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8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 곧 같은 말로 지성 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사야에서 분명합니다. That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or what is the same, one who is intelligent and wise, is plain from Isaiah: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 (사41:28) I behold, and there is no man [vir], even among them, and there is no counselor, (Isa. 41:28)

 

이는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레미야에서는, meaning none wise and intelligent. Also in Jeremiah: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Run ye to and fro through the streets of Jerusalem, and see if ye can find a man, if there be any executing judgment, seeking the truth. (Jer. 5:1)

 

이라고 합니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One who executes judgment)은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one who seeks the truth)은 지성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One who executes judgment” means a wise person; and “one who seeks the truth,” an intelligent one.

 

해설

AC.158은 AC.156에서 제시한 ‘사람은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말씀의 다른 구절들로 확증합니다. AC.156에서는 창2:23의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하며, 앞에서 ‘여자’라고 했던 겉 사람의 proprium이 속 사람과 결합하기 때문에 이제 ‘아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번호에서는 그 가운데 ‘사람’이 왜 속 사람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말씀을 통해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속 사람을 ‘지성 있고 지혜로운 사람’과 같은 의미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속 사람이 단순히 인간의 보이지 않는 안쪽 부분이라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현재 문맥에서 속 사람은 지혜와 지성이 있는 사람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창2:23에서 ‘사람’이 속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도 단순히 겉 사람의 반대편에 있는 어떤 내부 구조를 가리킨다기보다, 지혜와 지성이 속하는 인간의 내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인용되는 사41:28에는 ‘한 사람[vir]도 없으며 그들 가운데 한 모사도 없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자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으로 읽지 않고,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특히 원문이 ‘man’ 뒤에 라틴어 ‘vir’를 명시한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재 번호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사람’은 단순한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지혜와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의 인용은 이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말씀에서 스베덴보리는 ‘정의를 행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지성 있는 사람으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혜와 지성이 추상적인 능력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실제적인 표현을 통해 각각 드러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도 바로 ‘사람’이라는 표현 안에 지혜와 지성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성’을 완전히 같은 말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예레미야의 두 표현을 구별하여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지성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현재 번호에서는 그 둘의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별도의 체계를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가 두 표현을 의도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앞에서 AC.107과 AC.112에서도 지혜와 지성을 구별하여 사용했던 흐름과도 잘 맞습니다.

 

이렇게 보면 AC.158은 앞 번호들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합니다. AC.156에서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은 겉 사람의 proprium이고 ‘사람’은 속 사람이라고 했으며, AC.157에서는 그 겉 사람의 proprium 안에 속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58에서는 그 속 사람이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결합은 단순히 인간 안의 두 부분이 서로 붙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지혜와 지성이 있는 속 사람과 생명을 얻은 겉 사람의 proprium이 결합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만 여기서도 ‘사람’[vir]이 말씀 어디에서나 언제나 속 사람을 의미한다고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AC.158이 보여 주는 것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해당 문맥에서 ‘사람’이 지혜와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창2:23에서 사람을 속 사람으로 읽는 해석을 뒷받침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확인한 것처럼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은 단어 하나를 고정된 암호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그 단어가 놓인 주제와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살피는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결국 AC.158의 두 성경 인용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41:28은 ‘사람’이 지혜롭고 지성 있는 사람을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렘5:1은 그 지혜와 지성을 ‘정의를 행하는 것’과 ‘진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해 줍니다. 이로써 AC.156에서 제시된 ‘사람은 속 사람을 의미합니다’라는 해석이 말씀의 다른 용례를 통해 한층 단단하게 뒷받침됩니다. (AC.158)

 

 

 

AC.159, 창2:23,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구별을 잃어버린 천적 인간의 후손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9그러나 천적 인간의 상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것들이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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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7, 창2:23,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 -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2:23) AC.157‘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bone of bones and flesh of flesh)이 속 사람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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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8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을 ‘강들’(rivers)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렇게 비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는데,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선지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때로는 그것들을 그렇게 비유했고 때로는 실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 “garden,” 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 “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 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이는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다룬 말씀입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을 말하면서,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주2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민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 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들을 동산과 나무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부릅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겔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이 구절들로부터 분명한 것은, 태고인들이 사람이나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을 ‘동산’(garden)에 비유할 때 그를 적실 ‘물들’(waters)과 ‘강들’(rivers)을 덧붙였으며, 이 물들과 강들로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뜻했다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 “garden,” they added the “waters” and “rivers” 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주2. 라틴 tentoria, ‘텐트’(tents), 얼핏 santalos에 대한 미스프린트 같음 [편집자 주] The Latin is tentoria, “tents,” seemingly a misprint for santalos. [Reviser]

 

해설

AC.108은 앞의 AC.107에서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한다고 한 해석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태고인들은 사람을 ‘동산’에 비유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고, 지혜와 지혜에 관계되는 것들도 ‘강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말하는 방식 자체였으며,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이 이후 선지자들의 말씀에도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번호에서는 물과 강, 동산과 나무가 함께 등장하는 여러 성경 구절을 제시합니다.

