서도 그렇습니다. In this passage Pharaoh and the Egyptians are treated of, by whom are meant, in the Word, 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 and here, that by things of sense and of mere knowledge, love and faith had been extinguished. So in Isaiah: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13:9,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to set the land in desolation, for the stars of heaven and the constellations thereof shall not give their light; the sun is darkened in his going forth, and the moon shall not cause her light to shine (Isa. 13:9–10).

 

요엘에서도입니다. Again, in Joel: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10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2:1-2,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the earth trembleth before him, the heavens are in commotion; the sun and the moon are blackened, and the stars withdraw their brightness (Joel 2:1–2, 10).

 

[2] 다시 이사야에서는 주님의 강림과 이방인들의 밝아짐, 따라서 새 교회와, 특히 어둠 가운데 있다가 빛을 받아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Again, in Isaiah, speaking of the advent of the Lord and the enlightening of the gentiles, consequently of a new church, and in particular of all who are in darkness, and receive light, and are being regenerated: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20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사60:1-3, 20)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behold darkness covers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the peoples, and Jehovah shall arise upon thee, and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thy sun shall no more go down, neither shall thy moon withdraw itself, for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Isa. 60:1–3, 20).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So in David:

 

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5-9) Jehovah in intelligence maketh the heavens; he stretcheth out the earth above the waters; he maketh great luminaries, the sun to rule by day, 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 (Ps. 136:5–9).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3, 4) Glorify ye Jehovah, sun and moon, glorify him, all ye stars of light, glorify him, ye heavens of heavens, and ye waters that are above the heavens (Ps. 148:3–4).

 

[3] 이 모든 구절에서 ‘광명체들’(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뜻합니다. 광명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을 표상하고 뜻했기 때문에, 유대교회에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타는 등불을 두도록 명했습니다. 그 교회의 모든 규례는 주님을 표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등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In all these passages,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It was because “luminaries” represented and signified love and faith toward the Lord that it was ordained in the Jewish church that a perpetual luminary should be kept burning from evening till morning, for every ordinance in that church was representative of the Lord. Of this luminary it is written:

 

20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출27:20, 21) Command the sons of Israel that they take oil for the luminary, to cause the lamp to ascend continually: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ithout the veil, which is before the testimony, shall Aaron and his sons order it from evening even until morning, before Jehovah (Exod. 27:20–21).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속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을 불붙이시고 빛나게 하시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에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뜻임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적절한 곳에서 밝힐 것입니다. That these things signify love and faith, which the Lord kindles and causes to give light in the internal man, and through the internal man in the external,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hown in its proper place.

 

해설

AC.31은 앞의 AC.30에서 밝힌 ‘큰 광명체들’, 곧 사랑과 신앙의 의미를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확증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구절들을 연이어 제시하고, 이어서 그것들이 밝아지는 말씀을 인용하며, 마지막에는 유대교회의 항상 타는 등불의 규례까지 연결합니다. 따라서 이 단락의 중심은 단순히 ‘해는 사랑, 달은 신앙’이라는 하나의 대응표를 제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랑과 신앙이 소멸될 때 말씀은 그것을 광명체의 어두워짐으로 표현하고, 사랑과 신앙이 다시 살아날 때에는 빛과 광명체의 밝아짐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 겔32:7-8은 특히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이 바로와 애굽을 다룬다고 하면서, 말씀에서 그것들이 ‘단지 감각과 단지 기억 지식의 원리’를 뜻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감각이나 기억 지식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자연적 삶과 배움에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감각으로 확인되는 것과 기억 속 지식만을 최종 원리로 삼아 영적인 것을 그 아래 두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질서가 뒤집힐 때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에스겔의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장면이 바로 그 상태를 표현합니다.

 

