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6 심화

1. ‘비손은 지성을 뜻하는데 왜 첫째 강은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가?’

 

AC.110에서는 첫째 강 ‘비손’을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AC.116에 이르면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의지에 관계하고, 이 둘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은 이해에 관계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깁니다. 지성은 일반적으로 이해와 관계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비손은 지성을 뜻하면서도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얼핏 보면 AC.110과 AC.116의 설명이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AC.110이 비손을 단순히 ‘지성’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입니다. 여기서 지성이라는 한 단어만 떼어 내어 곧바로 이해에 배정하면, 스베덴보리가 앞에서부터 설명해 온 천적 인간의 생명의 질서를 놓치게 됩니다. 비손의 지성은 사랑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성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지성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천적 인간을 설명한 내용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AC.99에서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며, 주님께서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천적 인간에게 지성과 신앙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랑과 별개의 근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주된 것이고, 신앙과 지성은 그 사랑에서 생명을 받습니다. 비손이 ‘지성’을 뜻하면서도 첫째 강에 관한 것이 의지에 관계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천적 인간의 질서 안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AC.110-115의 흐름도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 줍니다. 금은 사랑의 선을 뜻하고, 보석들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상합니다. 그리고 AC.115에서는 아론의 에봇에 있는 호마노가 금테로 둘러싸여 있는 것에서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들어야 한다’는 것을 퍼셉션한다고 했습니다. 즉 첫째 강을 설명하는 전체 문맥의 중심에는 사랑의 선이 있으며, 신앙의 진리는 그 사랑의 선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의 유입을 받습니다. 따라서 비손이 나타내는 지성도 그 근원을 사랑의 선에 두고 있습니다.

 

반면 둘째 강 기혼에 이르면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AC.116은 기혼을 ‘선과 진리, 또는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이라고 설명한 뒤, 이러한 앎들은 이해에 속한다고 직접 말합니다. 여기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것들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전면에 나옵니다. 그래서 둘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첫째 강과 둘째 강의 차이는 단순히 ‘첫째는 감정이고 둘째는 지성’이라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 안에서 의지와 이해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사랑과 신앙의 생명을 받아 나타내는가 하는 차이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렇게 보면 AC.111의 설명도 중요해집니다. 의지와 이해는 ‘하나의 마음’을 이루지만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따라서 첫째 강이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이 이해에 관계한다고 해서 둘 사이에 아무런 연결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마음 안에서 서로 구별되면서 결합되어 있습니다. 첫째 강에서 설명되는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 그리고 둘째 강에서 설명되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은 서로 단절된 두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천적 인간 안에서 질서 있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의지에 관계한다’는 말을 ‘비손 자체가 곧 의지이다’라고 바꾸어 읽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AC.116의 표현은 첫째 강에 관하여 말한 것이 의지에 ‘관계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강에 관한 것이 이해에 관계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비손이라는 상응의 의미를 AC.110에서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이라고 해 놓고 AC.116에서 그것을 ‘의지’로 변경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 강을 둘러싼 전체 설명이 마음의 두 능력 가운데 어느 쪽에 관계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인정하면 두 번호 사이의 겉보기 모순은 상당 부분 풀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질서의 근원에는 다시 주님이 계십니다. 천적 인간에게 사랑이 주된 것이라고 해서 그 사랑의 근원이 인간의 의지 자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앞의 AC.105는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AC.112는 지혜와 지성, 선과 진리 역시 결국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강이 의지에 관계하고 둘째 강이 이해에 관계한다는 것은 인간 안에 서로 독립된 두 생명의 근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에덴에서 하나의 강이 흘러나온 뒤 여러 강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하나의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인간 안에서 서로 구별되는 의지와 이해의 질서 안에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손은 지성을 뜻하는데 왜 의지에 관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핵심은 비손의 ‘지성’만을 떼어 보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지성’이며, 천적 인간에게서는 사랑이 주된 것이고 신앙과 지성이 그 사랑에서 생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첫째 강에 관한 전체 설명은 의지에 관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기혼은 선과 진리에 관한 앎들을 나타내며, 그 앎들은 이해에 속하므로 둘째 강은 이해에 관계합니다. 이렇게 읽을 때 AC.110과 AC.116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 안에서 사랑과 신앙, 의지와 이해가 서로 구별되면서도 하나의 생명 질서를 이루는 모습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보여 줍니다. (AC.116 심화 1)

 

 

 

