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 AC.20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Verse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 3절 속뜻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은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랬던 그에게 선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 생명 그 자체, 빛 그 자체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겉(external) 아닌 속(internal)을 향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20. 첫 번째 상태는 사람이 선과 진리라는 것을 뭔가 더 높은 것으로(the good and the true are something higher) 알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거의 외적(外的, altogether external, 겉)이기만 한 사람들은 선과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데요, 그들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에 속한 모든 것이 선이며, 그런 사랑들에 대해 호의적인 게 진리라는 환상(fancy)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은 악이며, 그런 진리는 거짓임을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롭게 잉태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처음으로 알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은 먼저 그는 자기의 선은 선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그가 빛 되신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님은 선과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계시다(the Lord exists)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함을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The first state is when the man begins to know that the good and the true are something higher. Men who are altogether external do not even know what good and truth are; for they fancy all things to be good that belong to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nd all things to be true that favor these loves; not being aware that such goods are evils, and such truths falsities. But when man is conceived anew, he then begins for the first time to know that his goods are not goods, and also, as he comes more into the light, that the Lord is, and that he is good and truth itself. That men ought to know that the Lord exists he himself teaches in John: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Except ye believe that I am, ye shall die in your sins. (John 8:24)

 

또 주님은 선 그 자체, 즉 생명이시며, 진리 그 자체, 즉 빛이시라는 사실과,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선도, 진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Also, that the Lord is good itself, or life, and truth itself, or light, and consequently that there is neither good nor truth except from the Lord, is thus declared: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 3-4, 9)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God was the Wor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He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John 1:1, 3–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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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 AC.17-19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Verse 2,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 2절 속뜻

 

거듭나기 전 사람의 상태는 주님의 선과 진리가 전혀 없어 혼돈과 공허, 흑암과 깊음의 상태이지만, 주님은 자비하셔서 그런 그의 안에 주님의 선과 진리의 지식으로 된 ‘리메인스(remains)를 두시고, 마치 보석처럼 귀히 여기십니다. ‘남은 자(a remnant)라고도 하는 이 리메인스는 그의 겉 사람에 속한 것들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17.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the earth void and empty), 또 ‘땅’(the ground)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직 그 안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씨 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혼돈’(void)은 선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공허’(empty)는 진리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결과, ‘흑암’(thick darkness) 상태, 즉 어리석은 상태가 되며,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에 속한 모든 것에,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영적, 천적(天的, heavenly) 생명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 사람에 관해 주님은 예레미야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Before his regeneration, man is called the “earth void and empty,” and also the “ground” wherein nothing of good and truth has been sown; “void” denotes where there is nothing of good, and “empty” where there is nothing of truth. Hence comes “thick darkness,” that is, stupidity, and an ignorance of all things belonging to faith in the Lord, and consequently of all things belonging to spiritual and heavenly life. Such a man is thus described by the Lord through Jeremiah: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렘4:22-23) My people is stupid, they have not known me; they are foolish sons, and are not intelligent; they are wise to do evil, but to do good they have no knowledge. I beheld the earth, and lo a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Jer. 4:22–23)

 

18. ‘깊음 위’(The faces of the deep)는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의 탐욕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인데, 그는 전적으로 이런 것들로 되어 있는 사람이며, 이런 것들 안에 완전히 잠긴 사람입니다. 이 상태는 빛이라는 게 전혀 없는 상태로, 그는 뭔가 희미하고 혼란스러운, 즉 무슨 ‘깊음’(a deep)과도 같은그런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말씀 여러 군데에서는 표현하기를 ‘깊음’(deeps), ‘바다 깊은 곳’(depths of the sea)이라 하는데, 이는 사람이 거듭나기 전, ‘말리신’(dried up) 상태, ‘황폐해진’(wasted)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입니다. The “faces of the deep” are the cupidities of the unregenerate man, and the falsities thence originating, of which he wholly consists, and in which he is totally immersed. In this state, having no light, he is like a “deep,” or something obscure and confused. Such persons are also called “deeps,” and “depths of the sea,” in many parts of the Word, which are “dried up,” or “wasted,” before man is regenerated. As in Isaiah: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사51:9-11) Awake as in the ancient days, in the generations of old. Art not thou it that drieth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that maketh the depths of the sea a way for the ransomed to pass over? Therefore the redeemed of Jehovah shall return. (Isa. 51:9–11)

