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셔널(rational, 합리), 주님의 생명과 영적 진리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삶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능력’(2023/5/28)
SNS 사역/카톡 공유 2023. 5. 28. 21:46‘래셔널(rational, 합리), 주님의 생명과 영적 진리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삶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능력’(2023/5/28)
(오늘 설교문에서 인용)
창세기 16장 4절은 주님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리는 순간을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인성이 거룩하게 되신 과정은 우리 인간이 거듭나는 과정과 흡사하셨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래셔널이 열리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거듭남 또는 래셔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여기서 아브람은 주님의 속 사람을, 그리고 하갈은 선과 진리에 따른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브람과 하갈의 동침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의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셨을 때, 주님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 일어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시던 어린 시절, 먼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지요. 그때 주님의 겉 사람인 인성과 속 사람인 여호와의 신성이 하나가 되셨고, 그러면서 또한 주님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렸는데, 그것이 바로 하갈이 임신한 아들입니다.
그러면 임신한 하갈은 왜 사래를 멸시했을까요?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즉 사래는 주님의 속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영적 진리를 의미하지요. 따라서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는 것은 그 속뜻으로는, 처음 래셔널이 열리기 시작할 때는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래셔널이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은 지옥,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천국이라는 진리 앞에서, 처음 래셔널이 생길 때는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있어야 이웃도 있는 거 아냐? 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는 모습입니다. 거듭남의 과정 초기, 래셔널이 처음 생길 때는 이와 같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처음 생긴 래셔널(rational, 합리, 이성)이라는 게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래셔널은 자기 여주인(mistress)을 경멸한다는 것, 곧 지적 진리(intellectual truth)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지적 진리가 주(主, manifest)가 되지 못합니다. 인정받지를 못하기 때문인데요, 오류들과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것들이 흩어져 버리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그리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을 가지고 자기 본위로 진리를 재단하는(reasons)한 흩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단지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것은 진리야라고 순진하게 믿는 순간, 그것은 주가 됩니다. 그 즉시 오류의 그늘들은 흩어져 버리고,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게 됩니다. (AC.1911:6)
말씀의 글자의 뜻으로부터 무리하게 진리를 추측하는 습관에 젖어있을 때는 주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셔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진리를 마음대로 추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43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래셔널이 건강해지면 속 사람으로부터 래셔널 가운데로 영적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래셔널을 통해 다시 겉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삶을 사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큰 행복이지만, 그 자체로 주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믿는 진리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말로 전하기보다는 삶으로, 인격으로 전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설교 원고 및 오디오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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