AC.116, 창2:13, ‘기혼은 선과 진리에 속한 모든 것에 관한 앎을 뜻함’ (AC.116-117)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창2:13) AC.116‘둘째 강’(second river), 곧 ‘기혼’(Gihon)은 선과 진리,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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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8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 곧 같은 말로 지성 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이는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레미야에서는,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이라고 합니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One who executes judgment)은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one who seeks the truth)은 지성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해설

AC.158은 AC.156에서 제시한 ‘사람은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말씀의 다른 구절들로 확증합니다. AC.156에서는 창2:23의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하며, 앞에서 ‘여자’라고 했던 겉 사람의 proprium이 속 사람과 결합하기 때문에 이제 ‘아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그 가운데 ‘사람’이 왜 속 사람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해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속 사람을 ‘지성 있고 지혜로운 사람’과 같은 의미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속 사람이 단순히 인간의 보이지 않는 안쪽 부분이라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현재 문맥에서 속 사람은 지혜와 지성이 있는 사람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2:23에서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도 단순히 겉 사람의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내부 구조를 가리킨다기보다, 지혜와 지성이 속하는 인간의 내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인용되는 사41:28에는 ‘한 사람[vir]도 없으며 그들 가운데 한 모사도 없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자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으로 읽지 않고,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특히 원문이 ‘man’ 뒤에 라틴어 ‘vir’를 명시한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재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람’은 단순한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혜와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의 인용은 이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말씀에서 스베덴보리는 ‘정의를 행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지성 있는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혜와 지성이 추상적인 능력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실제적인 표현을 통해 각각 드러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도 바로 ‘사람’이라는 표현 안에 지혜와 지성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성’을 완전히 같은 말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예레미야의 두 표현을 구별하여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지성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현재 번호에서는 그 둘의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별도의 체계를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가 두 표현을 의도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앞에서 AC.107과 AC.112에서도 지혜와 지성을 구별하여 사용했던 흐름과도 잘 맞습니다.

 

이렇게 보면 AC.158은 앞 번호들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합니다. AC.156에서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은 겉 사람의 proprium이고 ‘사람’은 속 사람이라고 했으며, AC.157에서는 그 겉 사람의 proprium 안에 속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58에서는 그 속 사람이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결합은 단순히 인간 안의 두 부분이 서로 붙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혜와 지성이 있는 속 사람과 생명을 얻은 겉 사람의 proprium이 결합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만 여기서도 ‘사람’[vir]이 말씀 어디에서나 언제나 속 사람을 의미한다고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158이 보여 주는 것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해당 문맥에서 ‘사람’이 지혜와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창2:23에서 사람을 속 사람으로 읽는 해석을 뒷받침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확인한 것처럼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은 단어 하나를 고정된 암호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주제와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피는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결국 AC.158의 두 성경 인용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41:28은 ‘사람’이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을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렘5:1은 그 지혜와 지성을 ‘정의를 행하는 것’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이로써 AC.156에서 제시된 ‘사람은 속 사람을 의미합니다’라는 해석이 말씀의 다른 용례를 통해 한층 단단하게 뒷받침됩니다. (AC.158)

 

 

 

AC.159, 창2:23,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구별을 잃어버린 천적 인간의 후손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9그러나 천적 인간의 상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것들이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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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7, 창2:23,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 -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7‘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속 사람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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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river out of Eden)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합니다. ‘에덴’(Eden)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동산을 적신다’(to water the garden)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이며,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된다’(thence parted into four heads)는 것은 다음에 나오는 네 강을 통하여 지성을 묘사한 것입니다. A “river out of Eden” signifies wisdom from love, for “Eden” is love; “to water the garden” is to bestow intelligence; 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 is a description of intelligence by means of the four rivers, as follows.

 

