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5의 첫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날’이고 그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안식일이라 하였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아르카나라면, 왜 이것은 처음부터 좀 더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말씀에 이 정도의 설명이라도 함께 주어졌다면 안식일과 창조의 날들을 둘러싼 많은 혼란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C.85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아르카나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를 곧바로 설명합니다. ‘천적인간의본성을아는사람이아무도없었고,영적인간의본성을아는사람도거의없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 때문에 사람들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AC.85가 직접 주는 첫 번째 답은 분명합니다. ‘일곱째날’과 ‘안식일’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천적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차이를 모르면 왜 영적 인간의 형성이 여섯째 날과 연결되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또는 안식일과 연결되는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앞의 AC.67에서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속뜻 안에는 ‘다른삶의본성이무엇인지알지못하면결코알수없는’ 아르카나들이 있다고 한 것과도 닮아 있습니다. 어떤 속뜻은 단어 하나의 암호를 알아내듯 풀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뜻이 가리키는 영적 실재 자체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C.85의 안식일도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적 인간이라는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하면 일곱째 날이 왜 천적 인간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면주님께서는왜천적인간의본성을처음부터모든사람에게명백하게설명하지않으셨는가?’라고 물으면, AC.85한 번호만으로는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AC.85는 ‘왜이아르카나가알려지지않았는가?’에 관하여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왜주님께서그것을더일찍명시적으로계시하지않으셨는가?’라는 더 큰 섭리의 문제까지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자유와 수용 상태, 말씀의 문자와 속뜻의 관계, 속뜻의 보존, 신적 섭리와 계시의 때 같은 스베덴보리의 다른 가르침들을 곧바로 AC.85의 확정적인 해답으로 끌어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주제들은 이 질문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각각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그 문제를 다루는 곳에서 확인하면서 연결해야 합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속뜻이처음부터명백하게쓰여있었다면교회사적혼란이없었을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인간적인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명백한 설명이 언제나 명백한 수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주님의 계시 방식에 대한 우리의 추측보다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밝히는 설명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렇다고 처음의 질문을 접어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중요한 질문으로 남겨 둘 가치가 있습니다. AC를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지금까지알려지지않았다’, ‘밝히는것이허락되었다’, ‘이것은아르카나이다’라고 말하는 곳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왜이제야밝혀지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본문들이 충분히 쌓이면 한 번호에서의 추측이 아니라 스베덴보리 자신의 여러 설명을 서로 대조하면서 더 신중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AC.85에서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먼저 가는 것이 좋습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안식일이라는 아르카나가 알려지지 않았던 직접적인 이유는 천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영적 인간의 본성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깊은 질문, 곧 ‘왜이러한영적실재가오랫동안알려지지않도록허용되었는가?’는 여기서 성급하게 닫지 않고, 앞으로 AC가 그 답을 열어 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질문입니다. (AC.85심화1)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2, 3)
AC.85
천적인간이‘일곱째날’(seventhday)이라는것과,그러므로일곱째날을거룩하게구별하여안식일이라한것은지금까지밝혀지지않은아르카나입니다.천적인간의본성이무엇인지아는사람이아무도없었고,영적인간의본성을아는사람도거의없었기때문입니다.이러한무지로말미암아사람들은둘사이에큰차이가있음에도영적인간을천적인간과같은것으로여겨왔습니다.그차이는AC.81에서볼수있습니다.일곱째날에관하여,그리고천적인간이‘일곱째날’(seventhday),곧‘안식일’(sabbath)이라는것에관하여는주님자신이안식일이시라는사실에서분명합니다.그러므로주님께서는이렇게말씀하십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and called the sabbath,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as may be seen in n.81.As regards the seventh day,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and therefore he says:
