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창5:2)

 

 

475. ‘남자와 여자’라는 이 표현은, 신앙과 사랑 간 결혼을 상징하며,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심’이라는 이 표현은, 그들은 특별한 뜻으로는 ‘사람’[homo]이라고 하는 교회였음을 상징합니다.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by “calling their name man,” is signified that they were the church, which, in an especial sense, is called “man” [homo].

 

 

476.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이 신앙과 사랑 간 결혼을 상징한다는 것은 앞에서 분명히 말씀드렸고, 증명도 했습니다. 거기서 보여드린 것은, 남성 혹은 남자[vir]는 이해력과 그에 속한 모든 것, 곧 신앙의 모든 것을 상징한다는 것과, 여성 혹은 여자는 의지와 의지에 속한 것들, 곧 사랑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녀를 이름하여 이브라는, 생명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 생명은 오직 사랑에만 속한 것입니다. That by “male and female” is signified the marriage between faith and love was declared and proved above, where it was shown that the male or man [vir] signifies the understanding and whatever belongs to it, consequently everything of faith; and that the female or woman signifies the will, or the things appertaining to the will, consequently whatever has relation to love; wherefore she was called Eve, a name signifying life, which is of love alone.

 

그래서 앞서 보여드린 대로, 여성은 또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남성은, 그 교회에 속한 사람[vir]을 상징합니다. By the female therefore is also signified the church, as has been previously shown; and by the male, a man [vir] of the church.

 

여기 주제는 교회가 영적이었을 때 상태, 그리고 나중에 천적으로 변화되어 간 상태에 관한 것이며, 그래서 창1:26-27처럼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The subject here is the state of the church when it was spiritual, and which was afterwards made celestial, wherefore “male” is mentioned before “female,” as also in chapter 1:26–27.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창조하다’라는 표현은 또한 영적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만 나중에 결혼이라는 효과가 나타나면, 즉, 교회가 천적 상태로 완성이 되면, 그때는 더 이상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곧 그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둘 다를 상징하는 ‘사람’[homo]이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보시듯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라는 표현이 이어지는 이유이며, 이것이 바로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The expression to “create” also has reference to the spiritual man; but afterwards when the marriage has been effected, that is, when the church has been made celestial, it is not said “male and female,” but “man” [homo], who, by reason of their marriage, signifies both; wherefore it presently follows, “and he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church.

 

 

477. ‘사람’이 태고교회임은 그동안 앞에서 종종 말씀드렸고, 또 보여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높은 뜻으로는 홀로 주님 자신,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

 

이런 이유, 곧, 사람이신 주님을 닮았다 하여 태고교회를 가리켜 사람이라 하며, 역시 같은 이유, 곧, 사람이신 주님의 이미지라 하여 나중에 영적 교회도 사람이라고 합니다. 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

2021-06-29(D3)-매일예배(AC.475-477, 창5,2), '남자와 여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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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PfFLm3a9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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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창5:1)

 

 

469. ‘계보를 적은 책’이라는 표현은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의 영적 창조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의 천적 창조를 각각 상징하며, 이런 걸 볼 때, 이 구절은 태고 교회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denotes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signifies that he was made celestial: thus it is a descri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470. ‘계보를 적은 책’(출생들에 관한 책)이 태고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의 목록표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너무나 분명한데요, 이 5장에서 11장, 에벨의 때까지는 이름들이 특정 인물들(persons)을 상징하는 것이 절대 아닌, 실제적인 것들(things)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hat the “book of the births” is an enumeration of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very evident from what follows, for from this to the eleventh chapter, that is, to the time of Eber, names never signify persons, but actual things.

 

태곳적 인류는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 및 그들을 섬겼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하나의 가문은 좀 더 크고 작은 가족들로 구성되는데, 멀리 떨어진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것도 아닌, 그런 구성으로, 하나의 민족은 좀 더 많고 적은 가문으로 각각 구성되었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time mankind wer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 house consisting of the husband and wife with their children, together with some of their family who served; a family, of a greater or lesser number of houses, that lived not far apart and yet not together; and a nation, of a larger or smaller number of families.

 

 

471. 그들이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만 구별되며, 그렇게 자기들끼리 따로 지낸 이유는, 그렇게 해야 교회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해야 모든 가족과 가문이 그들의 어른 아래로 모이고, 그래야 사랑과 참된 예배가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hey dwelt thus alone by themselves, distinguished only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was that by this means the church might be preserved entire, that all the houses and families might be dependent on their parent, and thereby remain in love and in true worship.

 

또한 인상적인 것은, 각 가족마다 다른 가족과 구별되는 특이한 천성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 심지어 먼 후손까지도 그들의 부모 및 조상으로부터 어떤 특이한 천성과, 그들의 얼굴 생김새 및 다른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서로 구별될 수 있는 그런 특징적 캐릭터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지금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It is to be remarked also that each house was of a peculiar genius, distinct from every other; for it is well known that children, and even remote descendants, derive from their parents a particular genius, and such marked characteristics tha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ace, and by many other peculiarities.

 

이렇게 거주함으로써 서로 뒤섞이는 대신 정확히 구별될 수 있도록, 주님은 이런 식의 거주 방식을 기뻐하셨습니다. Therefore, in order that there might not be a confounding, but an exact distinction, it pleased the Lord that they should dwell in this manner.

 

이렇게 교회는 주님의 왕국을 생생하게 나타낸 표상이었습니다. 주님의 왕국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사이어티들이 있으며, 각각의 소사이어티는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 따라 다른 모든 소사이어티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Thus the church was a living representative of the kingdom of the Lord; for in the Lord’s kingdom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each one distinct from every 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이것이 앞에서 관찰한 것처럼, ‘혼자 사는 것’(cf. AC.139, 창2:18)과, ‘장막에 거주함’(cf. AC.414, 창4:20)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This, as observed above, is what is meant by “living alone,” and by “dwelling in tents.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2:18)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창4:20)

 

또 같은 이유로, 주님은 유대 교회가 가족, 가문 및 민족으로 구별되며, 그래서 모두가 자기 친족 가운데서만 결혼하도록 명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also it pleased the Lord that the Jewish church should b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that everyone should contract marriage within his own family; but concerning this,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47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표현은 그가 영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표현은 그가 천적으로 지음 받고 있음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을 보시면 나옵니다. That by the “day in which God created man” is signified his being made spiritual, and that by “God making him in his likeness” is signified his being made celestial, appears from what was said and shown above.