사13:9-10과 욜2:1-2,10도 같은 방향의 증거입니다. 두 본문 모두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AC.31은 이 자리에서 ‘여호와의 날’이나 각 선지서의 모든 세부 표현을 해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심판의 구체적인 교리나 별개의 상응을 덧붙이기보다, 사랑과 신앙의 빛이 사라지는 상태가 말씀에서 자연적 광명체의 어두워짐으로 반복하여 표현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창1의 넷째 날에서는 광명체가 나타나 빛을 비추지만, 이 선지서들에서는 그 반대 상태가 해와 달과 별의 어두워짐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AC.31은 어두워짐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사60:1-3,20에 이르면 방향이 정반대로 바뀝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주님의 강림과 이방인들의 밝아짐, 따라서 새 교회와, 특히 어둠 가운데 있다가 빛을 받아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 관한 말씀이라고 직접 설명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이라는 표현은 앞의 어두워진 해와 달과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랑과 신앙이 소멸되는 상태가 광명체의 어두워짐이라면,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새롭게 되는 상태는 해와 달이 지속해서 빛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 교회’를 곧바로 특정한 후대 교단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AC.31의 직접 문맥에서는 주님의 강림으로 어둠 속에 빛이 임하여 교회가 새롭게 되는 상태를 말하고 있으며,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그것을 개별적인 거듭남에도 적용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새로움과 한 사람의 거듭남이 같은 빛의 질서 안에서 함께 언급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어둠 가운데 있는 곳에 빛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시136:5-9와 시148:3-4의 인용은 이러한 광명체의 언어가 선지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편의 창조와 찬양의 언어 안에서도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시136은 창세기와 매우 유사하게 하늘과 땅과 물, 큰 광명체, 낮을 주관하는 해, 밤을 주관하는 달과 별을 차례로 말합니다. 시148은 해와 달과 밝은 별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AC.31은 이 자리에서 해와 달과 별 각각의 세부 의미를 더 확장하기보다, 이러한 말씀 전체에서 ‘광명체들’이 사랑과 신앙을 뜻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다음 유대교회의 ‘항상 타는 등불’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앞의 선지서와 시편에서 확인한 광명체의 의미가 예배의 표상 안에서도 나타났음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광명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을 표상하고 뜻했기 때문에,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계속 켜 두도록 명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등불과 기름과 저녁과 아침의 모든 세부 상응을 지금 미리 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그 상세한 의미는 ‘적절한 곳에서’ 밝히겠다고 유보합니다.

 

다만 AC.31은 그 등불의 가장 중심적인 의미만큼은 분명히 밝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속 사람 안에서 사랑과 신앙을 불붙이시고 빛나게 하시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에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AC.30의 마지막과도 정확히 이어집니다. 사랑과 신앙이 사람의 의지와 이해 안에서 나타나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사실이, 이제 ‘주님께서 불붙이시고 빛나게 하신다’는 표현으로 다시 확인됩니다.

 

따라서 AC.31은 감각과 기억 지식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외적 지식보다 무조건 내적인 감정이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과 기억 지식은 제자리에 있을 때 유용합니다. 다만 그것들이 가장 높은 원리가 되어 사랑과 신앙을 지배하려 할 때 질서가 뒤집힙니다. 그때 영적 광명체는 어두워집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사랑과 신앙을 다시 불붙이고 빛나게 하실 때, 어둠 가운데 있던 사람에게 빛이 임하고 해와 달이 다시 밝아지는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AC.31의 여러 인용은 흩어진 성경 증거들의 나열이 아닙니다. 겔32, 사13, 욜2는 사랑과 신앙의 소멸을 ‘어두워진 광명체’로 보여 주고, 사60은 주님의 오심과 거듭남을 ‘다시 밝아진 광명체’로 보여 주며, 시편들은 동일한 광명체의 언어를 창조와 찬양 안에서 확인하고, 출27의 등불은 그 사랑과 신앙을 실제로 불붙이고 빛나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창1의 해와 달과 별은 단순히 하늘의 천체를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신앙의 빛이 어떻게 살아나고 또 어떻게 가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말씀의 언어가 됩니다. (AC.31 해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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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60의 ‘새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말하는가?

 

AC.31 심화 2, 사60의 ‘새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말하는가?

AC.31 심화2. 사60의 ‘새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말하는가? AC.31 [2]에서 스베덴보리는 사60:1-3, 20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주님의 강림과 이방인들의 밝아짐, 따라서 새 교회와, 특히 어둠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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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적 의미를 몰라도 어떻게 거룩한 표상을 지킬 수 있었을까?’

 

AC.31 심화 3, ‘내적 의미를 몰라도 어떻게 거룩한 표상을 지킬 수 있었을까?’

AC.31 심화3. ‘내적 의미를 몰라도 어떻게 거룩한 표상을 지킬 수 있었을까?’ AC.31 [3]에서 스베덴보리는 유대교회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타는 등불’을 두도록 명하신 규례를 언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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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 창1:14-17, ‘해가 사랑이고, 달이 신앙이다 : 마지막 시대에 드러나는 광명체의 아르카나’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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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0, 창1:14-17(AC.30-37), ‘사랑과 신앙의 광명체 : 사랑으로 생명을 얻는 신앙의 넷째 날’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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