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And unto Cain and unto his offering he looked not, and Cain’s anger was kindled exceedingly, and his faces fell.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nd Jehovah said unto Cain, Why art thou wroth, and why are thy faces fallen? (창4:5-6)
AC.327
분리된 신앙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진 것은,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한 것’(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으로 묘사됩니다. (5-6절) That the state of those who were of separated faith became evil, is described by Cain’s “anger being kindled, and his countenance falling.” (verses 5–6)
해설
AC.327은 AC.325-326에서 시작된 흐름이 이제 사람의 상태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줍니다. AC.325에서는 본래 사랑과 하나였던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었고, AC.326에서는 그 분리가 예배에까지 나타났습니다. 가인도 제물을 드렸지만 그것은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에서 비롯된 예배였습니다. 이제 AC.327에서는 그 결과 ‘분리된 신앙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상태가 악해졌다’(became evil)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가인으로 표상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완전히 악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본래 교회 안에 있던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문제는 그 신앙이 자신의 생명인 사랑에서 분리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과 신앙의 분리였지만, 그 분리가 예배에 나타났고, 이제는 그 분리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 자체가 악해지는 단계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창4의 타락이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처음부터 ‘아벨을 죽이자’는 상태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 함께 있어야 할 사랑과 신앙이 서로 떨어져 나가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분리가 계속되자 예배의 질이 달라졌고, 이제는 그 결과 애정과 내적 상태 자체가 악한 방향으로 변해 갑니다. 이후에는 마침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곧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를 소멸시키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가인이 ‘몹시 분하였다’는 것은 이러한 악화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가인의 분노이지만, 속뜻에서는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진 것이 이 분노를 통하여 묘사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성격이나 순간적인 감정 분석이 아니라,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어떤 방향으로 변해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신앙도 사랑과 구별되는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앙은 중요하며 진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별이 분리가 되고, 분리된 신앙이 자신을 체어리티보다 더 본질적인 것으로 세우기 시작하면 질서가 뒤집힙니다. 체어리티는 더 이상 신앙과 함께 있어야 할 형제가 아니라 신앙의 독립적인 지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분노는 앞으로 일어날 아벨의 죽음과 연결됩니다.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단지 체어리티 없이 존재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체어리티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밀어내며 결국 소멸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4의 살인은 속뜻에서 이러한 영적 과정의 마지막 결과를 보여 줍니다.
‘안색이 변하였다’는 표현도 가인의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더욱 강하게 묘사합니다. 다만 AC.327에서는 아직 이 표현의 세부적인 상응을 풀어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분함’과 ‘안색의 변화’가 함께 분리된 신앙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가 악해졌음을 나타낸다는 스베덴보리의 직접적인 설명을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신앙 자체를 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AC.325부터 계속 지켜야 할 중요한 구별입니다. 문제는 신앙이 아니라 ‘분리된 신앙’입니다. 신앙의 진리는 체어리티의 선과 결합될 때 사람에게 생명을 주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진리가 선에서 분리되고 신앙이 체어리티에서 떨어져 나가면, 본래 선을 섬겨야 할 진리가 그 목적을 잃게 됩니다.
또한 창4:6에서는 이러한 상태에 있는 가인에게 여호와께서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AC.327은 이 질문의 속뜻을 아직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문자 자체에서도 주님께서 가인의 악해진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이 부르심과 경고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AC.325-327을 함께 놓으면 창4의 흐름이 매우 선명해집니다. 먼저 사랑과 신앙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다음으로 그 분리가 예배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 사람의 상태 자체가 악해집니다. 결국 아벨의 죽음은 갑자기 등장하는 비극이 아니라 앞에서부터 진행되어 온 분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AC.327은 우리에게 ‘나는 화를 내는가?’라는 심리적인 질문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진리와 신앙은 사랑과 체어리티 안에서 살아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진리가 선과 함께 있고 신앙이 체어리티 안에 있을 때 그것은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분리되어 신앙이 스스로 서려고 할 때, 처음에는 작은 질서의 변화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 사람의 내적 상태 전체를 바꾸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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