 

창조하다’(create)라는 표현은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며, ‘짓다’(make)라는 말은 온전해져 가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2장 말씀에서 보여드린 것처럼, ‘창조하기’(creating), ‘짓기’(forming) 및 ‘만들기’(making) 간 정확한 차이가 관찰되기 때문에, 거기서 영적 인간을 천적으로 변화시키신 것을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창2:2)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구절들에서도 ‘창조하다’(create)는 영적 인간과, ‘짓다’(make), 즉, 온전하게 하다는 천적 인간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cf. AC.16, 88) The expression to “create” properly relates to man when he is being created anew, or regenerated; and the word “make,” when he is being perfected; wherefore in the Word there is an accurate distinction observed between “creating,” “forming,” and “making,” as was shown above in the second chapter, where it is said of the spiritual man made celestial tha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created in making”; and in other passages also, to “create” relates to the spiritual man, and to “make,” that is, to perfect, to the celestial man. (See n. 16 and 88.)

 

 

473.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은 천적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은 영적 인간임 또한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cf. 창1:26) That a “likeness of God” is a celestial man, and an “image of God,” a spiritual man, has also been previously shown.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형상’은 ‘모양’을 준비하는 것이며, ‘모양’은 실물과 똑같아 보이는 모방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의 ‘모양’으로서, 주님에 의해 온전히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An “image” is preparatory to a “likeness,” and a “likeness” is a real replica, for a celestial man is entirely governed by the Lord, as his “likeness.

 

 

474. 이런 이유로,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가 태고 교회의 출생 혹은 퍼져나감인 점을 볼 때, 이것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가는 첫 번째 묘사입니다. 퍼져나감이 여기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Since therefore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birth or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is first described as coming from a spiritual to a celestial state, for the propagations follow from this.

2021-06-28(D2)-매일예배(AC.469-474, 창5,1), '창조(create)와 지음(make), 모양(likeness)과 형상(imag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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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epCkxlkX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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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7(D1)-제9권26호통409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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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뜻

THE INTERNAL SENSE

 

 

468. 이전 장들을 통해 지금까지 말씀드리고 보여드린 내용들을 볼 때 분명한 것은, 이름은 이교(異敎, heresy)나 교리(敎理, doctrine)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From what has been said and shown in the foregoing chapter, it is evident that by names are signified heresies and doctrines.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이름들은 사람들의 이름이 아닌 다른 것들, 곧 현 맥락에서는 태고 교회로부터 바로 이 ‘노아’ 때까지, 변화를 겪으며 내려오면서도 보존된 교리나 교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ence it may be seen that by the names in this chapter are not meant persons, but things, and in the present instance doctrines, or churches, which were preserved, notwithstanding the changes they underwent, from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even to “Noah.

 

모든 교회의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개 정도만 남게 되는데, 그 가운데 홍수 때까지 남은 이들 몇 교회를 가리켜 ‘노아’라 부른 것입니다. But the case with every church is that in course of time it decreases, and at last remains among a few; and the few with whom it remained at the time of the flood were called “Noah.

 

[2] 참된 교회가 줄어들다가 몇 안 남게 되는 건, 다른 교회들 역시 그렇게 줄어든 걸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true church decreases and remains with but few, is evident from other churches which have thus decreased.

 

남겨진 자들을 말씀에서는 ‘리메인스’, ‘남은 자’라 하고, 또 말하기를, ‘가운데’, 혹은 ‘중간에’, ‘땅에’ 있다고도 합니다. Those who are left are in the Word called “remains,” and a “remnant,” and are said to be “in the midst,” or “middle,” “of the land.

 

이런 게 보편적이듯 특별한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경우처럼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 안 리메인스가 주님에 의해 보존되지 않으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천적 생명이 리메인스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And as this is the case in the universal, so also it is in the particular, or as it is with the church, so it is with every individual man; for unless remains were preserved by the Lord in everyone, he must needs perish eternally, since spiritual and celestial life are in the remains.

 

그렇게 또한 일반적 혹은 보편적으로, 만일 교회나 참 신앙이 몇 사람 안에라도 늘 남아있지 않으면 인류는 소멸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한 도시, 아니, 간혹 한 나라 전체가 단지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기 때문입니다. So also in the general or universal—if there were not always some with whom the church, or true faith, remained, the human race would perish; for, as is generally known, a city, nay, sometimes a whole kingdom, is saved for the sake of a few.

 

교회와 관련된 이런 일은 인체의 경우에도 있습니다. 심장이 괜찮은 한, 이웃한 장기들 또한 괜찮을 수 있습니다만, 만일 심장이 약해지면, 인체의 다른 장기들 역시 공급이 중단되어 사람은 죽게 됩니다. It is in this respect with the church as it is with the human body; so long as the heart is sound, life is possible for the neighboring viscera, but when the heart is enfeebled, the other parts of the body cease to be nourished, and the man dies.

 

마지막 리메인스들이 바로 ‘노아’로 상징된 사람들입니다. (창6:12와 다른 구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온땅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The last remains are those which are signified by “Noah”; for (as appears from Gen. 6:12, as well as from other places) the whole earth had become corrupt.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12)

 

[3] 보통, 교회뿐 아니라 각 개인 안에 있는 리메인스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예언서에 보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입니다. Of remains as existing in each individual as well as in the church in general, much is said in the prophets; as in Isaiah:

 

3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He that is left in Zion, and he that remaineth in Jerusalem, shall be called holy to him, even everyone that is written unto lives in Jerusalem, when the Lord shall have washed the filth of the daughters of Zion, and shall have washed away the bloods of Jerusalem from the midst thereof, (사4:3-4)

 

위 구절에서 남은 자들을 거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교회의 리메인스와, 또 교회에 속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남겨졌다’는 이유 만으로 거룩하다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in which passage holiness is predicated of the remains, by which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the church, and also of a man of the church; for “those left” in Zion and Jerusalem could not be holy merely because they were “left.