해설

AC.107은 창2:10의 전체 속뜻을 먼저 압축하여 제시합니다.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하고, 그 강이 ‘동산을 적신다’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을 뜻하며, 그 강이 ‘네 근원’으로 갈라지는 것은 이어지는 네 강을 통하여 그 지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절은 단순히 에덴동산을 흐르는 한 강과 네 강의 지리적 모습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로 말미암아 지성이 생명을 얻는 천적 인간의 내적인 질서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에덴’과 ‘강’의 관계입니다. 앞에서 에덴은 사랑을 뜻한다고 했습니다(AC.98, 100). 그런데 이제 그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오며, 그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합니다. 지혜가 사랑과 따로 존재하거나 사랑보다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천적 인간에게 사랑이 주된 것이며 신앙과 지성이 그 사랑에서 나온다고 설명한 생명의 질서와 같습니다.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중심이라면, 지혜는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와 사람의 지성을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강이 ‘동산을 적신다’는 표현도 같은 질서를 보여 줍니다. 앞에서 ‘동산’은 지성을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동산이 스스로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의해 적셔지듯이, 인간의 지성 역시 자기 자신에게서 생명과 지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받아 생명을 얻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이를 ‘지성을 준다’고 표현한 것은 지성이 단순히 인간이 스스로 축적한 지식이나 사고 능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 깊은 근원에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 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보면 창2:10은 앞의 AC.98-105에서 계속 설명해 온 내용을 매우 아름다운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에덴은 사랑이고, 에덴에서 강이 흘러나오며, 그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고, 그 지혜가 동산을 적셔 지성을 줍니다. 사랑과 지혜와 지성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흐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으므로(AC.105), 이 흐름의 궁극적인 근원 역시 인간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며, 그 지혜가 사람의 지성을 살아 있게 합니다.

 

이 점은 주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이끄시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AC.107의 그림에서 주님은 인간의 지성을 바깥에서 억지로 움직이시는 분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중심에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게 하시며, 그 지혜로 지성을 적시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참된 지성이란 단지 많은 것을 알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에서 흘러나온 지혜로 생명을 얻은 지성이라는 것이 이 구절의 질서 안에서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강이 ‘네 근원’으로 갈라진다는 것은 그 지성이 이제 여러 측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묘사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AC.107은 아직 네 강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이어지는 글에서 그것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네 강의 의미를 앞질러 해석하기보다 ‘사랑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지성을 주며, 그 지성이 이어지는 네 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전체 흐름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2:10의 중심에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 지혜와 지성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의 생명이 지혜가 되어 흘러가며 인간의 지성을 적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AC.107 해설)

 

 

 

AC.108, 창2:10, ‘동산을 적시는 물과 강은 사람을 자라게 하는 지혜를 뜻함’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을 ‘강들’(river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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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6, 창2:9, ‘퍼셉션과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의 본성은 뒤에서 더 밝혀진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AC.106그러나 ‘동산의 나무’(tree of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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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창2:8)

 

AC.98

‘동산’(garden)은 지성을 뜻하고, ‘에덴’(Eden)은 사랑을, ‘동쪽’(east)은 주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동쪽 에덴동산’(garden of Eden eastward)은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하는데, 이 지성은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By a “garden” is signified intelligence; by “Eden,” love; by the “east,” the Lord; consequently by the “garden of Eden eastward” is signified 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which flows in from the Lord through love.

 

해설

AC.98은 창2:8의 ‘동쪽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는 말씀을 이루는 세 표현, 곧 ‘동산’, ‘에덴’, ‘동쪽’의 속뜻을 먼저 밝힙니다. ‘동산’은 지성을, ‘에덴’은 사랑을, ‘동쪽’은 주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모으면 ‘동쪽 에덴동산’은 천적 인간의 지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성의 근원과 질서입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그 사람 자신에게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듭니다.’ 앞에서 천적 인간은 신앙과 사랑이 하나를 이루되 사랑이 주된 것이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AC.83). 따라서 여기서도 지성이 사랑과 분리되어 홀로 앞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드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 점은 앞의 AC.90-93에서 살펴본 질서와도 이어집니다. 천적 인간에게서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며,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평온을 받아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제 ‘에덴동산’에서는 그 질서의 더 깊은 중심이 드러납니다. 천적 인간의 지성은 자기 자신의 지성을 독립적으로 세우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통하여 생명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덴동산’을 단순히 지성이 풍성한 상태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지성의 중심에는 ‘에덴’, 곧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의 근원에는 ‘동쪽’, 곧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에게서 사랑을 통하여 흘러드는 지성, 이것이 AC.98이 ‘동쪽 에덴동산’이라는 말씀 안에서 보여 주는 천적 인간의 질서입니다. (AC.98 해설)

 

 

 

AC.99, 창2:8, ‘영적 인간에게 뒤집혀 있던 생명의 질서가 천적 인간에게서 회복됨’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2:8) AC.99영적 인간에게서 생명, 곧 생명의 질서는 이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을 통하여 그의 이해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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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97, 창2:7, '호흡과 숨이 생명을 뜻하는 이유, 태고교회의 퍼셉션'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AC.97생명을 ‘숨을 내쉼’(breathing)과 ‘숨’(breath)으로 묘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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