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를 매일 한 편씩 다루는 이유’ (2023/2/3)

 

즉, 서울 새 교회에서는 매주 한 편씩 다룬 주일설교 수백 편을 저는 매일 한 편씩 쉬지 않고 다시 다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래전 읽은, 아주 특별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제목이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라는 책인데, 대한민국 어느 신대원 전도사가 중국 모처에 가서 탈북 형제자매 수백 명을 모아 성경통독을 통해 그들 의식 속 인 박힌 주체사상을 깨부수고, 복음의 전사들로 새 무장시켜 다시 북한으로 들여보냈다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내용이었지요.

 

한 15년 전 읽은 내용이라 지금은 어렴풋이만 기억나지만, 한 가지 아주 특별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내용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가 어쩌면 위 도입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들이 힘썼던 훈련 프로그램은 아주 지극히 단순한 것으로서, 모처 숙소라는 곳에 십수 명씩 숨어지내며, 그저 새벽부터 밤까지 카세트를 틀고, 주구장창 성경통독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사람들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거의 없어 모든 학습을 거의 ‘세뇌’라는 방식으로 해야만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무슨 저명한 설교가가 와서 그럴듯한 감성, 이성을 동원하며, 무슨 3대지 설교다 뭐다 이런 걸 하면 그들은 당췌 거이 무슨 소리냐고...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고 불평하지만...

 

자기들 중에 누가 나서서 말씀을 인용하며, ‘자,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시지 않았습네까?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합네다.’ 하면, 다들 ‘옳소!’ 하며 박수치고 환호하고 그런답니다...

 

놀라운 것은, 저들은 태어날 때부터 들어왔던 주체사상이라 그 머릿속에 아예 인이 박힌 사상인데도, 그런데 이 단순무식(?)해 보이는 성경통독이 그걸 깼다는 말입니다. 밤낮없이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던 성경통독으로 말입니다!

 

대전한밭제일교회를 담임하시던 이영환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지금은 원로로 섬기시지만 오히려 현역 때보다 더 수고하시는 사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4014 사역입니다. 3일 금식, 4일 보식을 열네 번, 그러니까 열세 번 하고 하루 더 하면 40일 금식하는 것이라는...

 

이 사역은 금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스피릿을 통해 목회자 본인의 근본적 변화와 그에 따른 목회 현장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것이지요. 이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표어 하나가 있는데, 바로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이었고, 저 역시 이 운동의 1기생으로서 이 표어는 제가 느슨, 흐트러지려 할 때마다 저를 다잡는 아주 효과 만점의 표어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답이 된 것 같은데요...

 

우리는 지상 언어로 기록된 말씀을 겉 글자로만, 문자로만 보는데 아주 매우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틀을 거의 못 바꾸지요... 마치 저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주체사상의 틀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것, 곧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입니다. 물론 주님의 빛 비추심을 간구하면서 말이지요.

 

작년 11월 25일부터 시작한 이 속뜻 새벽예배... 오늘로 딱 71일 되었는데요, 벌써 저희 부부, 이제 말씀을 겉뜻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음을 느낍니다. 뭐, 아직은 많이 어렴풋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역량 있는 분의 설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지난 여러 해 설교를 빌려 살짝 제 수준에 맞게 덧대어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살짝 덧대는 작업마저 사실은 체중 빠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쉽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때마다 주님의 빛을 구하며, 저 표어, ‘단순, 반복, 집중, 지속, 강행’을 속으로 외치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네, 오늘은 좀 특별한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받는 이 다소 분량이 과한, 그래서 많이 좀 부담되는 이 카톡 공유시겠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꾹꾹 참고 한 몇 달 같이 달리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실 줄 믿습니다. 곧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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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2023/2/3)

 

11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눅7:11-17)

 

 

① 교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 (AC.81)

 

그 내면 상태에 따라 ‘죽은’(dead), ‘영적’(spiritual), 그리고 ‘천적’(天的, celestial)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죽은’ 상태의 사람은 영적 전투에서 항상 지고, 전투 중이 아닐 땐 악과 거짓의 종으로 지냅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적(external) 구속(bonds) 상태에 있는데 예를 들면, 법이라든지, 생명이나 부, 이익 및 평판 등 그가 평소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혹시 잃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두 번째, ‘영적’ 상태의 사람은 반대로 영적 전투에서 늘 이깁니다.

 

그는 내적(internal) 구속 상태에 있으며, 거의 유일한 구속은 그의 양심입니다.