 

다시 Again:

 

20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he remains of Israel, and such as are escaped of the house of Jacob, shall no more again stay upon him that smote them, but shall stay upon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in truth. The remains shall return, the remains of Jacob, unto the mighty God. (사10:20-21)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In those days, and in that time, the iniquity of Israel shall be sought for, and there shall be none; and the sins of Judah, and they shall not be found; for I will pardon him whom I shall make a remnant. (렘50:20)

 

미가서입니다. In Micah: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The remains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s the dew from Jehovah, as the showers upon the grass. (미5:7)

 

[4] 한 사람 혹은 한 교회의 잔여물 혹은 리메인스는 십분의 일로도 표현되었는데, 이 십분의 일은 거룩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 안에 십(10)을 가진 수 또한 거룩했고, 그래서 ‘’(10)은 리메인스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residue or remains of a man, or of the church, were also represented by the tenths, which were holy; hence also a number with ten in it was holy, and “ten” is therefore predicated of remains; as in Isaiah: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Jehovah shall remove man,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and yet in it [shall be] a tenth part, and it shall return, and shall be for exterminating; as an oak, and an ilex, when the stock is cast forth from them, the holy seed is the stock thereof; (사6:12-13)

 

여기 남아있는 것을 가리켜 ‘거룩한 씨’라 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residue is called a “seed of holiness.

 

아모스에서 And in Amos: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 중에서 천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백 명만 남고 백 명이 행군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Thus saith the Lord Jehovah, The city that goeth forth a thousand shall have a hundred left, and that which goeth forth a hundred shall have ten left to the house of Israel. (암5:3)

 

이들과 다른 많은 구절들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리메인스’가 속뜻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In these and many other passages, in the internal sense are signified the “remains” of which we have been speaking.

 

한 도시가 그 교회의 리메인스 덕분에 보존된다는 사실은 소돔 관련, 아브라함이 들은 내용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a city is preserved for the sake of the remains of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to Abraham concerning Sodom: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Abraham said, Peradventure ten may be found there; and he said, I will not destroy it for ten’s sake. (창18:32)

2021-06-27(D1)-주일예배(AC.468, 창5), '창5 이해를 위한 ‘이름’, ‘노아’, ‘리메인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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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NIhH9a6F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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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

Genesis 5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This is the book of the births of man. In the day that God created man, in the likeness of God made he him.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that man lived were nine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he died.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And Seth lived a hundred and five years, and begat Enosh.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Seth lived after he begat Enosh eight hundred and sev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Seth were nine hundred and twelve years; and he died.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And Enosh lived ninety years, and begat Kenan.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sh lived after he begat Kenan eight hundred and fifteen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1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sh were nine hundred and five years; and he died.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And Kenan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Mahalalel.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Kenan lived after he begat Mahalalel eight hundred and fo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4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Kenan were nine hundred and ten years; and he died.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And Mahalalel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Jared.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And Jared lived a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begat Enoch.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Jared lived after he begat Enoch eight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Jared were nine hundred sixty and two years; and he died.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And Enoch lived sixty and five years, and begat Methuselah.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Enoch walked with God after he begat Methuselah three hundred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And all the days of Enoch were three hundred sixty and five years.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more, for God took him. 25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And Methuselah lived a hundred eighty and seven years, and begat Lamech.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And Methuselah lived after he begat Lamech seven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Methuselah were nine hundred sixty and nine years; and he died. 28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And Lamech lived a hundred eighty and two years, and begat a son;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Lamech lived after he begat Noah five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all the days of Lamech were seven hundred seventy and seven years; and he died. 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And Noah was a son of five hundred years; and Noah begat Shem, Ham, and Japheth.

 

 

내용

THE CONTENTS

 

 

460. 이 장은 특별히 거의 홍수 전까지 죽 이어진 세대들을 통해 태고교회가 퍼져나간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specifically of the propaga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almost to the flood.

 

 

461. 태고 교회 자체는, 천적이었는데, ‘사람’(아담, man, [homo])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교회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itself, which was celestial, is what is called “man” [homo], and a “likeness of God. (1절)

 

 

462. 태고 교회처럼 그렇게 천적이지는 않았던 두 번째 교회를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A second church which was not so celestial as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Seth. (2-3절)

 

 

463. 세 번째 교회는 ‘에노스’라는 이름으로, 네 번째는 ‘게난’, 다섯 번째는 ‘마할랄렐’, 여섯 번째는 ‘야렛’, 일곱 번째는 ‘에녹’, 그리고 여덟 번째는 ‘므두셀라’로 각각 불렀습니다. A third church was called “Enosh; (6절) a fourth “Kenan; (9절) a fifth “Mahalalel; (12절) a sixth “Jared; (15절) a seventh “Enoch; (18절) and an eighth church “Methuselah. (21절)

 

 

464. ‘에녹’이라는 교회는 태고 교회에 계시되고, 지각된 것들로부터 골격이 짜여진 교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는 안 사용되고 대신 후손들의 사용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The church called “Enoch” is described as framing doctrine from what was revealed to and perceived by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doctrine, although of no use at that time, was preserved for the use of posterity.

 

이걸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This is signified by its being said that “Enoch was no more, because God took him. (22-24절)

 

 

465. 아홉 번째 교회는 ‘라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A ninth church was called “Lamech. (25절)

 

 

466. 열 번째 교회, 이 교회는 홍수 후 세 교회의 부모로서, ‘노아’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A tenth, the parent of three churches after the flood, was named “Noah.

 

이 교회를 고대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This church is to be called the ancient church. (28-29절)

 

 

467. ‘라멕’은 태고 교회가 즐겁게 누리던 퍼셉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로 그려지는 반면, ‘노아’는 일종의 새 교회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Lamech” is described as retaining nothing of the perception which the most ancient church enjoyed; and “Noah” is described as a new church. (29절)

 

2021-06-26(D7)-토요예배(AC.460-467, 창5), '창5 아케이나 브리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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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wHFMPkl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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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Genesis 5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454. 그런 삶은 적극적이 아닌, 게으른 삶이며,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속으로는) 적극적인 삶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Such a life would not be an active life, but an idle one, in which they would grow torpid, and yet they might know that there is no happiness except in an active life.

 

천사의 삶은 쓰임새로, 그리고 체어리티의 선으로 구성됩니다. 세상을 떠나 막 도착한 영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 그리고 악한 영들로 하여금 정해진 바운더리를 넘지 못하게 하며, 선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섬기는 일, 또 죽은 자를 일으켜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며, 그래서 만일 가능하다 싶으면 원하는 영들에게 천국을 소개하는 일 등, 천사들은 이런 쓰임새의 삶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Angelic life consists in use, and in the goods of charity; for the angels know no greater happiness than in teaching and instructing the spirits that arrive from the world; in being of service to men, controlling the evil spirits about them lest they pass the proper bounds, and inspiring the men with good; and in raising up the dead to the life of eternity, and then, if the souls are such as to render it possible, introducing them into heaven.

