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5)

 

AC.358

 

안색이 변했다(faces falling) 것이 내적인 것들이 변했음을 상징한다는 것은 얼굴(face) 얼굴이 떨어짐(falling) 상징적 의미에서 분명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얼굴은 내적인 것들을 상징했습니다. 내적인 것들이 얼굴을 통해 빛나기 때문입니다. 태고시대의 사람들은 얼굴이 내면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이어서, 누구든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가 어떤 성품과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있었습니다. 그들은 얼굴로는 가지를 나타내면서 속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을 괴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가장과 기만은 당시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러므로 내적인 것들이 얼굴 상징되었습니다. 체어리티가 얼굴에서 빛날 때에는 얼굴이 들렸다(lifted up) 하였고, 반대의 경우에는 얼굴이 떨어졌다(fall)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말씀에서처럼 주님께서도 사람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lifts up his faces upon man) 표현됩니다. (6:26; 4:6) That by thefaces fallingis signified that the interiors were change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faceand of itsfalling.” The face, with the ancients, signified internal things, because internal things shine forth through the face; and in the most ancient times men were such that the face was in perfect accord with the internals, so that from a mans face everyone could see of what disposition or mind he was. They considered it a monstrous thing to show one thing by the face and think another. Simulation and deceit were then considered detestable, and therefore the things within were signified by the face. When charity shone forth from the face, the face was said to belifted up”; and when the contrary occurred, the face was said tofall”; wherefore it is also predicated of the Lord that helifts up his faces upon man,” as in the benediction (Num. 6:26; and in Ps. 4:6),

 

여호와는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6:26)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4:6)

 

이것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체어리티를 주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얼굴이 떨어진다(face falling)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예레미야에서 있습니다. by which is signified that the Lord gives charity to man. What is meant by theface falling,appears from Jeremiah: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2) I will not make my face to fall toward you, for I am merciful, saith Jehovah. (Jer. 3:12)

 

여호와의 얼굴(face of Jehovah) 자비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lifts up his face) 것은 자비로 그에게 체어리티를 주신다는 것을 상징하고, 반대가 얼굴을 떨어뜨리는 (makes the face to fall), 인간의 얼굴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Theface of Jehovahis mercy, and when helifts up his faceupon anyone, it signifies that out of mercy he gives him charity; and the reverse when hemakes the face to fall,that is, when mans face falls.

 

 

해설

 

AC.358은 창4:5의 ‘안색이 변하니’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개역개정의 ‘안색이 변하다’는 자연스러운 번역이지만, 스베덴보리가 해설하는 히브리적 표현과 영어 번역은 훨씬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his faces fell’, 곧 문자적으로는 ‘그의 얼굴이 떨어졌다’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속뜻을 이해하려면 먼저 왜 ‘얼굴’이 인간의 내적인 것들을 상징하며, 얼굴이 ‘들리는 ’과 ‘떨어지는 ’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고대인들에게 ‘얼굴’이 내적인 것들을 상징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아름답습니다. ‘내적인 것들이 얼굴을 통해 빛나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단순한 육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애정과 생각이 밖으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평안과 불안이 얼굴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말씀의 상응에서 얼굴은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기에 매우 적합한 자연적 형상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태고시대 사람들에게 있었던 매우 특별한 상태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얼굴이 내면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태고인들이 표정을 잘 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아직 오늘날 인간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속에 있는 애정과 생각이 얼굴을 통하여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얼굴로는 가지를 나타내면서 속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을 ‘괴물 같은 ’으로 여겼습니다. 상당히 강한 표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속으로 불쾌해도 웃을 수 있고, 미워하면서도 친절한 얼굴을 할 수 있으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상대방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AC.358이 말하는 것은 그런 예의나 자기 절제가 아니라 ‘가장과 기만(simulation and deceit)입니다. 실제 내면과 정반대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이것이 혐오스러웠다는 것은 그들의 천적 성품과 연결됩니다. 그들은 내적 사랑에서 외적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속과 겉이 하나의 질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속에는 하나를 품고 겉으로는 정반대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삶의 질서를 찢어 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얼굴’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내적인 것을 상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경에서 ‘얼굴이 들린다’와 ‘얼굴이 떨어진다’는 표현의 의미가 열립니다. 체어리티가 얼굴에서 빛날 때 얼굴은 ‘들렸다’고 합니다. 반대로 체어리티가 떠나고, 내적 상태가 악한 방향으로 변하면 얼굴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인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단순히 화가 나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는 뜻이 아니라, 가인으로 표상되는 교회의 내적 상태에서 체어리티가 떠나면서 그 내적인 것들 자체가 변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 AC.357과 연결하면 그 과정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가인의 분노가 타올랐다’는 것은 체어리티가 떠난 것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얼굴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 결과로 내적인 것들이 변한 것을 뜻합니다. 즉 ‘분노’와 ‘얼굴의 떨어짐’은 서로 별개의 현상이 아닙니다. 체어리티가 떠나자 내면 전체의 상태가 변하고, 그 변화가 ‘얼굴이 떨어짐’이라는 말씀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여기서 민6:26의 제사장 축복이 매우 중요한 반대 그림을 제공합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인간에게 체어리티를 주신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가인의 ‘얼굴이 떨어짐’과 여호와께서 ‘얼굴을 드심’은 정확히 반대 방향의 영적 상태를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참으로 ‘들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높일 때가 아니라 주님께서 체어리티를 주실 때입니다. 자연적 의미에서 얼굴을 든다는 말은 자신감이나 당당함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만, 속뜻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자기 사랑으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체어리티가 인간의 내면을 밝게 할 때 그의 얼굴이 들립니다.

