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6-7, AC.24-25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Verses 6, 7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 6, 7절 속뜻

 

속 사람, 겉 사람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주님은 먼저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구별하신 후, 속 사람 안에 주님의 것, 곧 선과 진리를 두십니다. 겉 사람 안에는 사람의 것이 있습니다. 거듭남이 시작되면서 사람은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조차 사실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치 자기 스스로 그러는 줄 압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시며, 주님의 섭리로 사람의 이 모든 오류와 탐욕을 주님 쪽으로 구부리십니다. 강제로 바로잡으시거나 끄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24. 하나님의 영, 즉 주님의 자비로 낮(day, 날) 안에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 생긴 다음, 처음으로 빛이 비취는데요, 이 빛은 곧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선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어떤 선과 진리도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 후, 주님은 속 사람(the internal man)과 겉 사람(the external) 간 일종의 어떤 구분, 구별을 두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는 속 사람에게 있는 지식(knowledges [cognitiones])과 겉 사람에게 있는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간 구별이 됩니다. ‘궁창’(an expanse)은 속 사람을 말하며, ‘궁창 위의 물’(the waters above the expanse)은 속 사람에게 있는 지식을, 그리고 ‘궁창 아래의 물’(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은 겉 사람에게 있는 기억-지식을 말합니다. After the spirit of God, or the Lord’s mercy, has brought forth into day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and has given the first light, that the Lord is, that he is good itself, and truth itself, and that there is no good and truth but from him, he then makes a distinction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consequently between the knowledges [cognitiones] that are in the internal man, and the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that belong to the external man. The internal man is called an “expanse”; the knowledge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above the expanse”; and the memory-knowledges of the ex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

 

[2] 사람은, 거듭남이 진행되기 전에는 무슨 속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하물며 속 사람이라는 것의 본성(nature) 및 퀄러티(quality)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는 속 사람, 겉 사람이라는 것은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 하기도 합니다. 그 자신,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그는 속 사람에게 속한 것들까지도 그동안 가라앉게 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것들까지도 무슨 혼란스럽고 흐릿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먼저 이르시기를,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하시고, 이어 ‘물과 물로 나뉘라’(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하신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구절들에서처럼, 먼저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라’(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 하신 게 아니고 말입니다. Man, before he is being regenerated, does not even know that any internal man exists, much less is he acquainted with its nature and quality. He supposes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to be not distinct from each other. For, being immersed in bodily and worldly things, he has also immersed in them the things that belong to his internal man, and has made of things that are distinct a confused and obscure unit. Therefore it is first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then,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but not,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 as is afterwards said in the next verse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1:7-8)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Gen. 1:7–8)

 

[3] 이런 이유로, 거듭나는 중인 사람이 그 다음 관찰하게 되는 것은, 속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즉 속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은 선과 진리라는 것, 오직 주님께만 속한 선과 진리라는 것이 이 속 사람이라는 것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겉 사람은 거듭나고 있을 때, 선을 행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진리를 말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아는 그런 본성 가운데 여전히 있지만, 사실은 주님에게 속한 이 선과 진리에 의해 인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궁창 아래의 물이라는 일종의 구별이 먼저 언급되고, 나중에 궁창 위의 물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천국에 관한 일종의 아르카눔(arcanum, 秘義, 감추어진 비밀, 신비, 복수는 아르카나 arcana)인데요, 인간은 자기 본성에 속한 것들에 의해, 그리고 감각에 속한 거짓과, 뿐만 아니라 온갖 탐욕에 의해 살아가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진리와 선 쪽으로 인도되며 구부러진다는 사실, 그래서 거듭남과 관련된 모든 움직임과 순간들이, 일반적으로든 아니든,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데, 그런 식으로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즉 ‘땅’(earth)에서 ‘하늘’(heaven)로 진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궁창, 즉 속 사람을 ‘하늘’(heaven)이라 하는 것이지요. The next thing therefore that man observes in the course of regeneration is that he begins to know that there is an internal man, or that the thing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Lord alone. Now as the external man, when being regenerated, is of such a nature that he still supposes the goods that he does to be done of himself, and the truths that he speaks to be spoken of himself, and whereas, being such, he is led by them of the Lord, as by things of his own, to do what is good and to speak what is true, therefore mention is first made of a distinction of the waters under the expanse, and afterwards of those above the expanse. It is also an arcanum of heaven, that man, by things of his own, as well by the fallacies of the senses as by cupidities, is led and bent by the Lord to things that are true and good, and thus that every movement and moment of regeneration,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proceeds from evening to morning, thu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or from “earth” to “heaven.” Therefore the expanse, or internal man, is now called “heaven.

 

 

25. ‘땅을 펼치며 하늘을 펴는’(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룰 때, 선지서에서 흔히 말하는 일종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이사야입니다. 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 is a common form of speaking with the prophets, when treat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A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그리고 다시, 주의 오심(the advent of the Lord)을 드러내어 말하는 데를 보면, And again, where the advent of the Lord is openly spoken of: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Isa. 42:3)

 

즉, 주님은 사람들의 거짓을 바로잡으시지도, 탐욕을 끄지도 않으시고 대신, 그것들을 진리와 선 쪽으로 구부리십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that is, he does not break fallacies, nor quench cupidities, but bends them to what is true and good; and therefore it follows: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내용이 같은 구절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Not to mention other passages to the same purport.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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