 

이 모든 일을 통해 그들은 이렇게 글로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한 행복을 지각합니다. From all this they perceive more happiness than can possibly be described.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주님의 이미지, 형상들이며, 그들은 자신들보다 이웃을 더 사랑합니다. 이런 이유로, 천국이 천국(天國, heaven)인 것입니다. Thus are they images of the Lord; thus do they love the neighbor more than themselves; and for this reason heaven is heaven.

 

천사의 행복이 쓰임새 안에, 쓰임새로부터 있기 위하여, 또한 천사의 행복은 쓰임새에 따라 쓰임새만큼, 즉,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만큼 행복합니다. So that angelic happiness is in use, from use, and according to use, that is, it is according to the goods of love and of charity.

 

천국의 기쁨은 안락하게 빈둥대며 숨이나 쉬는 영원한 즐거움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지각이 생겨 그런 삶이 정말 어떤 건지를 깨닫게 되고는 부끄러워합니다. 그리고 또한 깨닫기를, 그런 삶은 정말 비참하며, 모든 기쁨을 파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혐오하고 역겨워하게 될 그런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When those who have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living at ease, idly breathing in eternal joy, have heard these things, they are given to perceive, in order to shame them, what such a life really is, and they perceive that it is a most sad one, that it is destructive of all joy, and that after a short time they would loathe and nauseate it.

 

 

455. 세상에서 말씀에 관하여 최고로 많이 배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천국의 기쁨은 영광의 빛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빛은 태양 광선이 어떤 금빛 색조로 나타날 때와 같은 그런 빛이었습니다. 그 역시 그래서 천국의 기쁨은 안락한 삶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했습니다. One who in this world had been most lear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the idea that heavenly joy consists in being in a glorious light, like that which exists when the solar rays appear of a golden hue, so that he too supposed it to consist in a life of ease.

 

그가 오류 가운데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그에게 그런 빛이 비쳤고, 그 빛 가운데서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마치 자기가 정말 천국에 있는 듯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In order that he might know himself to be in error, such a light was granted him, and he, being in the midst of the light, was as delighted as if he were in heaven, as indeed he said.

 

그러나 그는 그 빛 가운데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빛은 점점 그를 지겹게 했고, 급기야 전혀 기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But he could not remain long in it, for it gradually wearied him and became no joy at all.

 

 

456. 최고의 교육을 받은 그들 모두는 말하기를, 천국의 기쁨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삶은 좀 부족해도 대신 오직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이런 게 적극적인 삶이라고 했습니다. The best instructed of them all said that heavenly joy consists solely in praising and glorifying the Lord, being a life destitute of any doing of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this is an active life.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은, 주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액티브 라이프 자체가 아니라 그런 삶의 효과일 뿐이라는 것, 주님은 찬양은 굳이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대신, 그들이 체어리티의 선을 행하는 것은 원하신다는 것,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행복은 이에 수반될 것이라는, 비례할 것이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But they were told that praising and celebrating the Lord is not such an active life as is meant, but is an effect of that life; for the Lord has no need of praises, but wills that they should do the goods of charity, and that it is according to these that they will receive happiness from the Lord.

 

그러나 이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체어리티의 선을 행함에 관하여 여전히 기쁨보다는 무슨 노예 생활 같은 것밖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But still these best instructed persons could form no idea of joy, but of servitude, in doing these goods of charity.

 

그래서 천사들은 증언하기를, 그런 삶은 모두를 가장 자유롭게 하는 삶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결합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But the angels testified that such a life is the freest of all, and that it is conjoined with happiness unutterable.

 

 

457. 이 세상에서 내세로 건너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지옥은 모든 사람에게 같으며, 천국 또한 그럴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Almost all who pass from this world into the other life suppose that hell is the same for everyone, and that heaven is the same for everyone.

 

그러나 실제로는 양쪽 모두 무한한 다양성과 다름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천국도, 그리고 지옥도 다른 사람의 천국 혹은 지옥과 똑같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나, 영, 천사도 다른 사람이나 영, 천사와 완전 똑같은 경우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And yet in both there are endless diversities and varieties, and neither the heaven nor the hell of one person is ever exactly like that of another; just as no man, spirit, or angel is ever exactly like another.

 

제가 그곳에 똑같거나 동등한 둘의 존재를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그곳 영들의 세계와 천사들의 천국에 있는 거류민들은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각 수많은 컴포넌트의 하모니로 형성되어 있다고, 그런 게 하모니요, 그런 게 하나 됨이라고, 낙동강 오리알처럼 자기 혼자 툭 튀어나와 스스로 존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오직 모든 컴포넌트들의 하모니의 결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When I merely thought of there being two exactly alike or equal, horror was excited i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of spirits and of the angelic heaven, and they said that everyone is formed by the harmony of many components, and that such as is the harmony, such is the one, and that it is impossible for anything to subsist that is absolutely a one, but only a one that results from a harmony of component parts.

 

천국의 모든 개별 소사이어티가 그렇게 하나가 되며, 그렇게 해서 또 모든 소사이티들, 즉 유니버설 천국을 이룹니다. 그리고 이런 신비는 오직 주님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옵니다. Thus every society in the heavens forms a one, and so do all the societies together, that is, the universal heaven, and this from the Lord alone, through love.

 

어떤 천사가 영들, 곧 일층천 천국 영들의 기쁨을 가장 유니버설한 것으로만 속(屬, genus, ※ 생물 분류 단계) 단위로 세어보았더니 대략 사백일흔여덟(478) 가지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걸 보면, 유니버설 속보다 훨씬 세부적이고, 또 각 속에 속한 종들은 또 얼마나 엄청날까요? A certain angel enumerated the most universal only of the genera of the joys of spirits, that is, of the first heaven, to about four hundred and seventy-eight, from which we may infer how innumerable must be the less universal genera and the species in each genus.

 

※ 생물 분류 단계는 대략 종(種, Species), 속(屬, Genus), 과(科, Family), 목(目, Order), 강(綱, Class), 문(門, Phylum), 계(界, Kingdom)가 있습니다.

 

천국이 이렇듯 풍요로운 걸 보면, 천사적 영들의 천국, 곧 일층천 천국의 행복의 종류가 얼마나 무한한지, 그리고 더욱 천사들의 천국은 또 얼마나 더 그런지 모릅니다. And as there are so many in that heaven, how illimitable must be the genera of happinesses in the heaven of angelic spirits, and still more so in the heaven of angels.

