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24.심화
1. ‘창4와 창5는 나란히 진행된 두 계열 이야기’
좀 성급한 질문일 수 있지만, 그리고 이미 몇 차례 거듭 고민했던 질문이지만... 창4, 창5를 시간순으로 읽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가인 이후 이 여러 대가 흐르도록 태고교회는 처음엔 어두운 세월을 지내다가 셋 이후 회복된 걸로 보기에는 ‘태고교회’라는 위상(?)에 어딘가 좀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창4를 시간순으로 읽으면,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이 여러 대가 흐르도록 나이만 먹다가 수백, 수천 년이 흐른 후에야 셋이라는 자녀를 본 게 되는데... 이건 좀... 차라리 창4 따로, 창5 따로, 그러니까 가인 계열과 셋 계열이 나란히 동시대를 살다가 홍수를 맞이하는, 이런 이해가 더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AC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여기서 매우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창4에서는 가인에게서 에녹,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 라멕으로 여러 대가 이어지고, 라멕에게서 다시 야발, 유발, 두발가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긴 계보가 모두 소개된 뒤 창4:25에 와서 갑자기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현대적인 연대기처럼 그대로 시간순으로 읽으면, 마치 가인의 여러 대 후손이 모두 태어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아담과 하와가 셋을 낳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그 긴 세월 동안 나이만 먹다가 뒤늦게 셋을 낳았다는 것인지, 또 태고교회는 가인 이후, 오랫동안 어두운 상태에 있다가 셋 이후에야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는 창4와 창5를 그렇게 단순한 직선적 시간순으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두 장은 동일한 태고교회 시대 안에서 전개된 서로 다른 교회적 계열을 각각 집중하여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4는 특히 태고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리들과 그 변질의 흐름, 곧 가인으로부터 이어지는 계열을 보여 줍니다. 반면 창5는 다시 아담에서 시작하여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을 거쳐 노아에 이르는 태고교회의 주된 계승선을 따로 보여 줍니다. 따라서 ‘창4의 가인 계열이 역사적으로 모두 끝난 뒤에 창5의 셋 계열이 시작되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두 계열은 상당 부분 같은 태고교회 시대 안에서 나란히 전개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여기서 ‘나란히’라는 말도 모든 인물의 출생 연대를 정확히 맞추어 역사적 동시성을 확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중요한 것은 연대보다 ‘상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가인, 에녹, 이랏 등의 이름은 단지 개인만이 아니라 특정한 교리와 교회적 상태를 표상하고, 셋과 에노스 및 창5의 여러 이름들 역시 서로 이어지는 교회적 상태들을 표상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한쪽 계열의 영적 역사를 충분히 보여 준 다음, 동시에 다시 다른 계열로 돌아가 이번에는 그쪽 계열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창4:25에서 셋이 등장하는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집니다. 이것은 반드시 ‘가인의 여러 대 후손이 모두 지나간 뒤 비로소 셋이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의 서술 초점이 가인으로 대표되는 한 계열에서 셋으로 대표되는 다른 계열로 옮겨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5에서는 그 셋 계열을 다시 처음부터 붙잡아 노아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역사를 하나의 연속된 계보로 보여 줍니다. 즉 창4와 창5는 ‘먼저 가인 계열, 그 모든 역사가 끝난 다음 셋 계열’이라는 관계라기보다, ‘태고교회라는 하나의 큰 시대 안에서 전개된 서로 다른 계열을 각각 추적한 두 개의 서술’로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이것을 너무 단순하게 ‘가인 계열은 악한 계열이고, 셋 계열은 선한 계열이다’라고 나누어서도 안 됩니다. 가인으로 표상되는 신앙 역시 처음부터 아무런 진리도 없는 순수한 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분리되고, 점차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우위에 두면서 변질되어 간 데 있습니다. 또한 셋으로 이어지는 계열 역시 아무런 쇠퇴 없이 완전한 상태로 노아까지 내려간 것은 아닙니다. 태고교회 전체가 점차 쇠퇴하여 결국 홍수라는 종말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두 계열 모두 태고교회라는 거대한 영적 역사 안에 있으며, 다만 서로 다른 교회적 상태와 방향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태고교회’라는 명칭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가장 처음의 순수한 아담 교회 한 세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최초의 천적 상태에서 시작하여 여러 후손 교회들을 거쳐 홍수 직전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교회 시대를 포괄합니다. 그 안에는 가장 높은 천적 상태도 있고, 점차 쇠퇴하는 상태도 있으며, 본래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교리적 계열도 있고, 그 가운데 주님께서 보존하시는 새로운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 계열의 어두운 모습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순간 태고교회 전체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AC.324에서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두 흐름입니다. 인간, 즉 아담에게서는 하나였던 사랑과 신앙이 갈라지고 교리들이 분리되어 여러 ‘heresies’가 생겨나지만, 주님에게서는 그 분열과 쇠퇴 가운데서도 새로운 교회를 ‘일으켜 세우시는’ 섭리가 계속됩니다. 창4와 창5는 바로 이 두 흐름이 태고교회 시대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서로 다른 계열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이 관점을 처음부터 가지고 읽으면, 앞으로 가인과 아벨, 셋과 에노스, 그리고 창5의 긴 계보가 단순한 고대 가족사가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분리되고 쇠퇴하며, 그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어떻게 생명의 계보를 보존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거대한 영적 역사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합니다.
AC.324, 창4, ‘창4 본문, 개요, 배경’(AC.324-337)
창4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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