 

4:6의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얼굴이 ‘들리는 ’과 ‘빛나는 ’이 연결됩니다. AC.358 첫머리에서 ‘내적인 것들이 얼굴을 통해 빛난다’고 했던 것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인간에게 비친다는 것은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인간에게 임하는 것이며,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의 내적인 것에서도 체어리티가 빛나게 됩니다.

 

3:12은 반대 표현을 통하여 같은 사실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인용한 표현을 문자적으로 보면, ‘나의 얼굴을 너희에게 떨어뜨리지 아니하리니’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곧이어 나옵니다. ‘나는 긍휼이 있는 자임이라.’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여호와의 얼굴은 자비’라고 설명합니다. ‘얼굴’과 ‘자비’가 직접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얼굴은 주님의 내적인 것을 상징하는데,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사랑과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체어리티를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얼굴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인간의 입장에서 그 자비와 체어리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여기에서도 바로 앞 AC.357에서 살펴본 ‘여호와의 진노’와 동일한 원리가 나타납니다. 주님의 얼굴 자체가 실제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어느 순간 자비로우셨다가 다음 순간 얼굴을 떨어뜨리고, 인간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AC.357에서 분노는 실제로 인간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듯이, AC.358에서도 마지막에 ‘ 인간의 얼굴이 떨어지는 ’이라고 설명합니다. 변하는 것은 주님의 얼굴이 아니라 인간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가인의 얼굴이 떨어진 것은 주님께서 가인에게 얼굴을 돌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인이 체어리티에서 떠남으로써 그의 내적인 것들이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심화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진노’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인간에게는 주님께서 자기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방향을 바꾼 쪽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가인의 이야기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처음에는 신앙을 사랑에서 구별하여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신앙과 사랑이 실제로 분리되기 시작했고, 그 분리를 인정하는 교리가 생겼습니다. 이어 체어리티 없는 예배가 생겼고, 그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분노로 인해 ‘얼굴이 떨어집니다.’ 곧 내적인 것들 자체가 변합니다.

 

이것은 악이 인간 안에서 진행되는 질서를 보여 줍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생각이나 교리적 오류처럼 시작된 것이 애정에 영향을 미치고, 애정의 변화가 결국 인간의 내적 상태 전체를 바꿉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에게 교리는 단순한 지적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어떤 거짓을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가와 연결되며, 그 사랑은 사람의 얼굴, 곧 그의 내적인 사람 전체를 형성합니다.