 

 

458. 악한 영들은 종종 주님의 천국 말고 또 다른 천국이 있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허락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한 어디든 돌아다녀 봅니다. 하지만 결국은 어디서도 다른 천국을 찾지 못하고는 당혹해하지요. Evil spirits have sometimes supposed that there is another heaven besides that of the Lord, and they have been permitted to seek for it wherever they could, but to their confusion they could never find any other heaven.

 

악한 영들은 주님을 향해 품고 있는 증오로부터, 그리고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사악함 속으로 돌진, 그런 환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For evil spirits rush into insanities both from the hatred they bear against the Lord, and from their infernal suffering, and catch at such fantasies.

 

 

459. 세 천국이 있습니다. 첫 번째 천국은 선한 영들이 지내는 뎁니다. 두 번째는 천사적 영들, 세 번째가 천사들의 천국입니다. There are three heavens: the first is the abode of good spirits; the second, of angelic spirits, and the third, of angels.

 

영들, 천사적 영들 및 천사들은 모두 천적, 영적으로 구별됩니다. Spirits, angelic spirits, and angels are all distinguished into the celestial and the spiritual.

 

천적인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신앙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다룬 태고 교회인들처럼 말이지요. The celestial are those who through love have received faith from the Lord, like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treated of above.

 

영적인 사람들은 신앙의 지식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체어리티를 받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The spiritual are those who through knowledges of faith have received charity from the Lord, and who act from what they have received.

 

이 이야기는 이 장 끝에서 계속됩니다. A continuation of this subject will follow at the end of this chapter.

2021-06-25(D6)-매일예배(AC.454-459, 창5 O), '창5 오프닝,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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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MBocUN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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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

Genesis 5

CONCERNING HEAVEN

AND HEAVENLY JOY

 

 

449. 지금까지 천국과 천국 기쁨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Hitherto the nature of heaven and of heavenly joy has been known to none.

 

이 주제들에 관하여 생각해 온 사람들은 이것들에 관한 어떤 아이디어를 형성해 왔는데, 그 아이디어는 너무 일반적이고 너무 뭉뚱그린 것이어서 거의 무슨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Those who have thought about them have formed an idea concerning them so general and so gross as scarcely to amount to any idea at all.

 

그들이 그 주제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저는 최근에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의 일부가 된 영들을 통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영들은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들이 마치 이 세상에 있는 듯 이 세상에 있을 때와 똑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What notion they have conceived on the subject I have been able to learn most accurately from spirits who had recently passed from the world into the other life; for when left to themselves, as if they were in this world, they think in the same way.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I may give a few examples.

 

 

450. 세상에 있는 동안, 말씀에 관하여 놀라울 정도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여겨졌던 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관하여 아주 거짓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은 높이 올려져 천국에 있게 될 것이며, 거기서 그들 아래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은 자기 영광과 남들을 압도하는 뛰어남 가운데 있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Some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d seemed to be preeminently enlightened in regard to the Word, had conceived so false an idea about heaven that they supposed themselves to be in heaven when they were high up, and imagined that from that position they could rule all things below, and thus be in self-glory and preeminence over others.

 

그들이 이런 환상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오류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높이 올려졌고, 거기서 허락하심 하에 어느 정도 아래에 있는 것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런 것은 환상 속 천국이며, 실제 천국은 높아지는 걸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신, 사랑과 체어리티의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혹은 자기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이면 어디나 그곳이 천국이라는 것과, 천국은 남들보다 더 뛰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걸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위대해지고자 하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On account of their being in such a fantasy, and in order to show them that they were in error, they were taken up on high, and from there were permitted in some measure to rule over things below; but they discovered with shame that this was a heaven of fantasy, and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being on high, but is wherever there is anyone who is in love and charity, or in whom is the Lord’s kingdom; and that neither does it consist in desiring to be more eminent than others, for to desire to be greater than others is not heaven, but hell.

 

 

451. 한 영이 있었는데, 그는 몸 안에 있을 동안, 권력을 소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 세상에서도 똑같이 권력을 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A certain spirit, who during his life in the body had possessed authority, retained in the other life the desire to exercise command.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다른 왕국에 있고, 이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라는 것, 지상에서의 그의 다스림은 끝났다는 것,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아무도 선과 진리, 그리고 주님의 자비, 그가 지금 이 자비 가운데 있는데, 이외의 것으로는 평가받지 않는 곳이라는 것, 더 나아가 지상 왕국처럼 이 나라 역시 모든 사람이 국왕의 총애와 자기가 가진 부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왕국인데, 이 나라에서는 선과 진리가 부(富)요, 국왕의 총애는 주님의 자비라는 것, 만일 그가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는 반역자라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반역자인 건 지금 그가 다른 나라에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는데요, But he was told that he was now in another kingdom, which is eternal; that his rule on earth was dead; and that where he was now no one is held in estimation except in accordance with the good and truth, and the mercy of the Lord, in which he is; and further, that it is in that kingdom as it is on earth, where everyone is rated according to his wealth, and his favor with his sovereign; and that there good and truth are wealth, and favor with the sovereign is the Lord’s mercy; and that if he desired to exercise command in any other way, he was a rebel, seeing that he was now in the kingdom of another.

 

이 말을 듣고 그는 부끄러워했습니다. On hearing this he was ashamed.

 

 

452. 저는 천국과 천국의 기쁨은 가장 큰 자가 되는 걸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던 영들과 대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I have conversed with spirits who supposed heaven and heavenly joy to consist in being the greatest.

 

그들은 그러나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결과적으로 가장 큰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것이 가장 행복한 자가 되는 게 아니라면 가장 큰 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이유입니다. But they were told that in heaven he is greatest who is least, because he who would be the least has the greatest happiness, and consequently is the greatest, for what is it to be the greatest except to be the most happy?

 

힘을 가진 자는 힘을, 부유한 자는 부를 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곧 행복입니다. It is this that the powerful seek by power, and the rich by riches.

 

더 나아가 그들은 천국은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해 가장 작은 자가 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실제로는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천국은 이것, 곧 마음으로 제 몸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것, 그들의 행복 증진을 위해 그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절대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사랑으로 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They were told, further, that heaven does not consist in desiring to be the least in order to be the greatest, for in that case the person is really aspiring and wishing to be the greatest; but that heaven consists in this, that from the heart we wish better for others than for ourselves, and desire to be of service to others in order to promote their happiness, and this for no selfish end, but from love.

