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라는 표현은, 그들이 남겨진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of faith), 신앙의 흔적들(traces)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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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라는 표현은, 그들이 남겨진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of faith), 신앙의 흔적들(traces)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전 장 3절과 4절에서, ‘날들’(days)과 ‘해들’(years)은 그들의 때(times)와 상태(states)를 상징한다(AC.482, 487-488)는 것과, 태고인들은 그 교회의 상태와 상태 변화들(AC.487:2)을 상징하기 위해 숫자들의 서로 다른 조합들을 사용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그들이 그 교회와 관련된 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숫자 조합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That by 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 is signified that he ought to have remains of faith, appears from what has been said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5:3–4), concerning “days” and “years” signifying times and states; and also from the circumstance of the most ancient people from numbers variously compounded signifying states and changes of states in the church; but the nature of their ecclesiastical computation is now totally lost.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3-4)
본 절 이 ‘백이십 년’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숫자 역시 같은 방식이며, 그래서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one, 1)에서 ‘열둘’(twelve, 12) 및 기타 등등 그 각각의 숫자에 감춰진 의미들부터 먼저 알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분명한 건, 그 안에 뭔가 비밀스러운 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이라는 인간의 수명과 선행절들하고는 맞지가 않기 때문이며, 홍수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봐도 사람들이 딱 백이십 년만 산 게 아닙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셈의 경우,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되어 있고,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셀라는 에벨을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에벨은 벨렉을 낳은 후, ‘사백삼십 년’을, 그리고 노아는 홍수 후, ‘삼백오십 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숫자 ‘백이십’(one hundred and twenty, 120) 안에 들어있는 의미는 ‘열’(ten, 10)과 ‘열둘’(twelve, 12)의 의미로만 나타나는데, 이 둘이 곱해져서 백이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들 숫자를 이루는 숫자 성분들의 상징으로부터, ‘백이십 년’은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숫자 ‘열’은 ‘십분의 일’(tenths, tithes 십일조)과 함께 리메인스를 상징하고 표현합니다. 이 리메인스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것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한편, 숫자 ‘열둘’은 신앙, 혹은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숫자 ‘백이십’이 이들 숫자 성분들의 조합으로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Here in like manner numbers of years are mentioned, whose signification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understand, unless he be first acquainted with the hidden meaning of each particular number from “one” to “twelve,” and so on. It plainly appears that they contain within them something else that is secret, for that men were to live a “hundred and twenty years” has no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part of the verse, nor did they live one hundred and twenty years, as is evident from the people after the flood (chapter 11), where it is said of Shem that “he lived after he begat Arphaxad five hundred years”; and that Arphaxad lived after be begat Selah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Selah lived after he begat Eber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Eber lived after he begat Peleg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that Noah lived after the flood “three hundred and fifty years” (Gen. 9:28), and so on. But what is involved in the number “one hundred and twenty,” appears only from the meaning of “ten” and “twelve,” which being multiplied together make one hundred and twen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se component numbers it may be seen that “one hundred and twenty”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 The number “ten” in the Word, as also “tenths,” signify and represent remains, which are preserved by the Lord in the internal man, and which are holy, because they are of the Lord alone; and the number “twelve” signifies faith, or all things relating to faith in one complex; the number therefore that is compounded of these,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