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20

애굽(Egypt)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선지서의 말씀에서 분명합니다. 미가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s byEgypt,so also byEuphrates,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 성벽을 건축하는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바다에서 바다까지, 산에서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선지자들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실 주님의 오심에 관하여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예레미야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네가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서 애굽(Egypt) 유브라데(Euphrates) 마찬가지로 기억지식을 의미하고, 앗수르(Asshur) 거기서 나오는 추론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whereEgyptandEuphrates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Asshurreasonings thence derived. In David:

 

8주께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서도 유브라데강(river Euphrates)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유브라데가 앗수르 쪽을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던 것처럼, 기억지식은 영적이고 천적인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다음 말씀도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where also theriver Euphrates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자손에게 주노니 (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경계는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해설

AC.120은 앞의 AC.118에서 브랏’, 곧 유브라데가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말씀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미가 조금 더 구체화됩니다. ‘애굽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도 기억지식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러한 기억지식이 나오는 감각적인 것들까지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억지식이 왜 천적 인간의 질서에서 가장 바깥쪽에 놓이는지도 점차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연계에서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기억에 저장하는 것들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미7:10-12를 인용한 이유는 이 구절에 앗수르와 애굽과 강, 곧 유브라데가 함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천적 인간과 같이 되게 하실 주님의 오심에 관한 예언으로 읽습니다. 따라서 여러 나라와 지역과 경계에 관한 표현도 단순한 지리적 이동에 머무르지 않고, 거듭나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인 질서와 관계됩니다. 앞에서 에덴의 네 강을 천적 인간의 내적인 것들에 관한 묘사로 읽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2:18에서는 애굽의 시홀 물을 마시는 것과 앗수르로 가서 유브라데 물을 마시는 것이 함께 언급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애굽유브라데가 기억지식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추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인용은 특히 중요합니다. 앞의 AC.119에서는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추론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성적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 이성이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아 추론하는가는 구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근거로 위의 것들을 판단하려는 질서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이성의 명철함을 받는 질서는 같지 않습니다.

 

80:8, 11의 포도나무는 애굽에서 나와 심어지고 그 가지가 바다까지, 넝쿨이 유브라데까지 뻗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유브라데강이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연적인 경계와 영적인 경계의 관계를 통하여 직접 설명합니다. 유브라데가 앗수르 쪽을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던 것처럼, 기억지식은 영적이고 천적인 인간에게 있는 지성과 지혜의 경계입니다. 따라서 경계라는 말은 기억지식을 무가치한 것으로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그것이 내적인 생명이 자연적인 차원에 이르는 가장 바깥쪽에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15:18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땅이 애굽 강에서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로 인용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두 경계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명시합니다. 따라서 약속의 땅을 둘러싼 자연적인 경계 역시 속뜻에서는 인간의 내적인 상태와 관계된 경계를 표현합니다. 이것은 앞의 AC.117에서 말씀의 역사적 부분에 들어 있는 모든 것도 아르카나를 의미하고 표상하며 그 안에 담고 있다고 한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AC.120은 또한 AC.80 이후 계속 남아 있던 감각과 기억지식의 문제를 상당히 선명하게 해 줍니다. 감각적인 것과 기억지식은 인간에게 없어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적 인간에게도 그것들은 존재하며 전체 질서의 경계를 이룹니다. 문제는 가장 바깥의 경계에 있는 감각과 기억지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랑과 신앙의 내적인 것들을 판단하려는 데 있습니다. AC.118에서 참된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으므로, 거듭난 질서에서는 생명의 흐름이 가장 바깥에서 안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안을 거쳐 밖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AC.120의 여러 인용 구절은 모두 유브라데가 왜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을 의미하며, 왜 그것이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불리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합니다. 미가는 이 의미를 주님의 오심과 인간의 거듭남이라는 큰 문맥에 놓고, 예레미야는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추론의 문제를 보여 주며, 시편과 창세기는 유브라데라는 실제 경계를 통하여 기억지식이 지성과 지혜의 경계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감각과 기억지식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놓여야 하며, 그 위에 있는 이성과 지성과 지혜 역시 궁극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질서 안에 있어야 합니다. (AC.120)

 

 

 

AC.121, 창2:14, ‘천적 질서 -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성과 이성을 거쳐 기억지식까지’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1천적 질서의 본질, 곧 생명에 속한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 강들로부터 분명합니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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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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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4)

 

AC.119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다. 에스겔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ThatAsshur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31:3, 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이성은 레바논의 백향목(cedar in Lebanon)이라 하며, 굵은 가지들 사이에 있는 가지(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cedar in Lebanon”; the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시며 이르시되 백성 애굽이여,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구절과 밖의 여러 구절에서 애굽(Egypt) 기억지식을, 앗수르(Asshur) 이성을, 이스라엘(Israel) 지성을 의미합니다. ByEgypt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Asshurreason, and byIsraelintelligence.

 

해설

AC.119는 앞의 AC.118에서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한 해석을 에스겔과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합니다. AC.118에서는 힛데겔강이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앗수르가 이성적 마음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번호의 두 인용은 바로 그 가운데 앗수르가 이성을 의미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제시됩니다.

