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에 관하여 생각해 본 사람들도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아무런 개념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주제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하여 저는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도록 내버려 두면, 마치 아직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Hitherto the nature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has been known to none. Those who have thought about them have formed an idea concerning them so general and so gross as scarcely to amount to any idea at all. What notion they have conceived on the subject I have been able to learn most accurately from spirits who had recently passed from the world into the other life; for when left to themselves, as if they were in this world, they think in the same way. I may give a few examples.

 

해설

AC.449는 창5 앞에 놓인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라는 경험편 전체의 문을 여는 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사람들이 천국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조차 실제로 ‘천국이 어떤 상태이며,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무나 일반적이고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이라는 것은 천국을 그저 ‘좋은 곳’, ‘고통이 없는 곳’, ‘죽은 뒤 행복하게 사는 곳’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거친’이라는 것은 천국의 행복을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육체적·감각적 행복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실제 천국의 본질에는 거의 닿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기쁨은 장소나 환경에서 먼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후 AC.449-459와 창5 뒤의 경험편에서 계속 밝혀지듯이, 천국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 그 사람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때 경험되는 기쁨과 평화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천국을 단지 아름다운 장소나 끝없는 안락함으로 상상한다면 천국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사실을 ‘세상에서 다른 삶으로 갓 건너온 영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갓 세상을 떠난 사람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즉시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서 형성한 생각과 사랑과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영계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국에 대해서도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바로 이것이 스베덴보리에게 하나의 관찰 자료가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자신의 속생각을 감추거나 신학적으로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지만, 영계에서는 점차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가 드러납니다. 따라서 새로 온 영들이 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사람들이 세상에서 실제로 어떤 천국관을 품고 살아왔는지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449의 마지막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는 이후 글들을 읽는 중요한 안내입니다. 이제부터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관한 추상적인 정의부터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품고 있던 잘못된 천국관과 그들이 영계에서 겪은 경험을 하나씩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뒤따르는 사례들은 단순한 신기한 영계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의 기쁨은 과연 무엇인가’를 바로잡아 가는 일종의 단계적 교육입니다.

 

결국 AC.449는 독자에게 먼저 자신의 천국관을 점검하도록 합니다. ‘나는 천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고통이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사랑과 생명이 내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상태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합니다. 천국에 대한 참된 준비는 천국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삶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의 삶으로 살아가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C.449 해설)

 

 

 

AC.450, 창5 앞, '천국은 높은 곳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0세상에 사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못된 생각을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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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8, 창4 뒤, ‘육체의 삶보다 더 밝고 분명하게 이어지는 사후의 삶’

영혼 또는 영에 관하여 그들이 육체의 삶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영들과의 체험에서 얻은 몇 가지 사례 AC.448나는 이 세상에서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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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5

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어떤 사람은 천국의 기쁨이 찬란한 빛 가운데 있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햇빛이 황금빛으로 보일 때와 같은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천국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역시 천국의 기쁨이 안락하게 쉬는 삶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그러한 빛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빛 가운데 있으면서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크게 기뻐하였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 빛이 점차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는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One who in this world had been most lear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being in a glorious light, like that which exists when the solar rays appear of a golden hue, so that he too supposed it to consist in a life of ease. In order that he might know himself to be in error, such a light was granted him, and he, being in the midst of the light, was as delighted as if he were in heaven, as indeed he said. But he could not remain long in it, for it gradually wearied him and became no joy at all.

 

해설

AC.455는 앞의 AC.454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AC.454에서는 천국의 행복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쉬면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한층 더 아름답고 영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찬란한 황금빛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훨씬 천국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역시 천국의 기쁨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오류라고 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사람이 ‘말씀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배웠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AC.450에서도 말씀에 관하여 특별히 밝은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잘못된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천국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천국의 본질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천국에 관한 지식과 천국의 생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생각한 ‘황금빛의 찬란한 빛’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빛을 천국의 행복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영계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에 상응하고, 천국의 빛은 세상의 빛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것으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에서 반복하여 묘사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천국의 빛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바라보고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무는 것만으로 천국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경험이 허락됩니다. 그는 실제로 황금빛처럼 찬란한 빛 가운데 놓였고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여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 같다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도 앞의 경험들과 같은 방식이 나타납니다. 그의 잘못된 생각을 말로만 논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상태를 실제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생각의 한계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황홀했던 빛이 점차 그를 싫증나게 하였고, 마침내 ‘전혀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적인 자극은 아무리 아름답고 강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광경이 계속 새로워지는 것으로 영원한 기쁨을 유지하려 한다면, 결국 사람은 더 새롭고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바로 앞의 AC.454와 연결하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빛은 천국의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하나이지만,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은 빛 자체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가 천사들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쓰임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빛도 그 생명과 분리하여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AC.455는 결국 우리의 천국관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고통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빛과 풍경을 영원히 바라보며 쉬는 곳으로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행복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서로에게 쓰임이 되는 ‘살아 있는 행복’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라도 그것만으로는 결국 익숙해지는 게 다지만,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 끊임없이 새로운 쓰임으로 흘러가는 생명은 천국의 기쁨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AC.455 해설)

 

 

 

AC.456, 창5 앞, '주님을 찬양하는 삶과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6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이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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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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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3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거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은 단지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천국을 하나의 방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여, 문이 열리면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도록 허락받고, 문지기들이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ome entertain so gross an idea of heaven that they suppose it to be mere admission, in fact that it is a room into which they are admitted through a door, which is opened, and then they are let in by the doorkeepers.

 

해설

AC.453은 매우 짧지만, 앞의 AC.449-452에서 계속 바로잡아 온 잘못된 천국관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유형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는 천국을 ‘입장 허가를 받아 들어가는 장소’로 생각하는 관념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을 사람의 내적 상태와는 별개로, 죽은 뒤 어느 문 앞에서 입장 여부가 결정되는 두 장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이것을 ‘너무나 거친 개념’이라고 하는 까닭은 천국을 전적으로 외적인 장소와 절차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랑을 품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보다, 마지막에 천국의 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결정적인 문제가 됩니다. 천국이 마치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든 그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공간처럼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경험들이 이미 보여 주었듯이 천국의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AC.450에서는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곧 그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천국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으로 어떤 경계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이 천국의 사랑과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천국의 ‘문’도 단순한 출입구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보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실제 삶으로 살아갈 때 그의 내면은 천국과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천국은 죽은 뒤 갑자기 외부에서 주어지는 낯선 삶이라기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부터 사람 안에 형성해 가시는 생명의 완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AC.453은 구원 역시 단순한 ‘입장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까지 우리를 이끕니다. 물론 천국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획득하는 곳이 아니며 모든 구원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생명을 사람이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그 생명에 따라 살아가는 거듭남의 과정 없이, 외적 허가 하나만으로 내적 상태가 천국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짧은 글은 바로 다음 경험들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정말 옳다면, 어떤 사람이든 천국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행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천국의 상태와 맞지 않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게 천국의 생명은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이 형성되어 있는가’입니다.

 

결국 AC.453은 천국을 미래의 어떤 장소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현재의 삶으로 되돌립니다. 중요한 것은 죽은 뒤 천국 문 앞에서 누가 나를 들여보내 줄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주님께서 내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와 선과 진리의 생명을 이루어 가시도록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단순히 외적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내면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AC.453 해설)

 

 

 

AC.454, 창5 앞, '천사들이 누리는 행복은 쓰임 안에, 쓰임으로부터, 쓰임에 따라 있다'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4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안락하게 쉬는 삶, 곧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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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2, 창5 앞,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은 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AC.452나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이 가장 큰 자가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영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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