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2, 창2:15,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다 - 주님의 것을 누리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다’ (AC.122-124)
즐겨찾기/AC 창2 2026. 5. 1. 10:11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창2:15)
AC.122
‘에덴동산’(garden of Eden)은 앞에서 설명한 천적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는 것’(till it and take care of it)은 그가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By the “garden of Eden” are signified all things of the celestial man, as described; by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is signified that it is permitted him to enjoy all these things, bu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because they are the Lord’s.
해설
AC.122는 창2:15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는 말씀의 속뜻을 매우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에덴동산’은 단순히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천적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동산을 경작하고 지킨다는 것도 자연적인 농경 행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적 인간이 주님께 받은 모든 것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지를 나타냅니다.
앞의 설명들을 생각하면 ‘에덴동산’ 안에는 사랑과 지혜와 지성, 그리고 그로부터 질서 있게 이어지는 이성과 앎까지 천적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AC.121에서는 그 생명의 질서가 ‘동쪽’이신 주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지혜와 지성과 이성을 거쳐 기억에 속한 앎들에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AC.122에서 말하는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낸 재산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의 생명과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속한 것이라고 해서 인간이 그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천적 인간에게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허락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주님께 받은 사랑과 지혜와 지성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 안에 주어지고, 인간은 그것을 자기의 생명처럼 느끼며 살아갑니다. 천적 질서는 인간이 아무것도 느끼거나 행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께 받은 것을 충만히 누리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AC.122의 중심이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자신 안에 사랑과 지혜와 지성과 선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들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실제로 누리면서도 그것이 주님의 것임을 압니다. 따라서 ‘내 안에 있다’는 것과 ‘나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이 사람 안에 있으므로 사람은 그것으로 살아가지만, 그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주님이십니다.
이 점에서 ‘경작하며 지킨다’는 표현도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주님께 받은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동산을 경작하고 돌보듯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실제 삶 가운데 사용합니다. 다만 그렇게 사용하면서 사랑과 지혜와 선을 자신의 독립적인 소유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인간의 활동과 주님의 생명 사이의 질서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실제로 경작하고 지키지만, 그가 경작하고 지키는 모든 생명의 것은 주님께 속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AC.121과도 아름답게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주님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지혜를 통하여 지성이, 지성을 통하여 이성이 나오며, 이성을 통하여 기억에 속한 앎들이 생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22는 그렇게 생명을 얻은 모든 것을 사람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사람은 그것을 받아 누리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흐름의 출발점을 잊고 ‘이 지혜는 내 지혜이고, 이 선은 내 선이며, 이 생명은 나에게서 나온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천적 질서는 생명의 흐름뿐 아니라 그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질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킨다’는 말씀에는 천적 인간의 매우 근본적인 삶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고 자기 것으로 빼앗지도 않습니다. 받아서 누리고, 실제 삶 가운데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주님의 것임을 압니다. 주님께 받은 것을 마치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소유하려 하지 않고, 주님의 것으로 받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에덴동산 안에서 살아가는 천적 인간의 질서입니다. (AC.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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