 

먼저 겔31:3-4에서는 앗수르를 크고 아름다운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레바논 백향목이 이성을 의미한다고 직접 설명합니다. 또한 그 나무의 가지들과 관련된 표현은 기억에 속한 앎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인용에서 백향목과 그 가지들은 단순한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아니라, 이성과 그것에 속하여 있는 앎들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특히 물과 깊은 물과 강들이 그 나무를 자라게 한다는 묘사는 앞에서 강과 물이 사람에게 지혜와 지성을 주고 자라게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고 한 설명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의미는 사19:23-25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말씀에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함께 등장하며, 서로 왕래하고 함께 여호와를 섬기며 마침내 셋이 함께 복이 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세 이름의 의미를 직접 밝혀 애굽은 기억지식, ‘앗수르는 이성, ‘이스라엘은 지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앗수르 하나의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구별된다는 사실까지 보여 줍니다.

 

이 점은 최근 여러 번호에서 계속 나타난 용어의 구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AC.111에서는 기억지식을 곧 지성과 지혜와 신앙이라고 여기는 겉 사람의 상태를 지적했습니다. AC.116에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앎이 이해에 속한다고 했고, AC.117에서는 애굽이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들이 앎을 의미한다고 구별했습니다. 이제 AC.119에서는 애굽의 기억지식과 앗수르의 이성과 이스라엘의 지성이 다시 구별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기억지식, , 이성, 지성은 서로 바꾸어 써도 되는 비슷한 말들이 아니라 각각의 자리를 가진 개념들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19장의 인용 이유는 단순히 앗수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사이에 길이 열리고 서로 오가며 함께 섬긴다는 전체 장면 속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서로 관계를 맺는 질서가 표현됩니다. 이성은 기억지식과 단절되어 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지성 역시 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구별되면서도 올바른 질서 안에서는 함께 작용하고, 그 전체가 여호와께 복을 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AC.118에서 유브라데, 곧 기억지식을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한 설명을 기억지식의 무가치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확인해 줍니다. 19장에서 애굽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고 백성 애굽이라고까지 불리며 앗수르와 이스라엘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이성과 지성과 어떤 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연적인 앎과 이성적 능력이 올바른 질서 안에 있을 때 그것들도 전체적인 영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C.119에서 에스겔과 이사야가 인용된 이유는 충분히 분명합니다. 에스겔은 앗수르를 레바논 백향목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성과 그에 속한 것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이사야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을 함께 놓음으로써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과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것은 AC.118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천적 인간 안에서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제자리를 얻어 질서 있게 관계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AC.119)

 

 

 

AC.120, 창2:14, ‘유브라데 - 기억지식과 감각적인 것들은 지성과 지혜의 경계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20‘애굽’(Egypt)과 마찬가지로 ‘유브라데’(Euphrates)도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또한 이러한 기억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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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8, 창2:14, ‘힛데겔과 유브라데 -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기억지식으로’ (AC.118-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창2:14) AC.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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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2:14)

 

AC.118

힛데겔강(river Hiddekel)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합니다. 앗수르(Asshur)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랏(Phrath),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이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입니다. Theriver Hiddekel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Asshuris the rational mind; the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해설

AC.118은 셋째 강 힛데겔과 넷째 강 유브라데를 설명하면서 에덴에서 나온 네 강의 구조를 거의 완성합니다. 힛데겔은 이성, 또는 이성의 명철함을 의미하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그것은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앞의 두 강이 의지와 이해에 관계했다면, 이제 셋째와 넷째 강에서는 이성과 기억지식까지 나타나면서 천적 인간 안에 있는 것들이 더욱 바깥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에 대한 설명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속한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을 의미한다고 직접 밝힙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힛데겔은 이성이고 앗수르는 이성적 마음이라는 각각의 의미보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성의 참된 명철함은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은 AC.115에서 처음 분명하게 등장한 유입의 설명을 한층 구체화합니다.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유입의 근원과 통로와 도착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성의 명철함은 주님으로부터 오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의 이성적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사람의 이성이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이성이 자기 자신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이 설명은 앞의 AC.99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거기서는 질서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주님께서 사랑을 통하여 이해와 이성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 안으로 흘러드신다고 했습니다. AC.118에서는 그 가운데 특히 이성적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이성의 명철함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거듭남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근원에서 생명을 받아야 할 겉 사람의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브랏’, 곧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을 의미하며 최하위 또는 경계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앞에서 기억지식을 부정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유를 다시 보여 줍니다. 기억지식이 최하위에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묘사되는 질서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속 사람을 거쳐 이성과 같은 겉 사람의 능력에 이르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가장 바깥 경계에 놓입니다. 문제는 기억지식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장 바깥의 것을 근원으로 삼아 위의 질서를 거꾸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AC.118AC.80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천적 인간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신비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과 기억지식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기억지식은 분명히 전체 질서 안에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마음 역시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명철함을 받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성과 기억지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질서입니다. 가장 바깥에 있는 것이 스스로 근원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속 사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AC.118은 네 강에 관한 설명 가운데서도 유입의 방향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 주는 번호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적 마음과 기억지식이 실제로 있지만, 참된 명철함의 근원은 그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하여 겉 사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기억지식은 그 질서의 최하위 또는 경계를 이룹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의 강들은 천적 인간 안에 있는 여러 능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 안에서 질서를 이루며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AC.118)

 

 

 

AC.119, 창2:14, ‘앗수르는 이성을 의미한다 - 기억지식과 이성과 지성의 구별’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14) AC.119‘앗수르’(Asshur)가 이성적 마음, 곧 사람의 이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선지서들에서 매우 분명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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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7, 창2:13, ‘구스와 스바 - 사랑과 신앙에 관한 앎을 의미하는 말씀의 지명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창2:13) AC.117더욱이 ‘구스 땅’(land of Cush), 곧 에티오피아에는 금과 보석과 향품이 풍부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선과 진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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