 

먼저 사58:10-11의 ‘물 댄 동산’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물의 근원’은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왜 이 구절을 인용했는지는 창2:10과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집니다. 동산이 아름답게 유지되는 것은 그 안에 물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의 영적 생명도 그를 살아 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끊임없이 공급될 때 유지됩니다. 따라서 ‘물 댄 동산’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을 빌린 비유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 생명 있게 되는 사람의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이어지는 민24:6과 렘17:7-8도 같은 점을 보여 줍니다. ‘강가의 동산’, ‘물가의 백향목’, 그리고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가로 뻗은 것’이라는 표현에는 모두 나무나 동산의 생명이 물과 분리될 수 없다는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들을 ‘거듭난 사람’과 연결합니다. 거듭남은 사람이 자기 안에서 스스로 영적 생명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것을 받아 자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물과 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에스겔의 긴 인용은 이 원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거듭난 사람을 동산이나 나무에 단순히 ‘비유하는’ 정도를 넘어 실제로 나무와 동산의 언어로 말합니다. 물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깊은 물이 높이며, 강과 수로가 나무들에게 흘러가고, 그 결과 가지가 많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긴 본문을 인용한 까닭은 바로 이 구조 때문입니다. 나무의 성장과 아름다움의 근원이 나무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적시는 물에 있듯이, 사람 안의 영적 성장도 그 사람 자신만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AC.108은 AC.107의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에덴은 사랑이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그 강이 동산을 적시는 것은 지성을 주는 것입니다. 이제 AC.108에서는 그 물과 강이 동산과 나무를 실제로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혜는 단지 사람이 무엇을 많이 아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내적인 생명을 적시고 자라게 하며 열매 맺게 하는 것과 관계됩니다. 지혜가 사랑에서 분리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사랑에서 흘러나와 지성을 살아 있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는 다시 주님이 계십니다. 앞의 AC.105에서 모든 사랑과 신앙과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했고, AC.107에서는 에덴의 사랑에서 지혜의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AC.108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물 댄 동산’, ‘강가의 동산’,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인간이 자기 지혜로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물을 만들어 내는 동산이 아니라 물을 받아 자라는 동산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에서 지혜가 흘러나오고, 그 지혜가 사람의 지성을 적시며, 그로 말미암아 그의 내적인 삶이 자라고 아름다워집니다.

 

따라서 AC.108의 여러 성경 인용은 서로 흩어진 증거 구절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의 생명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동산과 나무’는 생명을 받아 자라는 사람과 사람 안의 것들을 나타내고, ‘물과 강’은 그것들을 살아 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질서를 이해하면 창2:10의 강은 에덴동산의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동산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의 흐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의 더 깊은 근원은 사람 자신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와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있습니다. (AC.108 해설)

 

 

 

AC.109, 창2:10, ‘지혜와 지성은 사람 안에 나타나지만 오직 주님의 것임’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창2:10) AC.109지혜와 지성이 사람 안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들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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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7, 창2:10,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를 뜻함’ (AC.107-109)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창2:10) AC.107‘에덴에서 흘러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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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8

동산의 강은 지혜를 뜻합니다. 거기에서 네 강이 흘러나왔는데,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cognitio]입니다. 이것들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셋째는 이성이고, 넷째는 기억지식[scientia]이며, 이것들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혜에서 나오며, 이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옵니다. (10-14절) Wisdom is meant by the river in the garden. From thence were four rivers, the first of which is good and truth; the second i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of good and truth, or of love and faith. These are of the internal man. The third is reason, and the fourth is memory-knowledge [scientia], which are of the external man. All are from wisdom, and this is from love and faith in the Lord (verses 10–14).

 

10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0-14절)

 

해설

AC.78은 창2:10-14의 강들을 통하여 천적 인간의 지혜와 그 지혜에서 나오는 것들을 개요로 보여 줍니다. 먼저 동산의 강은 ‘지혜’를 뜻하며, 그 강에서 다시 네 강이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이 네 강을 서로 독립된 네 가지 능력이나 지식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들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구나 마지막 문장은 그 지혜 자체도 독립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이 번호 전체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에서 다시 속 사람과 겉 사람에게 속한 것들이 나온다는 하나의 질서가 놓여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 강에 해당하는 것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첫째는 선과 진리이고, 둘째는 선과 진리, 곧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앎’[cognitio]입니다. 여기서 선과 사랑, 진리와 신앙의 관계가 함께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AC.78은 아직 첫째 강과 둘째 강의 이름이나 각각의 세부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은 선과 진리 및 그것들에 대한 앎이 속 사람에게 속한다는 큰 구별을 먼저 제시합니다.

 

셋째와 넷째 강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셋째는 이성이고, 넷째는 기억지식[scientia]입니다. 여기서 둘째 강의 ‘앎’[cognitio]과 넷째 강의 ‘기억지식’[scientia]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문 자체가 서로 다른 말을 사용하면서 전자는 속 사람에게, 후자는 겉 사람에게 속한다고 구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한 문장만으로 ‘앎’과 ‘기억지식’의 모든 차이를 미리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차이는 네 강에 관한 상세 해설을 따라가며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속 사람의 것들과 겉 사람의 것들이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선과 진리, 그것들에 대한 앎, 이성, 기억지식은 모두 하나의 지혜에서 나오며, 그 지혜는 다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겉 사람에게 속한 이성과 기억지식도 여기서는 그 자체로 낮거나 악한 것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떤 질서 안에 놓여 있는가입니다. AC.78은 네 강의 그림을 통하여 천적 인간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여러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질서 있게 이어지고 있음을 개요로 먼저 보여 줍니다. (AC.78 해설)

 

 

 

AC.79, 창2:1-17 개요, '천적 인간은 에덴동산이지만,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다' (15절)

AC.79천적 인간은 그러한 동산입니다. 그러나 그 동산은 주님의 것이므로,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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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77, 창2:1-17 개요, ‘에덴동산의 지성, 퍼셉션, 사랑과 신앙’ (8-9절)

AC.77그 다음 그의 지성은 동쪽에 있는 에덴동산으로 묘사됩니다. 그 동산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은 진리에 대한 퍼셉션이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은 선에 대한 퍼셉션입니다. 생명나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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