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절)
AC.132
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곧 자신의 proprium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존재이므로, 여기서는 그에게 허락된 proprium을 다룹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8절)
해설
AC.132는 창2:18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이하의 말씀을 해설하기 시작하면서, 그 중심 주제가 ‘인간에게 허락된 proprium’이라고 밝힙니다. 바로 앞 AC.131에서는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AC.132는 왜 이 문제가 생겼는지를 설명합니다. 사람은 주님께 인도받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AC.128-130의 흐름과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은 감각과 기억지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앙의 신비를 판단하려 했고, AC.129에서는 사람의 출발점이 주님이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AC.130에서는 그 질서가 뒤집힐 때 에덴과 네 강 전체가 어떻게 반대 상태를 나타내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그 모든 설명의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성향을 ‘proprium’이라는 말로 붙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AC.132에서 특히 주의 깊게 보아야 할 표현은 ‘그에게 허락된 proprium’입니다. 앞 번호들만 읽으면 proprium은 단순히 제거되어야 할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인간에게 어떤 proprium이 ‘허락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proprium을 단순히 ‘자기 사랑의 정수’나 ‘악 그 자체’와 같이 하나의 부정적인 정의로 고정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왜 인간에게 proprium이 허락되었다고 하는지, 그리고 그 proprium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 인도받는 것’과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 인도받는 것’의 대조는 인간이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 AC.128-129에서도 이성과 기억지식과 학문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자기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능력을 통하여 자유롭게 살아 내는 것과, 자기 자신을 주님과 별개의 독립적인 근원으로 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AC.122부터 이어진 흐름도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천적 인간은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리고 경작하고 지키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퍼셉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C.123에서는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이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며, AC.130의 바로는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AC.132에서는 이러한 ‘자기 것’의 문제가 ‘proprium’이라는 용어 아래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2:18 이하의 말씀을 곧바로 ‘proprium은 악하다’는 결론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본문은 인간이 proprium을 원한다는 현실과, 그 때문에 어떤 proprium이 인간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합니다. ‘허락되었다’는 한 단어 때문에라도 여기에는 단순한 정죄 이상의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이러한 성향을 어떻게 다루시며, 그것을 어떤 질서 안에서 인간의 삶과 연결하시는지가 앞으로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AC.132는 창2 후반부를 읽는 새로운 질문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는 말씀은 여기서 단순히 사회적 고독이나 결혼의 필요를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만 인도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세상에 의해서도 인도받기를 원하는 인간의 상태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바로 그 상태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어떤 proprium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주님의 질서 안에 놓일 수 있는지가 이제부터 이어질 설명의 중심이 됩니다. (AC.132)
AC.133, 창2:18-25 개요, ‘먼저 주님께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시다’ (19-20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
bygrace.kr
AC.131, 창2:18-25 개요,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 (AC.131-137)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C.134, 창2:18-25 개요,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다 - 인간에게 proprium이 주어짐’ (21-23절) (0) | 2026.05.06 |
|---|---|
| AC.133, 창2:18-25 개요, ‘먼저 주님께 받은 선의 애정들과 진리의 앎들을 알게 하시다’ (19-20절) (0) | 2026.05.05 |
| AC.131, 창2:18-25 개요, ‘proprium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고교회의 후손들’ (AC.131-137) (0) | 2026.05.04 |
| AC.130, 창2:17, ‘세상으로부터 지혜로워질 때 에덴과 네 강의 질서가 뒤집힌다’ (0) | 2026.05.04 |
| AC.129, 창2:17, ‘출발점은 주님이어야 한다 - 이성과 학문은 신앙을 확증하는 쓰임 안에 있다’ (0) | 2026.05.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