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71 심화

1. ‘허락되었습니다’ - 스베덴보리는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가?

AC.71에서 스베덴보리는 다른 삶에 관한 내용들을 각 장의 처음과 끝에 어떤 순서에 따라 덧붙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AC.67부터 이러한 표현은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말씀의 속뜻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고, 여러 해 동안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었으며, 듣고 본 것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AC.71에서는 그 내용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는 것까지 허락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이 ‘허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주님께서 직접 ‘이제 이것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AC.71 자체가 그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번호에는 어떤 음성을 들었다는 말도 없고, 천사가 지시했다는 말도 없으며, 퍼셉션이나 유입을 통해 알았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허락되었습니다’라는 표현만 가지고 그 전달 방식을 하나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은 오히려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영들과 천사들과 실제로 말하고 함께 있었다고 할 때에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AC.67에서는 여러 해 동안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었다고 했고, AC.70에서는 육체 안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과 그들이 죽은 뒤에도 말하고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허락’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알려졌는가에 대해서는 적어도 여기까지의 글에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우리가 하나의 방식으로 채워 넣지 않는 것이 그의 기록에 더 충실합니다.

 

그렇다고 이 표현을 단순히 ‘스베덴보리가 그렇게 느꼈다’는 정도로 낮추어 읽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AC.67부터 반복되는 표현을 보면 그는 말씀의 속뜻을 알게 된 것,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게 된 것, 그동안 듣고 본 것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기록하는 것까지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이나 성취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관되게 주님의 신적 자비와 허락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적어도 스베덴보리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알고 보고 기록하는 일을 주님의 신적 자비 아래 허락된 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허락이 매번 어떤 구체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 알려졌는지는 AC.71이 말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말씀인지, 영적 교통 가운데 주어진 인식인지, 또는 다른 방식인지 이 한 문장만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허락되었습니다’라는 말을 신비화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단순한 문학적 겸손의 표현으로 축소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그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이며, 그 표현은 자신의 사역을 그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앞으로 그의 기록에서 이러한 허락의 성격을 직접 밝혀 주는 설명을 만나면 그때 이해를 더 넓히면 됩니다. 지금은 그가 분명히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함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허락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허락되었는가’는 여기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AC.71 심화 1)

 

 

 

AC.71, 창2 앞, ‘다른 삶에 관한 내용들을 각 장의 처음과 끝에 덧붙이다’

AC.71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말씀의 본문에 들어 있는 것들 사이에 삽입한다면 흩어지고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주님의 신적 자비로 각 장의 처음과 끝에 그것들을 어떤 순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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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9 심화

1. ‘육체적인 것들이 물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C.69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속에 깊이 잠김으로 영들과 천사들과 교류하는 길이 닫혔고, ‘사람이 잠겨 있는 육체적인 것들이 물러나자마자’ 그 길이 다시 열린다면, 우리는 그 육체적인 것들을 어떻게 물러가게 해야 할까요?

 

먼저 AC.69는 영들과 천사들과 말하기 위한 어떤 수행법이나 방법을 가르치는 글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금식이나 고행으로 육체를 약하게 만들라거나, 자연적인 감각을 억제하라거나, 세상생활에서 물러나 특별한 의식 상태에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번호가 직접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속에 자신을 너무 깊이 잠기게 하여 그 밖의 것에는 거의 아무 관심도 두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 길이 닫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문제는 육체와 세상 자체라기보다 사람이 그것들 속에 ‘잠겨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육체적 삶이나 세상에서의 일상생활 자체를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AC.69가 지적하는 것은 그것들이 인간의 관심을 거의 전부 차지하여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것들이 물러난다’는 표현을 곧바로 육체를 억압하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을 ‘영들과 대화하기 위해 육체적인 것을 물러가게 하라’는 명령으로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AC.69의 주제는 독자에게 영들과 천사들과 교류하는 길을 다시 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베덴보리 자신이 육체 안에서 살아 있으면서 어떻게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는가라는 앞 번호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본래 ‘육체를 입은 영’이며, 태고 시대에는 그러한 교류가 있었으나 인간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 속에 깊이 잠기면서 그 길이 닫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이 구절을 읽고 ‘나도 영들과 말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야겠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AC.69가 직접 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번호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경험을 인간의 창조 질서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길이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열리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는 이 한 문장만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육체적인 것들이 물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AC.69 자체가 주는 가장 안전한 대답은 ‘그것을 영계와 접촉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번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만 잠겨 그 밖의 것에는 거의 아무 관심도 두지 않게 된 상태와, 인간이 본래 영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추구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인간과 영계의 관계를 어떤 창조 질서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AC.69 심화 1)

 

 

 

AC.69, 창2 앞, ‘인간은 본래 영들과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AC.69사람은 주님에 의해, 육체 안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과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실제로 태곳적에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은 몸을 입은 영이므로 그들과 하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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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8

제가 육체 안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들과 천사들과 말하는 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이 말할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은 이 모든 것이 공상이라고 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제가 신빙성을 얻기 위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한다고 할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밖의 여러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것에 단념하지 않습니다. 저는 보았고, 들었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I am well aware that many will say that no one can possibly speak with spirits and angels so long as he lives in the body; and many will say that it is all fancy, others that I relate such things in order to gain credence, and others will make other objections. But by all this I am not deterred, for I have seen, I have heard, I have felt.

