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5.심화

2.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AC.5에서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읽으면 영계에 여러 종류의 영적 존재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계속 읽다 보면 이 짧은 표현이 상당히 넓은 세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영계는 모든 존재가 똑같은 모습과 상태로 살아가는 하나의 균일한 세계가 아닙니다. 사람의 사랑과 신앙, 생각과 삶이 서로 다르듯 사후에도 그 차이가 드러나며, 그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상태와 공동체가 나타납니다.

 

먼저 (spirit)이라는 말 자체를 조심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라고 할 때 언제나 한 종류의 존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이 말은 물질적인 몸을 벗고 영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넓게 가리킬 수도 있고, 천사와 구별하여 아직 영들의 세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으며, 선한 영이나 악한 영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AC에서 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직 천사가 되지 못한 중간 단계의 존재라고 고정해서 읽으면 문맥을 놓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사람은 죽어서 처음 영이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본질적으로 영적 존재이며, 자연계에서는 물질적인 몸을 입고 살아갑니다. 죽음은 그 물질적인 몸이 분리되는 사건입니다. 그 후 사람은 영적 세계에서 자신의 영적 몸을 가지고 계속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이 영이 된다는 말은 일상적인 설명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는 물질적인 몸을 벗은 인간이 영적 세계에서 영으로서의 자기 생명을 계속 살아간다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 처음 들어가는 곳과 관련하여 스베덴보리가 중요하게 설명하는 것이 영들의 세계(world of spirits)입니다. 이것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 상태이자 중간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똑같은 기간 동안 머물면서 일정한 과정을 밟는 일종의 대기실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마다 지상에서 형성된 내적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사후에 겉과 속이 일치하게 되는 과정도 서로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사람이 지상생활 중 외적인 이유로 감추거나 조절했던 것들이 벗겨지면서 자신의 지배적인 사랑에 따른 실제 상태가 점차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들의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영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을 향하여 준비되는 사람도 있고 지옥을 향하여 가는 사람도 있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외적인 것을 벗어 실제 내면이 드러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종류의 영들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영계의 생물학적 종을 분류하듯 몇 가지 종류로 나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과 애정, 신앙과 사고, 삶의 목적이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에 영들의 상태도 다양하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선한 영들 악한 영들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단순히 두 종류의 종족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을 영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무엇을 사랑하며 어떤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 선과 진리를 기뻐하는 애정이 삶의 중심을 이룬 사람과 자기 자신과 세상을 모든 것보다 사랑하며 악과 거짓을 기뻐하는 사람은 사후에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영계에서는 이러한 내적인 차이가 자연계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천사에 대해서도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천사는 인간과 전혀 다른 종류로 처음부터 창조된 존재가 아닙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모두 한때 자연계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이 죽으면 영이 되고, 일정한 과정을 마치면 영이라는 종에서 천사라는 종으로 변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천사는 천국에 들어가 천국의 사랑과 질서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 영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옥의 악령이나 마귀도 처음부터 별도의 종족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계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의 영계를 이해할 때 인간, , 천사를 서로 완전히 다른 세 종류의 존재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생명은 자연계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을 통하여 연속됩니다. 자연계에서는 물질적인 몸을 입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죽음 이후에는 그 몸을 벗고 영적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배적인 사랑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의 공동체와 결합하게 됩니다. 인간의 인격과 삶이 죽음으로 끊어지고 전혀 다른 존재가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영계에는 그렇게 많은 공동체가 있을까요? 스베덴보리의 설명에서 핵심은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선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은 무한히 다양하게 받아들여지며, 각 사람은 자신에게 고유한 애정과 쓰임을 가집니다. 비슷한 사랑과 쓰임을 가진 천사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함께 하나의 천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다양성은 천국의 질서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악한 영들의 경우에도 다양성이 있습니다.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은 수많은 형태로 나타나며, 거기에서 나오는 거짓과 욕망 역시 다양합니다. 따라서 지옥 역시 하나의 똑같은 악으로 이루어진 균일한 집단이 아닙니다. 서로 비슷한 악과 거짓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 성질에 따라 결합합니다. 결국 영계에서 누구와 함께 있게 되는가는 외부에서 임의로 배치되는 문제라기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와 깊이 관계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을 단순한 장소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천국과 지옥에는 실제로 장소와 환경처럼 경험되는 질서가 있지만, 그 외적인 환경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내적 상태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이 서로 맞는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 세계에서의 거리 가까움 역시 자연계의 물리적 거리와 똑같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태의 유사성과 차이가 외적으로도 나타납니다.

 

AC를 읽다 보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영들에 관한 표현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떤 영들은 다른 영들을 가르치거나 돕고, 어떤 영들은 인간의 특정한 기억이나 애정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어떤 영들은 악한 욕망과 거짓을 자극하려 합니다. 또 여러 행성의 영들에 관한 기록이나 인간 몸의 기관들과 상응하는 영적 공동체들에 관한 기록처럼 오늘의 독자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AC.5 여러 종류의 영들은 이후 펼쳐질 방대한 영계 기록을 미리 예고하는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영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는 인간에게 선과 진리에 속한 것이 유입되는 것과 악과 거짓에 속한 것이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영적 세계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떤 영이  머릿속에 생각을 넣으므로 나는  생각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여러 유입 가운데서 자신에게 오는 것을 자기 것처럼 느끼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를 자유와 이성 안에서 선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의 유입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중요한 책임을 전제합니다. 선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그것을 자기 공로로 돌릴 수 없고, 악한 충동이 일어났다고 악한 영이 시켰다며 책임을 넘길 수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 안에 일어나는 것을 살피고, 악을 죄로 인정하여 주님의 도움으로 거부하며, 선과 진리를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바로 이런 실제적인 선택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금 어떤 종류의 영이 나에게 붙어 있는가를 알아내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에게 특별한 영계 교통이 허락되었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영들과 직접 대화하거나 그들을 식별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영적 현상을 추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배우고, 자신의 악을 살피며,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 그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AC.5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표현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영들의 다양성은 인간의 내적 삶이 얼마나 실제적이며, 지상에서 형성되는 사랑과 삶이 죽음 이후에도 얼마나 중요하게 이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어떤 외적인 이름을 가졌는가보다 실제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러 종류의 영들이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계의 존재들을 몇 개의 고정된 종류로 분류하여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에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사랑과 애정과 사고의 상태가 있고, 영적 세계에서는 그러한 내적인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서로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AC.5에서 스베덴보리가 여러 종류의 영들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영계에는 여러 종족이 있다는 뜻으로 읽기보다 사후에도 인간의 고유한 삶과 사랑의 성질이 계속되며,  차이에 따라 영적 세계에는 헤아릴  없이 다양한 상태와 공동체와 질서가 존재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AC 전체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되묻게 될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  나는 실제로 무엇을 사랑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AC.5, 서문, 주님의 신적 자비로 열린 영계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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