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32.심화
3. ‘아다와 씰라’가 일어났음에도 결국...
다음 질문은 진도가 좀 빠른 듯 하지만... 라멕에게서 일어난 아다와 씰라 계열도 썩 괜찮아 보이는데 결국 가인 계열은 셋 계열과 더불어 홍수라는 종말을 맞이하는군요...
네, 맞습니다. 진도는 조금 빠르지만, 오히려 지금 이 질문을 미리 붙들어 두면, 곧 만나게 될 아다와 씰라, 야발과 유발과 두발가인을 읽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그 계열을 읽다 보면 뜻밖의 느낌이 듭니다. ‘가인 계열이 계속 타락했다면서, 여기에는 왜 이렇게 쓸 만하고 심지어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생겨나는가?’ 하는 것이지요.
라멕에 이르러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AC.332의 선언만 보면 이후에는 온통 악과 거짓뿐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창4 후반으로 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다에게서 야발과 유발이 나오고, 씰라에게서 두발가인이 나오며, 스베덴보리는 이들을 단순히 악한 것들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야발은 ‘천적이고 거룩한 사랑의 것들’, 유발은 ‘영적 신앙의 것들’, 두발가인은 자연적 선과 진리에 관한 것들과 연결되는 상당히 중요한 표상들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대로 얼핏 보면 ‘썩 괜찮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놀랍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그 계열 안에서 어떤 유용한 교리적, 예배적 형식이 생겨났다’는 것과 ‘그 교회 자체가 다시 살아 있는 천적 교회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구별하는 데 있습니다. 라멕에게서 원래 가인이 표상했던 신앙의 생명은 종말에 이르렀지만, 그 후손들 가운데서 외적인 것들, 곧 예배와 교리, 자연적 삶에 사용될 수 있는 여러 형식들이 발전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이후 스베덴보리가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설명하면서 상당히 세밀하게 구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좋은 의미를 가진 것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가인 계열이 다시 원래의 천적 생명을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스베덴보리에게 매우 중요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어떤 교회가 내적으로 쇠퇴해도 그 교회에서 발전한 지식, 예배 형식, 교리, 문화적 유산 가운데 후대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들이 남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들까지 모두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필요한 것들을 보존하여 이후의 교회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이 점은 조금 전 이야기한 ‘가인의 표’와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주님의 섭리는 어떤 교회의 악을 승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쇠퇴하는 가운데서도 장차 구원에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을 보존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두 번째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가인 계열만 홍수로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셋 계열도 자연계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는 홍수 이전 태고교회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가인 계열은 악했으니 홍수로 멸망하고, 셋 계열은 선했으니 살아남았다’는 식으로 창4와 창5를 나누어 읽으면 곤란합니다. 창5의 계보 역시 계속 동일한 상태로 순수하게 유지되는 계보가 아닙니다. 태고교회 전체가 세대를 거치면서 변해 가고, 마침내 그 시대 자체가 종말에 이릅니다.
바로 여기서 ‘노아’의 위치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노아는 단순히 ‘착한 셋 계열의 마지막 생존자’ 정도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노아는 이전 태고교회의 천적 질서를 그대로 이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적 구조를 가진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표상합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의지와 이해가 하나를 이루었고, 사랑으로부터 진리를 퍼셉션했지만, 그 의지 자체가 심각하게 부패하면서 더 이상 그 방식으로 인간을 거듭나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해를 의지에서 어느 정도 분리하시고, 진리와 신앙을 통하여 새로운 의지를 형성하며, 체어리티에 이르게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마련하십니다. 그것이 홍수 이후 고대교회의 질서입니다.
그러므로 홍수는 ‘나쁜 가인 계열을 없애고, 좋은 셋 계열만 남긴 사건’이라기보다 훨씬 큰 사건입니다. 하나의 인류적, 교회적 시대 전체가 끝나는 종말입니다. 가인 계열과 셋 계열로 나란히 이어지던 태고교회는 결국 그 옛 질서 자체로서는 끝납니다. 다만 주님께서 그 전체 가운데 리메인스를 보존하시고, 그것을 ‘노아’로 표상되는 새로운 교회로 이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속성과 단절이 동시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없어진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옛 교회가 그대로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보존할 것은 보존하시되 거듭남의 질서는 새롭게 하십니다.
이렇게 보면 아다와 씰라 계열이 ‘썩 괜찮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다. 종말에 이르는 교회라고 해서 그 안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악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내적 생명이 쇠퇴한 뒤에도 주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유용한 것들을 보존하실 수 있고, 후대의 교회를 위해 준비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의 ‘종말’을 ‘모든 사람이 악인이 되고, 모든 진리가 사라지는 순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의 종말은 본질적으로 그 교회를 그 교회답게 하던 내적 생명과 질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창4와 창5를 조금 앞서 한눈에 바라보면 꽤 아름다운 구조가 보입니다. 창4에서는 태고교회 안에서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어 어떻게 여러 교리와 외적 형식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그 계열이 종말에 이르는지를 보고, 창5에서는 또 다른 계열을 통하여 태고교회의 상태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해 가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둘 다 결국 홍수라는 거대한 경계 앞에 섭니다. 그런데 그 경계 한가운데 ‘노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낡은 질서를 억지로 영속시키지 않으시면서도 그 안의 리메인스를 잃지 않으시고, 그것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거듭남의 시대를 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목사님께서 느끼신 ‘아다와 씰라 계열도 꽤 괜찮아 보이는데, 결국 모두 홍수라는 종말을 맞는구나’라는 느낌은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질문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이 남아 있다는 것’과 ‘그 교회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 교회의 종말’과 ‘주님의 구원 역사의 종말’ 역시 전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두 구별을 붙들고 앞으로 몇 개의 글을 더 읽으시면, 야발과 유발과 두발가인이 왜 가인의 후손인데도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가 훨씬 자연스럽게 풀릴 것입니다.
AC.332, 심화 2, ‘표’를 주시면서까지 신앙을 보전하시려던 계획이 라멕 때문에 무산?
AC.332.심화 2. ‘표’를 주시면서까지 신앙을 보전하시려던 계획이 라멕 때문에 무산? 라멕에 이르러 ‘신앙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그러면 처음 가인의 때, 그에게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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