 

해설

AC.67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에 속한 매우 많은 것이 ‘다른 삶’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듣고 본 것을 밝히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했습니다. AC.68에서는 그러한 증언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육체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영들과 천사들과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이며, 모든 것이 공상이라고 할 사람도 있고, 자신이 신빙성을 얻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의심할 사람도 있으며, 그 밖의 여러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증언이 쉽게 받아들여지리라고 기대하면서 이 기록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러한 반론들을 논증으로 반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들과 천사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증명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체험이 공상이 아니라는 철학적 논증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이 번호에서 그가 내놓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는 보았고, 들었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독자에게 아무 검토 없이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문장이 아니라, 예상되는 반론들을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이 경험했다고 하는 것을 밝히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말입니다.

 

특히 ‘보았고, 들었고, 느꼈다’는 세 표현은 앞으로 이어질 기록의 성격을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AC.67에서 그는 여러 해 동안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듣고 보았던 것’을 밝히겠다고 했고, 여기서는 거기에 ‘느꼈다’를 더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다른 삶에 관한 자신의 기록을 단순한 사상이나 추론의 결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허락되었다고 하는 경험의 증언으로 제시합니다. 이 단계에서 독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그 증언을 미리 참이라고 증명하거나 거짓이라고 반박하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스베덴보리 자신이 어떤 성격의 증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정확히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AC.68은 앞으로 이어지는 다른 삶에 관한 기록을 읽는 독자의 태도와도 관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반론이 있을 것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먼저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반론들이 있음에도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후의 기록은 이 한 문장의 선언 위에서 읽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독자의 의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에게 허락되었다고 하는 경험을 증언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AC.68 해설)

 

 

 

AC.69, 창2 앞, ‘인간은 본래 영들과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AC.69사람은 주님에 의해, 육체 안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도 영들과 천사들과 말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실제로 태고 시대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육체를 입은 영이므로 그들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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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7, 창2 앞, ‘말씀의 속뜻과 다른 삶의 본성’ (AC.67-72)

AC.67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에게는 말씀의 속뜻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 속뜻 안에는 이전에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적이 없었고, 또 다른 삶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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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심화

1.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

 

