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운동의 요람이 된 이 뽀르치운꼴라는 프란치스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장소였다. 프란치스코 운동의 참된 요람이 된 이곳은 그 후 이탈리아 반도를 휩쓴 혁명과 지진의 재난 속에서도 용케 잘 보존되어 오늘날도 남아있다. 이곳은 그의 벧엘, 하나님의 집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스런 사다리가 확고히 선, 세계에서 드문 성지이다. 여기에서 인류의 고통을 덜게 하는 가장 고상한 꿈이 꾸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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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년 2월 24일, 그날은 성 맛디아 첨례일, 축일이었다. 그날 뽀르치운꼴라 성당에서 아침 미사의 예배 인도는 수바시오 산 베네딕트회 수도사가 했던 것 같다. 그는 마태복음 10장 6절로 15절을 낭독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사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프란치스코 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신비스런 영감의 물결을 느끼면서 깊은 마음의 격동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것은 2년 전, 산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듣던 영음보다 더 새롭고 명확한 예수님의 분부였다. 지금 자기 눈 앞에 서있는 사람은 사제가 아니라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이 그 순간 직접 프란치스코에게 너는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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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가면서 방금 들은 분부대로 지팡이도, 자루도, 지갑도 내던졌다. 신고 있던 신도 벗어 버렸다. 추워서 몸에 두르고 있던 외투도 벗어 버리고, 성당 수축 공사 때, 마당 구석에 버린 새끼줄을 주워다가 허리에 맸다. 즉석에서 낡은 옷 한 벌을 얻어 수도복을 삼아 입었다. 그것은 시골 사람들이 입는 긴 갈색 겉옷인데 두건이 달린 옷이었다. 옷 모양이 마치 긴 마대자루를 뒤집어 쓰고, 머리만 밖으로 내민 것 같아서 볼꼴이 우스운 것으로 아무도 입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처럼 나섰다. 감격이 새로왔다. 이같은 수도복 차림은 그날 이후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모든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의 옷차림이 되었다.
폭풍우가 개인 후, 프란치스코는 그곳을 떠나 구비오시에 가서 옛 친구의 집을 찾아가 겨우 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그것은 은둔자들이 입는, 긴 자루옷으로 프란치스코는 그 허리를 가죽띠로 묶고, 샌달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은수사의 모습으로 다녔다. 그는 그리운 산 다미아노에 돌아가지 않고, 구비오에 있는 나병원에 머물면서 깊은 친절과 동정으로 그들의 발을 씻어주고, 상처에 붕대를 싸매주고, 종기를 짜서 고름을 닦아주고, 가끔은 그들의 고름이 흐르는 상처에 입을 맞춰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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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본적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성전을 수리하려면 돈이 있어야 돌이나 석회 등 재료를 사겠는데, 그 돈이 어디서 생기는가.
프란치스코는 손수 은둔자의 수도복을 만들어 입고 나섰다. 아씨시 장터에 나가서 음유시인 같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는 큰 소리로 구경꾼 앞으로 돌아다니며 구걸했다. 집집으로 다니면서도 구걸했다.
"나에게 돌 한 개를 연보하는 사람은 주님께 하나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돌 두 개를 희사하는 분은 두 개의 보상, 세 개 희사하는 분은 세 개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그를 미치광이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과거를 회상하고 눈물 흘리며,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군중들에게 말한다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든지, 또는 돌을 희사해 달라고 구걸하든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든지 할 때는 박학인 듯 그럴 듯한 표현을 쓰는 것을 피하고, 친근감을 주는 말로 했다. 어려운 학술적 용어나 주제넘는 지식을 자랑삼지 않았기 때문에, 프란치스코의 말은 언제나 청중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마음에 파고 들어가는 감화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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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터 네거리의 설교 방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이 돌을 가져와 많은 돌이 모아졌다. 그는 돌을 몸소 짊어지고 운반하여 성당 수리공사를 했다.
