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144, 창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AC.142-146) - '이름'
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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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부르기’(to call by name)가 퀄리티(the quality)를 아는 것인 이유는, 고대인들은 ‘이름’(the name)을 가지고 어떤 것의 에센스를 이해했고, ‘보기와 이름 부르기’(seeing and calling by name)로 그 퀄리티를 안다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무언가 상징을 따라 자녀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모든 이름은 그 안에 뭔가 특징적인 거, 곧 그걸로 자녀들의 기원, 즉 그가 어느 가문 사람이며, 본성, 즉 그의 퀄리티가 어떤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으로, 이에 대해서는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이 아르카나 주석 작업 중, 나중에 야곱의 열두 아들을 다루는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름들에는 그렇게 이름하는 것의 근원과 퀄리티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이름 부르기’(calling by name)를 가지고 그밖에 무슨 다른 걸로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언어 관습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이걸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은 말씀에 나오는 이름들이 그런 의미들을 가진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실 수도 있겠습니다. That to “call by name” signifies to know the quality, is because the ancients by the “name” understood the essence of a thing, and by “seeing and calling by name” they understood to know the quality. The reason was that they gave names to their sons and daughters according to the things which were signified, for every name had something peculiar in it, from which, and by which, they might know the origin and the nature of their children, as will be seen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when,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come to treat of the twelve sons of Jacob. As therefore the names implied the source and quality of the things named, nothing else was understood by “calling by name.” This was the customary mode of speaking among them, but one who does not understand this may wonder that such things should be signifi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