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3:24)

 

AC.306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cast out the man)는 그에게서 선한 의지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완전히 빼앗으셔서, 그것들로부터 분리되게 하셨고, 그 결과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make cherubim from the east to dwell)는 그런 사람이 더 이상 신앙의 어떤 비밀스런 것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 동쪽(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은 천적인 것을 말하는데, 지성(intelligence)이 여기서 비롯되며, ‘그룹(cherubim)은 그러한 사람이 신앙에 속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그러니까 보호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두루 도는 불 칼(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은 자기 사랑(self-love)과 거기서 나오는 광적 욕망(insane desires) 및 그에 따른 persuasions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이 그가 정말 원하는 것들이며, 그 결과 그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한테로 끌려갑니다. 이것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keeping the way of the tree of lives)의 의미, 즉 거룩한 것들을 profanation으로부터 막기 위한 것입니다. To “cast out the man” is to entirely deprive him of all the will of good and understanding of truth, insomuch that he is separated from them, and is no longer man. To “make cherubim from the east to dwell” is to provide against his entering into any secret thing of faith; for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is the celestial, from which is intelligence; and by “cherubim” is signified the providence of the Lord in preventing such a man from entering into the things of faith.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desires and consequent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he indeed wishes to enter, but is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and this for the purpose of “keeping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that is, of preventing the profanation of holy things.

 

 

해설

 

이 글은 창3의 마지막 절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면서, 왜 주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는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얼핏 보면 이는 심판과 추방의 장면처럼 보이지만, 말씀의 속뜻으로는 철저히 보호와 섭리의 장면입니다.

 

먼저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단순히 장소를 옮기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사람이 더 이상 선한 의지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안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원래 선과 진리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참된 의미에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과 자기 지혜를 선택한 결과, 그들은 그 생명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었고, 결국 참된 사람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적은 사람을 버리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영적 파멸을 막으시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룹’을 두셨습니다. 성경에서 그룹은 언제나 거룩한 것을 지키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국의 깊은 진리와 사랑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시는 사랑의 보호입니다.

 

에덴동산 동쪽’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동쪽은 언제나 주님과 천적 사랑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에덴동산 동쪽은 천국의 가장 안쪽 생명, 곧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지혜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그룹이 바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천국의 가장 거룩한 생명이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질서 안에서만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루 도는 불 칼’도 심판의 무기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자기 사랑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광적 욕망, 그리고 persuasions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겉으로는 신앙을 알고 싶어 하고,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마음은 여전히 육체와 세상에 묶여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다시 자기 자신과 세상적인 것들을 향해 끌려갑니다. 두루 도는 불 칼은 바로 이러한 상태 자체를 상징합니다.

 

글의 마지막은 이 모든 섭리의 목적을 한마디로 밝힙니다. 그것은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것들이 모독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직 자기 사랑 가운데 있으면서도 천국의 가장 깊은 진리를 충분히 알고, 그다음 그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면, 그는 단순한 무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독, 즉 profanation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비 가운데 사람의 상태에 맞추어 진리를 허락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감추시기도 하십니다.

 

3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을 쫓아내시는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것은 생명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언젠가 사람이 다시 그 생명에 이를 수 있도록 그 길을 거룩하게 보존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그룹과 두루 도는 불 칼이 서 있는 이유이며, 창3을 관통하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AC.305,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창3:23) AC.305 ‘에덴동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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