AC.5에서 처음 스베덴보리를 접하는 독자에게 가장 놀라운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자신이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도 그들과 말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는 영계의 존재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에게 영들과 천사들과의 실제적인 교통이 지속적으로 허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수년 동안’과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라는 표현입니다. AC 제1권이 출판된 것은 1749년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그의 생애 말년에 과거를 회고하면서 쓴 것이 아니라,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처음 세상에 내놓는 바로 그 시점에 이미 수년 동안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어 왔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후 그의 신학 저술 전체에 방대한 영계 경험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AC.5는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기록의 매우 이른 시기에 놓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회적인 꿈이나 한두 차례의 환시를 경험했다는 주장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영들을 ‘보았다’고만 하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자신도 그들과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중단됨 없이’ 계속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스베덴보리 자신은 자신의 영계 경험을 순간적인 종교적 황홀경이나 특별한 꿈 몇 차례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자연계에서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영적 세계의 존재들과 의식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상태가 자신에게 허락되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그렇다면 이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글의 역할은 아닙니다. 반대로 현대인의 경험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환각이나 상상이라고 판정하는 것 역시 AC.5를 읽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리는 셈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베덴보리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읽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영적 세계를 상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허락으로 영들과 천사들과 실제로 교통했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가 이후 제시하는 방대한 기록과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면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삶에는 AC 출판 이전부터 중요한 내적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1740년대 전반 그는 오랫동안 해 온 자연과학과 철학적 탐구에서 점차 인간의 내면과 영적인 문제로 관심을 옮겨 가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의 개인 기록 가운데 잘 알려진 것이 흔히 ‘꿈 일기’라고 불리는 기록입니다. 그 안에는 꿈과 내적 갈등, 자기 성찰과 종교적 경험 등이 나타납니다. 이런 자료들은 훗날 그의 신학 저술이 갑자기 아무런 배경 없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상당한 내적 전환의 시기가 있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이 준비 기간의 꿈과 AC.5에서 말하는 지속적인 영계 교통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꿈을 꾸고 강렬한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과,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영들과 천사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AC.5의 주장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영적 전환에는 여러 단계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보되, 후대에 전해진 유명한 일화 하나를 모든 것의 정확한 시작점으로 단정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스베덴보리의 소명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1745년의 경험도 이런 구별이 필요합니다. 그의 생애를 전하는 여러 자료에서는 1745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루며, 주님으로부터 말씀의 영적 의미를 밝히는 사명과 관련된 경험이 있었다는 전승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장소와 구체적인 장면, 무엇을 보았고 어떤 말을 들었는지를 하나의 확정된 역사적 장면처럼 재구성할 때에는 자료의 성격을 구별해야 합니다. AC.5 자체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해 주는 것은 훨씬 단순합니다. 이 책을 출판할 당시 스베덴보리는 이미 ‘수년 동안’ 주님의 신적 자비로 영들과 천사들과 지속적으로 교통하는 일이 허락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그 경험을 어떤 목적으로 말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AC.5는 자신의 특별함을 소개하기 위한 자서전이 아닙니다. 바로 앞의 AC.1-4에서 그는 말씀 안에 속뜻이 있으며, 창세기 첫 장들이 내적 의미에서 인간의 거듭남과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AC.5는 ‘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영들과 천사들과의 교통에 관한 증언은 그가 앞으로 말할 영적인 것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독자에게 밝히는 문맥 속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라는 표현은 ‘중단됨 없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세계를 볼 수 있게 된 일을 자기 지성의 성취나 특별한 영적 능력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것은 ‘허락된’ 일이었습니다. AC.5의 문법 자체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자신이 영계를 열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경험의 중심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스베덴보리’보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허락하신 주님’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특별한 허락이 필요했을까요? AC.5 자체에서 스베덴보리가 곧이어 열거하는 내용을 보면 그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영들, 죽음 이후 인간의 상태, 지옥, 천국, 그리고 특히 온 천국에서 인정되는 신앙의 교리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즉 영계와의 교통은 단순히 ‘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과 천국과 지옥의 질서, 그리고 신앙에 속한 것들을 알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영들과 천사들과 대화했다고 해서 그의 신학 전체를 ‘천사들에게 배운 내용’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AC.5의 첫 문장에서 그는 이것을 알 수 있는 근원을 ‘주님으로부터’라고 명시합니다. 이후 그의 저술에서도 주님과 말씀의 권위는 영이나 천사의 말보다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들과 이야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의 최종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특별한 영계의 경험이 허락된 것 역시 주님께서 말씀과 영적인 질서를 밝히시는 더 큰 목적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영계 기록을 앞으로 읽는 데 매우 중요한 원칙이 됩니다. 그가 어떤 영을 만나 그 영이 무엇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영의 말이 곧 신적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상태에 있으며, 선한 영도 있고 악한 영도 있으며,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다릅니다. 스베덴보리가 AC.5에서 곧바로 ‘여러 종류의 영들’을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영계의 다양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심화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중단됨 없이’라는 말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영적 이상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경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든 신앙인이 영들을 보고 천사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주님을 믿으며 악을 죄로 여겨 피하고 선을 행하는 데 영계의 시각적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특별한 영적 현상을 신앙의 목표로 삼으면 현상 자체에 마음을 빼앗길 위험도 있습니다. AC의 중심은 영을 보는 능력을 얻는 데 있지 않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그분의 질서 안에서 거듭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스베덴보리를 읽을 때에도 중요합니다. 그의 영계 경험이 놀랍기 때문에 그것만 좇아 읽으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가 거대한 사후세계 체험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계 경험이 낯설다는 이유로 그것을 모두 제거하고 성경 해설만 취하려 하면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소명과 저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놓치게 됩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그 경험이 그의 말씀 해설과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가르침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AC.5의 ‘중단됨 없이 영들과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되어’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이한 현상의 지속 기간 자체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앞으로 말하려는 영계의 일들을 추측하거나 상상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신적 자비로 자신에게 보고 듣고 대화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허락되었으며 그 가운데 가르침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우선 그 증언을 그가 말한 그대로 정확히 이해한 뒤, 이후 수천 개의 AC 글을 따라가며 그 증언이 실제로 어떤 내용으로 펼쳐지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심화에서 만나게 될 ‘여러 종류의 영들’이라는 표현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보았다고 하는 영계는 모든 영이 똑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단순한 세계가 아닙니다. 인간이 사후에 어떤 상태를 거치며, ‘영’, ‘천사’, ‘악한 영’ 등의 표현은 어떻게 구별되는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AC.5의 짧은 문장이 앞으로 펼쳐질 방대한 영계 기록의 문을 열고 있었다는 사실도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AC.5 심화 1)

 

 

 

AC.5 심화 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 심화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읽으면 영계에 여러 종류의 영적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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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서문, ‘주님의 신적 자비로 열린 영계의 증언’

AC.5이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는 사실은 주님으로부터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임없이, 중단됨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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