 

세 번째, ‘천적’ 상태의 사람은 아예 전투 자체가 없습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괴롭혀도 그는 아예 무시, 경멸하며, 그래서 전투, 즉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그를 구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선(善, good)과 진리(眞理, truth)에 관한 천사들의 퍼셉션(perceptions, 영적 통찰, 지각)입니다.

 

 

②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12절)

 

과부’는 선에 대한 애정은 있으되 선을 행할 참 진리는 없는 상태를 말하며, 특별히 여기 과부는 나인이라는 성, 곧 나인이라는 교회에 속한 사람으로서 교회의 많은 교리, 진리는 알고 있으되 삶이 받쳐주지 않는, 그 가운데 ‘나인’이라는 진리에 관해서는 늘 넘어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진리는, 그리고 교리는 실행되지 않는 한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진리가 실행될 때 그게 바로 선이며, 그래서 선은 실행된 진리, 곧 겉으로 구현된, 나타난 진리입니다.

 

참 진리는 선을 동반한, 그 안에 선을 행할 능력이 있는 진리를 말하며, 이 진리는 오직 주님만이 주십니다. 주님이 오셔서 함께하셔야만 가능한 진리입니다.

 

시험을 만나 이길 때는 우리 안에 새로운 선과 진리, 곧 아들, 딸이 생겨나지만, 반대로 질 때는 우리 안에 그나마 있던 선과 진리가 사망합니다. 과부의 독자의 ‘죽음’은 이것을 말합니다.

 

 

③ ‘울지 말라’,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3-15절)

 

과부가 슬피 우는 것은 ‘이별’, ‘작별’, 곧 즉 나인이라는 교회의 어떤 사람이 자기를 괴롭히는, 그래서 늘 넘어지는 어떤 진리 앞에 이젠 그만 자포자기하려는 걸 말합니다.

 

과부는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자신 안에 선을 행할 능력의 진리, 주님의 참 진리가 없어 이젠 그만 포기하려는 그 순간, 주님은 마침 알맞은 타이밍에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아들, 곧 그가 포기하려 했던 진리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관에 손을 대시고 다시 살리십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망가진 차를 완전 새 차처럼 온전히 수리하여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을 행할 능력을 수반한 참 진리가 다시 과부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일부러 나인 성을 찾아 참 알맞은 타이밍에 과부를 만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도 범사 그리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불꽃같이 지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원고 : https://bygrace.kr/1431

 

매일예배(2023/2/3, 눅7:11-17),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bygrace.kr

 

설교 : https://youtu.be/3DNGsrKUr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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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녹음 음량이 작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라며, 이어폰으로 들으시기를 권합니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2-03(D6)-매일예배(2403, 눅7,11-17),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pdf
0.36MB

https://youtu.be/3DNGsrKUr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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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종에 관한 법 (2)’ (2023/2/2)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출21:1-6)

 

 

① ‘’, ‘자유인’(5절)

 

다음은 종과 자유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애정(affection)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가슴(the heart)으로, 그래서 자유(freedom)로 행하며, 또한 진리를 위해 진리를, 선을 위해 선을 행하고, 그렇게 해서 이웃을 위해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인애)를 실천합니다. 그러나 복종심(obedience)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같아 보여도 그들은 가슴으로 하지 않고, 그러므로 당연히 자유로도 행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들이 스스로 여기길 나는 가슴으로, 자유로 행하는 거야 하더라도 그건 그렇게 착각하게 하는 어떤 자기 영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진리 자체를 위해, 선을 선 자체를 위해 행하는 게 아니며, 다만 이런 걸 할 때 오는 어떤 영광의 기쁨(delight)을 맛보기 위해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은 이웃을 위해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을 행하는 게 아니며, 다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그리고 무슨 세속적 보상을 받기 위해서만 합니다. (AC.8987:2)

 

한마디로 종은 억지로, 그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자유인은 주님을 사랑해서 자원하여,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는, 종은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자유인은 머리와 가슴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②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5절)

 

여기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선과 진리를 가지고 살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 대접과 높임 받는 걸 말하며, 그 결과, 이렇게 빨아먹는(?) 단물이 너무 좋아 굳이 거듭나기 위한 마음고생 같은 건 1도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려면, 악과 거짓 앞에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며, 그래서 그 과정이 결코 간단치가 않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주님의 선과 진리는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한테만 비로소 그 의지 안으로 흘러들어와 심기고 정립되며, 그렇게 비로소 사람은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난 여섯 해,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셨음에도 기한이 다하도록 이 히브리 종은 정신을 못 차리고, 이제라도 깨닫고 돌이키기는커녕 오히려 ‘나는 이대로가 좋습니다’며, 세상과 세속, 자기 사랑에 함몰되고 마는, 그런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③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6절)

 

이는 그에게 주어진 기한이 다하였으므로 이제 새로운, 그리고 영원한 어떤 영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종은 진리만 있고 선은 없는 상태요, 자유인은 진리와 선이 결합한 상태입니다.