이말씀은주님께서사람자체이시며안식일자체이심을함축합니다.하늘과땅에있는주님의나라는주님으로말미암아안식일,곧영원한평화와안식이라합니다.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and the sabbath itself.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from him,a sabbath,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다루는태고교회는그뒤에이어진모든교회보다더욱주님의안식일이었습니다.그뒤의주님의모든가장내적인교회도역시안식일이며,거듭난모든사람도천적인간이될때에는안식일입니다.그가주님의형상이기때문입니다.그에앞서여섯날의싸움또는수고가있습니다.이러한것들은유대교회에서수고하는날들과일곱째날인안식일로표상되었습니다.그교회에서는주님과그분의나라를표상하지않는것은아무것도제정되지않았기때문입니다.이와같은것이궤가나아갈때와쉴때에도표상되었습니다.광야에서궤가이동한것은싸움과시험을표상했고,궤가쉰것은평화의상태를표상했기때문입니다.그러므로궤가떠날때모세는이렇게말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which is here treated of,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and by the seventh day,which was the sabbath;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and when it rested,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and therefore,when it set forward,Moses said:
천적인간의성질은자기자신의바람에따라행하지않고주님의선하신뜻에따라행하는것이며,그주님의뜻이그의‘바람’(desire)이됩니다.그리하여그는내적인평화와행복을누리는데,이것은여기서‘땅의높은곳에올려짐’(beingupliftedovertheloftythingsoftheearth)으로표현되며,동시에외적인평온과즐거움도누리는데,이것은‘야곱의기업으로길러짐’(beingfedwiththeheritageofJacob)으로나타납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upliftedovertheloftythingsoftheearth” -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which is signified by “beingfedwiththeheritageofJacob.”
해설
AC.85는 천적 인간이 왜 ‘일곱째날’, 곧 ‘안식일’인가를 한층 더 깊이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아르카나였다고 하면서 그 직접적인 이유를 천적 인간의 본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영적 인간의 본성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인간 사이에는 AC.81에서 본 것처럼 큰 차이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지 못하여 둘을 같은 것으로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의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AC.85에서 더 근본적인 설명은 ‘주님자신이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자는안식일에도주인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람 자체이시며 안식일 자체이심을 함축하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일, 곧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 합니다. 결국 천적 인간이 안식일인 까닭도 그 안식이 인간 자신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교회와 개인에게 함께 적용됩니다. 태고교회는 뒤에 이어진 모든 교회보다 더욱 주님의 안식일이었고, 이후의 모든 가장 내적인 교회도 안식일입니다. 또한 거듭난 사람도 천적 인간이 될 때에는 주님의 형상이므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에 앞서 ‘여섯날의싸움또는수고’가 있습니다. 유대교회의 수고하는 날들과 안식일, 그리고 광야에서 궤가 나아가고 쉬었던 일은 이 질서를 표상합니다. 궤의 이동은 싸움과 시험을, 궤의 쉼은 평화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AC.84에서 말한 ‘모든싸움이그친다’는 것은 AC.85에서 ‘평화의상태’라는 적극적인 내용으로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이사야의 안식일 말씀은 그 평화가 어떤 상태인지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행하며, 더 나아가 주님의 뜻이 바로 자기의 ‘바람’이 됩니다. 이것은 외적인 강제로 자기 욕망을 억누르는 상태와 다릅니다. AC.81에서 천적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결박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가운데 자유롭다고 했는데, AC.85는 그 자유의 내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뜻과 사람의 바람이 대립하여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신 뜻을 기뻐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의 바람이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천적 인간의 안식은 단순한 무활동이나 싸움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내적인 평화와 행복이 있고 동시에 외적인 평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전자를 이사야의 ‘땅의높은곳에올려짐’으로, 후자를 ‘야곱의기업으로길러짐’으로 설명합니다. 결국 안식일의 깊은 중심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주님의 뜻이 자신의 바람이 된 데서 오는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이로써 AC.74와 AC.84에서 이어져 온 질문도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인 것은 여섯 날의 싸움과 수고 뒤에 오는 주님의 안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쉬신다고 하는 것은 피로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싸움이 그치고 주님의 평화가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안식의 궁극적인 근원은 ‘주님자신이안식일이시다’라는 데 있습니다. (AC.85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