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49.심화

 

7. ‘redeemed, saves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 by this own he redeemed man, and by this own he saves him.

 

본문에 나오는 위 문장에서 redeemed saves를 해설해 주세요. 그 차이가 무엇이며, 시제도 다른 이유가 뭔가요?

 

 

이 문장은 짧지만, 스베덴보리의 구원 이해가 아주 깊게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특히 목사님께서 보신 것처럼, 왜 하나는 redeemed’이고 다른 하나는 saves’인지, 왜 시제가 다르게 쓰였는지는 그냥 우연이 아닙니다.

 

먼저 redeemed’는 과거형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결정적 역사, 곧 인간을 지옥의 지배와 단절 상태로부터 다시 되찾으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redemption(구속)은 단순 법적 면죄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인간과 천국 사이의 길을 다시 여신 우주적, 영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redeemed’는 완료된 역사입니다.

 

반면 saves’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금도 계속 인간 각 사람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구원의 작용을 뜻합니다. 곧, 인간을 실제로 거듭나게 하고, 악과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며, 천국 질서 안으로 인도하시는 ongoing process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salvation(구원)은 단순히 언젠가 천국 입장권을 받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실제로 사랑과 진리가 형성되는 현재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saves는 현재형으로 쓰입니다.

 

즉, 아주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redeemed’는 주님께서 인류 전체를 위해 이미 이루신 객관적, 우주적 구속의 역사이고, ‘saves’는 주님께서 지금 각 인간 안에서 계속 행하고 계시는 개인적, 실제적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둘은 연결되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 말하면, 주님께서 먼저 구속(redemption)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인간이 실제로 구원(salvation)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지옥들을 제압하시고 천국 질서를 회복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아예 구원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redemption은 구원의 가능성을 연 사건이고, salvation은 그 가능성이 각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문맥상 The Lord alone has what is his own’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proprium은 본래 죽은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참된 Own, 곧 생명 자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자신의 신적 Own으로 인간을 redeem하셨고, 같은 신적 Own으로 지금도 인간을 save하시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는 생명을 만들 수 없고, 오직 주님의 신적 Proprium, 곧 신적 생명만이 인간을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사실 시간 구조까지 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결정적 구속(redemption)과 현재 진행 중인 구원(salvation)이 하나의 문장 안에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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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9, 심화 6, ‘출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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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12:46)

 

 

이 구절이 AC.149에 인용된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단순한 제사 규정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신적 인성 안에 있는 가장 외적인 것까지도 완전하고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통해, ‘(bones)가 인간 안의 가장 바깥층, 곧 외적 진리들과 외적 인간의 구조를 뜻한다는 점을 다시 보여 줍니다.

 

12:46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문자적으로는 어린양 제사의 규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서 유월절 어린양은 궁극적으로 주님 자신, 특히 인간을 구속하시는 주님의 신적 인성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각 세부 규정들도 단순 의식법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교회에 대한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는 앞에서 계속 설명된 것처럼, 가장 외적이고, 그걸 지지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사람 몸에서 뼈가 몸 전체를 지탱하듯, 영적 의미에서 뼈는 인간 안의 가장 바깥 진리들, 외적 삶의 구조, 말씀의 문자적 층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뼈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그 외적 층이 파괴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 점은 특별히 주님의 영화(glorification)와 연결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은 가장 안쪽 신성만이 아니라, 가장 바깥의 인성까지도 완전히 신적 질서 안으로 영화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인성 안의 가장 외적인 것까지도 완전하게 보존되고 신적 생명 안에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이것은 말씀 자체와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종종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같은 것으로 봅니다. 즉, 가장 바깥 구조이지만 전체를 지탱하는 층입니다. 그래서 뼈가 꺾인다는 것은 외적 진리의 파괴와 왜곡을 뜻할 수 있고, 반대로 뼈가 온전하다는 것은 진리의 외적 구조가 보존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과도 직접 연결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병사들이 주님의 다리는 꺾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바로 이 유월절 규례의 성취로 이해됩니다. 즉, 유월절 어린양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처럼, 참 어린양이신 주님의 가장 바깥 인성까지도 완전히 보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가 뜻하는 가장 외적이며, 또 그걸 지지하는 진리와 구조가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보존되고 살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인간 안에서도 외적 인간, 곧 겉 사람까지도 주님의 생명 질서 안에 들어와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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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39) A spirit hath not flesh and bones as ye see me have. (Luke 24:39)

 

 

24:39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는 ‘나는 유령이 아니다’라는 뜻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상응으로도 읽습니다. 여기서 ‘(flesh)은 사랑과 선에 속한 것을, ‘(bones)는 그것을 지탱하는 가장 외적인 진리와 구조를 뜻합니다.

 

AC.149의 흐름 전체를 보면, 스베덴보리는 계속 ‘’가 인간 안의 가장 바깥층, 겉 사람, 곧 외적 인간과 외적 진리들을 뜻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바깥층은 원래 죽어 있고 메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흘러들어올 때 살아 있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에서는 생기가 들어가 뼈들이 살아났고, 시편에서는 모든 뼈가 주님을 찬양했으며, 이사야에서는 뼈가 새싹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눅24:39는 아주 결정적인 완성처럼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단순 인간이 아니라, 영화되신 주님의 인성 자체가 ‘살과 뼈’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가장 바깥의 것까지도 완전히 신적 생명 안에 결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주님의 부활은 단순 영혼만의 부활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성(人性)을 완전히 영화(glorification)하셨고, 가장 바깥의 인성까지도 신적 생명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살과 뼈가 있다’는 것은, 주님의 인성이 환영이나 추상적 영이 아니라 완전히 실재적인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이 됩니다.

 

또 여기서 ‘영은 살과 뼈가 없다’는 말씀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이 비물질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 상태가 단순 분리된 영혼 상태보다 훨씬 충만한 실재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영화된 인성은 가장 바깥층까지도 완전히 생명 안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AC.149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가 뜻하는 가장 외적 인간과 외적 진리의 층까지도 주님의 생명 안에서 완전히 살아날 수 있으며, 그 완전한 모범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영화된 인성 안에 나타났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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