 

이런 사람은 또한 하늘에서 보면,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무슨 까만 덩어리(a black mass)로 보이는데요,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에는 인간의 황폐함(the vastation of man)이라는,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거듭남의 선행 상태, 즉 누구나 다 이런 상태에서 거듭남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참된 것을 알 수 있기 전에, 그리고 선한 것으로 영향받기 전에, 먼저 이런 것의 유입을 방해하고, 거듭남에 저항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새 사람(the new man)이 잉태될 수 있기 전에, 옛 사람(the old man)반드시 먼저 죽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Such a man also, when seen from heaven, appears like a black mass, destitute of vitality. The same expressions likewise in general involve the vastation of man, frequently spoken of by the prophets, which precedes regeneration; for before man can know what is true, and be affected with what is good, there must be a removal of such things as hinder and resist their admission; thus the old man must needs die, before the new man can be conceived.

 

19.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주님의 자비(the Lord’s mercy)를 의미하는데, 이를 가리켜 ‘운행하시니라’(to move)라든지, 혹은 마치 암탉이 자기 알을 품듯 ‘품으시다’(to brood)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주님이 사람 안에 숨겨 보석처럼 소중하게 보관해 오신 것들을 가리킵니다. 말씀 전반에 걸쳐 이것을 ‘리메인스’(remains), 즉 ‘남은 자’(a remnant)라 하는데, 이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리메인스라는 것은 겉에 속한 것들(external things)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결코 빛이나 낮(day)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 지식을 여기서는 ‘수면 위’(the faces of the waters)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By the “spirit of God” is meant the Lord’s mercy, which is said to “move,” or “brood,” as a hen broods over her eggs. The things over which it moves are such as the Lord has hidden and treasured up in man, which in the Word throughout are called remains or a remnant, consisting of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which never come into light or day, until external things are vastated. These knowledges are here called “the faces of the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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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 AC.16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Verse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 1절 속뜻

 

사람의 거듭남 관련, ‘태초’는 그 첫 번째 시기를 말합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 ‘’, 곧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창조되었습니다.

 

 

16.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time)태초(太初, the beginning)라고 합니다. 선지서 여러 곳에서는 이때를 옛날(days of old,[antiquitatis])(32:7, 왕하19:25, 44:1)이라 하기도 하고, The most ancient time is called “the beginning.” By the prophets it is in various places called the “days of old” [antiquitatis]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신32:7)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왕하19:25)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시44:1)

 

‘영원’(days of eternity)(시25:6)이라 하기도 합니다. and also the “days of eternity.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시25:6)

 

‘태초’는 또한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첫 번째 시기(the first period), 기간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고, 생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남 자체를 사람의 ‘새 창조’(a new creation)라고도 하지요. 선지서들 가운데 ‘창조하다’(to create), ‘짓다’(to form), ‘만들다’(to make)라는 표현들이 나오는 거의 모든곳에서 그 상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전부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를 보면, The “beginning” also involves the first period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for he is then born anew, and receives life. Regeneration itself is therefore called a “new creation” of man.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to “make,” in almost all parts of the prophetic writings signify to regenerate, yet with a difference in the signification. As in Isaiah: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그리고 그래서 같은 선지서에서 주님은 ‘구속자’(the redeemer), ‘태에서부터 지으신 이’(the former from the womb), ‘만드신 이’(the maker)및 ‘창조자’(the creator)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And therefore the Lord is called the “redeemer,” the “former from the womb,” the “maker,” and also the “creator”; as in the same prophet: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사43:15) I am Jehovah your holy one, the creator of Israel, your king. (Isa. 43:15)

 

시편에서는 In David: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시102:18) The people that is created shall praise Jah. (Ps. 102:18)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30)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30)

 

‘천’(天, heaven)은 속 사람(the internal man)을, ‘지’(地, earth)는 아직 거듭나기 전인 겉 사람(the external man)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That “heaven”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earth” the external man before regeneration may be seen from what fo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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