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8.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스베덴보리 본인도 학자였으면서 천국을 왕래하며 어떻게 이런 걸 일절 다루질 않았을까요? 마치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천국은 이 지상의 일과 역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나 봐요?

 

 

목사님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은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의 저작을 오래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아니, 천국과 지옥을 수십 년 동안 드나들었고, 천사들과 대화했으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교회들까지 언급하는데, 왜 정작 우리가 궁금해하는 역사 연대나 고고학이나 지구의 나이 같은 것은 거의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도 비슷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미래,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 메시아 왕국의 건설, 종말의 시기 같은 것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대부분 그런 질문들에는 직접 답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과 삶, 사랑과 신앙, 회개와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매우 비슷한 방향을 보입니다.

 

천국이 지상의 역사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의 저작 전체가 사실은 교회의 역사와 인류의 영적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고대교회, 히브리교회, 유대교회, 기독교회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천국은 인류 역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천국이 보는 역사의 관점이 우리와 매우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언제?’를 묻습니다. ‘몇 년도인가?’, ‘몇천 년 전인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를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어떤 상태였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연대기보다 애정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사건보다 상태를 보고, 왕조의 흥망보다 인간과 교회의 내적 변화를 봅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의 여러 저작을 보면 천사들은 시간 자체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천국에서는 시간 대신 상태(state)가 중심 개념입니다. 사랑이 변하면 상태가 변하고, 상태가 변하면 거리도 변하고, 만남도 변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몇 년이 지났다’는 것은 우리만큼 중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읽고 계신 창3도 좋은 예입니다. 우리는 ‘아담 이후 몇 년 뒤의 후손인가?’를 묻지만, 스베덴보리는 ‘세 번째 후손’, ‘네 번째 후손’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연대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어떻게 주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어떻게 자기 own을 신뢰하게 되었는지에 집중합니다. 천국의 시선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이 역사나 자연계 자체를 무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자연계 전체가 영계의 결과물이며, 역사는 섭리의 무대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천국은 역사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사랑과 의도, 상태를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마치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이라는 표현이 핵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로마 황제의 이름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지구의 연대보다 인간 영혼의 구조를 더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은 이 지상의 일과 역사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의 초점이 다르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건을 보지만 천국은 상태를 봅니다. 우리는 연대를 보지만 천국은 사랑을 봅니다. 우리는 ‘언제 일어났는가?’를 묻지만, 천국은 ‘왜 일어났는가?’와 ‘그것이 영혼을 어디로 이끌었는가?’를 묻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천국을 그렇게 다녀왔으면 지구의 역사나 고대 문명의 비밀도 좀 알려 주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저작을 오래 읽다 보면, 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주제에만 거의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주님께 가까워지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보면, 수천 년의 역사도 결국은 한 영혼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AC.208, 창3:6,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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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 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AC.208.심화 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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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후손과 후손 사이 실제 시간 간격

 

이 각각의 후손이 실제로는 몇백, 몇천,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을까요?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각 후손 사이에 실제로 몇백 년, 몇천 년, 혹은 몇만 년의 간격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AC.194에서 ‘세 번째 후손’을, AC.208에서 ‘네 번째 후손’을 언급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서로 얼마만큼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존재했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연대기보다 영적 상태의 변화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까지 확인한 본문들 가운데는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 사이에는 몇 년이 흘렀다’거나, ‘첫 번째 후손부터 네 번째 후손까지는 몇 세기에 걸친 변화였다’는 식의 진술이 없습니다. 따라서 AC 본문만으로는 수백 년인지, 수천 년인지, 혹은 그보다 더 긴 기간인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추론은 가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를 인류 최초의 교회로 설명하며, 그 쇠퇴 또한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었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또한 창3:1-6의 몇 절 속에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이라는 서로 다른 후손들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스베덴보리의 눈에는 창세기 본문이 단순한 하루의 사건 기록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영적 역사를 압축한 기록으로 보였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세대’라는 말이 곧 ‘수천 년’이나 ‘수만 년’을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몇십 년’에 불과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AC 본문은 그 어느 쪽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가장 안전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 번째 후손과 네 번째 후손의 존재는 AC.194 AC.208을 통해 확인되지만, 그들 사이의 실제 시간 간격은 스베덴보리는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수백 년인지 수천 년인지 수만 년인지는 알 수 없으며, 현재로서는 추정의 영역에 속한다.’

 

어쩌면 여기서도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시간적 거리보다 영적 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가’보다, ‘주님으로부터 직접 지각하던 상태가 어떻게 감각과 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상태로 변해갔는가’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정직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후손들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AC 본문은 그 기간을 알려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영적 상태의 변화는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을 연대기적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다.’ 이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AC 자료에 가장 충실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AC.208, 심화 3, ‘스베덴보리가 집중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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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8, 심화 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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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 후손과 장절 구분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들이었는데, This was 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C.208)

 

각 후손이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지?

 

 

현재까지 우리가 확인한 AC 본문만을 근거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각 후손이 정확히 몇 장 몇 절에서 시작되는가?’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AC.194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1을 해설하면서 ‘여기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 다루어진다’고 직접 말합니다. 따라서 세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1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AC.208입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창3:6을 해설하면서 ‘이들은 태고교회의 네 번째 후손(the fourth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네 번째 후손은 적어도 창3:6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입니다. 앞서 우리가 확인했듯이 AC.190의 ‘첫 번째 상태’, ‘두 번째 상태’, ‘세 번째 상태’를 그대로 ‘첫 번째 후손’, ‘두 번째 후손’, ‘세 번째 후손’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state(상태)와 posterity(후손)를 서로 다른 범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읽은 AC.67-208 범위 안에서 본다면, 우리는 ‘세 번째 후손 = 3:1’, ‘네 번째 후손 = 3:6’은 확인할 수 있지만, ‘첫 번째 후손 = 2 몇 절’, ‘두 번째 후손 = 2 몇 절’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정직한 정리는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AC.194에서 이미 세 번째 후손을 언급하므로, 첫 번째와 두 번째 후손은 반드시 그 이전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창2:7인지, 창2:8인지, 창2 전체의 어느 구간인지, 혹은 AC.67 이후의 어느 상태에 해당하는지는 AC 본문 속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며,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가장 안전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 번째 후손은 창3:1에서 시작하며(AC.194), 네 번째 후손은 창3:6에서 시작한다(AC.208). 그러나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시작 지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AC.190의 첫째, 둘째 상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검토한 결과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AC.209 이하를 계속 읽다 보면, 또는 AC.67-193 구간을 다시 추적하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first posterity, second posterity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첫 번째 후손과 두 번째 후손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아는 것’과 ‘추정하는 것’을 구분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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