 

 

453. 어떤 영들은 천국에 대한 생각을 너무 대충 하는 바람에 천국을 그저 단순히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곳으로, 실제로 그곳은 문이 있어 입장 허락만 받으면 들어가는 곳, 문은 열려 있고, 문지기가 있어 문지기의 허락으로 들어가는 그런 곳인 줄 압니다. Some entertain so gross an idea of heaven that they suppose it to be mere admission, in fact that it is a room into which they are admitted through a door, which is opened, and then they are let in by the doorkeepers.

 

 

454. 어떤 영들은 생각하기를, 천국은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편안한 삶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는데요, 수고 없이 행복을 누리는 그런 삶은 없다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행복을 이용해서 자신이 행복하고자 하기 때문인데,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원하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Some think that heaven consists in a life of ease, in which they are served by others; but they are told that there is no possible happiness in being at rest as a means of happiness, for so everyone would wish to have the happiness of others made tributary to his own happiness; and when everyone wished this, no one would have happiness.

2021-06-24(D5)-매일예배(AC.449-454, 창5 O), '창5 오프닝, 천국과 천국의 기쁨에 관하여(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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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aNisqQIg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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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들이 몸 안에 있는 동안 영혼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 관하여

그들을 만나보고 쓴 몇 가지 사례들

SOME EXAMPLES DRAWN FROM EXPERIENCE WITH SPIRITS

CONCERNING WHAT THEY HAD THOUGHT

DURING THEIR LIFE  IN THE BODY ABOUT THE SOUL OR SPIRIT

 

 

443. 다른 삶이 시작되면, 모든 영은 생전에 사람들이 혼과 영 및 사후 삶(생명)에 관해 가졌던 견해들을 더욱 명료하게 지각할 수 있게 됩니다. 살아있을 때와 비슷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그들은 살아있을 때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생각은 마치 큰 소리로 말한 것처럼 명료하게 통하기 때문입니다. In the other life it is given to perceive clearly what opinions people had entertained while they lived in the body concerning the soul, the spirit, and the life after death; for when kept in a state resembling that of the body they think in the same way, and their thought is communicated as plainly as if they spoke aloud.

 

어떤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고, 제가 그에게서 지각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혼자 중얼거린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영의 존재를 정말 믿었던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나는 사후 무슨 안개 같은 생명으로 살게 될 거야. 왜냐하면, 몸의 생명이 그치면 남는 것은 안개같이 희미한 것 밖에 없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몸 안에 있는 것으로만 보았고, 영은 일종의 유령처럼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생명과 거의 같은 생명을 짐승들도 갖고 있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스스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In the case of one person, not long after his decease, I perceived (what he himself confessed) that he had indeed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the spirit, but had imagined that it must live after death an obscure kind of life, because if the life of the body were withdrawn there would remain nothing but what is dim and obscure; for he had regarded life as being in the body, and therefore he had thought of the spirit as being a phantom; and he had confirmed himself in this idea from seeing that brutes also have life, almost as men have it.

 

그랬던 그가 이제는 경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영들과 천사들이 가장 밝은 빛 가운데 살며, 또 가장 놀라운 지성과 지혜, 그리고 행복 가운데, 너무나 완벽하여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지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삶은 모호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장 완벽한 명료함과 확실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He now marveled that spirits and angels live in the greatest light, and in the greatest intelligence, wisdom, and happiness, attended with a perception so perfect that it can scarcely be described; consequently that their life, so far from being obscure, is most perfectly clear and distinct.

 

 

444. 생전에 믿기를, 영은 무슨 외연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그리고 이런 믿음 때문에 대화 중에도 이런 개념이 포함된 일체의 표현조차 매우 조심하던 사람과 대화하면서,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말이지요. 지금은 그는 혼 또는 영이 되었고, 시력, 청력, 후각, 매우 정교해진 촉각, 갈망, 생각 등, 그가 자신을 마치 몸 안에 있는 거와 완전 똑같다 여길 정도로 모든 감각이 그대로인 상황을 보면서 말입니다. Conversing with one who while he lived in this world had believed that the spirit has no extension, and on that ground would admit of no word that implied extension, I asked him what he now thought of himself, seeing that now he was a soul or spirit, and possessed sight, hearing, smell, an exquisite sense of touch, desires, thoughts, insomuch that he supposed himself to be exactly as if in the body.

 

그는 세상에 있을 때 했던 생각 가운데 여전히 머물러 있었는데, 말하기를 영은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He was kept in the idea which he had when he had so thought in the world, and he said that the spirit is thought.

 

저는 허락하심을 얻어 그의 대답을 구하기를, 혹시 세상 살 때, 눈 같은 보는 기관이 없으면 무슨 육체적 시력 같은 것도 있을 수 없음을 알고 계셨는지 물었습니다. I was permitted to ask him in reply, whether, having lived in the world, he was not aware that there can be no bodily sight without an organ of vision or eye?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내적 시야 혹은 생각 또한 어떻게 가능한지를 말입니다. And how then can there be internal sight, or thought?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어떤 기관을 이루는 실체를 가져서는 안 되나요? Must it not have some organic substance from which to think?

 

그때 그는 인정하기를, 몸 안에 있는 동안, 자기는 영 또한 모든 기관이나 외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영은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망상을 지키느라 헛수고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He then acknowledged that while in the bodily life he had labored under the delusion that the spirit is mere thought, devoid of everything organic or extended.

 

저는 덧붙이기를, 만일 혼이나 영이 단지 생각일 뿐이라면, 사람의 머리가 그렇게 클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머리 전체가 내면의 모든 감각을 총괄하는 기관인 것을 볼 때 말이지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두개골은 텅 비었을 것이고, 그럴지라도 생각은 여전히 영으로서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I added that if the soul or spirit were mere thought man would not need so large a brain, seeing that the whole brain is the organ of the interior senses; for if it were not so the skull might be hollow, and the thought still act in it as the spirit.

 

이런 한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그리고 뿐만 아니라 영혼이 근육에 들어가 매우 엄청나게 다양한 운동을 일으키는 걸 보더라도, 당신은 영이 기관, 즉, 하나의 기관을 이루는 실체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From this consideration alone, as well as from the operation of the soul into the muscles, giving rise to so great a variety of movements, I said that he might be assured that the spirit is organic, that is, an organic substance.

 

그러자 그는 자신의 오류를 시인했고, 자신이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막혀했습니다. Whereupon he confessed his error, and wondered that he had been so foolish.