 

AC.358에서 태고인들의 ‘얼굴과 내면의 일치’를 길게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에 중요합니다. 창4의 이야기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에게 일어난 영적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속과 겉이 하나였던 천적 인간의 상태가 점차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 신앙이 사랑에서 분리되고, 가장과 기만의 가능성이 생기며,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서로 달라질 수 있는 인간 상태로 내려갑니다. ‘가인의 얼굴이 떨어졌다’는 짧은 표현 안에는 이러한 깊은 변화까지 배경으로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속에 있는 것을 무조건 얼굴과 말로 드러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는 것과 기만은 다릅니다. 화가 난다고 그대로 화를 쏟아내는 것이 속과 겉의 일치는 아닙니다. 거듭남의 목표는 내면의 악을 외면에 솔직하게 표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면 자체를 변화시키셔서 속에서 선을 사랑하고 겉에서도 그 선을 행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참된 일치는 ‘악한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이 아니라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함께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AC.358의 얼굴은 거듭남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로 체어리티를 주실 때, 내적인 것이 변화하고, 그 선이 외적 삶을 통해 빛납니다. 말과 행동, 표정과 관계, 일상의 쓰임 속에서 내적 사랑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얼굴이 들리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가인의 얼굴이 떨어진다는 것은 체어리티가 떠나면서 내면과 외면 모두가 어두워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곧이어 주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고 물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인의 표정을 지적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의 내적인 것들이 이렇게 변했느냐?’라는 영적 질문입니다.

 

결국 AC.358의 핵심은 ‘얼굴은 내면이 빛나는 자리’라는 데 있습니다. 태고교회에서는 속과 겉이 일치했기 때문에 얼굴이 곧 내면을 나타냈습니다. 체어리티가 있을 때 얼굴은 들리고, 체어리티가 떠날 때 얼굴은 떨어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얼굴을 드신다는 것은 자비로 인간에게 체어리티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가인의 ‘안색이 변함’은 화난 표정 하나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 결국 인간의 내적인 것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줍니다. 앞의 AC.357이 ‘분노’를 통하여 체어리티가 떠나는 순간을 보여 주었다면, AC.358은 그 결과 인간의 ‘얼굴’, 곧 내면 전체가 변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실 때, 곧 우리가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일 때, 체어리티가 다시 인간 안에서 빛납니다. 이것이 말씀에서 ‘얼굴이 들림’과 ‘얼굴이 떨어짐’이라는 너무나 인간적인 표현 속에 감추어 놓으신 깊은 아르카나입니다.

 

### 인용 심화 판단

 

AC.358은 별도 심화 가치가 충분합니다. 특히 민6:26과 시4:6을 묶어 ‘여호와께서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얼굴과 체어리티’라는 주제로 다루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렘3:12을 반대 방향의 보조 구절로 함께 사용하면 ‘얼굴을 드심’과 ‘얼굴을 떨어뜨림’의 상응이 아주 선명해집니다.

 

또 하나는 본문 앞부분의 ‘태고인들은 얼굴과 내면이 완전히 일치했다’는 설명입니다. 이것은 별도의 성경 인용 심화라기보다 태고교회의 퍼셉션과 속·겉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주제 심화로 발전시킬 만합니다. 다만 현재 창4의 흐름에서는 첫 번째 심화만으로도 충분하겠습니다.

 

### 블로그 제목

 

가인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굴에 나타나는 내적 상태(AC.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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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

 

1. ‘여호와께서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 주님의 얼굴과 체어리티(6:26; 4:6)

 

 

AC.358, 심화 1,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 주님의 얼굴과

AC.358.심화 1.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 주님의 얼굴과 체어리티’(민6:26; 시4: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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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57, 창4:5, ‘가인의 분노는 무엇을 뜻하는가 - 자기 사랑과 체어리티의 떠남’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5) AC.357 ‘가인의 분노가 타올랐다’(Cain’s anger was kindled)는 것이 체어리티가 떠났음을 상징한다는 것은,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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