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90 심화

2. 왜 ‘비’와 ‘안개’가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을 뜻하는가?

 

AC.90은 곧이어 ‘안개’라 하는 ‘비’가 싸움이 그칠 때의 ‘평화의 평온’이라고 합니다. 자연계의 비와 안개가 왜 사람의 내적인 평화와 연결되는 것일까요?

 

AC.90만 읽으면 스베덴보리는 우선 그 의미를 선언할 뿐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AC.91에서 그 이유를 밝혀 줍니다. 이 평온은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적시고 이슬로 촉촉하게 하는 수증기와 같다’고 합니다. 따라서 비와 안개의 핵심은 단순히 물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혹은 안으로부터 내려와 메마른 것을 적시고 그곳에서 무엇인가 자라게 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인간에서 천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영적 인간일 때에는 겉 사람이 아직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이 되면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기 시작하고 싸움이 그칩니다. 그때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온이 겉 사람에게 미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상태를 비와 안개가 지면을 적시는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평화의 평온’은 단순히 싸움이 사라져 조용해진 상태가 아닙니다. AC.92에서는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하여, 그 평온은 단지 싸움의 그침이 아니라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이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때 신앙의 진리들과 사랑의 선들이 평화의 즐거움에서 생명을 얻어 태어납니다. 비와 안개는 바로 이처럼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생명이 미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비’와 ‘안개’를 단순히 ‘평화’라는 단어와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상응의 모습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메마른 지면이 스스로를 적시는 것이 아니라 비와 안개에 의해 적셔지고, 그렇게 적셔진 지면에서 식물이 자랍니다. 이와 같이 천적 인간의 겉 사람도 자기 자신에게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생명을 받아 그 안에서 선과 진리에 속한 것들을 산출합니다.

 

이 점에서 AC.90의 비와 안개는 AC.87-92의 흐름을 하나로 이어 줍니다. 주님 홀로 사람을 위하여 싸우시고, 싸움이 그치며,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바로 서고, 그때 내적인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이 겉 사람을 적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부터 ‘들의 관목’과 ‘들의 초목’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비와 안개는 단순한 고요함의 표상이 아니라, 싸움이 끝난 뒤 주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생명이 사람 안에 흘러들어 새로운 것을 자라게 하는 상태를 보여 줍니다. (AC.90 심화 2)

 

 

 

AC.90, 창2:5-6, ‘땅에서 지면과 들로, 싸움이 그친 뒤의 평화의 평온’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And ther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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