 

 

445. 더욱 주목하게 된 것은, 사후에도 계속 사는 혼, 즉, 영에 대해, 배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은, 영은 추상적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It was further remarked,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belief than that the soul which is to live after death, that is, the spirit, is abstract thought.

 

이것은 영의 외연과 외연에 속한 것을 포함하는 어떤 말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외연을 갖지 않지만, 생각의 주제, 그리고 생각의 대상들은 외연을 갖기 때문입니다. 외연을 갖지 않는 그런 대상들에 관하여 사람들은 바운드리를 정하고, 확장합니다.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지요. This is very manifest from their unwillingness to admit of any term that implies extension and what belongs to extension, because thought abstractedly from a subject is not extended, whereas the subject of the thought, and the objects of the thought, are extended; and as for those objects which are not extended, men define them by boundaries and give extension to them, in order that they may comprehend them.

 

이것으로 아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배운 사람들은 혼 또는 영의 개념과 관련, 그건 그저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사후엔 사라지는 것으로밖에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This shows very clearly that the learned have no other conception of the soul or spirit than that it is mere thought, and so cannot but believe that it will vanish when they die.

 

 

446. 저는 오늘날(18세기 중엽 유럽)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일반적인 생각들에 관하여 영들과 담론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영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도, 그들이 가진 머릿속 지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들은 영이 확장, 곧 무슨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할 뿐 아니라, 영이 일종의 실체라는 것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실체가 무엇이냐를 가지고도 다투면서 말이지요. I have discoursed with spirits concerning the common opinion that prevails among men at the present day, that the existence of the spirit is not to be credited because they do not see it with their eyes, nor comprehend it by their memory-knowledges [scientias], and so they not only deny that the spirit has extension, but also that it is a substance, disputing as to what substance is.

 

영이 외연을 가진다는 것을 부인하며, 또 영의 실체에 관해 다투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영은 어떤 곳, 곧 사람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순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의 혼 또는 영이 자기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And as they deny that it has extension, and also dispute about substance, they also deny that the spirit is in any place, and consequently that it is in the human body; and yet the most simple might know that his soul or spirit is within his body.

 

제가 이런 얘기들을 하자 훨씬 더 단순한 사람들이었던 그 영들은 현대인들이 그토록 어리석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When I said these things, the spirits, who were some of the more simple ones, marveled that the men of the present day are so foolish.

 

그리고 ‘부분들 없는 부분들’ 같은, 그리고 다른 말들을 가지고 다투고들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런 걸 우스꽝스럽다, 터무니없다, 웃음거리다고 하며, 그런 걸로 마음을 채우면 안 된다고, 안 그러면 지혜의 길이 닫힌다고 하였습니다. And when they heard the words that are disputed about, such as “parts without parts,” and other such terms, they called them absurd, ridiculous, and farcical, which should not occupy the mind at all, because they close the way to intelligence.

 

 

447. 어떤 수사 수련 기간 중인 영이 저에게 영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영이라는 게 뭡니까?” 물었습니다. 마치 자기는 사람인 줄 착각하면서 말이지요. A certain novitiate spirit, on hearing me speak about the spirit, asked, “What is a spirit?” supposing himself to be a man.

 

그리고 저는 그에게 모든 사람에게는 영이 있다는 것과, 생명 관련, 사람은 영이라는 사실, 즉, 몸은 그저 사람이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일 뿐이며, 살과 뼈, 곧, 몸이 사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말하면서,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걸 보면서, 그에게 혹시 전에 혼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And when I told him that there is a spirit in every man, and that in respect to his life a man is a spirit; that the body is merely to enable a man to live on the earth, and that the flesh and bones, that is, the body, does not live or think at all; seeing that he was at a loss, I asked him whether he had ever heard of the soul.

 

“혼은 뭡니까?” 그는 대답하면서, “저는 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였습니다. “What is a soul?” he replied, “I do not know what a soul is.”

 

그때 저는 허락을 받아 그에게 그 자신 지금 혼 또는 영이라고, 그가 지금 내 머리 위에 있으며, 땅 위에 있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I was then permitted to tell him that he himself was now a soul, or spirit, as he might know from the fact that he was over my head, and was not standing on the earth.

 

제가 그에게 이 사실을 알겠느냐 묻자 그는 몸서리치며 도망가면서 “나는 영이다! 나는 영이다!”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I asked him whether he could not perceive this, and he then fled away in terror, crying out, “I am a spirit! I am a spirit!”

 

어떤 유대인이 자기는 완전히 몸 안에 살고 있다 생각하는 영이었는데, 그는 사실은 그 정반대임을 도무지 설득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A certain Jew supposed himself to be living wholly in the body, insomuch that he could scarcely be persuaded to the contrary.

 

자기가 영임을 보았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기는 사람이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자기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고 말이지요. And when he was shown that he was a spirit, he still persisted in saying that he was a man, because he could see and hear.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살 때, 몸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Such are they who, during their abode in this world, have been devoted to the body.

 

 

이런 사례들은 끝도 없이 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런 말씀 드리는 이유는, 감각을 지각하는 것은 몸이 아닌, 사람 안 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To these examples very many more might be added, but these have been given merely in order to confirm the fact, that it is the spirit in man, and not the body, which exercises sensation.

 

 

448. 저는 세상에서 저를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랫동안,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씩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록 내적이지만 아주 맑은 목소리로, 마치 이 세상 친구들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I have conversed with many who had been known to me in this life (and this I have done for a long time—for months and years), in as clear a voice, although an inward one, as with friends in this world.

 

우리 대화의 주제는 때때로 사람의 사후 상태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몸 안에 사는 동안 아무도 자기가 몸 안에 사는 삶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며, 사람은 현재의 모호한 삶을 지나 명료한 삶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사실, 그리고 주님 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명료한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안 믿는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였습니다. The subject of our conversation has sometimes been the state of man after death, and they have wondered exceedingly that during the bodily life no one knows or believes that he is so to live when the bodily life is over, when yet there is then a continuation of life, and such a continuation that the man passes from an obscure life into a clear one, and those who are in faith in the Lord into a life that is more and more clear.

 

그들은 제가 아직 살아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글이나 말로, 자기들이 지금 어떤 상태 가운데 있는지, 마치 제가 여기 있는 자기 친구들에 관해 자기들한테 많은 걸 알려주는 거처럼 그렇게 알려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They have desired me to tell their friends that they are alive, and to write and tell them what their condition is, even as I had related to themselves many things about that of their friends here.