무조건 순종하지 않고 건방지게 된 아들의 태도에 적개심을 일으켜 아들을 악담 저주한 부친은 프란치스코를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고소했다. 아들을 호적에서 제적해 버리고, 그동안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사용한 막대한 돈의 액수까지 계산해 보았다. 아직도 아들이 가지고 있을 훔친 돈도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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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공개 설명하고나서 프란치스코에게 권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시오. 아무리 교회를 돕고 싶다고 해도 선행한다는 핑계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돈을 갖고 있을 권리가 없으니 부친의 것은 모조리 돌려드리시오."
"예, 주교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대답하고 나서는 주교관에 들어가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둘둘 말아 들고, 완전한 나체가 되어 군중들 앞에 나와 서서 비장한 태도로, 그러나 정중하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나는 지금까지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도네를 아버지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하나님만을 아버지로 섬기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아버지의 돈과 옷을 모두 돌려 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모조리 아버지 발 앞에 정중하게 갖다 놓고, 가지고 있던 돈도 그 위에 놓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돌려 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주교관의 재판을 둘러서서 구경하던 군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주교도 크게 감격하여 벗은 채 떨고 서있는 가련한 프란치스코를 자기 외투자락을 펴서 감싸주면서 껴안았다.
이 광경을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지켜보던 베르나도네는 돌같이 굳어진 표정으로 서 있다가 결국 군중들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창피하여 허리를 굽혀 옷과 돈을 집어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빠져 나가 버렸다. 주교가 주교관의 정원사가 입던 낡은 옷 한 벌을 프란치스코에게 입혀주니 그는 감격하여 백묵으로 저고리 잔등에 십자가 표를 그려 입었다.
문예 부흥과 종교 개혁 이전의 중세기를 암흑 시대라고 하듯, 1209년 경의 교회는 형편없이 타락해 있었다. 성직 매매가 거리낌 없이 성행되었고, 교회 소유지 매매도 대담하게 자행되었다. 교황 인노센트 3세는 이같은 악한 폐단을 없이할 수 있는 방법은 '불과 칼' 뿐이라고 느꼈다.
그 무렵의 교황청의 성직자들에 대한 평은, '그들은 이해성에 있어서는 돌덩이요, 정의에 대해서는 나무 토막이요, 노하는 데는 불이요, 용서에 대해서는 쇳덩어리들이다. 그들은 여우처럼 속이고, 암소처럼 자존대하고, 미노토르처럼 탐욕에 젖는 놈팡이들이다.'라고 했다. 주교는 사제에게서 금전을 강탈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난폭한 싸움꾼들이요, 유럽 어디에서나 조소 거리와 비웃는 속된 노랫거리가 되었다. 사제들도 역시 임종하는 사람의 머리맡에서 유산 상속권을 얻어내고, 자기의 사생아의 장래를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이익을 쌓는 데만 전력하는 천한 부류들이었다. 수도원들도 예외없이 타락했었다. 수도원 안에 야심과 탐욕과 사치의 악습이 침입했고, 수도원이 정기 시장으로 변했다.
'프란치스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참말로 실행하고자 한다면, 네가 지금까지 육정 안에서 사랑해 온 모든 것을 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이것을 실천한다면, 지금까지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은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되며, 이제까지 네가 꺼리고 회피해 다니던 모든 것이 도리어 지극히 달콤하고 기쁜 것이 되리라.'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말을 타고 산책을 떠났다. 이 무렵, 그의 정신에는 새 생활에 대한 감격과, 주님께 절대귀의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말이 산길 구부러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돌연히 바로 앞에 나병자 한 사람이 마주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 나병자 공포증이 있는 그는 순간 본능적으로 말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통렬하게 자기를 자책했다.
'내가 이렇게 놀라운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이처럼 비겁해서야 되겠는가...'
모질게 휘몰아치는 양심의 책망! 그는 반사적으로 말 잔등에서 뛰어내려 나병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병자의 손에 자기가 갖고 있던 돈주머니를 다짜고짜로 쥐어 주고는 놀라서 자기를 바라보고 섰는 나병자를 사제처럼 힘껏 가슴에 안고, 썩어 냄새나는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흥분하여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육체적 기분으로는 구역질이 났으나, 자기 전존재를 황홀 속에 떨게할 만큼 한없는 영혼의 기쁨에 사로잡혔다. 프란치스코가 달콤한 것보다 고난을 선택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고통스런 것을 달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다...