 

천국은 오직 자유인으로만 들어가는 나라, 곧 자유인이라는 상태라야만 있을 수 있는 곳입니다. 종의 상태, 즉 선과 진리가 결합하지 않은 상태로는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의 종이 가게 될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눈앞 세속적 그 어떤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마시고, 부디 높은 것, 하늘의 것에 시선을 돌려 홀가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좀 잊혀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고, 생활이 좀 그래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고 말입니다. 벗어버리고 갈 이 육을 섬기시는데 남은 시간과 소유를 낭비하지 마시고, 부디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원고 : https://bygrace.kr/1429

 

매일예배(2023/2/2, 출21:1-6), '히브리 종에 관한 법 (2)'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출애굽기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bygrace.kr

 

설교 : https://youtu.be/kbtkjqWKv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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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출애굽기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녹음 음량이 작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라며, 이어폰으로 들으시기를 권합니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2-02(D5)-매일예배(2402, 출21,1-6), '히브리 종에 관한 법 (2)'.pdf
0.38MB

https://youtu.be/kbtkjqWKv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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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 (2023/2/1)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눅7:1-10)

 

 

①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2절)

 

속뜻으로는 ‘’은 겉 사람을, ‘’은 여러 가지 영적 질병, 문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은 그 속뜻으로는 교회 밖 어느 이방인의 겉 사람이 아주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걸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질병은 여러 가지 영적 문제들을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맹인이나 귀머거리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에 따라 살지 못하는 사람을, 절름발이나 중풍병자는 진리를 알면서도 의지가 약해 살아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②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3절)

 

주님의 신성(The Divine)은 선과 진리로 되어 있으며, 그래서 주님의 호칭들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님의 신성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여호와’, 진리에 대한 호칭은 ‘하나님’이시며,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호칭 중 선에 대한 호칭은 ‘예수’, 진리에 대한 호칭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백부장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는 것은 교회 밖 이방인인 백부장이 교회가 가르치는 선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교회, ‘장로’는 선한 삶을 통해 체득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유대인의 장로 몇을 주님께 보내어 도움을 청하는 것은 행동하는 진리, 진리 실천이라는 선한 삶을 통해 주님과 소통하는 것, 곧 백부장 편에서는 참 진리를 가지고 영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고, 주님 편에서는 원하는 진리를 그에게 충분히 주시는 것입니다.

 

 

③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4, 5절)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는 장로들의 말은 사실은 유대 장로들의 말이 아니라 진리로 소통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그렇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이 사람의 병 치유됨이 합당하다 판단하시는 것이지요.

 

민족’, 곧 나라는 선을, ‘회당’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는 것은 백부장이 주님의 선을 선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의 내면에 이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은 그가 병 고침 받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합당하다 여기시기 전까지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수반하는 진리를 받을 수도, 따라서 병의 치유도 어렵습니다.

 

 

④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 7, 8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주님으로부터 백부장에게로 진리가 흘러 들어가는데 그 안에 선이 들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은 이웃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웃 사랑을 통해 우리 각 사람에게 오십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인간의 지성을 주님의 진리보다 위에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또는 주님의 진리 위에 무슨 사사로운 세상 지식이나 자기 생각을 섞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우선시나 왜곡이 있게 되면 주님의 일이 힘 들어지며, 그래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원고를 참고하시고요, 오늘부터 당분간 매일 설교 공유 시간이 좀 늦어지겠습니다. 매일예배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늦춰지게 되었고, 또 설교 내용을 앞뒤 한 장으로 요약하는 시간이 좀 소요되어 그렇습니다. 매일 오전 11시 전후로 맞춰보겠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 역시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 즉 한 시간씩 늦어지겠습니다

 

원고 : https://bygrace.kr/1427

 

매일예배(2023/2/1, 눅7:1-10), '어떤 백부장의 이만한 믿음'

※ 원본은 서울 새 교회(http://seoul.newchurch.or.kr/) 이순철 목사님의 누가복음 속뜻 강해입니다. ※ 원고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원본에는 없는 보조설명입니다. ※

bygrace.kr

 

설교 : https://youtu.be/8YHDlqK8g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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