 

그러나 저는 답하기를, 만일 제가 그들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하면, 혹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하면, 그들은 안 믿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망상이라며 비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무슨 싸인이나 기적을 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But I replied that were I to tell their friends such things, or to write to them about them, they would not believe, but would call them delusions, would scoff at them, and would ask for signs or miracles before they would believe; and I should merely expose myself to their derision.

 

그리고 이런 얘기가 사실이다, 혹시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And that these things are true, perchance but few will believe.

 

진실로, 사람들은 영들의 존재를 부인하며, 설령 부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영들에 관해 말하는 걸 아주 듣기 거북해들 하기 때문입니다. For at heart men deny the existence of spirits, and even those who do not deny it are unwilling to hear that anyone can speak with spirits.

 

고대에는 영들에 관한 그런 상태의 믿음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정신 나간 추론을 가지고 사람들은 영들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신들의 정의와 가설들을 가지고 영들로부터 모든 감각을 박탈하며, 더 많이, 더 많이 배운 자들일수록 이런 짓을 저리르고 있습니다. In ancient times there was no such state of belief in regard to spirits, but so it is now when by crazy ratiocination men try to find out what spirits are, and by their definitions and suppositions deprive them of all the senses, and do this the more, the more learned they desire to be.

2021-06-23(D4)-매일예배(AC.443-448, 창4 클로징), '영들이 생각하는 영에 관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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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T3WhcZLJ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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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44.421-431.'중간영계란 무엇인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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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ytdjfOmy3M

https://youtu.be/6dq5jg-j7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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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창4:26)

 

 

438. ‘’은 신앙을 상징하며, 체어리티가 바로 이 신앙으로부터 오는 것임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그의 '아들'은 이름이 ‘에노스’였으며,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여겼던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교회의 예배가 체어리티로 말미암았음을 상징합니다. By “Seth” is signified the faith through which comes charity, as was said above; by his “son,” whose name was “Enosh,” is signified a church which 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 by beginning then to “call on the name of Jehovah” is signified the worship of that church from charity.

 

 

439. ‘’이 신앙을 상징하며, 이 신앙에서 체어리티가 나오는 것임은 앞 절에서 보여드렸습니다. That by “Seth” is signified the faith through which comes charity was shown in the preceding verse.

 

그의 ‘그 이름이 에노스였던 아들’이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여겼던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 분명한데요, 곧, ‘에노스’라는 그 교회의 이름이 갖는 또 다른 뜻은 ‘사람’(man)인데, 천인(天人, celestial man)을 말하는 건 아니고, 대신 인성(人性, human) 어린 영인(靈人, spiritual man)을 말하며, 이를 가리켜 여기서 ‘에노스’라 한다는 것입니다. That by his “son, whose name was Enosh,” is signified a church that 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 is also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t is called “Enosh,” which name also means a “man,” not a celestial man, but that human spiritual man which is here called “Enosh.

 

바로 이어지는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본문으로도 또한 분명합니다.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words that immediately follow: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40. 방금 인용한 본문이 그 교회의, 체어리티로 말미암은 예배를 상징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님을 향한 모든 예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 언어 형태라는 사실로 분명하며, 이 예배가 체어리티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여기서 ‘여호와’로 언급되시는 반면, 전 절에서는 ‘하나님’으로 언급되셨다는 사실로, 뿐만 아니라, 주님은 체어리티 없는 예배는 받으실 수가 없으신데, 그 이유는, 체어리티가 없는 신앙을 가지고는 참 예배를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그런 건 단지 입술의 예배일 뿐, 마음의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등의 사실로 보아 분명합니다. That by the words just quoted is signified the worship of that church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and general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nd that this worship was from charit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ehovah” is here mentioned, whereas in the preceding verse he was called “God,”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the Lord cannot be worshiped except from charity, since true worship cannot proceed from faith that is not of charity, because it is merely of the lips, and not of the heart.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님을 향한 모든 예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 형태라는 사실은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아브라함에 관한 본문들입니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12:8)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13:4)

 

그리고, 또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21:33)

 

That to “call on the name of Jehovah” is a customary form of speech for all worship of the Lord, appears from the Word; thus it is said of Abraham, that “he built an altar to Jehovah, and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Gen. 12:8; 13:4); and again, that he “planted a grove in Beersheba, and called there on the name of Jehovah, the God of eternity.” (Gen. 21:33)

 

이 표현에 모든 예배가 포함되어 있음은 이사야를 통해서도 명료합니다. That this expression includes all worship, is plain from Isaiah: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hath said, thou hast not called upon me, O Jacob, but thou hast been weary of me, O Israel. Thou hast not brought to me the small cattle of thy burnt offerings, neither hast thou honored me with thy sacrifices. I have not caused thee to serve with an offering, nor wearied thee with incense, (사43:22-23)

 

이 본문에 모든 표상적 예배의 요약이 들어 있습니다. in which text a summary is given of all representative worship.

 

 

44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탄원하는 것이 이때 시작된 것이 아님은 다음 두 가지 사실로 충분히 알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태고 교회에 관하여 위에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태고 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가장 주님을 경배하고 예배한 교회입니다. 이미 이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예배했지요. 두 번째는, 양 떼의 첫 새끼를 희생제물로 드린 아벨의 경우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본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는 새 교회의 예배를 상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아다와 씰라 이전의 교회들은 ‘가인’과 ‘라멕’이라 불린 사람들에 의해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invocation of the name of Jehovah did not commence at this time is sufficiently evident from what has already been said above in regard to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more than any other adored and worshiped the Lord; and also from the fact that Abel brought an offering of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o that in this passage by “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the worship of the new church, after the former church had been extinguished by those who are called “Cain” and “Lamech.

 

 

442. 위에 설명한 대로 이 장의 내용으로부터 분명한 사실은, 태고 시대에,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간 많은 교리와 이단이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는 다 이름이 있었고, 그 교리와 이단의 결과물들은 오늘날 교회의 것 보다 훨씬 더 심오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천재성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From the contents of this chapter as above explained, it is evident that in the most ancient time there were many doctrines and heresies separate from the church, each one of which had its name, which separate doctrines and heresies were the outcome of much more profound thought than any at the present day, because such was the genius of the men of that time.

2021-06-21(D2)-매일예배(AC.438-442, 창4,26), '에노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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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U76XleZx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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